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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6  2021.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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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독서콘퍼런스
책으로 시대를 읽다

 

 

 

 

2021. 10.


 

일시: 2021년 9월 3일(금) 14시
장소: 부산 솔로몬로파크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9월 3일(금) 2021 독서콘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책으로 시대를 읽다”라는 슬로건 아래 이경미 영화감독의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첫 주제인 “디지털 시대 독자에게 더 가까이”는 박태근 위즈덤하우스 편집본부장이 진행을 맡고 강윤정 문학동네 편집자, 임소라 작가가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두 번째 주제인 “고령화 시대, 어르신 독서생활”은 오은 시인이 진행을 맡고 백화현 작가와 최현숙 작가가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세 번째 “기후위기 시대의 작가의 일”은 박혜진 문학평론가가 진행을 맡고 천선란 작가와 김기창 작가가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주제별 주요 이야기를 정리해 여기에 소개합니다.

 

[기조강연] 코로나와 함께하는 시대, 책의 역할

 

이경미(영화감독)

 

코로나로 이동이 어려운 시기에 독서가 주는 즐거움을 이야기하며 관심 있게 읽어볼 만한 책을 소개했습니다.

 

추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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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리노 나쓰오 『아웃 1~2』, 『그로테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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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트리샤 하이스미스 『아내를 죽였습니까』, 『심연』, 『리플리』, 『캐롤』, 『열차 안의 낯선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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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렛 애트우드 『시녀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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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프니 듀 모리에 『자메이카 여인숙』, 『레베카』, 『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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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립 K. 딕 『페이첵』, 『마이너리티 리포트』,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토탈리콜의 원작 단편, 『도매가로 기억을 팝니다』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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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P. 러브크래프트 「저 너머에서」, 「리애니메이터」(『러브크래프트 전집』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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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맥 매카시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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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드 창 「네 인생의 이야기」, 「지옥은 신의 부재」(『당신 인생의 이야기』에 수록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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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허버트 『듄』

 

 

이경미 감독


이경미 감독 기조강연

 

[주제 1] 디지털 시대, 독자에게 더 가까이

 

진행: 박태근 / 패널: 강윤정, 임소라

 

박태근
책과 디지털이라고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나 이미지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강윤정
최근 제가 속한 출판사 문학동네에서 베타 테스트 중인 ‘독파’라는 사이트가 떠올랐습니다. ‘독파’는 지속가능한 독서를 위한 플랫폼으로 ‘완독챌린지’를 주 콘셉트로 하는데요, 혼자 읽기 어려운 책을 정해진 미션을 수행해가며 끝까지 즐거이 읽도록 독려하는 프로그램입니다.

 

임소라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전자책입니다. ‘프로젝트 구텐베르크’가 살면서 처음 접한 전자책이었는데요, 제목만큼은 익숙한 고전 작품들의 목록을 보며 책이 가진 물성이 소멸한다고 해서 책 자체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개념이 책에 대한 은유 같아서 낭만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책이 가독성이 높은 이유가 단지 익숙함 때문인지, 어떤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해야 지면만큼 읽기 수월해질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박태근
지난해 코로나 팬데믹으로 책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는 내외부의 평가가 있는데, 두 분도 이런 상황을 체감하셨는지요. 더불어 코로나 시대에 접어들며 책과 연결된 두 분의 활동에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인지요.

 

강윤정
책뿐만 아니라 각종 콘텐츠에 대한 관심 자체가 커진 것 같습니다. 저만 해도 책 읽는 시간이 늘었지만 OTT 플랫폼에서 영상을 보는 시간이 더 늘었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적으로는 온라인 서점에서 책을 살피는 시간이 늘어난 반면 오프라인 서점에 들러 실물 도서들을 둘러보는 시간은 줄었다는 게 가장 큰 변화입니다.
편집자로서는 팬데믹 전에도 온라인 서점에서 봤을 때, 사진을 찍어 SNS에 업로드했을 때 예뻐 보이는 표지 쪽으로 책 표지 디자인의 경향이 차츰 바뀌어가고 있다고 느꼈습니다만, 그 흐름이 가속화될 수 있겠다고 생각합니다.

