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32  2022.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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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출판이라는 바다 위로,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의 돛을 올린다

 

 

 

장현정(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회장, 호밀밭 대표)

 

2022. 05.


 

2022년 1월 27일 오후 5시, 부산시의회 대회의실에서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Busan Publication Culture and Industry Association, 약칭 BPCIA)’가 공식 출범했다. 축하 공연과 로고 디자인, 행사 진행 등 출범식의 모든 준비를 각 회원사가 함께 힘을 모아 치른 행사라 더욱 각별했다.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을 비롯해 김영춘 전 해양수산부 장관, 김석준 부산광역시 교육감, 김태훈 부산시의회 문화위원회 위원장, 김태만 국립해양박물관장, 김형균 부산테크노파크 원장과 국내외 출판사와 서점 대표들이 축사로 자리를 빛내주었다. 또한 부산경남만화가연대 최인수 대표도 참석해 웹툰 작가들의 응원 메시지를 전해주며 힘을 실어주었다.

 

4월 기준으로 협회에는 부산에서 활동 중인 37개 출판사가 회원사로 참여하고 있다. 출범 이후 부산시와 시의회를 비롯한 지역의 여러 공공기관과 다양한 이해관계자들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며 주목하고 있다. 협회 집행부도 이런 기대에 부응하고 4차 산업혁명과 문화예술의 시대에 원천콘텐츠로서의 출판이 지역의 문화와 산업에 어떤 새로운 활력을 보여줄 수 있을지 고민하며 바쁘게 첫해 사업을 준비 중이다.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출범식 -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의 축사(좌), 김태훈 부산시의회 문화위원회 위원장의 축사(우)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출범식 - 박형준 부산광역시장의 축사(좌), 김태훈 부산시의회 문화위원회 위원장의 축사(우)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출범식 - 회원사 기념 촬영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출범식 - 회원사 기념 촬영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가 갑자기 출범한 건 아니다. 지역출판의 현실이 녹록치 않다는 진단과 연대의 필요성에는 대부분 동의했지만, 그동안 이를 실행에 옮길 계기나 여력이 부족했다. 그러다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후원하고 ㈜호밀밭이 주최한 2018년 지역출판포럼을 계기로 출판사들의 연대가 공식적으로 지역사회에 의제화되었다.1) 이 포럼에서 나온 내용을 기초로 김혜린 시의원이 발의한 부산지역출판조례가 2019년 5월 통과되며 탄력을 받았지만, 이후 코로나 사태로 2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2021년 연말에 다시금 본격적인 논의가 시작되며 올해 1월 출범으로 이어졌다.

 

 

1)
국제신문, “[현장 톡·톡] 지역출판 살리려는 생산·기획·향유자의 진지한 고민 돋보여, 2018 지역출판포럼”, 2018년 10월 30일.

 

그사이 부산시는 콘텐츠 산업을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지정하고 육성 전략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출판사들의 의견을 참고해 지역출판 지원을 주관하는 기관도 부산문화재단에서 부산정보산업진흥원으로 바뀌었다. 그동안 전문인력 부족과 영세한 자본, 유통구조의 한계 등으로 자비출판이나 대행 출판 등에 머물렀던 부산의 출판사들도 2000년 중반을 기점으로 빠르게 체질을 개선하며 나름의 노하우를 꾸준히 축적해왔다. 그렇기에 본격적인 지역출판의 생태계를 형성하기 위한 환경이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8년(좌), 2019년(우) 지역출판포럼


2018년(좌), 2019년(우) 지역출판포럼

 

지역출판 활성화의 노력은 부산 바깥에서도 이미 다양하게 전개되어 왔다. 2017년 5월, 제주에서 우리나라 최초로 지역도서전이 개최되면서 이후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잡지 및 단행본 출판사 연대 조직인 ‘한국지역출판연대(약칭 한지연)’가 조직되었고 매년 지역을 순회하며 기초자치단체와 함께 도서전을 공동 주최하고 있다. 2018년에는 경기도 수원, 2019년에는 전북 고창, 2020년에는 대구 수성구, 2021년에는 강원도 춘천에서 개최되었고, 2022년 제6회 도서전은 오는 9월 광주광역시 동구에서 열릴 예정이다.

 

이런 노력과 함께 2018년 2월, 제주도가 ‘제주특별자치도 지역출판진흥조례’를 제정했고, 이듬해인 2019년 5월 부산이 ‘부산광역시 지역출판진흥조례’를 제정했다. 같은 해 9월 서울이 ‘서울특별시 지역출판진흥조례’를 제정한 후 2020년 12월 타법 개정을 시행했고, 대구는 2019년 12월 ‘대구광역시 지역출판진흥조례’를 일부 개정하여 2020년 1월부터 시행했다. 그러나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출판 관련 조례를 제정한 곳은 지금까지 한 곳도 없다.

