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44  202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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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를 말한다: 도서관계]
도서정가제는 책생태계의 외피
구성 부문들 간 상호 이해와 연대로 지켜야 한다

 

 

 

이용훈(도서관문화비평가,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장)

 

2023. 06.


 

더 이상 도서정가제 논란을 하지 말아야

 

또 다시 도서정가제를 유지할지 말지를 논의하는 시간, 이미 논란이 뜨겁다. 그런데 책을 어떻게 판매하면 좋을지에 대해서 이렇게 크게 논란이 되는 게 참 신기하다. 오죽하면 대통령실이 올해 초 국민제안 토론의 첫 주제로 다른 사안들을 제쳐두고 도서정가제를 선정했으니 말이다. 책값이 물가에 반영되는 것도 아닐 텐데, 우리 사회에서 이렇게 민감한 주제인 줄 미처 몰랐다. 사회적으로 관심이 많다고 하니, ‘무관심한 것보다는 좋은 일이지’라고 생각해야겠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매 3년마다 이런 논란, 이제 그만하자. 공공 영역에 속한 도서관의 입장에서는 어떤 제도든 한 번 만들어지면 오래 지속되는 게 좋다. 그러니 3년마다 도서정가제가 유지되느니 마느니, 할인율을 얼마로 한다느니, 경제상 이익을 주느니 마느니 하는 이런 논란은 도서관 현장의 활동에 적지 않은 지장을 준다. 2014년 11월 21일부터 시행된 도서정가제에 따라 그동안 할인 구매가 가능하던 곳에서 제외돼 도서정가제를 적용할 수 있게 된 과정에서 이미 도서관들은 도서를 정가로 구매하는 것에 대해 동의하고 인정했다. 그 이후로 이런저런 어려움들이 없지는 않았지만, 이제 정가(여전히 10% 할인이 있기는 하지만)로 구매하는 일이 자리를 잡았다.

 

다만 처음부터 경제상 이익에 관한 사항이 명확하게 정리가 되지 않은 채 시행되면서 도서관 현장은 여러 혼란을 겪었다. 그래서 공공 소비자 입장에서 경제상 이익을 제공할 수도 있다는 모호한 사항을 삭제해 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최근 관련 법 개정에서 공공도서관에 대해서는 경제상 이익을 제공하지 않도록 해 공공도서관 현장에서 행정 처리가 더 명확해진 것은 다행이다. 법률 개정 과정에서 일부 반대 의견이 있었지만 그래도 공공도서관만이라도 경제상 이익 제공 대상에서 제외된 것은 큰 틀에서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개정이라고 생각한다.

 

도서정가제 논의에서의 도서관 위치

 

도서정가제 논의와 관련해서 가장 기본적인 관점은 도서관과 출판사, 서점, 저자와 독자 모두 책과 독서생태계(이하 책생태계) 구성 부문으로 서로 긴밀하게 엮여져 공존해야 하는 관계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의 이해와 이익을 넘어서 생태계를 유지하고 확장하는 데 연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 근거해서 도서관은 책생태계를 지탱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생존 기반이 되는 공정하고 안정적인 공적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출판시장은 온전히 개인 독자로만으로 생명력을 유지하기 어려운 구조다. 시장 규모가 크지 않으면서도 전형적인 다품종 소량 생산 구조이다. 또한 모든 책은 각자의 고유성을 가지고 있어 다른 책으로 대체할 수도 없다. 즉, A 작가의 책을 B 작가 책으로 대체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한 시장이기 때문에 온전히 시장경쟁 논리로만 작동되지 않는다. 이런 특성을 가진 출판시장이기에 전체 시장 상황과 함께 책 하나하나가 독립적으로 시장 안에서 살아갈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 국민의 독서율이 급격히 낮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독자층이 적은 분야의 책들을 온전히 시장 기능에만 맡겨두는 것은 사회 전반에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수많은 지식과 정보, 상상의 결과물이 꾸준히 만들어지고 사회 속으로 유입되어 개인이나 사회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에 필요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이 계속 출판될 수 있도록 최소한 판매가 보장되어야 하고, 도서관들이 그런 역할을 맡고 있다.