 

임소라
가장 큰 변화는 메일링 서비스의 이용자에서 제공자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작년 4월에 『언제나 양해를 구하는 양해중 씨의 19가지 그림자』라는 제목의 메일링 서비스를 시작했습니다. 글 안에 실제 신문 기사 혹은 뉴스 등의 링크를 넣는 작업을 꼭 해보고 싶었고, 메일링 서비스의 이용자 입장일 때 느꼈던 ‘책을 한 페이지씩 편지로 받아본다는 느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결과적으로는 구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해당 작업 자체를 끝까지 이끌고 가는 데에 큰 동력이 되었고, 그때의 경험 덕분에 올해도 『문이 많은 집』이라는 작업을 메일링 서비스를 통해 연재 중입니다.

 

박태근
디지털 시대에 책 자체는 어떤 변화를 겪고 있고 또 어떻게 상황에 대응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요.

 

강윤정
책 그 자체의 변화보다는 그것을 독자에게 알리는 방식의 변화가 다양한 방식으로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의 여러 기술 변화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었을 테고, 그 핵심에는 ‘소통 방식의 변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독자 개개인 피드백이, 실시간으로, 누구나 볼 수 있도록 오죠. SNS와 온라인 서점 리뷰가 가장 큰 피드백 창구입니다. 피드백을 얼마나 빠르고 적극적으로 정확하게 받아들이느냐를 출판사와 작가가 결정할 수 있게 되었고, 결정해야 하게 되었습니다.

 

임소라
책 소식을 가장 자주 접하게 되는 매체가 인스타그램이나 트위터였는데, 최근에는 유튜브나 네이버 쇼핑라이브의 ‘책방 북토크’를 통해 접하게 되는 빈도가 늘었습니다. 방송 중에 실시간으로 책을 구매할 수 있고 그 과정이 무척 간편하다는 점에서 ‘이토록 적극적으로 책의 구매를 유도한 매체가 있었는가!’ 싶습니다. 책을 읽는, 또는 읽을 사람들과 책을 만드는 사람이 더 쉽게, 더 자주 만날 수 있는 새로운 장처럼 느껴졌고 책을 통한 네트워크가 더 넓고 촘촘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태근
디지털 환경 속에서는 직접 만남과 연결이 가능하여, 저자와 독자, 저자와 출판사의 관계와 거리가 이전보다 가까워진 게 아닌가 싶은데요. 이런 변화를 체감하시는지, 그렇다면 이런 변화를 어떻게 활용하고 계시는지 궁금합니다.

 

강윤정
직접적인 연결이 가능해지면서, 책 낱낱에 대한 홍보뿐만 아니라 출판사에 대한 소속감을 느끼게 함으로써 모종의 ‘느낌의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해졌습니다. 더불어 특정 분야에서 영향력을 가진 독자의 활동 또한 활발해졌죠. 그들은 콘텐츠 소비자인 동시에 생산자로서 책에 대해 능동적으로 말하고 받아들이는 ‘입’이 되었습니다. 해시태그 한 번 누르면 인기순으로 자동 정렬되는 시대에 ‘좋아요’와 ‘구독하기’의 숫자는 그들의 영향력을 대변합니다. 독자와 작가의 관계도 달라졌지요. 많은 작가가 개인 SNS 채널을 통해 집필 상황, 출간 소식, 행사나 강연 소식을 알리는 데 적극적입니다.

 

임소라
두 번째 질문에 ‘구독자가 있다는 사실이 해당 작업을 끝까지 이끌고 가는 데에 큰 동력이 되었다’라고 말씀드렸는데요. 넓게 봤을 때 구독으로 이어지는 관계 역시 협업이고, 책 제작을 위해 조금은 느슨하게 연결된 팀처럼 느껴져서 의지도 많이 하고, 작업을 진행시키는 힘을 얻고 있습니다.

