해외동향

Vol.40  2023.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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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에서 가장 좋은 것은 공짜랍니다
2023년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되는 작품들

 

 

 

신인실(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2023. 02.


 

매년 1월 1일, ‘퍼블릭 도메인의 날(Public Domain Day)’이 되면 나라마다 규정한 저작권법에 따라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으로 전환되는 출판, 영화, 음악 작품 목록이 공개된다. ‘퍼블릭 도메인’이란 저작재산권이 적용되지 않는 모든 창작물을 가리킨다. 독점적 저작재산권의 적용 기간이 만료되어 퍼블릭 도메인으로 귀속된 모든 작품은 배타적인 권리가 없어지기 때문에 누구나 허가 없이 저작물을 합법적으로 사용하고 참조할 수 있게 된다. 왜 퍼블릭 도메인이 중요하며 이것이 갖는 가치는 무엇일까?

 

퍼블릭 도메인 작품들은 현대의 문화 콘텐츠의 귀중한 원천이 된다. 오늘날 대중들이 소비하는 수많은 문화 콘텐츠들은 여전히 퍼블릭 도메인에 상당히 의존하고 있다. 고전 문학은 영화와 연극, 뮤지컬, 비디오 게임 등으로 끊임없이 재창조되고 고전 미술은 다양한 빈티지 장식에 활용된다. 또한 과거의 창작물은 후손을 위해 인류가 보존해야 할 귀중한 역사적, 지식적 사료가 되는데 배타적 권리가 설정된 작품들은 자유롭게 수집, 복원, 분석, 디지털화가 어렵고 학술 연구를 위한 자료 활용에도 걸림돌이 된다. 현세대와 미래 인류의 이로움을 위하여 과거의 저작물에 대한 자유로운 접근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이 퍼블릭 도메인이 가지는 의의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저작물이 세상에 공개된 후 얼마의 시간이 지나야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될까? 문학, 예술적 저작물의 보호를 위한 베른협약(Convention de Berne pour la protection des œuvres littéraires et artistiques)의 제7조 1항에는 “저작권 보호 기간은 저작자의 생존 기간과 그의 사망 후 50년”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제7조 6항에 “동맹국들은 전 항들에서 정한 기간을 초과하여 보호 기간을 부여할 수 있다”라고 규정했기 때문에 퍼블릭 도메인에 귀속되는 기간은 각 국가 및 관할권에 따라 다르게 설정될 수 있다. 한국을 포함한 영국, 러시아, 일본, EU와 남미 소속 국가 대부분은 창작자의 사후 70년이 되는 해부터 해당 저작물을 퍼블릭 도메인에 귀속시킨다. 따라서 사후 70년 규정이 적용되는 국가에서는 2023년부터 1952년에 사망한 작가들의 저작물을 자유롭게 열람하고 공유하고 재사용할 수 있게 된다.

 

미국의 경우에는 저작권 보호 기간 규정이 조금 더 복잡하다. 1998년 시행된 미국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법(Copyright Term Extension Act)에 따라 미국에서는 아래 두 가지 조건에 해당하면 저작권이 만료된다.

 

1. 최소 95년 전에 저작되고 처음 공개된 저작물들
2. 1978년 이후에 출간된 작품 중 저작자가 최소 70년 전에 사망한 경우

 

이에 따라 2023년에 미국에서는 1927년에 발표된 창작물들이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된다. 다른 나라보다 복잡한 과정을 거쳐서 발전한 미국의 저작권법의 역사를 살펴보면 이러한 미국만의 특이점이 이해가 된다. 오늘날까지 미국 저작권법의 표준으로 남아 있는 1976년에 개정된 저작권법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1976년 이전 마지막 미국 저작권법 주요 개정은 무려 67년 전인 1909년에 있었다. 1909년 이후 텔레비전, 영화, 라디오, 녹음 등 문화 콘텐츠 분야의 광범위한 기술 발전이 일어났고 이에 따라 시대에 맞는 새로운 저작권법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개정 전 미국의 기존 저작권법의 저작권 보호 기간은 작품 공개 이후 기본 28년에, 또 한 번의 28년 연장을 허용하여 최대 56년이었다.

