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9  2020.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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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생태계, 상생을 위한 소통은 원활한가?
〈디지털 시대의 출판저작권법 개선방안 연구〉 중심으로

 

 

 

한주리(서일대학교 미디어출판학과 교수)

 

2020. 04.


 

출판생태계(出版生態系, publishing ecosystem)는 출판이 이뤄지는 환경을 생태계에 비유하는 개념으로 제작, 유통, 소비뿐만 아니라 그와 관련된 정책과 법, 유관 산업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출판생태계는 자연생태계의 원형적 개념에서 비롯된 것으로 적자생존, 먹이사슬, 자정작용, 협력상생 등의 원리들을 내포한다. 이를 출판산업에 적용하면 출판생태계에 대한 도식화가 가능해지며 아래 그림과 같이 나타낼 수 있다.

 


출판생태계 구성 요소


출판생태계 구성 요소(출처: 황준호 외(2012)의 25~26쪽 내용을 출판산업에 적용하여 필자가 도식화함.
한주리·김정명·구모니카·박익순·이건웅(2014), 『책은 冊이 아니다』에서 재인용)

 

출판생태계 안에는 생산 요소와 주요 행위자, 그를 둘러싼 법과 제도, 글로벌 경제 환경 등이 존재한다. 그리고 다양한 행위자와 환경 안에서 자본과 인력, 기술이 영향을 미친다.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해, 과거보다 훨씬 다양한 주체들이 출판생태계를 구성하고 있으며, 각 구성원 간의 입장과 관점의 차이로 인해 주요 행위자 간에 상생 노력이 점점 더 필요성을 더해간다.

 

이 중 1차 생산자인 저자군과 2차 생산자인 출판사, 유통사와 소비자 간에 서로의 입장과 이해가 상충되는 지점들이 발생하고 있으며, 이는 출판 관련 저작권법에 대한 인식에서도 그 차이가 확연하다. 앞서 말했듯이, 출판생태계는 자연생태계와 마찬가지로 적자생존, 먹이사슬, 자정작용, 협력상생 등의 원리가 자연스럽게 작동하고 있다. 이로 인해 주요 행위자들은 스스로의 이익을 위해 가장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다.

 

최근 〈디지털 시대의 출판 저작권 보호를 위한 법제 개선방안 연구〉를 통해 주요 출판 저작권과 관련한 이슈에 대해 이해 관계자의 입장을 분석한 바 있다. 이 과정에서 출판생태계의 주요 행위자인 저작자와 출판사, 주요 관련 기관인 도서관 간의 입장 차이도 상당하게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예를 들어, 학교교육 목적 보상금 제도의 지급대상에 대해 ‘수업목적 보상금’의 근본적인 해결을 위해, 이해관계자들은 저작권법 제62조 제2항 개정에 대해서는 공통의 의견을 보였다. 하지만 세부 내용에 있어서는 수업목적 보상금과 관련한 구체적인 근거 제시, 창작자와의 공감 필요, 보상금 지급 반대 등의 의견 차이가 있었다.

 

도서관의 경우 수업목적 보상금이 저작권자뿐만 아니라 출판권자나 배타적발행권자에게 지급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근거 제시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있었으며, 출판 관련 단체는 창작자와 함께 출판권자의 저작인접권자로서의 권리 강화도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에 반해, 저작자 단체들은 출판권자의 학교교육목적 보상금 제도 지급에 대한 권리 주장에 앞서 창작자로부터 충분히 공감을 얻을 수 있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혀 출판권자나 배타적발행권자에게 보상금 지급에 반대하는 사례도 발생하였다. 이는 출판계에서 저작자와 출판권자에게 5:5로 지급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견해와 그 결을 달리하는 결과이다.

 

이러한 주요 행위자들의 출판 관련 법과 제도 개정에 대한 입장 차이는 판면권 제도, 공공대출권 제도, 사적복제보상금 제도, 출판권과 배타적 발행권의 통합 및 존속기간 연장 여부, 출판계약과 표준 출판계약서의 기간 등에 있어서도 여전히 나타난다. 사실상, 출판계에서는 판면권 제도, 사적복제보상금 제도, 공공대출권 제도에 대해 지속적으로 논의를 거듭해오고 있다. 특히 판면권 신설을 위한 저작권법 개정안이 2017년 처음으로 발의된 이후, 지금까지도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다른 다양한 의견을 제시하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관련 제도와 법 도입과정에서 찬반에 대한 합의점이 필요하다는 데에는 공통된 인식을 나타냈다는 점이다.