 

박태근
독자의 읽기 환경에 대해서도 살펴보면 좋겠습니다. 두 분 역시 독자로서 살아가고 계실 텐데요. 읽기 도구부터 읽는 방법까지, 디지털을 얼마나 어떻게 활용하고 계신지 궁금하고, 이런 기술이 독자의 독서 경험에 어떤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 들려주시면 좋겠습니다.

 

강윤정
독자이자 편집자로 최근에 느낀 경향 중 하나는 좌측 정렬 편집입니다. 종이책 본문 편집 가운데 좌측 정렬로 편집된 책이 부쩍 많아졌습니다. 구조적으로 양쪽 정렬이 훨씬 더 안정적으로 보이지만 모바일 환경에서의 읽기 경험이 익숙한 독자들께는 좌측 정렬이 가독성 면에서 더 좋은 방식으로 다가갈 겁니다. 독자로서 느끼는 변화는 역시 전자책 구매가 늘고 있다는 겁니다. 종이책 낱낱의 물성을 소유하는 것이 전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 거죠. ‘소유’하는 것에서 ‘사용’하는 것으로 책이 갖는 의미가 제 안에서도 변하고 있습니다.

 

임소라
코로나 이후로 확실히 종이책보다 전자책을 더 많이 구매하는 편입니다. 핸드폰으로 전자책을 주로 읽는데요. 이유는 ‘공유’에 있습니다. 읽다가 인상 깊었던 구절을 만나면 캡처해서 표지 이미지와 함께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거나 인용 문구 아래 온라인 서점 링크를 덧붙여 트위터에 올리는데요, ‘내가 이 책을 읽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은 마음’과 ‘한 명이라도 이 책을 더 읽길 바라는 마음’을 표현하고 그 마음들이 서로 연결되는 데에 있어 핸드폰만큼 효과적인 도구가 없는 것 같습니다.

 

박태근
기술 자체의 발전보다는 기술의 변화에 따른 책과 독서의 달라진 상황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이긴 합니다만, 머지않아 책, 독서 관련하여 어떤 기술 변화를 예상하거나 바라시는지, 그런 기술이 책과 독자의 관계를 어떻게 이어나가길 기대하시는지 말씀 전해주시면서 마무리할까 합니다.

 

강윤정
결국 책도 클라우드 기반의 미디어로 이동하지 않을까요? 클라우드 기반으로 전자책이 실시간 업데이트 가능한 매체가 된다면 심각한 수준의 오탈자나 오류를 바로바로 수정할 수 있을 테고 개정판이라는 개념이 사라질 수도 있습니다. 개선을 통해 더 완벽해질 것이고, 그 개선의 비용이 거의 들지 않는다는 것도 주요한 특징이 되겠죠. 중고 판매가 불가능하리란 것, 책 한 권을 사서 여러 명이 돌려 보는 것이 쉽지 않으리란 것도 큰 변화를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임소라
디자인이나 재질, 한정판 등의 옵션으로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종이책처럼 ‘전자책이기 때문에 가능한’ 기능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한 전자책들이 많이 나오길 바랍니다. 그런 점에서 오디오북 서비스가 많아지는 것도 반가운 일인데요, 책이 오디오뿐만 아니라 비디오와 이어지는 통로도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독서콘퍼런스


주제 1. 디지털 시대, 독자에게 더 가까이

 

[주제 2] 고령화 시대, 어르신 독서생활

 

진행: 오은 / 패널: 백화현, 최현숙

 

오은
고령화 시대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시대입니다. 지금껏 이 말은 평균 수명과 출생률 지표를 가지고 많이 이야기되었습니다만, 이제는 조금 다르게 접근할 필요가 있는 듯싶습니다. 정부 정책에서부터 고령화 현상을 ‘해결해야 하는 문제’로 인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잖아요. 이에 대해 두 분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

 

최현숙
“고령화”는 인구 비율의 문제입니다. 노인 세대 혹은 노인 개개인을 문제 삼는 관점, 특히 국가재정(건강보험, 국민연금, 노인복지재정)이나 가계(가정경제)의 측면에서 비생산인구로서의 노인을 문제 삼는 관점이 가장 큰 오류입니다. 나아가 재정이 문제라면 어떻게 나누어 먹을 것인가(분배)를 조정해야 하며, 이는 정치와 사회 체제의 문제입니다.

