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38  2022. 11.

게시물 상세

 

2022 독서 콘퍼런스
영상매체 시대, 변화하는 독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문화진흥본부 독서문화팀

 

2022. 11.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9월 23일(금)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열린 원주에서 〈2022 독서 콘퍼런스〉를 개최했습니다. 〈2022 독서 콘퍼런스〉는 원주시립중앙도서관 강당에서 진행되었으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유튜브 채널에서 생중계되었습니다. 올해 독서 콘퍼런스의 주제는 “영상매체 시대, 변화하는 독서”로, 독서 문화를 이끄는 작가, 편집자 등 출판 관계자들을 모시고 진행되었습니다. 다양한 융복합 콘텐츠가 제작되는 시대의 흐름 속에서 각자의 다양한 독서 경험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며 독서 가치에 대한 공감대를 형성했습니다.

 

독서 콘퍼런스는 박준 시인의 “작가의 독서, 모두의 책 읽기” 기조 강연으로 시작했습니다. 첫 주제 토론 “확장된 독서 세상, 디지털 매체”는 한소범 한국일보 기자가 사회를 맡고, 김시형 그린북 에이전시 대표, 신주영 변호사, 이경희 SF소설가가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두 번째 주제 토론 “마이너한 취미 생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는 김선영 핀드 출판사 대표가 진행을 맡고, 사공영 유유출판사 편집자, 장슬기 사계절출판사 편집자, 최현우 시인이 패널로 참여했습니다. 각 세션별로 유의미했던 내용을 정리해서 소개해 드립니다.

 

[기조 강연] 작가의 독서, 모두의 책 읽기

 

박준: 2008년 계간 실천문학 등단, 저서 『계절 산문』, 『당신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은 먹었다』 외 다수

 

박준

 

 

Q. 글을 쓸 때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 다른 시들의 표현을 이해하기 위해 하는 것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글을 쓸 때 자연스럽게 표현하려고 노력합니다. 마치 언어생활같이 구술과 문자의 방식이 조금 다르지만 제가 좋아하는 시들을 보면 자연스러운 시구의 시들이거든요. 예를 들어 윤동주 시인의 「서시」만 생각해 봐도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라는 문장에는 예술적이거나 현학적 혹은 인위적 표현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죽는다, 하늘, 우러르다, 잎새, 일다, 바람, 괴롭다”처럼 평범하고 자연스러운 단어들로 이루어져 있는데, ‘윤동주의 「서시」는 왜 좋지? 윤동주의 「서시」를 읽으면 어째서 그 젊은 시인의 서늘한 기운이 느껴지지?’ 하고 궁금해 하는 것이 제가 시를 읽는 방법입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시를, 다른 사람의 표현을 이해하는 방법입니다. 무언가 읽으면 내 마음속에 물음표가 하나 생기는데 이것을 느낌표로 바꾸지 않고 정의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제가 다른 문학 작품을 읽을 때 갖게 되는 자연스러운 마음입니다. 저는 앞으로도 좋은 시를 쓰면서 또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주제 토론 1] 확장된 독서 세상, 디지털 매체

 

진행:
한소범(한국일보 기자)
패널:
김시형(그린북 에이전시 대표)
패널:
신주영(변호사,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에피소드 원작 『법정의 고수』 저자)
패널:
이경희(작가, SF소설가)

 

좌측부터 이경희, 신주영, 김시형, 한소범.

좌측부터 이경희, 신주영, 김시형, 한소범.

 

 

한소범

 

먼저 IP, 즉 지적 재산권의 측면에서 얘기를 나눠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IP는 ‘one source multi use’라는 설명 그대로 하나의 소스에서 파생한 여러 가지 유형의 콘텐츠를 활용한다는 건데, 여기서 ‘one source’는 출판물이었습니다. 출판물로 성공을 거두면 이후 영화나 게임 등 2차 창작으로 이어졌는데 요새는 흐름이 바뀌었다고 하더라고요. 책으로 출간이 돼서 성공을 거두기 이전 단계의 원고, 시나리오 축약본이나 아이디어 수준에서 콘텐츠가 생산이 된다고 하는데 먼저 이경희 작가님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이경희

 

예전에는 책이 기준이 돼서 책이 영화가 된다는 느낌이었다면 지금은 아이디어나 기획 혹은 원고 단계에서 이미 많은 검토나 협의들이 이루어지고 그걸 통해서 영화화도 빨리 이루어집니다. 심지어는 책이 출간될 때 띠지에 영상화 확정이라고 적혀서 나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는 아직 이게 책으로서 검증이 되기도 전인데 벌써 영화로 만들어질 정도로 큰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고 판단할 수 있지요.