 

도서관은 「도서관법」 제2조에서 규정한 기본 이념, 즉 ‘국민의 정보기본권 신장과 사회의 문화발전에 기여하여 지식문화 선진국을 창조하는 데 중요한 기반시설 중 하나’이며 ‘국민의 자유롭고 평등한 접근과 이용을 위해 도서관의 공공성과 공익성을 보장’하는 데 적극 노력해야 한다. 그런 노력의 일환이 책생태계를 온전히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것이어야 하고, 도서정가제를 단단하게 지키는 것이 그 방법 가운데 하나다. 그러기 위해서 도서관에 필요한 것은 충분한 자료구입비다. 하지만 우리나라 도서관이 처한 현실은 결코 긍정적이지 않다. 자료구입비는 턱없이 부족하고 도서를 구입하는 행정 절차는 경직되어 있어 도서관의 자율과 전문성이 개입할 여지가 너무 적다. 최근에는 도서관 입장과 상관없이 대중 인기에 영합한 방법들이 더해져 도서관과 사서들이 책생태계가 온전히 유지, 성장하는 것에 긍정적 관여를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공공도서관 자료구입비 현황

 

여러 도서관 중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입 여력만 살펴보자. 2022년 말 기준 1,182개 공립 공공도서관의 2022년 자료구입비 예산액은 1,066억여 원(2021년도 결산액은 약 1,116억 원)이다. 1개 도서관은 약 9,006만 원(2021년도 결산액은 약 1억 1천만 원) 정도다. 2022년도 도서 평균 정가가 18,312원(도서정가제에 따른 10%까지 할인을 전제로 하면 16,480원)이니, 산술적으로 전국 모든 공공도서관이 구입할 수 있는 도서 수는 약 647만여 종으로 1관당 약 5,465종 정도다. 2022년도 신간 발행 종수가 55,250종이니 대략 10% 정도만을 구입할 수 있는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신간 구입으로 다양한 시민들의 요구를 충분히 만족시키는 건 정말 어렵다.

 

2014년부터 2021년까지 공립 공공도서관의 자료구입비와 연간 구입 장서 등의 상황을 살펴보면 아래의 〈표〉와 같다. 도서정가제 대상이 된 2015년은 2014년에 비해 예상 구입 권수에서나 실제 1관당 구입 장서 수에서 큰 감소가 있었고, 이후에도 2014년 수준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매년 공공도서관이 꾸준히 증가한 영향도 있겠지만, 도서정가제도 분명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다. 도서관계는 2014년 말 도서정가제 대상이 되어서도 도서관의 공공성을 유지하려면 반드시 20~30% 이상의 자료구입비 증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대통령 선거나 총선 때에도 도서구입비 대폭 증액을 촉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도서관 자료구입비를 책임져야 하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에서는 이러한 도서관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았다. 결국 도서관 입장에서는 여전히 충분하지 못한 자료구입비 상황에서 도서정가제를 통한 책생태계 활성화에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제대로 성과를 내기는 정말 어려운 실정이다.

 

 

〈표〉 공립 공공도서관 자료구입비/장서 구입 현황(2014~2021년)

연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A) 도서관(관) 911 957 989 1,022
(B) 자료구입비(백만 원) 75,155 77,564 88,084 98,245
(C) 1관당(만 원) 8,250 8,105 8,906 9,613
(D) 신간 발행(종) 47,589 45,213 55,074 53,795
(E) 평균 가격(원) 15,631 14,929 18,249 17,263
(F) 예상 구입 수(권) 7,540 6,032 5,423 6,187
(G) 총 구입 장서(권) 6,623,314 5,761,862 6,362,306 6,987,658
(H) 1관당 구입 장서(권) 7,270 6,021 6,433 6,837
(I) 신간 구입 비율(%)(추정) 15.3 13.3 11.7 12.7
연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A) 도서관(관) 1,073 1,110 1,149 1,184
(B) 자료구입비(백만 원) 103,080 108,199 109,603 111,076
(C) 1관당(만 원) 9,607 9,748 9,539 9,381
(D) 신간 발행(종) 56,809 58,635 59,192 58,454
(E) 평균 가격(원) 17,746 17,606 17,606 18,312
(F) 예상 구입 수(권) 6,015 6,152 6,020 5,692
(G) 총 구입 장서(권) 7,427,521 7,366,799 7,052,775 6,946,171
(H) 1관당 구입 장서(권) 6,922 6,637 6,138 5,867
(I) 신간 구입 비율(%)(추정) 12.2 11.3 10.4 10.0
주:
(A), (B), (G)는 국가도서관통계시스템의 각 연도별 데이터(단, 사립 공공도서관 제외)
(D), (E)는 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통계 각 연도별 데이터(단, 만화 제외)
(C)=B/A. (F)=C/E(단, 2014년은 (E)의 70%, 2015년 이후는 도서정가제 적용 90%)
(H)=(G)/(A), (I)=(H)/(D)×100

