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27  2021.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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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도서전
포스트스크립트 2021, 프리스크립트 2022

 

 

 

주일우(서울국제도서전 대표)

 

2021. 11.


 

서울국제도서전의 처음 시작은 1947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1) 식민지에서 해방된 직후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도 출판인들은 조선출판문화협회를 만들었고, 작은 규모지만 독자들에게 책을 소개하는 도서전시회를 시작했다. 경기도 학무국이 주최한 교육전람회에 교육문화관을 설치하고 50여 개의 출판사들이 공동으로 교육도서와 신간도서를 출품, 전시, 판매했다. 출판계 전체가 나서서 해방 이후에 출간된 서적들을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우리 사회의 교육과 문화 발전의 기틀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불안정한 정치와 이어 벌어진 한국전쟁은 도서전을 계속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출판인들의 노력은 계속되었다. 한국전쟁 휴전 직후인 1954년 국립도서관과 제1회 독서주간을 공동주관하면서 도서전시회를 다시 출범시켰다. 이후, 도서전은 우리 사회의 중대한 역사적 사건들과 더불어 긋닛을 반복하면서 70여 년을 이어왔다.

 

 

1)
도서전 역사에 대한 기술은 서울국제도서전의 역사를 전시로 표현한 “긋닛: 뉴월드커밍”의 전시 도록에서 따 왔다.

 

도서전은 광복 이후 교육전람회의 부대행사라는 맹아 형태로 나타났고, 휴전 직후 공식적인 출범을 알렸다가 4.19혁명이 일어난 해에는 또 잠시 멈췄다. 1960~70년대 동안 비교적 순조롭게 존속한 도서전은 신군부정권이 들어선 1980년대 초반, 그리고 서울에서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열렸던 1980년대 후반에는 이런저런 내·외부 사정으로 휴지기를 가졌다. 1990년대 이후 별다른 단절 없이 매해 발전된 모습을 보이던 도서전이 또다시 중단의 위기에 처한 것은 2020년 예기치 않은 팬데믹을 맞이하면서였다. 다행히 전시 자체가 무산될 뻔한 고비는 온·오프라인 병행 운영이라는 새로운 형식의 개발로 잘 넘길 수 있었다. 미래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독자를 만나려는 출판의 요구와 책을 만나려는 독자들의 요구가 만나는 자리인 도서전은 계속될 것이다.

 

사실 책을 전시한다는 것은 특이하면서도 흥미로운 활동이다. 그것은 책을 ‘읽기’가 아닌, ‘보기’의 대상으로 삼는 일이다. 이 일에는 책 읽기를 권유하고 그 요청을 수긍하는 전시자와 관객 간의 암묵적 소통이 담겨있다. 그것은 책 읽기가 중요하며 가치 있다는 사회적 공감대를 형성하고 확인한다. 책을 전시한다는 것은 또한 책을 문화적 전승과 예술적 감상의 대상으로 변화시키는 행위이기도 하다. 전시되는 책은 종종 우리가 직접 읽을 수 없다 하더라도, 후세에 길이 보전해야 할 문화유산으로서 의미를 인정받는다. 그것은 마치 서예가 그렇듯이, 본래의 쓸모로부터 분리된 채 순수한 물질적 형식과 미학적 특성으로 환원되기도 한다. 이처럼 전시회를 통해 책은 정보와 지식의 단순한 전달자를 넘어선, 교육과 계몽의 매개자이자 문화예술의 대표자로서 위상을 부여받는다. 그리하여 그것은 한 사회나 국가의 문화를 지탱하는 정신적 기둥인 동시에, 그것을 상징하는 물질적 기호로 거듭나는 것이다. 전통적인 종이책에서 오디오북, 전자책, 웹소설 등으로 책의 물질성은 계속해서 변화해왔지만, 그 사회문화적 의미만큼은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상황에 도서전의 기여가 막대하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도서전은 사회적인 흐름이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반영해서 그 해의 주제를 정한다. 올해의 경우는 팬데믹으로 인해서 오프라인 도서전을 하지 못했던 2020년의 상황과 원래의 도서전을 하고 싶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들의 욕구 사이에 끼어 멈춘 상황에서 주제에 대한 고민을 출발했다. 멈추었다가 새로운 변화를 향해 나아가는 모습은 진화학자 스티븐 제이 굴드가 생명의 역사를 설명하면서 쓴, 단속평형(Punctuated Equilibrium)이라는 말이 떠오르게 한다.2) 생명의 변화가 점진적이고 연속적으로 이루어진다기보다는, 한동안 비슷한 모양으로 힘을 축적하다가 그 힘이 급격한 변화를 이룬다는 것인데. 2년이나 잡혀 있던 우리의 일상이 어떤 모습으로 돌아올지를 생각하는 데 중요한 힌트라고 생각했다. 우리가 다시 만나는 일상은 이전과 많이 다를 것이다.