 

백화현
전 우선, 고령화에서 ‘고령’이 지칭하는 나이대와 그 나이대의 특징을 먼저 정의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일반적으로 ‘고령화 시대’에서 말하는 ‘고령’은 65세 이상을 지칭합니다. 넓게는 ‘60+’를 의미하기도 하고요. 그러나 60, 70대와 80대 이상은 매우 다른 특징을 지니고 있어요.

 

오은
고령 인구의 비율은 높아지는데, 노인에 대한 시선은 크게 변화한 것 같지 않습니다. 어르신들이 청년을 바라보는 시선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두 세대의 ‘동상이몽’을 실제로 많이 접하셨을 텐데, 이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최현숙
여러 측면에서 노인과 청년의 세대 차이는 클 수밖에 없습니다. 빠른 물질문명의 변화 속에서 노인들은 IT 사회와 4차 산업 사회에 적응하거나 이해하기가 어렵습니다. 농촌 봉건사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고령 노인들의 경우 현 사회와 그 주역인 청년에 대한 충분한 적응이나 이해는 불가능합니다. 역으로 청년들 역시 노인들이 살아온 시대 상황과 문화와 사고방식을 이해하려는 구체적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이해하거나 소통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이 크나큰 차이가 혐오와 배제, 불통과 갈등으로 치달리지 않게 하는 데에 문화와 정치와 시민사회의 역할이 있습니다.

 

백화현
오늘날은 속도가 느렸던 옛 시대와 달리, 변화의 속도가 빠른 데다 특히 광속의 인터넷과 ‘빨리빨리’ 문화의 특성을 지닌 우리 대한민국의 경우, 그 변화의 속도가 엄청납니다. 경제력과 국가 위상을 보면 우리나라처럼 몇 십 년 새 이처럼 초고속 변화를 일으킨 나라는 그 예가 없기에 세대 간 격차 역시 더 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은
고령화 시대, 어찌 보면 노년의 시간을 보내는 법이 아주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현장 경험이 많은 선생님들께 질문을 드립니다. 어르신들이 여가를 ‘읽기 활동’을 통해 보내고 싶어 하시나요?

 

최현숙
노인들이 좋아하거나 노인들에게 필요한 책을 “글씨 읽어주는 기능”을 활용하여, 무료로, 개인적이고 집단적으로(노인복지관이나 경로당 등) 다가가는 것이 필요합니다. 노인들에게는 소리, 그림, 사진, 영상 등이 글 자체보다 훨씬 접근성이 높습니다.

 

백화현
어르신들뿐 아니라 우리나라 성인들은 독서를 잘 하지 않습니다. 혼자 하는 독서가 아니라 친구와 함께 나눔이 있는 독서일 경우, 그들은 외로움을 달래고 싶어서라도 독서를 하게 될 것이라고 보고 있습니다. 그 가능성을 제가 경험한 ‘도란도란 책모임’에서 찾고 있습니다.

 