 

1976년 개정된 저작권법은 이 보호 기간을 대폭 늘려 저작자의 사망 후 50년으로 규정하였고 1978년 이전에 공개된 작품에 대해서는 기본 28년에 저작권 1회 갱신 기간을 28년에서 47년으로 늘려, 총 75년의 보호 기간을 부여하였다. 그리고 1998년에 통과된 저작권 보호 기간 연장법(월트 디즈니 컴퍼니(Walt Disney Company)가 초창기 미키마우스 영화의 퍼블릭 도메인 진입을 지연시키기 위하여 지속적인 로비를 통하여 이루어낸 법 개정이라는 의미로 일명 미키마우스 보호법(Mickey Mouse Act)으로도 불린다.)은 저작권 보호 기간을 저작자의 사망 후 70년으로 연장하고 1978년 이전 작품은 기본 28년에 저작권 갱신 기간을 47년에서 67년으로 연장하여 총 95년의 보호 기간을 부여했다. 이와 같은 사정에 따라 2023년 미국에서는 95년 전 출간된 작품들이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듀크 대학교(Duke University) 로스쿨 소속 퍼블릭 도메인 연구센터 소장 제니퍼 젠킨스(Jennifer Jenkins)는 홈페이지에 “2023년 1월 1일은 퍼블릭 도메인의 날입니다. 1927년의 작품들이 모두에게 공개됩니다!”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2023년부터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되는 유명한 작품들을 소개했다.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 한 번 살펴보자. 참고로 해당 작품들은 창작자의 사후 70년까지 저작권을 보호하는 대한민국에서는 모두 이미 퍼블릭 도메인에 속한다.

 

2023년부터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되는 소설, 영화, 음악

2023년부터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되는 소설, 영화, 음악

 

 

소설 부문에서는 영국의 작가 버지니아 울프의 장편 소설이자, 미국 모던 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영어 소설 100선 중 15위에 오른 『등대로(To the Lighthouse)』가 있다. 램지 가족이 1910년에서 1920년 사이 스코틀랜드의 스카이 섬을 방문한 내용을 다루고 있는 이 소설은 모더니즘 문학에서 의식의 흐름 기법을 사용한 핵심 사례로 중요하게 언급된다. 이 소설에는 대화나 직접적인 행동이 거의 등장하지 않고 대부분 인물의 생각과 관찰을 기록하는데, 램지 가족과 그들이 섬에서 맞이하는 손님들의 모습을 통하여 일상의 소소한 기쁨과 비극이 끝없이 반복됨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타임〉 매거진에서 1923년 이후 최고의 영어 소설 100선 중 하나로 선정되기도 했다. 이 외에도 헤르만 헤세의 『황야의 이리(Der steppenwolf)』, 아가사 크리스티의 『빅포(Big four)』,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여자 없는 남자들(Men Without Women)』, 마르셀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아서 코난 도일의 모든 『셜록 홈즈 시리즈』 등이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이 된다.

 

한편, 작품의 출간 연도에 따라 저작권 보호 기간이 정해지는 미국 저작권법 때문에 『셜록 홈즈 시리즈』의 퍼블릭 도메인에 얽힌 법적 분쟁도 있었다. 당시에는 『셜록 홈즈 시리즈』 중 초기 작품의 저작권이 소멸되고 남은 10편의 저작권이 살아있을 때였는데, 코난 도일의 유족이 만든 “코난도일재단”이 아직 저작권 보호를 받는 시리즈의 작품이 남아 있으므로 누구도 셜록 홈즈와 존 왓슨의 캐릭터를 자유롭게 사용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당시 미 법원은 저작권이 보호되는 작품이 있다고 해도 셜록 홈즈 캐릭터의 저작권은 퍼블릭 도메인이 맞는다는 판결을 내렸다.