 

어떤 경우에는 애초에 동시 기획되기도 합니다. 영화, 소설, 게임 등이 처음부터 동시에 기획이 돼서 영화의 소설 버전을 써주면, 영화가 개봉될 때 책을 같이 내겠다는 식으로 기획하기도 하고요. 이런 경우 장점도 있고 단점도 있는 것 같습니다. 소설로서의 묘미를 100% 살리지 못하는 게 단점이고, 반대로 그만큼 확장성이 좋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쉽게 읽히는 게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여럿이 작업을 하니까 더 좋은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는데, 기본적으로 이야기산업의 트렌드가 워낙 빠르게 변하다 보니 빠르게 영상화되고, 빠르게 매체를 전환해서 다양하게 확산될 수 있도록 많은 업계에서 노력을 하는 것 같습니다.

 

한소범

 

작가님께서는 영상화가 결정되기 전에 책으로만 출간하는 것으로 간주하고 작업을 하신 경험과 영상화를 염두에 두고 집필을 하신 경험이 모두 있다고 들었는데요. 그렇다면 두 가지 경우, 집필 상황에서의 차이가 분명히 있을 것 같습니다.

 

이경희

 

‘작품이 소설로는 괜찮지만 영화가 되려면 인물이 더 필요하다’라거나 ‘지금 스토리로 가면 제작비가 어느 정도 소요될 것 같은데 생각하는 프로젝트의 크기는 그것보다는 제작비가 적었으면 좋겠다. 그래서 장면을 덜어내거나 배경을 바꿀 수는 없을까?’라는 이야기를 전달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아무래도 여러 매체로 확장하는 걸 염두에 두면 그만큼 제약이 많아지는 것 같습니다.

 

신주영

 

제가 쓴 이야기는 사실 작가로서 쓴 이야기가 아니라 에세이였습니다. 에세이가 갑자기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의 원작이 된 거죠. 한 동아일보 기자님이 ‘이제는 잘 짜인 소설이나 웹툰이 드라마로 되는 게 아니라 감동을 줄 수 있는 에세이라도 IP 다각화가 가능하다.’라는 내용으로 칼럼을 하나 쓰셨는데요. 돌이켜보면 그 책을 쓸 때 이런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내가 법정에서 있었던 일을 드라마처럼 처음부터 다 써본다.’ 이런 생각으로 법정에서 변론하는 과정을, 제 머릿속에 있는 대로 썼는데요. 그중 『법정의 고수』 책에 「높고 단단한 벽, 그리고 계란들」이라는 내용을 세 챕터에 걸쳐서 굉장히 길게 썼는데, 드라마 장면 중 부칙 하나를 가지고 싸우는 장면이 실제 제가 변론 때 경험했던 장면입니다.

 

3년 만에 『법정의 고수』가 드디어 드라마로 만들어졌을 때 많은 것들이 바뀌었습니다. 단순히 캐릭터만 바뀐 게 아니라 드라마적인 요소가 들어가 너무 재밌지만 ‘이건 『법정의 고수』가 아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제가 쓴 이야기에는 변론이 굉장히 치열했지만 드라마는 캐릭터 자체가 주는 재미가 강조되었다고 할까요. 그래서 ‘이렇게도 양립할 수 있구나.’ 하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드리고 싶은 말씀은 드라마는 원작을 가지고 그대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영감을 받은 작가, 또 거기에 많은 스태프들이 모여 만든 것, 그러니까 집단 창작물이라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한소범

 

IP를 갖는 형태가 꼭 픽션일 필요도 없고 책으로 된 출판물일 필요도 없다는 걸 두 작가님의 경험담을 통해서 알게 됐는데요. 그럼 에이전시의 입장에서는 지금 변화하는 상황 속에 저희가 있다고 봐야 하는 걸까요?