 

 

 

법과 제도 인프라 구축을 위한 노력

 

그렇다면, 출판생태계의 법과 제도 인프라 구축을 위해서는 어떠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까? 법과 제도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첫걸음은 주요 행위자 간에 상대에 대한 배려와 인정을 하는 풍토 마련에서 시작된다. 해외의 경우, 출판권자에 대한 위상을 인정하고, 저작자에 대해서도 그 권리를 충분하게 찾을 수 있도록 최소한의 제도적 보호 장치를 마련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배타적 이용허락 제도와 종결권 제도에서 저작자와 출판자와의 관계를 파악할 수 있다. 즉, 저작자는 출판권자에게 40년간 저작권(복제권, 배포권, 이차적 저작물 작성권, 공연권, 전시권 등)의 전부 또는 일부에 대하여 배타적 이용허락을 한다. 이는 자신의 저작물을 출판권자에게 전적으로 위임하는 것이 오랜 시간을 걸쳐 이뤄진 권리 관계의 산물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독일의 경우, 2013년 저작권법 개정을 통해 언론출판인의 공중 접근권 역시 인접 보호권에 포함해 보호하고 있다(제87조f 내지 제87조g). 독일에서 출판자의 권리 및 출판계약에 관한 저작자와 출판자의 법률관계는 1901년에 제정된 ‘출판권법’에 정해져 있는데, 출판계약을 통해 작성자는 계약에 의한 별도의 규정이 없는 한 출판자에게 저작권을 이전한다. 미국이나 독일의 출판산업이 국제적 경쟁력을 갖게 된 데에는 이러한 출판 친화적 법제도가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해외에서는 이러한 출판자의 권리 보호 이외에 저작자의 권리 보호에 대해서도 법제가 강하게 마련되어 있다. 독일 저작권법에서는 공공의 이익을 위해서 저작권의 일부를 제한(일시적 복제, 재판 기타 공적 절차, 장애인, 학교수업, 학교방송, 공개 연설, 신문기사 및 방송논평, 시사 보도, 인용, 도서관 등 공공시설, 기기 판매업자에 의한 영업상 복제, 부수적 저작물, 공공장소의 저작물)하고 있으나, 우리 법에 비해 제한 사유를 훨씬 더 구체적이고 상세하게 규정하고 제한의 요건 또한 매우 엄격하게 규정하여 제한규정으로 인해 저작자의 이익이 지나치게 훼손되지 않도록 충분히 배려하고 있다. 즉, 저작자에게 적절한 보상 없이 저작권의 제한은 있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보상 청구권에 대해서는 개별 제한규정마다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고, 저작자의 이러한 법정 보상 청구권은 사전에 포기될 수 없고, 오로지 저작권 집중 관리단체를 통해서만 행사될 수 있도록 충분한 보호 장치가 마련되어 있다.

 

미국의 경우, 앞서 제시한 대로 장기간 출판권자에게 권리 양도해온 출판계약 존속에 대해서 2015년 5월에 미국 작가 조합(Authors Guild)은 공정 계약 발의(Fair Contract Initiative)를 발표하면서 공정한 계약을 위한 원칙을 다시 마련하고자 하였다. 저작자가 지나치게 긴 기간 동안 자신의 저작권을 출판자에게 양도하게 되어 불합리하다는 주장과 더불어 출판자가 이용하지 않는 권리까지 양도함으로써 해당 권리를 저작자가 이용할 수 없다는 점을 비판하고 있다. 이후 미국 작가 조합 홈페이지에서는 계약서 작성 시 협상 포인트, 도서 계약서상의 논란점, 저작권 침해 문제, 저작권료 미지급 등 다양한 측면의 법률적 도움을 주고 있다.

 

한편 한국의 경우, 저자들이 작가로 생활하는 데 현실적인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다. 국제 작가 포럼에서 2013년에 발행하여 국제 작가 포럼 회원국과 회원들에게 배포한 ‘Copyright Works’ 자료집에서도 이와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다. 2011년 1월 생활고에 시달리던 시나리오 작가 최고은 씨의 사망으로 대한민국 정부는 2011년 10월에 소위 ‘최고은법’이라고 불리는 예술인복지법을 제정하였으며 이는 예술인들에 대한 최초의 복지법이라고 명시하고 있다.

