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1  201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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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북은 그저 ‘모델’이 아니다.

 

 

 

노경실(작가)

 

201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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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는 기회다.”라는 말이 있다. 경기침체는 물론 출생감소에 따른 어린이 독자의 급격한 감소. 스마트폰과 다양한 IT 매체로 인한 종이책에 대한 외면현상, 게다가 도서정가제의 부정적 영향(긍정적인 부분은 거의 드러나지 못한 채)까지 더해져 지금 출판계는 공포스러울 정도로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물론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출판시장이 이 정도로 어렵지는 않았다. 특히 어린이책 시장은 90년대부터 즐거운 노래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풍요로운 만큼 그 내리막길의 가파름은 더 빠르고, 멈출 것 같지 않을 낭떠러지처럼 느껴질 정도이다.

 

위기라는 말조차 이제는 익숙해져 버렸다고나 할까. 그러나 어린이들의 목소리와 뜀박질 소리가 멈추지 않는 이상 어린이책들도 주저앉을 수는 없는 법. 이런 위기 상황 속에서 몇몇 출판사들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라 할 수 있는 ‘빅북’의 문을 열었다.

 

먼저 그 문을 통과한 곳은 한림출판사이다. 해외그림책 중 5권을 빅북으로 제작 판매하기 시작했다. 그 뒤 다른 출판사들도 천천히 빅북 제작에 발을 들여놓고 2017년에는 그림책 전문 출판사 4곳(고래뱃속, 노란돼지, 반달, 책고래)에서 함께 빅북을 시작했다. 그 밖에도 몇몇 출판사가 빅북 대열에 동참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 대부분의 어린이책 출판사들이 빅북이란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는 상황이다. 그런데 판매결과나 경제적 효과는 어떠한지 무척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은데, 이것은 나중에 얘기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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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빅북이란 무엇이기에 출판사들이 쉽사리 시작하지 못하는 것일까? 라는 점부터 생각해보자. 미국이나 일본 등 해외에서는 이미 자리 잡은 빅북은 겉모양만 생각한다면 기존 책과 큰 차별성은 없어 보인다. 우선 기존의 책보다 150~200% 크게 제작된다. 이렇게 큰 몸집의 책은 우리나라에도 이미 있었다. 다만 스티커북이나 색칠하기, 숨은그림찾기, 그리고 공룡 관련 책등 일종의 워크북이나 놀이책 분야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래서 책보다는 학습이나 놀잇감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그림 1> 빅북으로 수업하는 모습 (출처 : 구글)


〈그림 1〉 빅북으로 수업하는 모습 (출처 : 구글)

 

하지만 요즘 출판되는 빅북은 놀이책이나 워크북이 아닌 읽기 책들이다. 즉, 문학 분야의 책들이 다수이다. 기존의 글과 그림 모두 뛰어난 그림책(현재로써는 그림책에 한정되어 있다.)이 빅북으로 재탄생되고 있다. 아이 몸집만큼이나 커다란 책이다 보니 한 장 한 장의 두께가 만만찮다. 그래서 아이 혼자 책을 보기에는 버겁다. 책 한 장을 넘길 때마다 일어서서 두 손으로 넘겨야 한다. 친구들과 함께 읽거나 옆에 어른들이 있어야 편리하게(?) 책을 넘기며 즐길 수 있다. 이 점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읽기 위해 몸을 움직인다는 것은 집중력이 떨어지는 아이들을 오히려 책 속으로 더 가까이 이끌고 가는 매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책은 혼자서 조용히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완전히 깨뜨리게 되기 때문이다.

