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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1  2023.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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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과 함께 성장하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손지혜(한국도서관협회 인문사업팀 팀장)

 

2023. 03.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도서관+인문학

 

도서관은 ‘쉿! 조용히’라는 팻말과 공부하는 곳, 인문학은 딱딱하고 어려운 것. 이처럼 도서관과 인문학의 비슷한 점은 둘 다 쉽게 다가가기 힘들다는 것이지 않을까? 그동안 인문학이 왜 어렵다고 생각했을까? 아마도 대학 강의실에서처럼 지루하게 공자나 소크라테스 이야기만 할 것 같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이다. 예전에는 도서관을 생각하면 시험 전에 공부하러 가는 곳으로 여겨졌다. 그런데 도서관과 인문학, 이 두 단어를 조합했더니 새로운 장이 열렸다.

 

올해로 10주년을 맞이한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떠들썩한’ 도서관에서 ‘쉽고 즐거운’ 인문학을 지향한다.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은 강연+탐방(체험)+후속 모임을 통해 인문학을 공부하고, 공부한 내용을 현장 탐방에서 느끼고, 후속 모임에서 서로 토론하며 완성된다. 이 글에서는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을 통해 내가 바뀌고, 내 주변이 바뀌고, 우리 동네가 변화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1)

 

동네 도서관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지금은 도서관에서 인문학 프로그램을 추진하는 것에 대해 이견 있는 사람이 아마 없을 것이다. 도서관은 책과 공간, 사람이 늘 북적거리기 때문이다. 또한 전국 문화 기반 시설 중 어디에나 있고 가장 많이 분포되어 있는 시설이 바로 도서관이다. 『2022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문화체육관광부, 2022)을 보면 문화 기반 시설은 매년 꾸준히 증가하고 있으며, 그중 도서관이 박물관이나 미술관보다 전국에 더 많이 골고루 퍼져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전국 문화 기반 시설 연도별 현황

 

전국 문화 기반 시설 연도별 현황

출처: 『2022 전국 문화기반시설 총람』, 문화체육관광부, 2022.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의 지난 10년간의 성과는 이를 기획하고 운영한 사서들의 기획력과 노력으로 이뤄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업을 기획하고 추진하면서 지역에 대해 공부하고 지역 주민들이 어떤 것을 원하는지 고민해 실행하는 담당자들의 모습을 보면, 지역 주민들에게 양질의 인문학 프로그램을 제공하고자 하는 사서들의 열의와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인문학 포럼 진행 모습

인문학 포럼 진행 모습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담당자 워크숍 진행 모습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담당자 워크숍 진행 모습

 

 

사업을 알리기 위하여 포럼 및 워크숍도 개최하고 있다. 행사를 통해 프로그램에 대한 현장 경험을 공유하고, 전문가 의견 등을 수렴하여 프로그램도 조금씩 진화하고 있다. 사업 이름 그대로 인문학 강연을 듣고 길 위로 나가는 탐방이 사업의 기본 형태이고, 후속 모임을 통해 참여자들의 의견을 수렴하고 참여자 간 동아리 결성을 도모했다. 글쓰기와 읽기 프로그램, 대상을 특화한 프로그램 등 다양한 수요를 바탕으로 변형된 유형의 프로그램도 추진했다. 또한 인문학 프로그램이 전국 각지로 널리 확산될 수 있도록, 각 지역의 인문 활동가와 주민들의 참여를 통해 사업을 추진하고자 했다. 이에 따라 도서관은 책과 독서, 인문 활동 공간에서 지역 문화 및 인문 대중화의 거점으로 지역 주민들의 문화 복합 시설로 다가갈 수 있었다.

 

사업 초기에는 문·사·철(문학, 역사, 철학) 기반의 지식 전달 중심의 프로그램이었다면, 사업 중반부터는 다양한 인문학 주제로 도서관 현장에서 프로그램이 진행되었다. 나로부터 시작되는 인문학,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인문학이 진행되면서 지역 문제, 4차 산업혁명이나 AI 등에 대한 폭넓은 주제로 프로그램이 추진되었다. 또한 함께 읽고, 함께 쓰기를 통해 혼자 하는 독서, 혼자 하는 인문학이 아닌 같이하는 인문학이 자리 잡게 되었다. 같은 지역에 살면서 같은 고민을 하는 지역민들이 도서관에 함께 모여 지역의 환경 문제나 사라져 가는 동네 이야기를 나누거나, 지역 어르신들과 청소년들이 함께 구술 책자를 만들기도 하고, 자신의 일대기를 써보는 자서전 쓰기 프로그램을 통해 책을 발간하는 등 인문학적 상상력을 통한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인문학의 놀이터, 도서관

 

지난 10년 동안 인문학 사업이 운영되면서, 참여자들의 인문학적 소양도 많이 향상되고,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의 마니아들도 생겼다. 또한 프로그램을 참여하면서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몰랐던 점을 배우고, 동네 주민들 간 모임이 생겨 사업 이후 자생적으로 독서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는 참여자들도 생겨났다. 도서관 사서에게 다음 연도 주제에 대한 의견을 내기도 하고, 친구들 또는 가족들과 함께 참여하는 사람들도 많아졌다. 이처럼 인문학이라는 공통 주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소통하면서 도서관도 참여자도 성장하고 있다.