 

김시형

 

매일매일 변화가 많이 일어나고 가속화되고 있다는 걸 느끼는데요. 저희 작가님 중에 전삼혜 작가님이 『붉은 실 끝의 아이들』이라는 장편을 쓰셨어요. 안예은이라는 뮤지션의 〈난파〉라는 곡을 듣고 영감을 받은 것이 소설을 쓴 계기셨어요. 그래서 저는 각자의 창작물이 마치 하이퍼텍스트처럼 서로 연결 고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미 서로 창조하고 있고, 창작 자체가 서로의 영역을 굉장히 빠르게 넘나들고 있어서 출판이 어떤 고유의 영역을 지키는 때는 이미 지나갔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에이전시로서 작가님들을 대리하면서 여러 가지 사업을 하는데 처음에는 출판 계약을 더 많이 할 줄 알았어요. 하지만 이제는 우리가 갖고 있던 출판사의 개념이 확장됐고, 출판사 또한 엄청나게 변화하고 있지만 반대로 다른 업종에 있는 업체들이 출판과 미디어로도 많은 변화를 시도하고 있습니다. 많은 업체들이 종합 미디어 사업 분야에 출사표를 던지고 있고, 옛날에는 문어발 미디어 그룹이라고 폄훼되었지만 이제는 너무 당연한 것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IP를 가지러 오시는 분들 자체가 처음부터 그분들이 쓰는 주 업종의 저작물만 가지러 오시는 것이 아닌 상태가 된 것입니다.

 

한소범

 

저희가 굳이 출판물을 경유해서 이야기를 향유할 필요가 없다고 하면, 어디까지를 우리가 독서로 봐야 할까요? 물성을 지닌 종이책조차도 플랫폼의 일부가 된다면 웹소설을 읽는 것도 당연히 독서가 될 거고, 오디오북을 듣는 것도 독서일 수 있을까요? 요새는 채팅형 소설이라고 해서 채팅창을 내리면서 보는 소설도 있던데 그것도 독서일 수 있는지요? 독자 개인으로서 생각하기에 어디까지가 독서의 범주에 포함이 되는 것일지가 이어지는 고민인 것 같습니다.

 

이경희

 

제가 어렸을 때는 ‘만화책을 보는 게 독서냐’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만화책을 보는 것은 누구나 독서라고 생각을 하는 시대가 됐죠. 계속 확장되고 있고, 웹소설을 읽든 오디오북을 듣든 그런 것도 당연히 독서라고 생각합니다. 『드래곤 라자』라는 소설이 특이한 건, 책이 100만 부 이상 팔리며 그 책을 읽은 사람의 일부가 이 작가의 팬이 되었기 때문이에요. 처음에는 연재형의 긴 호흡을 가지고 대여점에 적합한 소설로 썼지만 차기작으로 갈수록 그 형식을 바꿔나가면서 플랫폼의 틀을 넘어서는 소설로 썼단 말이죠. 그러면서 그 독자들이 플랫폼의 정형화된 규격을 벗어난 소설을 따라오면서 읽게 되고, 더 다양한 형식의 소설을 접하게 됐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그런 사람 중에 하나고요. 그러니까 저는 웹소설 플랫폼이 커졌을 때 플랫폼 안에서도 다른 형식의 소설들로 넘어가거나 확장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고정되지 않고 좀 더 확장해서 다양한 형식들을 시도할 수 있는 그런 기회가 주어지면 좋겠어요.

 

신주영

 

드라마나 영화는 작가의 입김이 굉장히 적은 분야인 것 같아요. 소설처럼 텍스트만 있는 경우에는 독자들이 작가하고 1대 1로 오로지 그 작가의 생각만을 따라가게 되는 거죠. 저도 어렸을 때 책으로 『쥬라기 공원』을 너무 재밌게 읽다가 영화로 보고는 ‘이게 뭐야’ 이런 적이 있습니다. 아마 다 느끼시는 걸 텐데 드라마나 영화가 나쁘다는 의미는 아니고 단지 텍스트만 있는 경우에는 굉장히 내구성이 좋고 또 독자들한테 엄청난 자유를 주는 것 같아요. 상상할 수 있는 자유. 만약 지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드라마를 본 뒤에 제 『법정의 고수』를 읽는 사람들은 책의 주인공을 생각하면 배우 박은빈을 떠올릴 것 같아요.

