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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3  2023.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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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적의도서관’이 만든 ‘도서관의 기적’

 

 

 

김승현(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

 

2023. 05.


 

“아이들을 잘 키워내는 일은 사회의 책임이고 의무입니다.”

 

모든 어린이는 밝게, 바르게, 자유롭게 자라야 한다. ‘기적의도서관 프로젝트’는 어린이들에게 최선의 성장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시민단체(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방송사,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힘을 모아 전국에 추진하고 있는 어린이도서관 건립 사업이다.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도서관이 거의 없던 2003년, MBC “느낌표” 프로그램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 코너를 통해 전 국민의 관심 속에 시작되었고 올해로 20주년을 맞았다. 기적의도서관이 20년 동안 꾸준히 사랑받고 기적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어린이를 최우선에 둔 건립 정신과 취지를 살리기 위한 노력에 있다.

 

한 살 아이도 맘 놓고 기어 다닐 수 있는 따스한 온돌마루, 성장기 아이들을 이야기 나라로 안내하기 위한 공간들, 책 읽기를 돕는 창조적 프로그램, 장애 아동을 위한 시설과 콘텐츠, 자원활동가 시스템 등을 통해 기적의도서관은 국내 어린이도서관에 대한 인식을 크게 변화시켰고 어린이도서관 건축과 운영, 프로그램의 모델이 되었다. 이후 공공도서관에서는 어린이에 대한 새로운 서비스와 공간 개념을 만들어냈고, 2003년 당시 서너 곳에 불과했던 어린이도서관은 기적의도서관 설립 이후 영향을 받아 전국적으로 120여 개(2022년 기준)가 운영되고 있다.

 

기적의도서관은 2003년 11월 10일 개관한 순천을 시작으로 제천, 진해기적의도서관이 같은 해 개관하였으며, 서귀포, 제주, 청주, 울산 북구, 금산, 부평, 정읍, 김해, 도봉, 부산 강서, 구로, 공주, 여주기적의도서관까지 현재 16개관이 건립되었다. 또한 2023년까지 19개의 기적의도서관이 만들어질 예정이다.

 

기적의도서관 – 몇 가지 운영 원칙

 

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를 위한 도서관 서비스, 도서관 건축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방식의 도서관 운영과 새로운 도서관 문화를 창출하였다.

 

한 살 때부터 책과 친숙해질 수 있도록 북스타트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영유아부터 모든 연령의 어린이들이 도서관을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따스한 온돌마루를 깔았다.

 

민과 관이 함께 운영하는 새로운 모델의 도서관이다. 지역사회의 민간 인사들로 구성된 운영위원회와 지방자치단체가 함께 도서관을 운영하며, 시민이자 이용자인 자원활동가가 함께 운영에 힘을 모으고 있다.

 

육아의 비용과 책임을 지역사회가 분담한다. 북스타트, 참사랑 부모 학교, 조부모 교실, 품앗이 공동 육아 등을 통해 아이 양육을 돕고 새로운 형식의 교육 환경을 제공한다.

 

가정-학교-도서관의 연결을 통해 “책 읽는 가족”, “책 읽는 교실”, “책 읽는 지역사회”를 만들어가고 있다.

 

기적을 만든 기적의도서관 - #공간 #프로그램 #사람

 

이처럼 민과 관이 함께 힘을 모아 진행하고 있는 기적의도서관은 그 이름처럼 우리 사회에 선한 기적을 만들고 있다. 순천기적의도서관의 사례를 통해 공간, 프로그램, 사람의 측면에서 기적의도서관을 더 자세히 살펴보고자 한다.

 

#공간

 

“건축가는 문화를 생산하는 사람이고,
한 시대를 걱정하는 사람이고,
한 사회의 모순을 지적하는 사람이다.”
- 영화 〈말하는 건축가〉 中

 

순천기적의도서관은 고(故) 정기용 건축가(1945~2011)님이 설계한 첫 번째 기적의도서관으로 의미가 깊다. 정기용 건축가님은 어린이에 의한, 어린이를 위한 국내 최초 어린이도서관을 설계하신 분으로 ‘공공건축이란 건축가 혼자의 힘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 공간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결정에 참여하고 협력하는 협치의 건축이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 있다.

 

이에 건축가, 도서관 전문가, 도서관을 이용하는 시민 등 많은 분들과의 세미나, 공청회를 통해 이용자의 필요에 맞추어 도서관을 설계하였다. 전체 도서관 스케치에 얽힌 이야기뿐만 아니라 괴나리봇짐, 아그들방, 아빠랑 아기랑, 별나라방, 비밀의 정원 등 공간마다 건축가의 철학이 반영된 특색 있는 숨은 이야기가 가득하다. “아이들에게는 종이에 인쇄된 책만 책이 아니라 지붕, 옥상, 대나무, 화장실, 마당 등 모든 공간이 책의 한 페이지이며 자연도 한 권의 책이다”라는 정기용 선생님의 말씀은 그 분의 철학을 엿볼 수 있는 한 페이지이다.

 

순천기적의도서관 전경

순천기적의도서관 전경

 

2003년 처음 설립 모습(좌)과 2022년의 모습(우) 비교 사진

2003년 처음 설립 모습(좌)과 2022년의 모습(우) 비교 사진

 

 

#프로그램

 

순천기적의도서관은 어린이 특화, 부모 교육, 학교와 연계 그리고 어린이 전문 도서관으로서의 역할 등에 중점을 두고 운영하고 있다.