 

제주 기적의도서관(좌), 성남시 수정도서관(우) 모습

제주 기적의도서관(좌), 성남시 수정도서관(우) 모습

 

평택시립 배다리도서관(좌), 한성대학교 도서관(우) 모습

평택시립 배다리도서관(좌), 한성대학교 도서관(우) 모습

 

 

2022년 사업을 운영하면서 참여자들의 소감을 듣는 시간을 갖고자 “참여자 우수사례 공모전”을 진행했다. 공모전에는 짧은 기간 동안 일반부, 청소년부 약 170개 사례가 접수되어 11명이 수상했다. 글쓰기를 통해 삶을 돌아보고 가족, 지인들과의 관계가 개선되었다고 하는 참여자, 환경 문제에 관심이 없었는데 솔선수범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는 참여자, 친구들과 우연히 참여해 애니메이션을 만들게 된 참여자까지, 지역도 다르고 연령도 다른 참여자들의 사례가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을 계속하게 하는 동력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생활의 기쁨을 알게 되었고, 살아가면서 모르고 지나쳤던 것들이 내 삶의 방향을 찾을 수 있게 했습니다.”(강동구립 둔촌도서관 참여자 최*옥)

 

”독립한 딸이 도서관 인문학 프로그램에 같이 하자고 해서 참여했는데, 인문학이 어려울 거라고만 생각했는데 매주 즐겁게 배우고, 무엇보다 딸과 시간을 보낼 수 있어서 좋고, 감사했습니다. 나이가 들어도 변화할 수 있다는 것을 인문 프로그램을 통해 직접 느꼈습니다. 주변의 환경을 관찰하면서 다정한 시각이 생기고 주변 관계(엄마와 딸)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이었습니다.”(선유도서관 참여자 조*실)

 

“삶이 지치고 힘들지만 포기하고 싶지 않은 분들에게 권하고 싶습니다. 인문학을 통해 거뜬히 회복할 수 있다고 전해주고 싶습니다.”(춘천시립도서관 참여자 성*아)

 

“강연과 탐방을 같이 하면서 과거와 현재에 대해 생각하고 통찰력 있게 보는 시각이 생겼습니다.”(성남시 분당도서관 참여자 백*옥)

 

“가부장적인 태도로 가족들을 대했는데 아내와 자녀들과 이야기를 많이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저 자신이 치유되는 것을 느꼈습니다.”(영도도서관 참여자 강*수)

 

일상으로 더 가까이,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2020년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국가 전체가 힘든 시기였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도 예외가 아니었다. 도서관들은 문을 닫았고, 사람들이 한 곳에 모이지 못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도서관은 대면 서비스에서 비대면 서비스로 이용자들을 위해 움직였고, 줌(zoom)이나 유튜브 생중계를 통해 참여자들에게 인문학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또한 체험 키트를 배부해 온라인에서 함께 체험을 하고, 사서가 카메라를 들고 탐방 장소를 촬영해서 공유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기도 했다. 처음 경험해보는 비대면 상황에 도서관 사서와 참여자들은 서로 소통하면서 인문학 프로그램을 계속 운영했다.

 

2023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은 전국 공공·대학·전문 도서관을 대상으로 300개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3개 권역(서울, 광주, 대구)에서 사업 설명회를 진행했고, 오랜만에 대면으로 진행한 설명회에 많은 도서관 관계자들이 참석해 사업에 대한 관심도가 높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사업 10주년을 맞아 도서관 인문 프로그램의 주관 기관인 한국도서관협회에서 지역의 도서관과 협력해 ‘찾아가는 인문학’과 인문학이 필요한 대상에게 찾아가는 ‘대상별 인문학’, 10월 인문정신문화주간에 맞춰 사업을 홍보하는 ‘인문 행사’도 추진할 예정이다. 온·오프라인 채널을 통한 활발한 홍보도 진행할 계획이다(‘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 소식은 사업 홈페이지와 SNS 채널(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블로그)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더불어 신중년 세대를 위한 심도 있는 인문학 프로그램인 ‘도서관 지혜학교’는 전국공공도서관에서 150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2)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은 인문학 대표 브랜드로서 지속적인 연구 분석을 통해 일상 속의 인문학을 실현하고, 누구나 즐겁게 도서관에서 인문학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앞으로의 10년도, 기대해주시길!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좌), 도서관 지혜학교(우) 포스터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좌), 도서관 지혜학교(우) 포스터

 

 

 

 

1)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은 도서관 기반 인문학 프로그램으로 2013년 121개 프로그램으로 시작해 2023년에는 300개의 프로그램이 운영될 예정이다. 2013년 사업 시작 후 10년 동안 3,152개의 도서관이 참여하였고, 3만 7,000여 회를 운영했으며, 1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참여했다.
2)
‘도서관 지혜학교’ 사업은 2019년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의 기획 프로그램으로 9개 도서관에서 시작해 2020년 82개, 2021년 100개, 2022년 141개 프로그램이 운영되었다.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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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지혜

손지혜 한국도서관협회 인문사업팀 팀장

문헌정보학을 전공한 사서로 도서관, 독서, 인문학 관련 사업을 꾸준히 운영했다. 2013년부터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사업에 참여했으며, 현재 한국도서관협회에 재직 중이다.
paper@kl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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