 


국제 작가 포럼에서 발행한 자료의 한국 저작자 관련 내용


국제 작가 포럼에서 발행한 자료의 한국 저작자 관련 내용(출처: International Authors Forum(2013), Copyright Works, p.15)

 

이 자료에는 한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작가의 26.2%가 예술활동을 통해 한 달에 수입이 전혀 없는 상태라고 제시하였다. 결국, 이러한 현실은 우리나라가 문화 강국이라는 말을 무색하게 만들 수 있으며, 해외에서도 국내 창작자(작가)들이 매우 어려운 형편에 있다고 인식하게 만든다.

 

그렇다면, 출판계의 상생 및 동반성장을 위한 원활한 소통방안은 무엇인가? 해외의 경우, 영국의 BIC(Book Industry Communication)나 일본의 JPO(일본출판인프라센터)와 같이 출판생태계 내의 저자, 출판사, 도서관, 서점 등 다양한 주체들이 함께 논의하고 협의하면서 문제 상황에 대해 대처해나가는 노력을 기울여 왔다.

 

영국의 BIC는 1991년에 설립되었고, 출판계 주요 사업자와 기관이 출자해서 만든 비영리 조직이다. 주요 참여사로는 Publishers Association(영국출판협회), Booksellers Association(영국서적상협회), the Chartered Institute of Library and Information Professionals(도서관 및 정보전문가협회), the British Library(영국국립도서관) 등이 있다. BIC는 출판 산업 대다수의 이해관계자들이 서로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으로 문제 해결을 통해 출판산업의 발전에 기여하는 방향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위원회는 메타데이터 위원회, 종이책, 전자책, 도서관, 교육 분야 등 총 5개로 진행되고 산업에서 도출되는 문제 발견과 해결을 위해 구성된다. BIC는 회원들의 회비로 운영되며, 출판계 내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문제에 대해 이해관계자들이 모여서 원인을 밝히고 해결 방향을 도출하는 것이 핵심 목적이다.

 

일본의 경우, 일본 도쿄의 진보초에 있는 출판인 클럽 빌딩에는 일본출판인프라센터(JPO), 일본서적출판협회, 일본출판유통(토리츠기)협회, 일본잡지협회, 일본국제아동도서평의회(JBBY), 일본출판클럽, 일본잡지광고협회, 독서추진운동협의회, 일본아동도서출판협회, 출판자저작권관리기구, 유네스코 아시아 문화센터, 출판기업연금기금, 일본출판산업기업연금기금, 문화산업신용조합 등 범 출판 관련 단체와 기구가 한 건물에 자리 잡고 있어서 수시로 서로 커뮤니케이션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어 있다.

 


일본 출판인 클럽 빌딩



일본 출판인 클럽 내부


일본 출판인 클럽 빌딩 및 내부(출처: JPO 방문 사진)

 

JPO는 업계 내의 다양한 이슈를 다루고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한 목적으로 운영되며, 출판유통의 개선 도모, 독자의 고객만족도 향상, 출판 정보 및 출판업계 시스템의 기반 정비에 의해 업무의 공동화/표준화 등을 진행한다. 출판산업 발전에 기여하기 위해 다양한 테마의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그 조기 실천을 도모하는 등 출판생태계 내의 효율화를 도모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전 세계적으로 정보 전달방식의 변화가 급변하면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권리가 상충하는 지점들이 발생해왔다. 특히 다양한 관계자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다각도의 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출판생태계의 경우, 이해관계자 간의 의사소통 및 협력, 논의를 거친 문제 상황에 대한 대처 및 해결 방식 공유가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출판생태계의 다양한 이익단체들이 각자의 이익을 대변하는 노력 이외에 출판생태계 전반을 유지하고 활성화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공공대출권 제도, 사적복제보상금 제도 등의 필요성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어야만 제도 운영을 위한 국가 재원 마련의 가능성이 확보될 수 있을 것이다.

 

각자의 이익만을 대변하게 되면, 정부의 재원 마련도 어려울뿐더러 정작 출판생태계의 주요 행위자인 독자들로부터 외면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 출판생태계 내에서도 자정작용과 협력상생의 원리가 자연스럽게 작동하기를 바란다.

한주리(서일대학교 미디어출판학과 교수)

서일대학교 미디어출판학과에서 인재를 양성하고 있으며, 출판계에서 일한 경험을 살려 출판 관련 분야에 대한 연구 및 국립중앙도서관 자료선정위원, 서울도서관 자료선정위원, 지역서점위원, 문화체육관광부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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