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44  202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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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가의 인권과 자유를 위하여

 

 

 

박성혜(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교수,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

 

2023. 06.


 

최근 사망한 만화가 故 이우영 작가의 〈검정고무신〉 사태로 문화체육관광부가 ‘예술인권리보장법’ 위반과 불공정 사례에 대해 전수조사를 실시하기로 했다. 예술인과 창작자의 권리와 명예 보호를 위한 ‘예술인권리보장법’에 대해 자세히 알아본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이란?

 

예술인권리보장법이란 무엇일까? 얼핏 들으면 잘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사실 이 법의 정식 명칭은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이다. 긴 제목만 살펴보면 예술가의 지위와 권리를 보호해준다는 이야기인데, 이러한 법이 있다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그 동안 예술가가 보호를 받지 못 했다는 것을 방증하는 셈이다. 현실은 슬프게도 그렇다. 이 법은 예술가들이 의당 누려야 하는 표현의 자유를 침해 받으면서 이에 대한 방어와 보호의 필요성이 대두되어 마련된 법이기 때문이다.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제정법이다. 제정법이란 존재하지 않았던 법을 입법기관인 국회에 제안해 만들었음을 의미한다. 그러면 이 법은 왜 요구되었을까? 그 배경은 지난 2016년 대한민국 문화예술계를 강타한 블랙리스트 사태에 기인한다. 박근혜 정부가 작성한 명단 속 예술가들을 의도적으로 예술 창작 지원 제도에서 제외시키고, 방송이나 영화와 같은 매체에 등장하거나 참여하는 것에 제재를 가하고, 출판 등 다양한 문화예술계에서의 예술 창작 활동을 제한하거나 배제를 강요한 사건이다. 21세기 대한민국 한복판에서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 가는 일이 버젓이 행해졌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진행한 문화예술 블랙리스트 사건은 문화예술인들은 물론 시민들에게도 커다란 충격을 준 사건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의 동력이었던 광화문 촛불 집회의 발화점 중 하나로도 작동했다. 이에 문화예술인들이 제안한 재발 방지와 대책 마련에 의해 제정된 것이 예술인권리보장법이다.

 

그렇다면 이 법의 내용은 무엇일까? 간단하게 풀이해 보면 문화예술인들이 온전하게 예술에 전념할 수 있게 하자는 취지이다. 딱딱하고도 전문적인 법률 언어로 뒤범벅이 된 법률안을 들여다보는 사람들은 극소수이고 또한 대부분의 법률이란 것이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의당 당연하고 지당한 말씀뿐이라 상식선에서 도덕과 질서를 지키면서 살면 무탈하게 잘 살 수가 있다. 마찬가지로 예술인권리보장법도 당연하게 지켜져야 할 내용들이 열거되어 있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 하나가 ‘표현의 자유’이다. 대한민국 헌법 제22조제1항에는 “모든 국민은 학문과 예술의 자유를 가진다.”, 제2항에는 “예술가의 권리는 법률로써 보호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동안 헌법에서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으면서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법안은 부재했다. 아마도 너무 당연한 것이니 상식과 도덕적 관점에서 판단과 구현이 가능한 것이라 간주되었나 보다. 의당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상식과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무시되고 심지어 대항할 수 없는 국가 폭력의 형태로 발생했을 때 대한민국 국민을 어떻게 보호해야 하는가에 대한 법률은 존재하지 않았다. 이에 대한 대안과 방법의 구체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예술인권리보장법이다. 따라서 이 법안은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는 다양한 행위들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또한 예술가의 주체적 권리와 지위를 보장하면서 창작 활동에 대한 전반적인 활동을 저해하는 것들을 방지함에 목적을 두고 있다.

 

예술 창작 활동의 인정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의미 중 주요한 점은 예술 창작 활동에 대한 제도적 인정이다. 대한민국에는 많은 법들이 존재한다. 문화예술과 관련된 법률들도 매우 다양하다. 문화예술 창달에 관한 다양한 법안들도 존재한다. 예를 들면 문화재 보존과 문화예술 관련 공공재인 도서관과 미술관 건립과 육성, 출판과 방송에 관한 법안, 문화예술 교육에 관한 관련 법안 등등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고 내용 또한 다양하다. 그런데 정작 그 모든 문화적 자산을 양산하는 예술가, 즉 ‘사람’에 대한 법률은 부재했다. 예술이 예술가라는 ‘사람’의 창작 활동에 기인한 것임을 보면 그 많고 유구함을 자랑하는 건물, 시설, 작품, 육성 제도에 관한 법률만 존재했다는 것이 무척이나 아이러니하다. 다행히 2012년부터 시행되기 시작한 예술인복지법이 사람에 초점을 맞춘 국내 최초의 법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후 장애예술인에 관한 법률이 시행되었고, 그다음 마련된 법이 예술인권리보장법이다. 그리고 이 법에서는 예술가가 행하는 다양한 창작 활동을 인정하고 그 과정에서 파생될 수 있는 불평등과 불합리, 불공정을 방지하면서 성평등한 예술 환경을 조성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따라서 예술인권리보장법의 제1조에서는 그 목적을 다음과 같이 명시하고 있다.