 

‘어린이사서’는 초등학교 3~6학년을 대상으로 하는 일 년 과정의 프로그램이다. 어린이 작가상 심사, 도서관에서 하룻밤 자기, 다른 지역 탐방하기 등 도서관 어린이 지킴이로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과정으로 운영하고 있다. 2004년부터 시작하여 현재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800여 명의 수료생을 배출한 도서관의 대표 어린이 프로그램이다.

 

‘기적을 그리는 화가’ 프로젝트는 미래의 작가를 키우는 문화예술 프로그램으로, 아이들의 작품을 기적을 꿈꾸는 전시실에 전시한다. 기적의도서관에서는 화가 프로그램을 통해 어린이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키우고 미래의 꿈을 응원한다.

 

‘참사랑 부모학교’, ‘조부모 양육교실’은 도서관의 대표적인 부모 교육 프로그램이다. 자녀, 손자 등 양육에 필요한 정보와 함께 양육으로 인한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자아를 찾을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2015년부터 운영하여 올해 9회를 맞는 ‘독서문화포럼’과 지난해부터 진행한 ‘어린이도서관 서비스 우수사례 및 아이디어 공모전’은 국내외 어린이도서관, 어린이 독서문화 발전에 대한 고민과 아이디어를 나누는 자리로 이를 통해 제1호 기적의도서관으로서 선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외에도 도서관과 관광지를 연계한 ‘순천기적의도서관 스테이’, ‘문화공연 토요일에 만나요’, ‘생애 첫 카드 만들기’, ‘작가와의 만남’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사람

 

이 모든 일을 하기에 직원의 힘만으로는 부족하다. 기적의도서관에는 초창기부터 함께한 도서관의 자랑인 자원활동가 선생님들이 있다. 자원활동가 양성을 위한 ‘도서관 학교’를 통해 지금껏 배출한 자원활동가는 족히 천 명 이상이다. 기적의도서관을 거쳐 간 많은 분들은 도서관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켜 나가며 작은도서관, 학교, 독립서점 등 지역에서 독서문화 환경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들은 자원봉사자가 아니라 활동가라고 당당하게 말한다. 북스타트, 수요견학, 책 읽어주기, 책 정리, 북큐레이션, 행사 도움까지 도서관의 시설, 장서, 공간, 문화 등 모든 운영에 힘을 합하고 있다. 도서관의 저력은 바로 매력적인 공간을 아끼고 가꾸는 사람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열정에 있지 않을까?

 

나눔의 주체로, 다시 기적

 

순천기적의도서관은 제천, 진해와 함께 처음으로 20주년을 맞는 기적의도서관 중 맏이이다. 맏이라는 무게감과 함께 책임감도 커서 성년이 지난 기적의도서관이 이제 성인으로 한 단계 도약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20주년을 준비하며, 지난해 처음으로 개최한 ‘북적북적 바자회’는 2003년 민·관이 협력해 이뤄낸 기적의 정신을 재현하고, 성년이 된 지금 받기보다 나눔의 주체가 되고자 하는 행사였다. 순천시민, 어린이, 지역서점, 출판사, 도서관 관계자 등 천여 명이 참여하여 기적의도서관 건립 당시처럼 모두가 하나되어 도움의 손길을 주었고, 그 결과 지구 저편 아프리카 남수단 어린이들에게 순천의 기적을 나눌 수 있었다. 이는 나무를 적시는 이슬처럼, 20년 동안 순천에 스며든 기적이 사람들을 책과 도서관에 가까운 행복한 사람으로 자라게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남수단 톤즈 어린이를 돕기 위해 순전기적의도서관이 개최한 바자회 개막식(좌), 톤즈 마을 모습(우)

남수단 톤즈 어린이를 돕기 위해 순전기적의도서관이 개최한 바자회 개막식(좌), 톤즈 마을 모습(우)

 

 

2003년 개관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꼬마들이 부모님이 되어 자녀의 손을 잡고 도서관에 방문한다. 당시 활동하던 자원활동가들은 이제 손자를 안고 북스타트 수업에 참여한다. 별나라방에서 책을 읽다 까무룩 잠들었던 어린 친구는 지금 순천시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다. 이들이 어렸을 때 기적의도서관에서 즐거움과 편안함을 느끼고 상상력을 키웠던 것처럼 순천기적의도서관은 20주년을 맞아 새로운 세대를 위한 새로운 기적을 준비할 것이다.

 

책나라 자료실

책나라 자료실

 

 

기적의도서관 책나라 자료실 중정에는 대나무가 있다. 도서관 책나라 자료실 한복판에서 사람과 도서관의 성장을 지켜본 쭉 뻗은 대나무처럼, 아이들이 바르고 곧게 잘 자라길 바라며 오늘도 하루하루 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앞으로도 도서관의 기적은 계속될 것이다.

 

기적의도서관 20주년을 기념한 프로그램 안내

기적의도서관 20주년을 기념한 프로그램 안내

 

 

순천기적의도서관 홈페이지 - library.suncheon.go.kr/miracle

 

김승현

김승현 순천기적의도서관 관장

순천시 도서관과 함께하고 있는 22년차 순천시 공무원이다. 순천시 작은도서관 업무를 시작으로 초창기 북스타트, One city one book 등 도서관 정책업무를 주로 하다 입사 10년 즈음 오롯이 도서관에서 근무하게 되었는데 첫 번째 도서관이 바로 기적의도서관이다. 기적의도서관 별관 리모델링, 파란달구지, 자원활동가 선생님들과 인형극팀 운영 등 짧지만 강렬한 기억은 근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1년이다. 10년이 지나 기적의도서관 관장으로 다시 돌아왔다. 도서관 사서로 근무하며 가장 애정이 가는 곳, 바로 기적의도서관으로.
tokk2@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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