 

 

2021년도 72개 주요 출판 기업의 매출액이 약 4조 2,300억 원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그중 공립 공공도서관 자료구입비가 차지하는 비중은 어림잡아 3% 정도 수준에 그친다. 여기에 학교나 대학도서관 등을 포함한다고 해도 전체 출판시장에 도서관이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다 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도서관의 공공성이라든가 공적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잘 하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도서정가제와 관련해서 이러한 도서관의 사정을 살피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한다. 출판계는 물론 서점계, 저자와 독자 등 모든 유관 부문들이 다 같이 살피고 고민해야 한다. 공적 소비자로서의 도서관의 도서 구입 능력이 강화되어야 더 유연하고 구성 부문 모두가 더 나은 이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도서정가제에 대한 도서관의 인식

 

사정이 이렇다 보니 도서관 입장에서는 도서정가제 대상이 되기 이전에 저가 입찰로 책을 살 수 있었던 때를 돌아보게 되는 것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 중에 경제상 이익까지도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더해져 도서정가제에 대한 도서관계 인식이 좋을 수는 없다. 2023년 3월 14일 열린 〈도서정가제 영향 평가 및 개선방안 연구〉 공개토론회에서 연구를 맡고 있는 책과사회연구소 백원근 대표가 2023년 2월 13~24일까지 진행된 이해관계자 설문조사 결과를 밝혔다.

 

그런데 도서관 관계자(235명)는 이해관계자 여섯 그룹(저자, 출판사, 서점, 전자책 사업자, 도서관, 독자(구매자)) 가운데 현 도서정가제에 대해서 가장 부정적(74.5%)으로 평가했고 필요성에 대해서도 가장 부정적(71.1%) 입장으로 나타났다. 지난 3년간(2020~2022년) 장서 구입이 감소했다는 비율도 무려 70.2%에 이른다. 도서정가제가 영향을 미쳤다고 인식하는 경우도 77.9%에 이를 정도로 도서관계에서는 도서정가제에 대해 부정적이다. 3년마다 재검토하는 현 법률 규정은 유지되어야 한다(54.5%)라는 의견이 약간 많은 반면, 종이책 할인율은 확대해야 한다는 데 73.6%가 동의하고 있다. 의외의 조사 결과는 공공도서관에 대한 경제상 이익 제공 제한을 학교와 대학도서관으로 확대하는 것에 대한 의견이 47.2%로 현행 유지 39.1%보다 다소 높게 나타난 것이다. 설문 시 경제상 이익 제공의 이전 환원, 즉 도서관에도 경제상 이익을 주어야 한다는 항목이 있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는 의문이다. 전자책에 대해 별도의 도서정가제 조항이 필요하다는 데 도서관 관계자는 65.1%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면서도 전자책 할인 허용 비율은 확대하는 것에 강한 동의(74.9%)를 표했다.

 

3년 전 2020년 도서정가제 재검토 당시, 문화체육관광부가 민관협의체의 합의안에 대해 재검토를 통보하자 출판계를 비롯한 여러 단체가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강력 대응에 나선 적이 있다. 당시 위원회에 참여한 36개 단체 가운데 도서관계를 대표하는 한국도서관협회도 참여했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왜 도서관 현장은 도서정가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 되었을까? 이에 대해서 도서관 자체적으로도 그 원인이나 이유를 찾아볼 필요가 있겠다.

