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25  2021. 09.

게시물 상세

 

지식 플랫폼의 최전선, 대형서점 체인의 미래에 대하여
서울문고 사태를 통해 알아보는 오프라인 대형서점 위기의 문제들

 

 

 

김일신(서해문집 본부장)

 

2021. 9.


 

반디앤루니스

 

서울문고 사태가 알려주는 조언은 무엇인가?

 

1988년 무역센터 아케이드 입구에 매장을 연 서울문고는 평당 매출액 기준으로 당시 교보문고와 영풍문고, 종로서적을 능가하는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비의 준말) 극강의 서점이었다. 이후 코엑스 리노베이션 시기에 매장을 확장 이전하며 반디앤루니스 브랜드를 론칭하였고, 온라인 서점 서비스도 시작하였다. 2000년대 후반에는 교보문고와 영풍문고가 전국 주요 상권마다 지점을 내던 것에 대항하여 지점 확장에 나섰다. 잠실 롯데월드타워에 무리한 조건으로 지점을 내고 난 뒤부터는 해마다 손실이 누적되어 결국 지난 6월 16일에 최종 부도 처리되었고, 이후 법원으로부터 회생개시결정을 받아 회생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다.

 

강남권 최강의 서점으로 화려하게 데뷔하여 전국 대형서점과 패권 경합을 벌이던 반디앤루니스는 미국의 반즈앤노블(Barnes & Noble)을 떠올리게 한다. 한때 미국의 최대 서점 체인의 지위를 누렸던 반즈앤노블이 아마존닷컴(amazon.com)의 위세에 밀려 일부 매장을 철수하고 위기의 상황에 내몰리고 있는 것도 반디앤루니스, 즉 서울문고의 운명을 반추하게 한다.

 

서울문고의 역사는 강남이라는 새로운 상권과 코엑스의 풍부한 유동인구를 바탕으로 강력하게 일어난 이력에서 그 확장과 패배의 고비를 짐작하게 하는데, 유동인구가 많은 새로운 거점을 공략하는 전략이 바로 임대료 부담에 직면하게 하는 이유가 되었을 것이며, 또 매장 공간의 소유자인 대형자본과의 재계약 시점에서 계약 해지 리스크를 언제든지 시현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그 결과가 어느 정도는 예측될 수 있지 않았을까?

 

서울문고의 위기는 잠실 롯데월드타워 입점 계약에서 높은 수수료 조건, 타 롯데 쇼핑몰 입점 요구 시 무조건 입점해야 한다는 약속을 한 데서 시작되었다. 심지어 이런 부담을 안고서 입점을 강행했던 잠실점의 매출이 기대에 미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이후 수원점, 산본점 입점 요구에 대항하지 못하게 되어 기회비용 망실과 자본 손실을 야기했다. 결정적인 위기는 코엑스점 재계약 때, 영풍문고가 대신 입점하게 된 데서 비롯된다. 서울문고의 출발 공간이었던 코엑스점 재계약 불발은 그 매출 비중이 커서 서울문고의 운명을 뒤흔드는 데 충분했다.

 

한국 출판계는 연매출 1,500억 원에 달하던 서점 체인을 하나 잃었다. 비록 회생 절차가 진행 중이지만 어떤 대단하고 특별한 자본의 배려로 인수되지 못한다면 회생하더라도 그 미래가 출판의 이익에 부합하기 어렵게 되었다. 과거 100년의 역사를 자랑하던 종로서적의 부도 이후 종로서적 매출이 주변에 있던 영풍문고와 교보문고로 흡수되지 못하고 상당 부분 유실된 것을 돌아보면 서울문고 사태는 종이책의 외연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간주될 수밖에 없다.

 

2003년, 도서정가제 도입으로 한국의 서점 전쟁이 시작되었다!

 

2003년의 불완전 도서정가제는 인터넷 서점을 급성장시켰고, 이것을 경계하던 대형서점들이 지점망 확장에 나서면서 한국의 서점 전쟁이 시작된다

 

2003년은 한국에서 인터넷 서점들이 본격적으로 영업을 시작하던 시기였다. 그리고 2003년은 출간된 지 1년 이상이 된 책에 대해 인터넷 서점에서 얼마든지 할인 판매할 수 있도록 한 ‘출판 및 인쇄진흥법(도서정가제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해였다. 이때부터 인터넷 서점들은 할인 판매를 무기로 급성장했다. 당시에 대형서점들도 너나 할 것 없이 자사 온라인 쇼핑몰 홍보에 나섰으나 선두 주자였던 교보문고를 제외하고는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결국 대형서점들은 온라인에서의 기회 박탈을 만회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대안을 찾아 나서게 된다. 온라인만 할인 판매하게 한 기형적인 도서정가제가 무려 2014년까지 유지되어 이 시기 동안 온라인 서점은 비약적으로 성장했고, 이에 생존의 위기를 느낀 대형서점들은 ‘지점망 확대’로 맞서게 된다.