 

영화나 드라마는 감독이나 편집하신 분들이 의도한 대로 같이 느끼고 집단적으로 감동을 받지만, 독서 같은 경우에는 오로지 작가가 의도했던 것, 작가가 심어놨던 곡선을 따라가면서 반전을 느끼고 작가의 호흡과 같이 하는 부분이 있어요. 이미 영상화된 경우에는 향유하는 것이 유리하고, 플랫폼의 경우 다른 사람들하고 함께 이야기할 수 있는 부분이 좋지만, 작가와 호흡을 같이 한다거나 사유를 따라가기를 원한다면 텍스트만 읽는 것이 독자들에게는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김시형

 

저도 아이 둘을 키우면서 독서하는 양태를 보면 눈을 동그랗게 뜬 경험이 있습니다. 아이들은 책을 읽을 때 당연히 종이책만 읽지 않습니다. 웹소설도 읽고, 웹툰도 보고 하는데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굿즈로 제작되어 나온 굉장히 예쁜 종이책을 사거든요. 되게 입체적으로 읽는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제는 독서가 끝나거나 출판은 끝났나?’ 혹은 ‘다른 시대로, 세대로 넘어가나?’라는 생각이 ‘그냥 진화하는구나!’라는 생각으로 바뀌었습니다. 전혀 익숙하지 않았는데 아이들이 소비하는 동시에 굉장히 적극적으로 창작하는 것을 보면서 독서의 진화가 맞는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희 어머니가 저를 보면 또 놀라겠죠. 그리고 저는 30명의 작가가 쓰는 글을 정말 열심히 읽어야 되기 때문에 차에서도, 샤워할 때도 책을 읽어야 되니까 오디오북이 절실하거든요. 저도 그런 종류의 필요인데, 접근성 측면에서 보면 시각장애인이나 청각장애인도 굉장히 다양하게 독서하실 수 있게 됐잖아요. 저는 독서가 엄청난 진화를 했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한소범

 

독서의 개념이 많이 변화하고 있다는 것을 체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오디오북을 듣는 것도 독서고, 심지어 영화를 보는 행위까지 독서라고 하면 종이책의 존재 가치와 그 의미는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 남거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지털 매체 시대에 종이책을 읽는다는 그 행위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김시형

 

저는 『책에 갇히다』라는 앤솔로지를 추천 드렸는데 그 책에 모든 것이 사라지고, 전기가 없을 때 인간은 어떻게 책을 읽을 것인가 하는 여러 가지 실험의 얘기들이 나옵니다. 그런 시대가 왔을 때 종이책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요? 제가 출판업에 종사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정말 종이책은 그 물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어떤 순간에도 필요한 존재가 될 것 같습니다.

 

신주영

 

책, 드라마, 만화 그리고 영화 이렇게 시각적인 매체들이 많이 있는데 책을 제외하고는 다 집단 창작물이잖아요. 책이라는 것은 접근에서도 자유롭고 저는 책을 안 읽어도 언젠가는 읽겠다는 생각으로 구입해서 어디에라도 놔두거든요. 진짜 언젠가는 들춰봐요. 그럴 때 너무 행복하거든요. 그러니까 책은 앞으로도 계속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경희

 

저는 꼭 종이책은 아니더라도 편집자가 붙어서 책을 만들고 정제된 언어를 조율하고 또 깊게 고민해서 내어놓는다는 측면에서 전통적인 방식으로 출판되는 책이 아직까지는 다른 매체들에 비해서는 좀 더 공을 들인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정제된 글로 정리해서 작가 한 명이 쓴다는 것은 굉장히 독자적인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내가 차분히 내 감정이나 마음을 들여다보고, 글로 남기고, 다른 누군가에게 전한다는 측면에서 아까 기조 강연에서도 언급되었지만, 나의 내면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데 있어서 아직까지는 정제된 글을 오랜 시간 공들여서 전하는 책이 그나마 손실이 가장 적고 잘 전달되는 매체라고 생각합니다.

