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출판, 독자를 만나다
2020년 제2회 열린포럼

 

 

 

2020. 12.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11월 12일(목) “인문출판, 독자를 만나다”라는 주제로 2020년 제2회 열린포럼을 개최했다. 이시한 성신여대 겸임교수가 사회를 맡았고,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김수영 원장의 개회사로 포럼이 시작됐다. 발제에 앞서 이강재 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의 기조강연이 있었으며, 이은혜 글항아리 편집장, 임유진 그린비 주간, 박동수 사월의책 편집장, 조선영 예스24 도서1팀 팀장 순으로 발제가 이어졌다. 포럼에서는 ‘위기’라고 하는 인문학과 인문출판을 조명하며, 인문출판의 중요성과 필요성, 앞으로의 방향 등에 대해 논의했다. 포럼은 온라인으로 생중계되었다.

 

 

 

[기조강연] 인문학은 왜 독자와 만나야 하는가

이강재(서울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한국연구재단 인문사회연구본부 본부장)

 

기조강연을 맡은 이강재 교수는 ‘인문학은 왜 독자와 만나야 하는가’라는 주제로 강연을 시작했다. 먼저 이 교수는 인문학이 냉탕과 열탕 사이에 있다고 말하며, 학교 밖에서는 인문학에 대한 열기가 대단해 시민대학, 인문도시, 인문주간 등이 인기를 끌고 있으나, 대학 내에서는 인문학이 상당한 위기에 처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사실 인문학은 시대가 지날수록 강조될 필요가 있다는 것이 이강재 교수의 의견이다. 이 교수는 특히 영화 기생충, BTS, 소설가 한강 등 세계를 휩쓰는 K-문화 역시 그 내면에는 오랫동안 쌓아온 인문학 교육과 국민적 학습이 들어있다고 전했다. 이는 당장 드러나진 않지만, 우리 삶을 풍요롭게 하고 품격을 높이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와 함께 인문학은 마치 마중물과 같아서 창조의 원천이자 국가발전에 필수적 요소이며, 탄탄한 인문학적 소양이 뒷받침될 때, 우리나라가 추격형이 아닌, 선도형 국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서 이강재 교수는 계속되는 출판계의 불황 속에서 더 어려워진 인문학 학술서적의 확대가 조속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특히 논문에만 매달리는 연구풍토가 개선되어야 하며, 저서를 높이 평가하는 교수평가 방식이 필요함을 촉구했다. 마지막으로 인문학은 독자와 만났을 때 그 존재 의미가 살아나며, 수준 높은 학술서적을 원하는 독자가 많아진다면, 국가의 품격과 경쟁력 또한 높아질 것이라고 예견하였다. 이와 함께 영리와 트렌드를 따라가는 출판 역시 인문학 확대에 도움이 될 것이며, 학술출판에 있어서는 국가적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발제1] 책의 일–독자를 위하여

이은혜(글항아리 편집장)

 

지난 15년간 출판사의 편집자로 일해온 이은혜 편집장은 자신의 출판 경험과 이를 통해 비춰본 인문출판의 전망을 종합하여 발제를 시작했다. 먼저 이 편집장은 인문사회과학 분야의 책이 유행했던 시기를 소개했다. 출판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2010년경만 해도 논문을 교양서로 발전시키는 기획을 많이 했고, 이를 어떻게 대중적으로 각색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췄다고 전했다. 하지만 사료 중심의 학술적 내용에 평서를 덧붙이는 형식이 반복되자 독자들은 금방 흥미를 잃었으며, 이는 글항아리가 맞닥뜨린 커다란 독자변화였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21세기 자본』의 판매량을 예로 들며 사회과학서적 독자확보에 있어서 겪었던 한계를 설명했다. 특히 『21세기 자본』과 관련해 불평등을 주제로 열었던 포럼에서는 질의자들이 연구자를 향해 적대적인 태도로 질문할 만큼 독자의 인식이 변했다고 전했다. 이 편집장은 이처럼 불평등의 한가운데에 놓인 이들이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한 것이, 글항아리가 행로를 변경해 연구보다는 책이 촉발한 문제의식을 세분화, 구체화하며 대중의 흐름을 따라가게 된 계기가 되었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글항아리에서는 기존에 책을 한 권도 펴본 경험이 없는 저자들과 함께 ‘아주 보통의 글쓰기’라는 시리즈를 만들었다고 전했다.