 

빅북은 이런 외적 효과 외에 텍스트와 그림에 대한 새로운 경험을 제공해주는 즐거운 경험을 제공해준다. 방바닥이나 커다란 책상 위에 빅북을 펼치는 순간, 아이들은 탄성을 쏟아낸다. 가령 ‘겨울왕국’이라는 책을 상상해보자. 기존의 그림책 사이즈인 30~40센티미터 내외의 책 안에서 보고 느낀 겨울왕국의 모습들, 등장인물들의 움직임을 아이들은 가슴과 머릿속에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빅북을 통해 다시 보는 겨울왕국은 아이들의 시야에는 마치 온통 눈 덮인 산과 얼음궁전의 현장 속에 자신이 발을 디딘 것 같은 착각이 들 정도로 강렬한 느낌을 받는다. 또, 어린아이가 동네 골목길을 누비며 다니는 그림책이라면 아이는 자신이 어느 낯선 동네를 뛰어다니는 듯한 착각을 하게 된다.

 

이런 경험은 멀찌감치 앉아서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는 애니메이션이나 두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는 스마트폰 안의 세상과는 확연히 다르다. 어떤 아이는 책을 읽고 보다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두 발로 걸어서 책 속으로 들어가려고도 한다. 그러다 보니 텍스트가 주려는 메시지가 더 깊은 울림이 되어 아이들의 마음을 뒤흔들게 된다. 이러한 신선한 경험은 어린아이에게만 그치지 않는다. 부모는 물론 실버 세대들도 마찬가지이다.

 

노안이나 다양한 문명이기의 제품들로 시력이 현저하게 약해진 어른들도 빅북(특히 그림책)을 통한 책읽기는 새로운 즐거움이다. 더구나 손자들을 돌보는 어르신들에게 빅북은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놀잇감이자, 교육 도구로 삼을 수도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주위에 자녀와 함께 빅북을 경험한 부모들의 체험(?)담을 들으면 ‘나 자신이 유년시절로 돌아간 듯한 기분이었다.’ ‘그동안은 아이에게 일방적으로 책을 읽어주느라 힘들었는데 함께 놀이하듯 즐거웠다.’ ‘책을 통해 아이와 함께 여행하는 느낌이었다.’ 등등 긍정적인 반응이 대부분이었다. 또, 아이들을 지도하는 교사들 역시 ‘책(텍스트)에 대한 아이들의 집중력이 훨씬 늘었다.’ ‘책을 읽고 나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에 참여도가 증가하였다.’ ‘지도 교사로서 의무감보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즐거움이 더 커졌다.’고 말했다. 현재 빅북 출판을 가장 활발하게 하는 한림출판사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아도 이러한 긍정적 효과는 기대 이상으로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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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이렇게 좋은 빅북이라면 모든 출판사가 판매실적과 함께 공익을 위해 빅북을 가열차게 출판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책을 점점 멀리하는 아이들을 책친구로 만들어야 한다, 부진한 출판시장을 활성화하는 역할로 삼아야 한다, 세대의 벽을 넘어서서 유아부터 구순 어르신들이 함께 읽고 즐길 수 있는 신개념의 책 출판으로 시장도 살리고 국민독서도 증진해야 한다, 책이 이제는 엄숙하고 고상한 유물이 아니라 놀이동무나 장난감, 사랑하는 인형처럼 친근하게 여겨지도록 도와줘야 한다’라며 빅북 시장을 키워야 하지 않을까?

 

이렇게 의미가 좋고, 독후 경험도 훌륭한데 어찌 된 일인지 빅북 시장이 아직은 너무도 조용하다. 그래서 빅북을 시도했던 출판사 관계자들과 전화통화를 해보았다. 대형출판사는 제외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당장의 이익은 크지 않지만 버틸 수 있는 여력이 있고, 자체적인 홍보능력만으로도 힘들지만 빅북 라인을 지속해갈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통화한 출판사들은 대부분 1인 출판사이거나 1~2명의 직원으로 운영되는 소규모이다. 이러한 출판사들의 이야기는 거의 비슷 고충을 담고 있었다.