 

한소범

 

전기가 끊겼을 때에도, 아포칼립스 시대에도 읽을 수 있는 것이 사실 또 책이기도 하고요. ‘나에게 독서란 무엇이고, 나는 앞으로 어떻게 종이책을 향유할 것인가’ 이런 질문을 남겨놓는 시간이 아닌가 싶습니다. 앞으로도 독서 가치에 대해서 얘기할 수 있는 자리가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제 토론 2] 마이너한 취미 생활, 우리가 책을 읽는 이유

 

진행:
김선영(핀드 출판사 대표)
패널:
사공영(유유출판사 편집자)
패널:
장슬기(사계절출판사 편집자)
패널:
최현우(작가, 시인, ‘시요일’ 기획위원)

 

좌측부터 최현우, 장슬기, 사공영, 김선영.

좌측부터 최현우, 장슬기, 사공영, 김선영.

 

 

김선영

 

올해 독서 콘퍼런스 주제는 “영상 매체 시대, 변화하는 독서”입니다. 영상이 범람하는 시대에 책은 조금씩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지고 있는 듯도 한데요. 독서를 취미의 영역으로 봤을 때 요즘은 많은 여가 시간을 스마트폰이나 OTT 플랫폼에 빼앗기고 있는 것도 사실이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롭게 책을 읽어내고자 하는 움직임도 많이 있는 것 같습니다. 크고 작은 규모의 독서 모임이 늘고 있기도 하고요. 지역의 도서관이나 작은 서점들이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독서의 거점 역할을 해주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출판사에서도 독자를 만나고 독자를 늘리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죠. 사공영 편집자님부터 각자 진행하시고 있는 독서 관련 활동들을 차례로 들려주시기 바랍니다.

 

사공영

 

유유출판사는 전체 구성원이 5명인 작은 출판사입니다. 아시겠지만 출판사는 책을 내고 나면 책을 알리기 위해서 정말 여러 가지 활동을 합니다. 그런데 팬데믹이 지속되는 동안은 가장 흔히 했던 북토크나 독자와의 만남 같은 행사들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급적이면 대면 접촉 없이 할 수 있는 북클럽, 출판사 서포터즈, 커뮤니티 서평단 같은 것들을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반대편에 독자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분들이 계속해서 저희 유유출판사의 책을 즐겁게 읽어주시기만 한다면 저희는 기꺼이 출판사가 독자에게 제공할 수 있는 여러 가지 혜택들을 찾아보고 싶었고, 또 다양하게 제공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를 통해 평소에 독자님들이 어떤 요구들을 하셨는지를 떠올려보게 됐고, 독서가 언제 풍성해지고, 언제 만족스러워지는지 등의 생각들을 하게 됐던 것 같아요.

 

독자들은 ‘책 한 권을 제대로 읽었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때 독서가 풍부해진다는 느낌을 받는 것 같았습니다. 또 독서 모임들을 통해서 다양한 감상들을 접하게 되었을 때, 저자나 번역가가 강연하는 자리에 직접 와서 이 책을 내가 생각하지 못한 세세한 부분들까지 조금 더 깊게 짚어줄 때, 그리고 책을 기획하거나 만든 편집자가 ‘이 책은 이렇게 기획되었습니다.’ 하는 이야기를 듣고 ‘내가 참 좋은 책을 읽었구나.’ 하고 동의하게 될 때 독서가 조금 더 만족스러워지고 풍성해진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그 방식들을 전부 다 취합해 보기로 마음을 먹었고요. 그것을 전부 다 합해서 만든 것이 저희가 지금 운영하고 있는 책 구독 모델입니다.