 

이은혜 편집장은, 이러한 책은 현상으로서의 불평등을 넘어, 불평등의 내면화, 상처, 그리고 그 상처에 대한 치유로서의 글쓰기 특징을 가진다고 설명했다. 특히 독자들은 다른 생업에 종사하는 이들이 쓴 책에 더 매력을 느꼈다고 말했다. 또한 비대면 시대에 글을 쓰고 책을 읽는 삶이 풍성해졌다고 전했다. 자신의 경험을 책으로 펴내려고 오랜 기간 마음만 먹고 있던 이들이 사회적 활동이 줄어들자 그동안의 이야기를 글로 정리할 기회를 얻었으며, 많은 학자들이 수년간 이어진 연구를 매듭짓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교양서가 많이 출간된 1990년대에 형성된 다독가 무리가 저자가 되는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며, 이들처럼 일상에서 책과 함께하는 사람의 책추천은 독자들에게 영향력이 크다고 전했다. 이은혜 편집장은 이러한 변화를 바탕으로, 전문성과 대중성의 딜레마보다는 삶이 글이 될 때, 그것이 인문학적 연구에서 포괄하지 못한 것을 어떻게 보충하며 완성해나가는가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밝혔다.

 

 

 

 

[발제2] 책을 넘다, 서울을 넘다, 시간을 넘다-인문출판이 콘텐츠/강의 사업으로 가는 길

임유진(그린비 주간)

 

두 번째 발제는 맡은 임유진 주간은 인문출판의 확장을 위한 일과 사업에 대해 설명했다. 먼저 임 주간은 10대 청소년의 자살률과 자해율이 각각 150%, 세 배 이상 늘었으며 이는 플랫폼이 활성화되기 시작한 시기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사실을 짚었다. 이는 ‘사유’가 힘을 잃어가기 때문이며, 인문출판을 통해 아이들이 책을 만나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어릴 때부터 스마트폰만 붙잡고 있는 아이들에게 건강한 삶이란 무엇인가, 세상, 타인과의 관계는 어떻게 맺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심어줘야 하며, 인문출판이 이를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매년 줄어드는 독자, 올드한 콘텐츠라는 책이 가진 인식 등 상황이 좋지 않지만, 독자가 줄어들면 독자를 찾아가고 만들자는 견해이다. 임 주간은 6년간 진행해온 엑스북스아카데미는 독자를 찾아가며, 사람들의 본능인 표현욕구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좋겠다는 욕구를 풀 수 있도록 글쓰기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글을 쓰려면 독서라는 인풋이 있어야 하듯, 독자에서 저자로, 다시 저자에서 독자로 선순환이 일어날 것이라는 판단이 임유진 주간의 입장이다.

 

임유진 주간은 현재 그린비와 엑스북스아카데미에서 유튜브와 줌으로 강의를 이어나가고 있으며, 온라인으로 진행함에 따라 지방에 계신 분들도 강의를 신청하여 수강한다고 전했다. 이러한 강의는 유튜브로 유료판매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사업의 다각화가 되는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이는 인문학이라는 콘텐츠 자체에 집중할 수 있게 이끌어준다고 덧붙였으며, 매체 친화적 인문 콘텐츠를 출판하는 것이 출판의 의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디지털 매체를 통해 전하는 인문 콘텐츠는 휘발되지 않고 남아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들을 수 있어 독자에게 친화적이라고 했다. 덧붙여, 기술개발이 필요 없기 때문에 중소출판사도 쉽게 실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하다고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임유진 주간은 “철학이 있는 삶, 글쓰기와 책읽기가 있는 삶”이라는 모토를 토대로 의무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강의를 해나가고 있으며, 이는 독자의 삶에 철학과 글쓰기, 그리고 책읽기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신념에 기인한다고 전했다.

 

 

 

 

[발제3] SNS 시대의 인문출판-편집자의 위상 변화를 중심으로

박동수(사월의책 편집장)

 