 

먼저 교보문고가 강남점 오픈을 시작으로 전국 핵심 상권마다 40여 개의 점포를 차렸다. 영풍문고도 전국 중소 거점 도시들에까지 점포를 내기 시작하여 44개의 지점망을 만들기에 이르렀다. 3위 서점이었던 서울문고도 불가피한 상황에서 무리한 점포 확장 경쟁에 나서게 되었으며, 20여 곳에 출점하기에 이른다. 이들 세 개 서점 체인의 점포 수는 전국 100여 개에 달했고, 핵심 상권에 중복 출점하여 상당한 손실을 떠안고 폐점하는 점포들이 속출했다. 게다가 이들 체인망의 점포들이 일부를 빼고는 수익성이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해당 서점의 외형 확장에는 역할을 하였으되 이익이 나지 않아 고전했다.

 

교보문고 광화문점


교보문고 광화문점

 

한국 서점 약사(略史)

 

온라인 서점이 도서정가제의 구간 할인을 무기로 급성장 → 대형서점 전국 지점망 계획 추진 → 온라인 서점 내 출혈 경쟁 격화 및 대형서점 체인의 중복 출점으로 인한 서점들의 비용 증가 → 동네서점 숫자의 급감, 그리고 대형서점 질서 재편 → 도서정가제 개정(구간 10% 이상 할인 금지)

 

종이책에 대한 마지막 찬사, 세계의 오프라인 대형서점 체인들

 

‘공간이 전략이다’, 미국 반즈앤노블

 

미국 뉴욕에서 1873년 첫 매장을 낸 반즈앤노블은 미국 서점의 상징이었다. 1980년대와 1990년대에 반즈앤노블은 720개의 대형서점 체인을 미국 전역에 건설하며 최전성기를 누렸다. 독서와 문화 활동의 즐거움을 선사하는 리딩테인먼트형 서점, 이른바 기업형 서점 체인을 시현했던 반즈앤노블은 새로운 지점을 낼 때마다 그 도시에서 최대의 뉴스를 만들며 흥행에 성공했다. 볼티모어에서는 폐(廢) 발전소 건물의 산업적 환경을 리노베이션하여 독특한 서점 공간으로 연출했다고 하니 그 상상력이 놀랍다. 반즈앤노블은 21세기가 시작되기 전까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서점의 이름이었다.

 

1994년, 서른 살 청년 제프 베이조스는 차고에서 온라인 쇼핑몰 아마존의 문을 열었다. 도서정가제가 없는 미국에서는 서점의 할인 판매가 자연스러운 것이었고, 아마존의 할인 판매와 배송 편의성은 단시간 내에 반즈앤노블의 매출을 잠식하게 하였다. 책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와 물건을 과감한 가격에 공급하도록 하여 모든 곳에 파는 아마존의 힘 앞에 다른 상품 유통처럼 책 유통도 선두 자리를 내주고 물러나지 않을 수 없었을 터. 2011년, 보더스 서점 체인이 문을 닫았고, 반즈앤노블도 영업 손실에 허덕이다가 결국 2019년 헤지 펀드에 매각되었다. 그렇다면 대형서점 체인의 생존은 이제 불가능해진 것일까? 도시 중심지에 비싼 임대료를 지불하는 데다 많은 수의 고용을 유지하여야 하며, 게다가 도서정가제가 없어 아마존과의 판매가 경쟁까지 치러야 하는 미국 서점들의 고통이 반즈앤노블의 몰락에서 여실하게 느껴진다. 이는 한국 서점들의 마음도 거울처럼 비춰주는 것 같다. 도시의 중심지에 들어선 대형서점은 그 자체로 시민들의 문화 진지(陣地)이며, 망가뜨리면 다시는 재생시킬 수 없는 지식 광장이다.