 

장슬기

 

사계절출판사가 꿈꾸는 문화는 자연스럽게 책을 읽는 이가 있고, 책을 권하는 이가 있고, 그리고 책을 만드는 이가 있는 문화입니다. 그래서 제일 오랫동안 해왔던 독서 권장 프로그램 중 하나가 ‘책 읽는 가족’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 책을 온 가족이 같이 읽는 거죠. 보호자와 어린이·청소년 독자가 같이 읽으면 반드시 다른 지점에서 감동을 느끼게 되어 있거든요. 이번 콘퍼런스의 주제처럼 코로나19가 저희를 미래로 끌고 왔다고 생각해요. 어린이·청소년들이 플랫폼을 접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이루어졌고, 굉장히 빠르게 디지털화되는 것 또한 학교 교육과 이어져 왔기 때문인데요. 코로나19 시대에 새롭게 어린이·청소년들과 교육 현장에 계신 분들께 책을 권하는 방법으로 생겨난 것이 어린이 북클럽 ‘당당’입니다.

 

처음에는 우리가 원하는 건 자발적 독자인데 권장자가 신청하게 되는 프로그램이다 보니 걱정을 했습니다. 지금은 한 달에 한 번 운영하는데 17기로 1년이 넘었고, 이 친구들이 온라인 강연 중에 스피커를 꺼놓지 않고 작가 강연을 들어도 전혀 진행에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몰입도를 가지고 있고요. 주로 어린이들이 질문한 내용을 가지고 강연이 진행됩니다. 독자들의 질문에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라는 식의 답변 위주로 진행이 되고, 보호자분들의 피드백을 받아보면 굉장히 신기할 만큼 자발적으로 진행이 된다고 하세요.

 

북클럽을 하면서 느낀 점은 독자들이 다른 사람의 생각을 굉장히 궁금해 한다는 거예요. 독서 행위는 혼자 하는 건데 모여서 얘기하고 싶은 욕구가 상당히 강해서, 사회적 거리 두기가 심해질수록 성인 독자층에서도 온라인 모임이 많이 생겼습니다. 다른 사람이 쓴 걸 읽으면서 표현 욕구가 굉장히 강해지기 때문에 어쩌면 내 얘기를 하고 싶어서 읽는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그래서 ‘책을 매개로 서로 얘기를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다.’ 정도의 목적을 가지고 시작했는데 제법 의미 있게 진행이 되고 있다고 봐요. 사실 어린이·청소년 책을 만들면서 서평단에 책을 제공하지 않는 건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는데 건강하게 잘 진행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가 앞으로 해나가고 싶은 것은 성인, 일반 독자님들께 ‘함께 책 읽기’를 권하는 것입니다. 플랫폼을 도입하는 것은 이미 굉장히 많은 출판사에서 좋은 예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때문에 우선은 독자층이 한정돼 있다고 오해하는 어린이·청소년 문학의 장르적 재미 같은 것들을 느낄 수 있도록 어린이 문학을 읽는 성인 독자 북클럽이라든지, 또 권장자가 주요한 역할을 하는 청소년 문학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권장자를 대상으로 한 북클럽 등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인에서는 인문학을 시작으로 해서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에 관심을 많이 가지시는 자발적 독자들을 모아보는 등 이런 다양한 궁리들을 하고 있습니다.

 

최현우

 

저는 국내 최초 시 전문 애플리케이션 ‘시요일’이라는 앱의 기획위원회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역할은 큐레이션을 통해서 시 구절을 제공하는 역할입니다. 시요일이라는 앱은 일종의 시 전용 전자책 애플리케이션이에요. 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은 경험해보셨을지 모르겠지만 트위터나 SNS로 시 구절을 공유하고 소비하시는 분들이 꽤 많은데, 전문적으로 플랫폼화 했다고 생각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를 읽으시나요?’ 하고 물어보면 보통 대부분의 독자 분들께서 ‘시가 너무 어려워요.’라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시요일 앱의 장점 중 하나는 현대시가 어떻게 보면 고도로 아카데미화돼 있는 부분도 있을 것 같아 최대한 대중적으로 접근하기 위해서 기획위원들이 시를 선별하고 있습니다.