 

‘가장 큰 문제는 제작비이지요.’ 기존 책의 몇 배가 들어가는 제작비와 힘든 공정과정으로 제작일수도 늘어나며 책의 특성상 비닐 포장을 해야 하니 아직 빅북 시장이 활발하지 않은 상태에서 큰 모험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모험도 이러저러한 자원이 있어야 지속할 수 있는 것인데 작은 출판사들은 빅북 한 권이 이익을 낼 수 있는 시간까지 버티기에는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게다가 홍보와 판매방법에도 한계가 있다.

 

인터넷서점에서의 판매가 어려우며,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책 한 권이 차지하는 자리에 비해 판매가 낮으므로 독자들의 눈앞에 진열하는 시간이 극히 짧거나 거의 없기도 하다. 물론 학습목표를 담고 있거나 유행과 시류를 타는 빅북은 오프라인 매장에서도 버젓이 한 자리를 차지하고는 있다. 그러나 오롯이 문학성을 담보한 빅북은 제 한 몸 앉을 자리조차 얻기 힘든 실정이다. 그래서 고육지책으로 아이들의 독서를 지도하는 교사들이나 도서관을 통해 책을 홍보한다.

 

안타깝게도 1인 출판사들은 이것마저 힘들다 절대인력 부족 때문이다. 혼자서 편집, 홍보 영업 등등을 다 담당하려니 발품과 시간을 들여 도서관을 찾아다니며 빅북을 알리기에는 한계가 있다. 결국 최후의 선택은 당분간 빅북 제작을 미루거나 포기하는 것이다. 분명 빅북은 새로운 출판 비즈니스 모델로 자리 잡으리라 판단하지만 ‘그때’가 아직은 언제쯤이 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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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빅북의 현실적인 상황이 어려운데도 놀라울 정도로 꾸준하게 빅북을 출간하며 전국의 도서관에 알리는 출판사들이 몇몇 있다. 그 중 대표적인 그림책 출판사인 한림은 빅북뿐만 아니라 미니북과 트윈링 빅북(기존책과 더불어 이 3종의 책을 모두 출간함. 즉 같은 제목의 4종류의 책이 나오는 것이다.)을 출간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그래서 독자는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도깨비를 빨아버린 우리 엄마(사토 와키코 글·그림)’은 1991년에 출간되어 이제 거의 30여 년이 되는 책이다. 그만큼 어린이들의 독서 취향이나 그림을 보는 방법, 책에 대한 인식이 바뀐 만큼 빅북과 미니북, 트윈링북 3종류의 책을 출간하였다. 그래서 예전 독자들의 마음을 다시 이끌고, 새로운 독자들의 시선을 모으는 것이다. 이러한 다양한 옷을 갈아입은 책들은 특히 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 등에서 독후활동에 좋은 효과를 보이고 있다. 지도 교사들은 한결같이 아이들의 텍스트에 대한 집중도가 늘어남을 이야기한다. 그리고 아이들은 지겨운 책읽기가 아닌 즐거운 여행같은 책읽기, 내가 주인공이 된 듯한 책읽기의 경험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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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북, 그렇다면 우리는 멈추지 말고 계속 진행하거나 아직 시작하지 않은 곳은 결단을 내려야 하느냐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빅북은 분명 새롭게 진출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세대를 아우르는 책, 공감도가 큰 책, 놀이와 체험을 제공해주는 책, 텍스트와 그림의 여운이 기존 책보다 길게 남는 책, 독후활동에 큰 효과를 보여주는 책, 책에 대한 고정관념을 바꾸어주며 즐길 수 있는 콘텐츠가 되어주는 책 등등…. 장점과 미덕은 충분하다. 그러나 빅북, 말 그대로 그 물적, 시간, 과정의 투자 역시 크다. 그러기에 선택은 출판사 몫이요, 라고만 말하기에는 잔인하다. 정부 차원에서 출판시장을 살리는 의도를 넘어서서 점점 책을 멀리하는 아이들을 위한 독서안내 방법의 하나로 지원과 응원을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출판 비즈니스 모델’ 이것은 무대 위의 멋진 모델처럼 그저 바라보고 즐기라는 것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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