 

 

2)
Eldredge, Niles, and S. J. Gould (1972). "Punctuated equilibria: an alternative to phyletic gradualism." In T.J.M. Schopf, ed., Models in Paleobiology. San Francisco: Freeman, Cooper and Company, pp. 82-115.

 

단속(Punctuation)은 끊겼다 이어진다는 뜻인데, 한자어라서 직관적으로 무슨 뜻인지 알기가 쉽지 않다. 초등학교 과학 시간에 전기회로를 배우면, 전구를 전지에 연결했다 끊었다 하는 스위치를 가진 회로를 단속회로라고 표현하는 것 이외엔 생활에서 용례도 찾기 어렵다. 사전을 뒤져, 지금은 쓰지 않는 순우리말 단어, “긋닛”을 찾았고 그 말을 주제로 삼았다. Punctuation은 한글로 번역할 때, 구두점으로도 번역이 된다. 멈춘 지점이나 시간을 어떤 구두점으로 표현할지를 찾으면 현재에 대한 고민의 깊이를 더할 수 있다. 마침표, 느낌표, 쉼표, 물음표 등의 구두점을 찾아 디자인의 모티브로 삼고 거기서 주제 강연의 실마리를 잡았다. 그리고 그 뜻을 살려, 도서전의 고민을 담아 2021년 서울국제도서전은 도서전의 역사를 조명하는 전시를 했다.

 

2021 서울국제도서전 모습


2021 서울국제도서전 모습

 

도서전의 얼굴로 서 주었던 생태학자 최재천은 말줄임표를, 소설가 정세랑은 쉼표를, 가수 황소윤은 물음표를 택했다. 거기에서 이들의 주제 강연이 시작되고, 다른 세미나의 주제들과 연사들도 정해졌다. 이런 멈춤으로 인해 삶과 노동의 조건과 환경이 변하고 기후 변화에 대한 우리의 대응 방식도 바뀌어야 한다. 디지털이 더 중요하게 대두되고 우리가 사용하는 매체의 비율이 변하면 산업적 변화도 생긴다. 이 모든 것들을 담은 세미나와 콘퍼런스를 조직하고 관객들에게 제공했다.

 

주제를 중심에 두고 전시회를 꾸리면서 다른 방향으로는, 산업적인 요구를 전시회에 반영하려고 노력했다. 책은 한 권, 한 권의 판매가격이 높은 것은 아니라서, 장치산업의 전시회에서 한 건만 계약을 해도 수억 원의 돈이 오가는 것과 출판은 양상이 다르다. 그래서 전시회에서 출판사들이 책을 팔려는 노력도 하지만, 실제로는 어떤 전시회보다 산업이 고객에게, 즉 출판이 독자에게 제공하려는 축제의 성격이 강해진다. 이 축제를 통해서 독서 문화가 진작되고 그 분위기가 전반적인 책의 판매에 양의 효과를 가져오기를 기대하는 것이다. 물론, 이것은 출판인들이 70년 넘게, 마음에 간직하고 있는 문화의 근간으로서 출판을 지키고 있다는 자부심과 연결이 되어 있다. 하지만 서울국제도서전은 여기에 경제적인 효과를 더할 수 있는, 저작권의 거래에도 관심을 가지고 있다.

 

책 한 권, 한 권을 독자에게 파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은 독자들을 찾을 수 있도록 해외에 내보내는 작업이다. 이 작업을 위해서 해외의 바이어들을 도서전에 유치하고, 이들과 우리나라 출판사들 사이에 상담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플랫폼을 구축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세계 유수의 도서전들이 경쟁하고 있지만, 동아시아에서 이런 역할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플랫폼이라는 생각으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다. 국제지적재산권기구와 대한출판문화협회가 운영하고 있는 “퍼블리셔스 서클”3)은 우리의 저작권을 수입할 가능성이 높은 동남아시아 국가들의 출판사에게 저작권과 출판 과정에 대한 교육을 하는 프로그램인데, 이런 프로그램을 통해서 잠재적 바이어들과의 관계를 돈독히 하면서, 전 세계 저작권 거래의 가치 사슬을 만드는 데 일조하고 있다. 그 외에도 국제출판협회와 세계도서전감독협의회 등 국제단체에서의 활발한 활동을 통해서 우리의 콘텐츠가 해외로 진출할 경로를 찾고 있고, 그것을 도서전에 적용하는 방법을 끊임없이 모색하고 있다.