오은
독서하는 어르신들이 계실 겁니다. 그들은 주로 어떤 방식으로 책을 접하시나요? 어르신들의 독서 생활을 가로막는 다양한 요소들이 있을 텐데, 그들은 이 장애물들을 어떻게 받아들이시나요? 무엇보다 노년층의 독서를 독려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현숙
도서관에 글씨를 확대해주는 기구가 있는 곳이 있지만 대부분 쓸모가 없거나 활용되지 않습니다. 노인들에게 필요한 실질적인 사례를 들어 볼게요. 양동 쪽방촌 노인 10명의 생애사를 청년들이 인터뷰하여 정리한 책을 양동 쪽방촌 주민모임과 다른 쪽방 주민들(대부분 노인들)과 함께 읽는(혹은 읽어주는) 모임을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백화현
책을 잘 읽어온 노인층은 나이가 들며 시력이 안 좋아져도 어떻게든 책을 읽습니다. 젊은 날 어쩌다 독서를 했던 분들이거나 거의 독서를 하지 않았던 어르신들을 독서로 이끌기 위해서 우선, 그들이 시원스레 읽을 수 있는 ‘큰활자책’과 글밥은 적고 그림이나 사진 등이 많은 ‘어른그림책’ 또는 ‘사진 에세이’ 같은 책이 많아져야 합니다. 또한 오디오북도 더 다양하게 제공되면 좋겠고요. 그리고 독서활동가들과 독서시민단체가 부지런히 움직여 ‘시니어 독서모임’을 조직 운영하고, 공공도서관이나 지자체가 지원하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오은
백화현 선생님은 ‘시니어 그림책’ 기획자이자 창작자이시기도 합니다. 시니어 그림책에 대해 떠올리게 된 배경에 대해 듣고 싶습니다.

 

백화현
‘어른들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으며, 위로와 감동이 있는 책’이 있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지요. 그런 책이려면 ‘이야기와 그림’이 있어야 할 것 같았고요, 그러다 자연스레 ‘어른들의 삶과 이슈를 다룬 어른 그림책!’을 떠올리게 된 것입니다.
어른들의 일상적인 삶을 담은 이야기 형태의 그림책인 ‘4090 그림책’을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한기호 소장님께 제안해 시니어 그림책 전문 브랜드 ‘백화만발(百花晩發)’이 만들어졌습니다. ‘가득 찰 만(滿)’을 ‘늦을 만(晩)’으로 살짝 바꿔 시니어 이미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오은
최현숙 선생님은 구술생애사 작업을 통해 도처에 있는 어르신들을 만나오셨습니다. 노년이 ‘여생(餘生)’이 아닌 ‘현재의 삶’으로 생생하게 직립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독서는 여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최현숙
독서와 문화에 대한 노인들의 접근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비노인 세대들이 노인들의 문화와 생애와 정서 등을 이해하고 배우기 위한 다양한 독서와 만남의 기회들이 만들어져야 합니다. 주변 노인(부모 혹은 이웃 노인들)의 삶을 역지사지하는 태도가 중요합니다. 그들이 살아온 시대 속 정치사회문화를 공부하고 이해하며, 그들의 입장에서 현재 사회가 어떤 것일지를 상상하고 소통하면서, 그들과 만나는 접점을 높이고 합의 가능한 지점들을 넓혀가야 합니다.

 

오은
청년층은 독서를 하지 않지만, 노년층은 독서를 하지 못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이때껏 책을 읽고 써온 분들로서, 마지막으로 독서의 필요성에 대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최현숙
인간은 누구나 자기중심성이라는 구심력의 한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독서란 무엇보다 간접 경험과 배움을 통해 인식을 확장하는 원심력적 실천이자 시대와 지역과 분야와 계급계층을 넘어 자신을 확장하게 하는 중요한 경로입니다.

 

백화현
독서는 치유의 힘을 갖고 있고, 삶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해줍니다. 특히, 삶에서 미끄러졌다고 느끼는 어르신들에게 이러한 독서 경험이 꼭 주어질 수 있었으면 합니다. 독서를 통해 위로를 얻고 삶의 활기를 되찾았으면 좋겠습니다.

 

독서콘퍼런스 이미지2


주제 2. 고령화 시대, 어르신 독서생활

 

[주제 3] 기후위기 시대, 작가의 일

 

진행: 박혜진 / 패널: 김기창, 천선란

 

박혜진
환경이라는 주제를 문학적 테마로 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된 계기와 그러한 생각을 작품 속에서 구현하기 위해 고민한 구체적인 방법에 대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김기창
고향이 남해안 일대라고 할 수 있는데, 봄 진해, 겨울 통영뿐만 아니라 가을 진해, 가을 통영처럼 계절마다 고유의 아름다움이 있었습니다. 기후위기가 심각해지면 더 이상 그런 아름다움을 느낄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그때의 감각, 그때의 감정을 다시 마주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을 느꼈어요. 그게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쓰게 된 첫 번째 계기입니다.
기후위기는 되돌이표 같던 날씨를 예측 불가능한 변주 속에 빠져들게 만들어요. 이는 특정 지역, 특정 종족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 생명체 모두의 위기이기 때문에 소설의 시간적, 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을 다양하게 설정했고, 기존에 맺고 있던 인간과 인간, 인간과 동물, 인간과 사회의 관계 등이 어떻게 어긋나는지를 보여주고자 했어요.

