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48  2023.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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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를 말한다: 소비자 반대 입장]
도서의 공공성과 시장성 문제를 재검토해야 한다
도서정가제 입법 개선의 필요성

 

 

 

윤성현(한양대학교 정책학과 교수, 헌법학)

 

2023. 10.


 

필자는 도서정가제 사건에 관한 헌법재판소 공개변론(2023. 1. 12)에 참고인으로 지정되어 헌법학자의 관점에서 의견서를 제출하고 재판정에서 진술하였고, 이후 이를 학술논문으로 발표하였다(윤성현, “현행 도서정가제 규정의 직업수행의 자유와 소비자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에 대한 헌법학적 검토”, 공법연구 제51집 제3호, 2023. 2.). 이 과정에서 필자의 주된 논변 중 하나가 현행 도서정가제의 ‘소비자 자기결정권’ 침해의 문제였는데, 〈출판N〉에서 이와 관련된 시리즈를 기획하였기에 학술적 관점에서 본 기고문 작성에 응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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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의 공공성 명제에 대한 재검토

 

필자는 현행 도서정가제가 전면적으로 위헌이라거나 혹은 입법적으로 지금 반드시 전부 폐지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그러나 우리 헌법은 시장경제와 개인의 자유를 원칙으로 하며 시장 실패가 우려되거나 혹은 특별한 공공목적 등이 있을 때 시장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본다. 이 점에서 보면, 지금의 도서 시장의 상황이 후자의 영역에 속하는지에 대해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특히 도서정가제라는 예외적인 가격 규제 제도를 지탱케 한 논리적 기반인 도서의 공공성 명제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도서는 문화적 공공성만으로 일의적으로 설명하기에는 오늘날 그 내포와 외연이 매우 확장되어 있다. 과거에 도서는 ① 문화적 ② 상품의 양면성 중에서 마치 상품성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도서라는 분류 속에는 문화 콘텐츠는 물론이고 지극히 상업적이고 개인적인 콘텐츠까지 다양하게 포함되고 있고 그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때문에 도서의 문화적 공공성만을 추상적으로 내세워 도서정가제 전반이 정당화된다는 논리는 큰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공공성의 정도를 비교하는 것은 쉽지 않고 가변성과 상대성을 가질 수 있지만, 현재 우리 출판 시장의 상황을 고려하여 거칠게 일반화하면 “① 종이책 〉 ② 전자출판(웹출판 제외) 〉 ③ 웹출판(웹소설, 웹툰)”의 순으로 공공성이 강하다고 생각된다. 교육, 학술, 문화 발전에 필수적인 책을 공공성이 강한 것으로 본다면, ① 종이책이 세 가지 도서의 형태 중에서는 가장 공공성의 비중이 높다고 할 수 있다. 한국형 웹툰과 웹소설을 포함하는 웹출판의 경우, 다루는 내용이 주로 코믹/개그, 판타지나 액션/무협, 로맨스 등으로 가볍게 소비되는 스낵 컬처(snack culture)의 형태가 주종을 이루며, 내용이나 소비 형태 등을 볼 때 공공성과는 상대적으로 가장 거리가 멀다고 분류할 수 있다.

 

현행 도서정가제 규정의 위헌성 검토

 

따라서 현행 도서정가제 규정의 위헌성은, 과거 책의 공공성 보호를 위해 형성된 종이책 중심의 도서정가제를 사회적 현실과 매체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일률적으로 확대하여 규율하는 부분에 있다고 생각한다. 즉 현 도서정가제 규정은 ‘종이책’, ‘신간’에 대한 적용을 골자로 하는 한도에서는 국회의 입법형성권 내에 있다고 보아 합헌으로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종이책이라고 해도 ‘구간’에 대해서도 무제한으로 신간과 동일하게 할인을 전면 제한하고 있는 부분은, ‘신간’과는 구분되는 ‘구간’ 시장에서 사업자의 직업 행사의 자유를 보호하는 데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소비자 측면에서도 구간에 대해서조차도 가격 선택에 대한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을 과도하게 침해하여 위헌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전자출판과 웹출판(웹소설, 웹툰) 분야는, 종이책과 거의 모든 면에서 생태계의 차이가 존재하는데도 동일한 기준으로 묶어서 기왕의 출판법으로 함께 규율하는 것은 사업자의 직업행사의 자유는 물론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침해로 볼 수 있다. 특히 웹출판 분야의 경우에는 종이책과 주된 비교 대상이라기보다는 유튜브나 넷플릭스 등 OTT와 같은 새로운 문화산업 콘텐츠들과 비교하는 것이 내용상 그리고 형식상으로도 더 적절한 측면이 있다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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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헌법재판소의 도서정가제 합헌 결정에 대한 비판적 검토

 

최근 선고된 헌법재판소 결정(헌재 2023. 7. 20. 2020헌마104,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22조 제4항 등 위헌확인, 이하 ‘도서정가제 결정’)을 자세히 살펴보자. 헌법재판소는 “이 사건에서는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이 간행물 판매자의 직업의 자유를 침해하는지가 주된 쟁점이고, 가격과 관련하여 소비자의 자기결정권이 제한되는 것은 간행물 판매자가 정가 판매 등 의무를 부담함에 따라 발생하는 부수적 효과이므로, 이는 간행물 판매자의 직업의 자유 침해 여부를 판단하는 과정에서 고려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따라서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는 별도로 판단하지 아니한다.”고 하여 직업의 자유 침해 여부만을 검토하고 소비자의 자기결정권 침해 여부는 별도로 판단하지 않았다.