 

특징 중에 하나는 시요일 앱이 큐레이팅을 디지털화했다는 것입니다. 처음 시집들을 데이터베이스화할 때 여러 시인들이 모여서 이것을 단순히 본문이나 제목에 들어가 있는 특정 단어만 검색에 걸리게 만든 게 아니라 키워드화를 시켰습니다. 예를 들어서, 이별 혹은 배고픔 등의 단어를 넣어 검색을 하면 시 본문에 그런 텍스트가 없더라도 주제로 묶여 키워드화된 시들이 자동 검색되게 됩니다. 이걸 정리해서 볼 수도 있고 시를 누르면 그 시인이 쓴 시집으로 바로 접속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일종의 자동화된 큐레이팅을 보실 수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시 구절들이 앱 안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온라인 사이트, 온라인 서점에 배너 형식으로도 제공이 되는 것으로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다양한 채널로 시 구절을 접하면, 처음 시를 읽으시는 분들이 나중에도 시를 보게 되고 또 시집을 찾게 되는 효과를 낼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김선영

 

디지털 매체의 핵심인 앱인데도 추천하는 사람의 주관성이 들어간다고 하시니 추천하는 것도 사람의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AI가 아무리 추천을 해도 달력을 보면서 마음까지 읽어주지는 않으니까요. 그래서 개인 맞춤형으로 좋은 책을 골라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고른 책을 스스로 큐레이션하는 것에 대한 고민도 생겼습니다. 어린이 출판사에서 독서 프로그램을 운영하시는 장슬기 팀장님께 여쭤보고 싶은데, 좋은 책을 고를 수 있는 눈을 키워주는 일이 어떻게 보면 어린이 독서 운동의 시작일 텐데요. 아이들을 위해서 교육 현장에서 어떤 부분을 더 노력해볼 수 있을까요?

 

장슬기

 

어린이·청소년을 1차 독자로 정하고 있다고 해도 큰 카테고리 안에서는 다 문학일 텐데요. 제일 방해가 됐었던 건 ‘교육’이라는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교육을 목적으로 어떤 책을 권하는 건 아니니까요. 하지만 학교 현장에서도 굉장히 노력하시고 있습니다. 이를테면 2018년도부터 도입된 ‘한 학기 한 권 읽기’ 같은 경우는 ‘온 책 읽기’라고도 하는데요. 청소년들이 물리적으로 책을 읽을 시간이 없으니까 학교에서 책을 읽는 시간을 주고, 교사와 함께 책에 대해서 얘기하고, 학급 아이들이랑 같이 읽는 등 책을 충분히 읽는 활동을 진행하고 있어요. 초반에는 교과서 수록 도서들을 읽는 쏠림 현상이 당연히 있었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관련 연수를 통해 교사 분들이 일단 독자가 되려는, 부단하게 좋은 권장자가 되려는 노력을 많이 하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리고 어린이들이 습관적으로 학교에서도 읽고, 집에서도 읽는 문화를 만들어주는 것은 학교나 사회가 해줘야 되는 일인 것 같습니다.

 

사실 좋은 책을 고르는 안목을 키우려면 많이 읽는 것 말고는 뚜렷한 방법이 없는 것 같아요. 자기가 어떤 책을 좋아하는지 알려면 읽어보는 수밖에 없고, 사회와 가정과 학교 현장과 도서관 이런 곳에서 우리가 읽는 문화를 만드는 것이 먼저인 것 같습니다. 자기 취향을 확실히 알기 위한 어떤 탐험 같은 것들을 해볼 수 있도록 기다려주는 것 그리고 양질의 책을 만드는 것, 그래서 마침내 ‘내가 좋아하는 책은 이런 거구나.’ 하고 찾았을 때 다양한 선택지를 줄 수 있는 역할을 편집자들이 하는 것. -물론 1차적으로 작가님들이 해주시는- 그런 것들이 있지 않을까 싶어요.

 

김선영

 

자연스럽게 쓰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가 볼까 해요. 요즘은 읽는 사람은 없고, 쓰는 사람만 있다는 이야기도 하는데요. 그만큼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뉴스레터 같은 플랫폼으로 자기 창작물을 쉽게 발행할 수 있어서 이용하는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사공영

 