 

도서관 입장에서의 바람직한 도서정가제 논의를 위한 제안

 

도서관계가 도서정가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시민들의 정보기본권 신장과 함께 책생태계의 건실한 성장을 지원하는 도서의 공적 소비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기 하도록 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까?

 

우선 3년 전 도서정가제 사수에 함께 나섰던 도서관계에 근래 도서정가제에 대해 부정적 입장이 늘어난 것은 아무래도 지난 몇 년 동안 도서관계와 출판계 사이에 벌어진 갈등 때문일 수 있다. 갈등은 상호 이해와 신뢰가 부족했기 때문에 생겼다. 책생태계 안에서 서로 갈등하고 경쟁하고 이익을 다투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경쟁 상대는 바깥에 있다. 미디어 시장과 다양한 여가 산업이 경쟁자이고, 생성형 인공지능까지로 발전한 디지털 시대 그 자체가 경쟁 상대다. 책생태계 구성 부문들은 다 같이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럴 때일수록 각자도생이 아니라 연대해, 심지어 경쟁 상대와도 협업할 각오로 생태계를 유지하고 확장해 나가야 한다. 그럴 때 책생태계를 보호하는 외피가 바로 도서정가제가 되어야 한다.

 

그러니 생존의 외피인 도서정가제를 두고 내부 구성 부문들끼리 갈등하지 말고, 이제부터는 서로 더 긴밀하게 소통하고 대화하면서 이해를 넓혀 가야 한다. 일상적으로 소통하면서 부문 간 갈등 요소를 사전에 해소해야 한다. 최근 대한출판문화협회가 〈도서관 자료구입비 적정성 산출 및 증액 방안 연구〉를 수행하고, 4월 17일에 홍익표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장과 공동으로 ‘도서관 자료구입비 증액을 위한 국회 토론회’를 개최해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이런 작업을 왜 도서관계와 함께 하지 않았을지 궁금하지만, 일단 앞으로 국회에서 실질적인 도서관 자료구입비 증액 방안이 빠르게 마련되길 바란다. 그렇게 된다면 도서정가제의 안정적 유지에 큰 도움이 되리라 생각한다.

 

구성 부문 간 상호 이해와 연대를 위해서는 각자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독자성과 부문의 특수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사서들이 전문성과 직업윤리를 바탕으로 스스로 필요한 도서를 선정하고 두루 이익이 되는 방법으로 도서를 구입해 서비스할 수 있도록 도서관의 자율을 인정하고 신뢰해 주길 바란다. 최근에 도서관이 구입할 도서를 선정하고 적절한 절차로 구입하는 것에 대한 여러 도전이 있다. 그런 외부적인 압력은 책생태계 안에서 도서관의 건실한 존립에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도서관 스스로 책생태계에 도움이 되는 도서를 선정하고 구입하는 방안을 강구할 수 있도록 다른 부문들의 이해와 지지가 필요하다. 그렇게 해 줄 것이라 기대한다.

 

다시 강조하건대, 책생태계 구성 부문들 간 상호 이해와 신뢰, 강력한 연대가 모두에게 이익이 되고 생태계를 성장시키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도서정가제 논의 과정에서부터 이러한 믿음이 구체적으로 작동하기를 바란다. 그리고 도서관계도 스스로가 책생태계의 핵심 구성 부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도서정가제 문제에 당당하고 적극적인 태도로 논의에 참여하고 주도해나갈 것을 기대한다.

 

*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이용훈

이용훈 도서관문화비평가, 한국도서관사연구회 회장

40여 년간 여러 유형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했고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현장에서 은퇴한 후에는 한국도서관사연구회에 참여해 우리나라 도서관 역사 찾기를 하고 있다. 관련한 책을 전문적으로 출판하는 한국도서관사연구회 부설 도연문고 대표로도 활동 중이다. 또한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활동에도 참여하고 있다. 도서관 분야에 대한 전반적인 관심을 가지고 비평하는 도서관문화비평가로도 활동하고 있다.
blackmt@hitel.net
페이스북: @yonghun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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