 

중국 신화서점

 

신화서점


신화서점

 

신화서점은 1937년에 문을 연 국유 서점으로 국가로부터 토지 무상사용권을 부여받아 임대료를 내지 않는 서점이며, 베이징에만 126개의 지점, 중국 내 12,000개의 분점을 운영하고 있다. 중국이 망하지 않는 한 절대 망하지 않을 것 같은 서점이다. 국유 서점이다 보니 당과 국가의 정책을 선전하는 포스터와 전시물이 많은 게 이색적인데 그렇다고 책의 다양성이 없는 게 아니다. 도서관 십진분류 방식으로 나눠진 각각의 서가에는 단행본들이 넘쳐나고, 서가와 서가 사이 곳곳에는 책을 읽고 있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이들의 모습에서 1990년대 한국의 모습이 오버랩되는 듯한 중국 사회의 문화적 활력을 볼 수 있었다. 한 가지 흠이라면 책을 구입할 때 포장해주는 방식이 매우 독특한데, 분홍색 갱지를 위아래에 대고 노끈으로 묶어서 내어준다는 점이다. 5층짜리 건물을 통째로 사용하고 있는 시단(西單) 신화서점은 2002년에 문을 닫은 종로서적을 떠올리게 했다.

 

일본의 기노쿠니아와 츠타야

 

기노쿠니아 ⓒ 도진호


기노쿠니아 ⓒ 도진호

츠타야


츠타야

 

1926년 도쿄의 신주쿠에서 처음 문을 연 기노쿠니아 서점은 전국 주요 도시에 59개 서점과 38개의 영업소, 그리고 74개의 북센터를 보유하고 있다. 일본을 대표하는 오프라인 서점이다. 연매출 2조 원을 달성한 츠타야 서점은 ‘책의 발견성’을 확대하기 위해 서점의 코너마다 큐레이터를 두고 도서 전시, 상담 및 추천, 개인별 맞춤형 검색, 기획전 운영 등 전문 도서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라이프 스타일 서점’의 개념으로 한국에도 널리 알려진 이곳은 그야말로 ‘츠타야 스타일’이라는 서점의 공간 구성, 운영 방식의 새로운 모델로 각광받고 있다. 일본의 서점들은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도서정가제를 철저히 준수하고 있다. 오프라인 서점의 입장에서 보면 온라인과 같은 가격에 팔 수 있어서 가격 공세로 인한 시장의 축소는 겪지 않아도 되니 다행인 셈. 다만 스마트폰과 새로운 디바이스의 절대적 사용 시간 증가로 인해 독서 인구가 줄고 도서 판매량이 점차 감소하고 있는 것은 일본의 서점들에 대해서도 가장 큰 공격일 것이다.

 

타임지가 뽑은 아시아 최고의 서점, 대만 청핀(誠品)서점

 

청핀서점 입간판 ⓒ 도진호


청핀서점 입간판 ⓒ 도진호

청핀서점 내부 ⓒ 도진호


청핀서점 내부 ⓒ 도진호

 

청핀서점은 1989년, 타이베이에서 예술, 미술, 건축 책을 파는 서점이자 복합 문화 비즈니스를 목표로 한 회사로 시작하여 점차 전 분야의 책을 파는 서점으로 확장하였다. 책 진열 방식, 가구와 집기의 배열 등 서가의 구성이 가장 인간적인 공간으로 이름 높은 서점으로서, 이른바 ‘츠타야 스타일’과는 또 다른 ‘청핀 스타일’을 만들어내기에 이르렀다. 모든 분야의 책을 분야별, 이슈별, 키워드별로 진열하는 방식으로 서점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무엇인지 암시해주는 곳이다. 현재 청핀서점은 대만의 최대 오프라인 대형서점 체인, 온라인 서점의 운영 주체, 그리고 영화관과 갤러리, 호텔까지 연결한 복합 문화 공간이기도 하다. 명실상부한 대만 서점의 모든 것! 대만 서점의 랜드마크를 넘어 새로운 문화 랜드마크로 거듭난 청핀서점은 소위 책의 ‘구색’에서도 최고여서 책을 큐레이션하는 수준 이상을 지향한다.

 

한국의 삼일문고 스타일

 

삼일문고 조감도(삼일문고 김기중 대표 제공)


삼일문고 조감도(삼일문고 김기중 대표 제공)

삼일문고 정면


삼일문고 정면

 