뉴스레터 시대가 온 것을 보고 출판사에서 ‘우리도 어떻게 하면 뉴스레터를 만들어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고, 그러면서도 구독자들이 열지 않고, 읽지 않고, 삭제하는 뉴스레터도 너무 많다고 생각을 했는데요. 출판사 뉴스레터니까 당연하게 또 ‘책 광고이거나 책 소개겠지’ 하는 예상을 깨보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독자의 공부를 돕는 책을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독자 중에 아주 많은 분들이 책을 만들고 쓰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고, ‘그 사람들이 어떻게 하면 나도 온라인 서점에 베스트셀러 상위에 올라갈 수 있지? 어떻게 하면 문화부에서 글을 쓰는 기자님들이 내 책을 발견하게 할 수 있지? 어떻게 하면 제작자와 잘 소통해서 내가 생각하는 예쁜 책을 만들 수 있지?’ 이런 것들을 정말 궁금해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또한 책이라는 것 하나를 둘러싸고 일하는데도 서로의 이야기를 잘 모른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을 돕는 게 결국은 재미있게 책 만들고, 좋은 책을 만드는 방법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름에 한 번 그분들을 찾아가서 인터뷰를 통해 저희가 대신 물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인터뷰를 정리해서 보내는 게 저희가 올해 발행하고 있는 ‘보름유유’고 현재도 발행되고 있습니다.

 

최현우

 

어떻게 보면 박준 시인님께서 말씀하셨지만 ‘읽는 사람은 결국에는 쓰는 사람이 될 수도 있겠다. 그리고 모든 쓰는 사람은 결국 읽는 사람이었다.’라는 말이 맞는 것 같은데, 비단 글쓰기 분야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유튜브도 그렇고, 1인 미디어를 창작하는 분들이 많아지기도 했고요. 기술도 발달해서 내가 갖고 있는 생각, 나의 콘텐츠들을 밖으로 표출할 수단들이 많아진 게 아닌가라는 의미에서 본다면 읽는 사람과 쓰는 사람을 이분법적으로 구분을 하는 게 과연 맞을까라는 생각이 조금 들기는 합니다.

 

물론 출판물이라는 형식을 가지고 사람들한테 어떤 상품으로서 판매가 될 때는 그만큼의 상품성을 생각해야겠지만, 창작자 입장에서는 본인 스스로 그것들에 대해 판단하기는 어려운 면이 분명히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라도 좋은 읽기를 해야 한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텍스트를 전달하는 서사의 특징과 영상이 전달하는 서사의 특징이 다른데 영상은 텍스트적인 서사 방법이라기보다는 이미지가 주는 서사 방법에 더 가까운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면에서 텍스트가 주는 서사의 흐름들을 제대로 즐기고 느끼기에는 영상이 책을 대체할 수는 없겠다는 생각도 듭니다. 물론 창작자라서 이런 생각을 할 수도 있는 거겠지만요.

 

그래서 저한테 독서는 교육이라든지 누군가가 권해서 하는 그런 게 아니라 오락의 일종이라고 늘 생각해요. 오락은 나 자신의 어떤 흥미나 나의 재미를 위해서 하는 것이지 내 삶에 반드시 도움이 돼야 되고, 교훈이 남아야 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누군가한테 독서를 강권할 때, 이를테면 큐레이션이나 독자 분들한테 책을 추천할 때 이 책을 해석해서 ‘이런 부분이 좋아요.’라는 얘기를 하게 되다 보니까 자꾸 교훈적인 것들만 찾는 방식으로 독서를 하게 되더라고요. 그래서 최근에는 ‘이 책을 읽으실 때는 이렇게 해보세요.’라는 쪽으로 책 추천을 많이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책이라는 매체를 어떻게 즐길 것인가도 우리가 같이 얘기해야 하지 않나?’라고 창작자 입장에서 생각의 문자도 해 보았습니다.

 

김선영

 

책을 만드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창작자의 이야기까지 들으셨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마이너한 취미생활이라고 하지만, 이렇게 책을 쓰고, 또 만들고, 그리고 같이 읽고 싶어 합니다. 아무리 미디어의 시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는 이유들에 대해서 조금씩 더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보다 나은 독서 문화를 정착시키고 발전시키기 위해서, 모두가 노력하는 사회가 되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2022 독서 콘퍼런스 하이라이트 영상 다시 보기

 

〉〉 주제 토론1 영상 다시 보기

 

〉〉 주제 토론2 영상 다시 보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문화진흥본부 독서문화팀

 

출판탐구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