 

이는 심판대상인 도서정가제 규정이 ‘판매자’를 규율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어 규범적으로 ‘소비자’를 직접적 수범자로 보고 있지 않고, 기존의 헌법재판소 선례가 소비자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좀처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보인다(그러나 헌법재판소도 자도소주 구입명령 결정(헌재 1996. 12. 26. 96헌가18, 주세법 제38조의7 등 위헌제청)에서 판매업자에 더하여 “소비자가 자신의 의사에 따라 자유롭게 상품을 선택하는 것을 제약함으로써 소비자의 행복추구권에서 파생되는 “자기결정권”도 제한하고 있다.”라고 하여 위헌결정을 내린 예도 있다). 나아가 만약 소비자의 권리를 기본권으로 널리 인정할 경우 주관소송인 헌법소원이 자칫 민중소송화할 수 있고 사법심사의 대상이 지나치게 확대됨을 경계한 것이 아닌가 추정해보게 된다.

 

하지만 헌법재판의 핵심적인 심사 기준이 비례원칙이고 법익 간의 형량(balancing)이라고 볼 때, 도서정가제 규정으로 인해 가장 피해를 볼 수 있는 그룹이 독자(소비자)인데 이들의 권리와 이익이 충분히 반영되지 못한 점, 특히 예외적인 가격 규제의 핵심 근거인 공공성 전제의 충족 여부에 대해서 더 깊이 논의하지 않고 도서를 일률적으로 ‘지식문화 상품’이라 간주한 뒤 소비자의 문제를 기본권이 아니라 ‘소비자의 후생’이라는 상대적으로 하위 법익으로 치부한 점, 종이출판물과 전자출판물의 차이를 인식하고 이를 상세히 구분하여 설시하면서도 양자가 “상호보완적인 관계로 어느 한 쪽이 다른 쪽을 완전히 대체할 수 없다”고 상세한 근거 없이 추상적으로 선언한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무엇보다도 입법자가 관련 주체들의 법익 형량을 적절히 하지 못했을 경우에 이를 사법적으로 구제하는 것이 헌법재판의 역할이라고 볼 때 이번 결정은 관련 주체의 기본권에 대한 입법 형량이 불충분한 상황임에도 현상유지적인 사법소극주의에 그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갖게 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에서 전문적 검토와 민주적 숙의를 통한 입법 개선 요망

 

그러나 헌법재판소 결정문의 당부를 떠나서, 위 결정은 헌법재판소가 헌법의 관점에서 법해석을 한 것이고 특히 위헌 결정이 아닌 ‘합헌’ 결정에 대해서 입법자가 반드시 기속될 필요도 없다. 또한 헌법재판소도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출판법 제22조에 따른 간행물의 정가표시 및 판매(할인율을 포함한다) 제도에 관하여는 3년마다 그 타당성을 검토하여 폐지, 강화·완화 또는 유지 등의 조치를 하여야 하므로(출판법 제27조의2), 사회의 제반 사정을 고려하여 이 사건 심판대상조항에 따른 기본권 제한의 정도를 조정할 가능성도 열려 있다.”라고 하고 있다. 또한 “도서정가제의 도입 배경, 전자출판산업의 규모와 발전 형태, 전자출판물에 관한 소비자의 인식 및 접근성 등 문화·역사·경제적 특성을 고려하여 각국은 전자출판물에 대한 도서정가제 적용 여부를 다르게 정할 수 있다.”라고 설시하여 현행 제도와 다른 입법형성의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따라서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국회에서는 헌법재판소가 도서정가제 결정에서 내린 결론과 논거들을 충분히 음미하고 존중하되, 입법형성권의 차원에서 도서의 공공성과 시장성의 문제를 다시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시장성이 주된 영역이라고 판단되는 경우에는 소비자의 가격에 대한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도서정가제가 개선될 수 있도록 입법개정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윤성현 한양대학교 정책학과 교수, 헌법학

한양대학교 정책학과에서 헌법을 가르치고 있다. 18~19세기 영미(英美)의 민주주의·자유주의·입헌주의 사상과 이론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출발하여, 현재는 우리 헌법상 민주주의 원리를 재정의하고 나아가 자유주의·입헌주의 등 다른 헌법 원리와 공존과 균형을 모색하는 헌법 이론의 정립 및 새로운 시대에 부응하는 헌법 정책 제도화를 주된 연구 목표로 삼고 있다.
shyoon0811@hanyang.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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