 

반면 대부분의 지역에서 독서 진흥이나 서점 활성화를 위한 조례 제정 및 시행은 활발한 편이다. 2021년 1월을 기준으로 전국 17개 시·도 광역 자치단체 중 15개(88.2%), 전국 226개 시·군·구 중 107개(47.3%)에 독서문화진흥조례가 제정되어 있고, 13개 광역자치단체(76.5%)와 44개 시·군·구(19.5%)가 독립적인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를 제정·시행하고 있다. 이런 현상과 관련해 대체로 지역출판 관련 조례가 독서 진흥에 집중되어 지역출판 생산자의 지원 정책에는 미흡하고, 지역별 특성과 차이가 보이지 않는 획일화된 조례 제정으로 차별화에 제한적일 수밖에 없으며, 조례 내용이 대체로 임의조항 표현으로 구성되어 강제성이 없기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한계점을 지적한다.2)

 

 

2)
김정명(2021), “지역출판 관련 조례 연구”, 한국출판학연구 제98호, 한국출판학회

 

지역출판 활성화를 위한 대책은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중에서도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출판은 규모가 영세하고 유통 구조가 불안하며 무엇보다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는 점에 대부분의 관계자들이 공감하고 있다. 여기에 더해, 출판 정책을 담당하는 일원화된 부서가 마련되지 않은 상황을 지적하기도 한다.3) 그동안 중앙정부 차원의 출판 관련 지원사업도 오랫동안 서울과 수도권에 집중되었다. 그러다 보니 지역 차원에서는 출판과 관련해 명확한 역할을 맡은 부서가 설정되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

 

 

3)
최낙진(2018), “지역출판문화산업 육성 및 진흥방안 연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정부 차원의 공식적인 출판 관련 법령과 제도는 2002년 김대중 정부에 와서야 처음으로 마련되었는데, 지역출판에 관한 법적, 제도적 고민은 이후로도 한참이 지난 2015년에야 시작되었다. 그러다 보니 각 지방정부에서도 출판을 어떻게 육성하고 지역의 독서문화와 어떻게 연계하면 좋을지 갈피를 잡지 못해왔다. 지금도 출판, 도서관, 서점 등 여러 정책이 따로 놀며 공회전하는 상황이기도 하다. 부산도 예외는 아니었다. 다른 대부분의 지역처럼 독서, 서점, 출판을 다루는 부서가 제각각 달라 혼선이 빚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이에 조례 제정과 협회 출범을 계기로 부산시에서도 더 명확하게 책임과 역할을 가진 담당 부서를 설립하려고 계획 중이다.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는 출범과 동시에 2022년 2월 9일부터 16일까지 회원사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실시했다. 그 결과, 회원사들은 협회에 정보 교류와 교육, 협업을 통한 역량 강화, 공동 마케팅 등을 가장 바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회원사 대부분이 1~2인으로 구성된 작은 출판사인 데다 수도권과 달리 경력이 없는 상황에서 창업한 경우가 많아 더 전문적인 역량과 경험을 갖출 수 있도록 협회가 도움이 되기를 바랐다.

 

또한 2월 14일과 22일에는 두 차례의 간담회를 통해 지역의 출판, 서점, 도서관, 언론 등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청취했다. 이 자리에서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무엇보다 출판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지속적인 네트워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출판, 도서관, 서점 등 지역의 출판과 독서문화 정책이 따로 놀고 있다는 진단이었다. 구체적으로는 공공도서관의 경우 지역서점을 통해 지역출판사들의 책을 발주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고, 각 도서관의 사서들도 좀 더 적극적으로 지역출판물에 관심을 보여주기를 희망했다.

 

이런 여러 의견을 바탕으로 협회는 올해부터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특히 그동안 부산의 출판이 문화적 측면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축적해왔지만, 산업적 측면에서는 취약했다는 비판에도 주목했다. 지역의 콘텐츠와 가치를 확산하고 자체적으로 규모 있는 기획을 추진하려면 이제부터는 비즈니스로서의 출판에도 많은 신경을 써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

 

현재 협회는 교육, 지역콘텐츠 출판 지원, 회원사 간 정보 공유 및 대외 홍보, 공동 시리즈물 기획, 지역 유관 콘텐츠 산업 연계, 지역출판인 권익 보호,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의 이니셜을 딴 ‘BPCIA 어워드’, 공기업 및 공공기관 연계 독서문화 확산 사업 등 다양한 사업을 준비 중이다. 장기적으로는 부산출판산업연구지원센터이나 부산북비즈니스센터 설립과 지역의 향토 기업이 함께하는 지역출판기금 혹은 모태펀드 등을 계획하고 있다. 또 지역적으로 가까운 일본과 대만 등 아시아 출판사들과의 교류도 시도할 예정이다. 그리고 지역출판사들에 가장 시급한 공간인 물류 창고 확보를 통해 재고 관리나 유통 인프라를 개선하고 대구의 인쇄산업센터처럼 정보와 교육 등을 일원화할 수 있는 출판문화산업센터를 설립하는 등 기반시설 확충도 준비하려고 한다.