2017년 경상북도 구미에 문을 연 삼일문고는 도시와 서점이 어떻게 연결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 같은 곳이다. 심혈을 기울여 선정한 도서를 직접 진열하는 큐레이션, 매장의 공간을 청핀서점이나 츠타야 수준으로 구성한 철학이 엿보이며, 저자 강연회를 통해 독자와 저자를 잇는 서점의 노력이 돋보인다. 코로나19의 어려운 시절이 닥쳤음에도 불구하고 그 서점을 아끼는 독자들이 있어 매출을 늘려가고 있다. 삼일문고는 2021년 9월에 매장을 더 넓히고 공간 스타일을 바꾸는 리노베이션 일정을 앞두고 있는데, 한국의 대형서점 체인이 아닌 지역 서점들의 이런 노력들에서 서점의 미래를 밝힐 힌트 같은 것을 보게 된다. ‘멋진 서점을 볼 수 있도록 준비하겠다’는 삼일문고 김기중 대표의 메일에서 독자를 신뢰하고 서점의 미래를 확신하는 자신감이 느껴져서 좋았다. 이런 서점들이 더 많아지고, 대형서점 체인들도 더 친근한 전략으로 선회하여 자본의 경쟁이 아닌 책의 영토를 확장하는 연대 같은 것으로 상승하길 소망하는 마음이다.

 

한국의 지적 기반, 대형서점 체인의 미래에 대하여

 

한국의 대형서점 체인은 미국이나 일본, 중국, 대만 서점들의 성장 배경이나 사회적 환경과는 다른 역사를 갖고 있다. 구간 할인을 보장하던 도서정가제와 신·구간 모두 10% 이상 할인을 금지하는 도서정가제의 간격 사이에서 온라인 서점의 시장 진입과 단독적 입지 확장이 있었고, 이 사이에서 현대적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하는 매장 구성 방식에 착안한 전국적 지점망 확보의 시간이 있었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중복 출점에 의한 패배, 독서 인구 감소로 인한 매출 감소로 고통받는 시간이 닥쳐왔다. 이제는 한국의 대형서점 체인들도 지점 신규 출점에 대해 신중하고 보수적인 판단으로 검토하기 시작했으며, 매장별로 영업 이익이 나지 않는 것을 보완하기 위해 동네서점들과의 연결을 통한 매출 확장에도 나섰다. 이는 사실 동네서점들을 연결하는 서적 도매상의 영역으로의 진출을 꾀한 것이어서 책의 유통 생태계의 도매 유통 부분을 약하게 하는 원인이 될 수 있어 조심스럽다.

 

한 도시에 사용자의 감성과 지성을 자극하는 서점 공간이 있다는 것은 분명 축복이다. 도시의 가장 번화한 곳, 가장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자리한 서점이 매출도 좋고 지역의 문화 공간으로서의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훌륭한 일임에 틀림없다. 다만 대형서점들이 너도나도 할 것 없이 중심지로만 가서 출혈 경쟁을 하고 있다면 이는 대단히 불행한 사건을 예고하는 것과 다름없다. 서점의 입지가 꼭 최고의 중심지에 있어야 하는 것일까? 다이칸야마에 있는 츠타야 지점은 롯폰기, 신주쿠, 시부야 같은 도쿄 도심과는 거리가 있어 유동인구가 많지 않은 곳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독자들을 불러들인다. 1급지의 임대료와 가성비를 계산하되 그 임대료 비용을 2급지에 투자하여 넉넉한 공간 구성, 지역의 라이프 스타일을 담아내고, 매월 나가는 경상비는 줄여 지속 가능한 ‘스타일 서점’으로 만든다면 어떨까? 이렇듯 1급지의 비용으로 2급지에서의 ‘공간적 독특함’과 ‘취향의 제안’을 담는 서점을 꾸리는 방법론으로 ‘진지전’이라는 개념을 제안한다. 안토니오 그람시(Antonio Gramsci)가 기동전의 피로감을 내려놓고 장기적으로 지역에서 살아남는 것을 제안한 개념이기도 한 이 ‘진지전’을 부동산 폭등으로 임대료가 하늘 높이 치솟는 한국의 상황에서 검토하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한국의 서점은 시민에게 지적이고 문화적인 자극을 제공할 줄 아는 서점이어야 한다. 비교적 저렴한 비용을 지출하면서도 탄탄한 지역 연결성에 기반을 두고 지역 문화 거점으로 자리매김하는 방법론이야말로 서점의 지속 가능성을 담지하게 할 것이다. 물론 큐레이션과 커뮤니티 지향을 포함하여 시민의 문화적 거점이 되기 위한 각종 플랜은 기본일 터!

 


김일신

 

김일신(서해문집 본부장)

인터파크송인서적 채권단대표자회의 위원, 現 청소년출판모임 총간사, 現 대한어린이출판연합회 기획간사. 출판 시장을 넓고 깊게 바라보고 그 변화의 방향을 예민하게 추적하고 싶었던 전략 마케터.
buyongs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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