 

 

3)

 

저작권을 해외에 파는 것 이외에, 출판 산업의 새로운 판로는 다른 미디어에 저작권을 파는 것이다. 최근에는 웹툰, 웹소설뿐만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책들이 영화나 드라마의 형태로 옮겨가고 있고, 그것을 통한 세계 진출도 활발하다. 이번 가을에 서울국제도서전이 부산국제영화제 비프홀 1층에 준비한, 서울국제도서전 부산특별전은 다른 미디어로 넘어가는 통로를 열어보기 위한 시도이다. 영화 쪽에서 콘텐츠를 수집하려고 만든 통로가 아니라, 출판에서 큐레이션 한 책들의 전시를 보여줌으로써 영화 쪽에 적극적인 소통의 통로를 뚫어보려고 한 것이다. 서울국제도서전은 게임이나, 미술 등 다른 분야로 넘어가기 위한 시도도 끊임없이 할 생각이다. 그것이 도서전을 축제를 넘어, 산업의 진흥을 위한 플랫폼의 역할을 하도록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최근 5년간, 서울국제도서전은 젊은 사람들의 큰 호응을 받고 있다. 흔히 젊은이들이 책을 읽지 않는다는 선입관이 있는데, 실제로 도서전을 찾는 대다수의 독자들은 젊은이들이다. 이들이 책을 읽는 것은 아주 ‘힙’한 문화로 자리를 잡았다. 게임은 누구나 하는 것이라면 책은 문화를 선도하는, 리딩 그룹의 문화가 되어가고 있다. 이렇게 앞선 그룹이 문화를 끌어나가는 힘이 있기 때문에 독서의 분위기는 더 확산될 것이라 믿고 있다. 그리고 서울국제도서전은 그런 상황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이제 젊은 독자들이 도서전에서 서점에서는 찾을 수 없었던 책들을 발견하고, 놀라고, 기뻐하고 있다. 그러한 즐거움은 세대를 넘어 흘러갈 것이다.

 

2022년은 코로나19를 극복한 해로 기록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어떤 형태가 될지 모르지만, 우리는 멈추어 서 있는 이 지점에서 어디론가 움직일 것이다. 그 움직임이 클 것이라고 지레 짐작하지는 않는다. 조금이라도 움직여서 우리는 어디로 갈 것인가? 그것이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이 잡은 주제이다. ‘반걸음.’ 우리는 이 주제를 가지고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 책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운명에 빠진 독자들을 맞이할 것이다. 우리가 힘들게 뗄, ‘반걸음’이 앞으로 나갈지, 뒤로 물러설지, 혹은 비틀거리면서 다른 행로를 잡을지 아직은 모른다. 우리는 그 미래에 대한 생각과 상상을 책 안에서 찾을 수 있다고 믿고 있다. 그리고 상상을 넘어 우리 앞에 닥칠 일들에 대한 준비도 책에서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 안에 지혜를 담은 필자들을 직접 모실 것이고 거기서 영감을 얻어 예술적 작업을 한 작가들도 한자리에 모일 수 있도록 준비를 할 것이다. 비행기가 끊겨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을 수 없었던 외국의 손님들도 맞을 것이다. 주빈국으로 『백년의 고독』4)을 쓴 마르케스의 나라, 콜롬비아가 찾는다. 무엇보다 소중한 독자들은 다시 코엑스에서 맞이한다.

 

 

4)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백년의 고독』(민음사)

 

반걸음의 원전은 『순자(荀子)』다. 규보불휴 파별천리(蹞步不休 跛鼈千里). 반걸음씩 걸으면 느린 자라도 천 리를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움직일 수 있는 범위는 인간과 자연의 한계 안에 있고, 그 움직임은 지루할 정도로 느릴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의 켜가 쌓이면, 그것은 천지개벽의 큰 변화가 된다. 우리가 코로나19로 멈춘 이후에 처음 내딛는 반걸음이 중요하다. 갈 길이 비록 가깝다 하더라도 가지 않으면 목적지에 도착하지 못한다. 일이 비록 작은 것이라도 하지 않으면 이룩하지 못한다. 그리고 그것이 쌓인 미래를 전망하고 거기에 희망을 건다. 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은 6월 1일에서 5일까지 서울특별시 강남구 삼성동에 있는 코엑스에서 열린다. 꼭 일정표에 입력해 두고 잊지 마시길 바란다. 짜잔!

주일우(서울국제도서전 대표)

서울국제도서전 대표, 대한출판문화협회 부회장, 국제출판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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