세 번째 발제는 박동수 편집장이 맡았다. 박 편집장은 먼저 블로그,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과 같은 소셜 네트워킹 서비스(이하 SNS)는 처음 등장했을 때부터 책을 위협하는 존재로 여겨졌으나, 여러 업계들과 마찬가지로 출판계에서도 SNS를 홍보수단이나 독자와의 소통 공간으로 활용하고 있음을 설명했다. 또한 자신 역시 SNS와 함께 ‘인문출판’ 활동을 해오고 있다고 밝혔다. 이러한 점들을 비추어 볼 때 다양한 인문활동의 공간들이 SNS 안에 상존한다는 사실 자체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고 전했다. 이어서 대형 인문출판사들이 인문 플랫폼을 론칭하여 독자와의 연결망을 구축하려고 시도했으나 실패했다고 말하며, 이는 인문적 연결망의 속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이와 함께 인문적 연결망은 대단히 강하고 개인화되어 있는 연결망임을 강조했다. 즉 전통적인 측면에서 오직 스승과 제자 간의, 제자들끼리의 상호 소통을 통해서만 만들어지는 강한 공동체이기 때문에, 인문적 연결망을 구축하는 데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뒤이어 박동수 편집장은 SNS의 힘으로 사월의책 출판사에서는 잊혀져 가던 ‘이반 일리치’의 책을 시리즈로 출간하여 꾸준히 중쇄를 찍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일리치의 저작 다수가 절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페이스북과 칼럼에 지속적으로 관련 글을 쓰며 일리치의 사상을 알려 나간 결과라고 설명했다. 또한 최근에는 그런 소통 과정에서 만난, 뜻이 맞는 독자들과 함께 ‘이반 일리치 읽기 모임’을 오프라인에서 세미나를 진행하고 있다고 전했다. 박 편집장은 이를 SNS를 통해 대안적인 온라인 인문 공동체를 창출한 사례이자, 편집자 개인의 개성과 애정과 방향성을 숨기지 않고, 오히려 독자들에게 분명한 색깔을 드러내면서 인문 연결망을 조직하고 구성한 사례로 들었다. 이어서 SNS 시대의 인문출판은 새로운 젊은 독자들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수많은 가능성을 품고 있으며, 그들을 적극적으로 만나고 인문서에 대한 욕망을 부추기는 것이 인문편집자들의 역할이라고 강조했다. 마지막으로 박동수 편집장은 SNS 시대는 인문출판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친구이자 강력한 지지대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발제4] 인문도서의 독자는 누구인가-예스24의 판매현황을 중심으로

조선영(예스24 도서1팀장)

 

마지막 순서로 예스24의 조선영 팀장이 발제를 했다. 조 팀장은 인문/사회/과학/예술 분야 도서를 인문서적으로 묶고, 예스24의 도서판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문독자의 현재를 바라봤다. 먼저 2020년 1월부터 10월까지 인문도서 판매권수 성/연령별 점유율을 살펴봤을 때, 40대가 가장 많았고, 이 중 40대 여성의 비율이 34.7%로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설명했다. 이어서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여느 해보다 홈스쿨링, 비대면 학습에 필요한 학습서, 어린이 분야 도서의 판매가 크게 상승했다고 전했다. 또한 전체 판매량에서 인문교양서적의 점유율은 약 10% 정도의 비중을 차지하며 올해는 인문 〉 예술 〉 사회정치 〉 과학 〉 역사 순으로 높은 점유율을 보였다고 밝혔다. 조선영 팀장은 베스트셀러 순위로 인문독자의 현재와 인문도서 트렌드를 파악하기도 했다. 올해 예스24에서 가장 많이 팔린 도서 100권 중 인문도서는 열 권으로 전년 열두 권에 비해 감소했으며, 사회정치 분야는 한 권에서 다섯 권으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또한 tvN의 〈요즘 책방: 책 읽어드립니다〉에서 소개되었던 『코스모스』, 『총, 균, 쇠』, 『사피엔스』, 『지리의 힘』, 『이기적 유전자』 등의 스테디셀러들이 꾸준한 판매를 보인다고 덧붙였다.

 

한편 인문독자들은 굿즈보다는 스토리텔링에 더 반응한다며, 올해 예스24에서 굿즈 없이 콘텐츠로만 진행했던 ‘쓸모없지만 재밌는 기획전’을 소개했다. 이 기획전은 트위터 등에서 화제가 되어 인사이트 등의 매체에도 소개되며 MZ세대에게도 큰 호응을 얻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2019년 말에 교보문고가 진행했던 ‘통곡의 리스트’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통곡의 리스트에 답하다’라는 이벤트 역시 독자들의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고 전했다. 이와 함께 그간 이미지 중심으로 도서를 소개하던 메일 형식을 바꿔, 마치 MD가 독자에게 말을 거는 듯한 메일링을 시작하는 등, 앞으로 재미를 추구하는 젊은 세대들의 취향에 맞는 콘텐츠성 기획을 더욱더 넓혀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막으로 조선영 팀장은 많은 독자들이 주말에는 인문학, 긴 호흡이 필요한 도서를 선호하고, 평일에는 출퇴근할 때 보기 편한 가볍고 부담 없는 도서를 선호한다고 밝히며, 이에 따라 지적 호기심과 힐링, 휴식 등의 심리적 위안을 줄 수 있는 인문도서 기획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질의응답을 준비하는 발제자들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