 

천선란
정확한 계기는 없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이미 지구의 환경오염에 대해 배웠던 세대니까요. 관심을 얼마나 갖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겠지만, 저는 늘 마음 한 구석에 죄책감을 두고 있다 보니, 창작활동을 하며 그런 부분이 자연스럽게 나왔어요. 특히 장르가 SF이다 보니, 미래의 지구 모습을 더 신경 쓸 수밖에 없었고요. 그리고 그다지 긍정적으로 미래를 상상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좀 더 참혹하게 그려지는 것 같아요. 특히 어떤 문제로 인류가 멸망하느냐에 따라 미래를 다양하게 그릴 수 있거든요. 쓰레기냐, 기후변화냐, 바이러스냐 등등이요.

 

박혜진
기후위기는 현실적인 문제이지만 문학 세계에서는 이러한 현실이 외면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문학뿐만 아니라 현실 세계에서도 외면 받고 있는 현실 문제겠지만요. 문학의 언어만이 지닌, 다른 언어와 구분되는 가능성이 있다면 어떤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김기창
정말 외면 받고 있는 건 문학 그 자체가 아닌가 싶어요. 문학은 한 개인의 개별성을 인류 전체의 보편성으로 확대해 나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한데, 이를 기후위기와 연결해서 생각하면, 저 먼 곳에서 불타고 있는 듯한 지구를 내 손에 쥐어주며 그게 정말 타오르고 있음을 감각하게 해주는 것, 기후위기로 인한 고통과 슬픔이 다른 누군가의 고통과 슬픔이 아니라 바로 나 자신의 고통과 슬픔일 수도 있음을 의식하게 해주는 것, 그게 문학이 다른 매체들보다 잘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천선란
문학의 언어는 익숙한 것을 낯설게 하기에 아주 탁월해요. 사실 문학이라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낯설게 하니까요. 기후위기가 문학에서 잘 다뤄지지 않은 건 어쩌면 기후위기라는 것 자체가 현실에서도 우리에게 조금 낯선 느낌이어서 그럴지도 몰라요. SF라는, 누구도 가본 적 없던 세계에서의 기후위기는 그런 면에서 잘 부착되는 것일지도 모르겠어요. 이미 낯선 세계라 거기에 생소하게 느껴지는 것이 들어가도 거부감이 덜한 거죠.

 

박혜진
기후위기라는 큰 주제 안에서 좀 더 세부적으로 다뤄보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까요? 고민하고 있는 문제나 앞으로 다뤄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는 주제에 대한 이야기도 좋겠습니다.

 

김기창
하고 싶은 이야기들은 대체로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쓰며 한 것 같은데, 삽입하려다 완성하지 못한 이야기가 날씨의 변덕스러움과 사랑의 변덕스러움을 비교해서 보여주려 했던 단편이었어요. 그리고 제가 좀 들여다보고 싶은 건 기후위기에 대응하는 문제에 있어 큰 책임과 결정권이 있는 국가와 기업 같은 집단의 리더들 머릿속이에요. 개인적 욕망을 다 제쳐두고 환경을 무조건 1순위로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최악의 상황에 도달하기 전에, 기후와 환경 문제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통 큰 결정 같은, 정치적 판단의 긴급함과 중요함을 다루어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천선란
기후위기가 균등하게 오지 않는다는 걸 좀 더 이야기하고 싶어요. 모두가 하루아침에, 한순간에 멸망한다면 아무도 기후위기를 고민하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현실은, 지대가 낮고 섬이 많은 나라부터, 그리고 기후변화 대응에 취약한 곳부터 피해를 받게 돼요. 지금도 기후 난민이 생기고 있어요. 세계는 기후 난민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하고, 바꿔야 해요. 그 일들이 우리 모두에게 곧 다가올 일이라는 걸 알아야 하고요.