 

영화 부문에서는 〈스타 탄생(A Star Is Born)〉, 〈공공의 적(The Public Enemy)〉으로도 유명한 윌리엄 A. 웰먼(William A. Wellman) 감독의 제1회 아카데미 최우수 작품상 수상작인 무성 영화 〈날개(Wings)〉가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시기에 한 여성을 두고 낭만적인 경쟁을 벌이는 두 전투기 조종사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화는 개봉과 동시에 당시에는 혁신적이었던 촬영 기술과 공중전 시퀀스로 큰 찬사를 받았다. 이 작품은 1997년 미국 의회 도서관의 ‘영구 보존 영화’로 선정되어 문화적, 역사적, 미학적으로 중요한 영상 자료임을 다시 한 번 인정받았다. 이 외에도 영상물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선정된 SF 영화의 시초인 프리츠 랑(Fritz Lang) 감독의 〈메트로폴리스(Metropolis)〉, 최초의 유성 영화 〈재즈 싱어(The Jazz Singer)〉, 알프레도 히치콕(Alfred Hitchcock) 감독의 첫 번째 스릴러 〈하숙인(The Lodger)〉, 미국 의회 도서관 영구 보존 영화 〈선라이즈(Sunrise)〉 등이 2023년부터 미국에서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된다.

 

작곡 분야에서는 오드리 햅번(Audrey Hepburn) 주연의 영화로도 만들어진 뮤지컬 〈화니 페이스(Funny Face)〉의 테마 곡 〈화니 페이스〉와 〈에스 원더풀(S Wonderful)〉이 퍼블릭 도메인으로 들어간다. 뮤지컬 〈굿 뉴스(Good News)〉의 대표곡 〈인생에서 가장 좋은 것은 공짜랍니다(The Best Things In Life Are Free)〉, 루이 암스트롱(Louis Armstrong)의 〈포테이토 헤드 블루스(Potato Head Blues)〉, 〈걸리 로우 블루스(Gully Low Blues)〉, 최초의 브로드웨이 뮤지컬 〈쇼 보트(Show Boat)〉의 넘버 등도 역시 저작권이 소멸된다. 참고로 미국 저작권법상 음악 작품에 대하여는 악보와 가사만 저작권이 소멸하며 녹음된 음원에 대한 저작권은 별도로 유지되기 때문에 사용에 유의해야 한다.

 

왜 전 세계는 퍼블릭 도메인의 날을 기념하는 것일까? 그것은 우리가 누릴 수 있는 문화적 복지의 또 한 번의 향상을 기념하는 것이다. 인류의 위대한 작품들의 저작권이 소멸하면 지역 사회는 별도의 비용 지급 없이 자유롭게 명화를 상영할 수 있고 청소년 오케스트라는 라이선스 비용을 지불하지 않고도 공연을 준비할 수 있다.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된 문학 작품들은 누구나 인터넷에서 열람이 가능하고 재편집을 할 수도 있다. 어떤 오래된 작품들은 저작권의 보호를 받을 때에는 그 접근성의 한계로 대중들에게 잊혔다가 퍼블릭 도메인으로 전환되고 자유로운 재사용이 가능해지면서 재발견되고 새 생명을 얻기도 한다.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셰익스피어의 『로미오와 줄리엣』을 각색한 뮤지컬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

 

 

퍼블릭 도메인은 인류 창의성의 원천이기도 하다. 저작권의 핵심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함으로써 창의성을 더욱 촉진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작권은 한정된 시간 동안만 그 권리를 보호하며, 시간이 지나면 과거의 작품이 다른 미래 작가들의 합법적인 창의성의 촉매제가 될 수 있도록 배타적 제한을 푼다. 셰익스피어의 작품들은 후대에 얼마나 많은 문화 콘텐츠에 영감을 주었는가? 〈프랑켄슈타인〉,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위대한 개츠비〉, 〈곰돌이 푸〉가 오늘날 영화, 연극, 출판, 게임을 통틀어 우리의 문화 산업에서 눈부시게 재창조되고 있는 모습을 생각해보자. 퍼블릭 도메인 작품들은 수많은 세대의 예술가들의 창의성을 자극하는 동시에 다양하게 활용됨으로써 문화유산으로서의 명맥을 이어간다. 퍼블릭 도메인은 모두가 자유롭게 보고, 읽고, 쓰고, 누릴 수 있는 우리 역사의 저장고이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문화가 발전해온 기록 그 자체인 셈이다.

 

신인실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대학에서 프랑스어와 영문학을, 대학원에서 저널리즘을 전공하였으며, 2016년부터 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에서 에이전트로 활동하고 있다. 영미 지역과 유럽권의 다양한 작품들을 발굴하여 한국 출판계에 널리 알리면서 함께 기획하고 있다.
insilshin@imprim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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