 

필자는 종종 특강이나 인터뷰 등 기회가 있을 때마다, ‘출판은 문화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주장하곤 한다. 책이 시대에 뒤떨어진 올드미디어라는 편견도 있지만, 어떤 분야든 시작할 때 책(기록)을 통해 자료를 모으고, 하나의 프로젝트 혹은 삶이 끝나도 역시 책(기록)으로 남기기 마련인 것은 지금도 여전하다. 그렇게 책(기록)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문화를 이어주는 다리가 되기 때문이다.

 

부산의 출판사들은 이제 시대정신을 선도하는 지식기업으로 거듭날 준비를 해야 한다. 지역만의 구체적 맥락(context)을 톺아보고 이를 독자들의 시대적 감수성에 조응하는 형태로 가공할 수 있는 역량도 길러야 한다. 기존 출판에 대한 고정관념에서도 탈피해야 하고 네트워크형 조직으로 전환해 지역의 청년들과도 수시로 협업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금처럼 시공간이 확장되고 실시간으로 연결된 글로벌 시대에는, 부산처럼 인구 300만이 넘는 도시를 유럽의 작은 국가 하나처럼 생각하며 바라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IT 기술이나 번역 앱 등 관련 기술이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데 언제까지나 단일국가 내부의 시야로만 미래를 준비해서는 안 될 것이란 생각이다.

 

협회와 부산의 출판사들에도 숙제가 많다. 개인적으로는 두 가지 한계를 극복하는 데 관심이 많다. 우선 지역에 고급 지식을 선도하는 담론이 부족하다는 점이다. 출판이 수도권에 과잉 집중되면서 최소한의 지식과 담론의 주도권도 확보하지 못하는 상황은 여타 영역으로까지 수도권에 의존하는 현상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다른 하나는 시민들의 아래로부터의 수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을 읽지 않는 시대라지만 독립서점, 독립출판, SNS와 같은 일상적 글쓰기, 독서 모임 등은 특히 청년 세대를 중심으로 급증하고 있다. 대중출판의 시대에서 다중(개인)출판의 시대로 넘어가며 출판은 훨씬 일상적인 실천이 되고 있는데 혹시나 출판사들은 여전히 전문가나 특별한 권위를 가진 소수만의 전유물로 출판을 바라보고 있는 건 아닌지 성찰할 때라고 생각한다.

 

또한 디지털 기술은 정보와 지식에 대한 접근성 및 연결성을 놀라운 속도로 발전시키면서 오늘날 ‘지역(local)’의 가치를 새롭게 증폭시킨다. 디지털 기술은 이제 지역의 지식과 문화, 서사와 담론을 물리적 차원의 지역에만 가두지 않는다. 지역출판의 성과를 세계로 내보낼 수 있는 기술적 조건이 마련된 것이다. 지역만의 고유한 문화는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언제, 어디서나 전 세계와 연결되고 있다. 그렇다면 지역과 출판이 만나는 방식도 이전과는 달라질 필요가 있다. 기존의 방식과 다르게 출판이 가진 문화로서의, 또 산업으로서의 가치를 재발견하고 시대변화와 조응하는 구체적 전략을 마련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혹시라도 협회가 공공의 세금으로 지원만 바란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각 회원사도 자체적으로 지금보다 더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고 누구라도 매력을 느낄 만한 디자인과 결과물로 성과를 내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시간이 지나도 같은 얘기가 반복되지 않도록 차근차근 실질적으로 체질을 바꾸며 나아가야 한다.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출범식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출범식

 

끝으로 하나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지역출판이 자칫 수도권과의 경쟁이나 제로섬 게임에서 더 많은 걸 차지하려는 시도로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그렇지 않아도 차별과 혐오가 난무하고 모든 것이 갈등과 경쟁으로 수렴되는 사회다. 전통과 역량을 갖춘 수도권의 출판사와 지역만의 감수성을 가진 지역출판이 서로 상생하고 건강한 자극을 주고받으며 한국의 출판문화산업에 각각의 방식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소망한다. 그런 차원에서 이제 막 출범한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도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이다.

 

출범식에서 필자는 신영복 선생님이 쓰신 『변방을 찾아서』라는 책 속 한 구절을 인용하며 인사말을 마쳤다. “모든 새로운 것은 변방에서 시작되는데, 거기에는 전제가 있다. 콤플렉스가 없어야 한다.”라는 문장이다. 모자란 점이 많지만, 위기는 새로운 기회라는 말처럼 협회 출범을 계기로 더욱 대담하고 적극적으로 부산의 지역출판 활성화를 도모해보고자 한다. 응원과 사랑의 남용을 부탁드린다.

장현정

 

장현정(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회장, 호밀밭 대표)

부산대학교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하고 인문과 예술을 중심으로 한 글쓰기, 출판, 강의, 문화기획 등의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주)호밀밭 대표이사, 부산출판문화산업협회 회장이며 지은 책으로는 『소년의 철학』, 『록킹 소사이어티』, 『무기력 대폭발』, 『삶으로 예술하기』, 『아기나무와 바람』, 『이수현, 1월의 햇살』 등이 있다.
hjmiro@naver.com
facebook.com/hjmi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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