 

박혜진
김기창 작가님의 경우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통해, 천선란 작가님의 경우 『어떤 물질의 사랑』을 통해 이루고 싶었을 작가로서의 목표가 있었을 것 같습니다. 의도에 얼마나 만족하시는지, 독자들의 반응은 기대 혹은 예상했던 바와 어떻게 비슷하거나 달랐는지 궁금합니다.

 

김기창
올 4월에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출간한 이후 여름이 왔고, 긴박한 기후위기 상황이 우후죽순 전 세계적으로 펼쳐졌어요. 소설을 읽으신 분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에 대해 고민하고 생각하시는 것 같아서 보람도 있었습니다. 예상했던 바와 다른 점은 기후위기 문제를 마치 처음 접하는 것 같은, 이 문제가 이렇게 심각한지 몰랐다는 반응들이었어요. 저는 안테나를 세우고 정말 유심히 살피는 문제인데 어떤 사람에게는 안중에도 없는 문제일 수도 있다는 걸 다시 한 번 확인하면서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더 시끄럽게 떠들 필요가 있겠구나 싶었습니다.

 

천선란
한 편이라도 마음에 드는 소설집이었으면 했어요. 그래서 소설마다 색을 다르게 하는 것에 힘을 실었어요. 목표는 이뤘다고 생각해요. 독자님들의 마음에 들었다는 단편이 정말 다양했거든요.

 

박혜진
기후위기와 관련된 주제를 다룬 책 중에서 특별히 영향 받았다거나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 소개해 주세요.

 

김기창
인상적이었던 책은 『기후 위기와 기독교』라는 책입니다. 기독교 윤리라는 틀 안에서 기후위기 극복 방안을 고민하는 것인데요. 좀 다른 관점에서, 종교적 입장에서의 기후위기, 생태적 교회라는 실천 안에서 기후위기에 접근해서 신기하게 읽었어요. 저는 무신론자지만, 기후위기를 종말론적 관점에서 볼 수도 있겠구나 싶더라고요.

 

천선란
기후위기 자체보다 제 태도를 바꿔준 책으로는 타일러 라쉬의 『두 번째 지구는 없다』가 있어요. 거기에는 우리가 어떤 태도로 기후위기를 받아들여야 하는지 쓰여 있었어요. 무섭다고, 두렵다고 외면하지 말고 차분히, 하나씩 바꿔가야 된다고요. 덕분에 기후위기를 정면으로 바라보게 됐어요.

 

박혜진
두 분은 문학적 언어로 환경 문제를 바라보는 작가 중 가장 먼저 떠오르는 작가인 듯합니다. 관련해, 앞으로 이 분야에서 작가로서 더 도전해 보고 싶은 것이 있는지, 성취하고자 하는 목표가 있다면 어떤 것이 있을지 궁금합니다.

 

김기창
현재로는, 환경 문제를 메인 테마로 하지는 않을 생각이지만 자연스럽게 배경의 하나로 스며든 상황을 전제로 소설을 쓰게 될 것 같아요. 그래서 기후위기에 대한 일상적 감각을 사람들이 잊어버리지 않게끔 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리고 개인적 목표는 좀 더 많은 분이 『기후변화 시대의 사랑』을 재밌게 읽으셨으면 하는 겁니다.

 

천선란
이야기꾼이 되고 싶어요. 어떤 소재로, 어떤 이야기를 하든 일단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을 쓰고 싶어요. ‘이 작가 이번에는 새로운 걸 썼네?’라는 의문 뒤에 ‘재밌겠다.’가 붙는.

 

독서콘퍼런스 이미지3


주제 3. 기후위기 시대, 작가의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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