 

이 법은 예술 창작과 표현의 자유를 보호하고 예술인의 노동과 복지 등 직업적 권리를 신장하며, 예술인의 문화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지위를 보장하고 성평등한 예술 환경을 조성하여 예술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그중에서도 중요한 것은 바로 “예술인의 노동과 복지 등 직업적 권리를 신장”한다는 부분이다. 예술가를 직업으로, 창작 활동을 노동으로 인정하면서 의당 가져야 하는 예술가들의 권리를 명시했다는 점이다. 예술 활동을 일종의 노동으로 인정한 법안으로, 이에 따른 정당한 보수와 창작 과정에서의 보호와 조치가 가능해진다. 이 법에서 노동은 객관적으로 판단하고 근거를 마련하기 위해 계약서 체결 여부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 창작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모든 계약들을 범주에 두고 있다. 이와 더불어 예술 교육은 물론 예술가라면 의당 받아야 하는 보호와 권리를 모두 보호함을 지향한다.

 

예를 들면 최근까지도 예술가들은 직업적으로 자영업자로 분류되었다. 명색이 ‘프리랜서’라서 공식적으로 모두 “갑”이다. 자신의 창작 활동 여부를 자율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직군이기에 창작 작업에서의 불공정은 법률적으로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와는 별개로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예술 창작 과정 그리고 예술인이라는 신분만으로도 창작의 표현, 작업 진행, 교육 및 전수 기타 여러 과정에서 자신의 예술적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고 불공정에 대응할 수 있다. 그야말로 예술인권리보장법은 국민이면 의당 보장되어야 하는 직업적 권리를 법률로 보장하고자 제정한 법이다. 기본적인 표현의 자유는 물론이거니와 불공정한 관행이 이제는 시정되고 개선될 수 있다.

 

물론 예술인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게 문제제기를 하고 행동할 수 있는가는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러나 예술인권리보장법 시행을 통해 압도적으로 수직적인 관계에 놓인 예술가 개인이 그동안 이의제기가 어려웠던 문화예술계의 풍토에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되었다. 즉 예술 창작 활동은 가난한 직업이고 예술가들이 고상하여 현실적 이해관계를 따지지 않는다는 식의 고정관념과 관행이라 묵인되었던 불합리한 사례들에 반문하며 스스로 자신의 권리를 찾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성희롱·성폭력에 대한 보호 조치 가능

 

한편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성평등한 예술 환경 조성에 관한 내용이다. 이 법안에서는 예술인들의 모든 활동에 걸쳐 건전한 성평등 문화 조성을 저해하는 행위들을 금지하고 있다. 지금까지 발생한 성폭력은 피해자의 신고와 고발에 의해 민법이나 형법에 의해 다루어졌다. 하지만 그보다 수위가 다소 낮은 성희롱은 제재를 가할 방법이 전무했다. 문화예술 분야에서 이러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이를 처벌하거나 해결할 수 있는 법적 조치가 어려웠다. 일반적으로 성희롱은 ‘직장 내 성희롱 방지’라는 취지로 직장 내에서 취할 수 있는 행정적 인사 조치 및 징계의 내용을 취하고 있다. 그러나 예술가들은 대부분이 프리랜서, 자영업자이기 때문에 ‘갑’과 ‘갑’의 일이라는 이유로 처벌 근거를 마련하기 힘들었다. 하지만 예술인권리보장법은 성희롱에 대한 방지와 제재를 목적으로 하고 있고 처벌이 가능해 문화예술인에 대한 성희롱도 처벌이 가능하다. 즉 예술가라면 누구나 직장 내 성희롱 관련 조치와 유사한 처벌 및 관리가 유효하다.

 

그동안 문화예술계에서 다양한 형태의 성희롱이 발생해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기가 어려웠다. 물론 최근 예술가들에게 건전한 성 인식과 문화예술계 전반에 걸쳐 양성평등에 대한 문화가 보편화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생하는 문제에 대해서 해결책이 전무했다는 점에서 이에 대한 개선과 처벌에 대한 법적 근거의 필요성이 대두되었다. 이에 예술인권리보장법이 마련됨으로 인하여 약자를 보호하고 바람직한 성평등 문화 조성을 위한 토대 구축이 가능해졌다.

 

어떻게 문제를 해결하는가?

 

표현의 자유와 불공정, 성평등에 위법한 행위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사건들이 실제로 발생했다면 예술인들 개인이 해결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게 사실이다. 이를 위해 정부는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법안에서 명명한 정확한 명칭은 ‘예술인 권리보장 및 성희롱·성폭력 피해구제 위원회’이다)를 올해 초에 조직해 신고의 체계성을 구축하고 운영안을 마련했다. 그중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바로 ‘조사권’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신고를 할 수 있고 신고가 접수되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는 자체적으로 조사를 수행할 수 있다. 문체부는 이 법안의 효력 발생과 맞춰 2022년에 예술인을 보호하는 전담 조직인 예술인지원팀을 신설했다. 홍보와 인력이 부족해서인지 아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권리 침해 행위 신고는 문체부와 한국예술인복지재단 홈페이지를 통해 가능하다. 일단 접수가 되면 조사를 수행하여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이에 대한 조치를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에 안건으로 회부하여 사건을 다룬다.

 

신고 접수된 사건을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에서 직접 다루면서 다양한 행정 조치 및 시정 명령을 문체부 장관에게 건의하고 이를 장관이 명령하는 형태이다. 조치의 내용으로는 과태료 부과, 재정 지원 중단 및 배제가 가능하다. 그러나 행정적 제재와 벌금이라는 처벌 수위가 다소 낮다는 한계가 존재한다. 무엇보다도 가장 큰 타격은 문화예술인이라면 가장 순수하고 모범적이라는 사회적 지위의 훼손과 명예의 손상이 아닐까 싶다. 또한 관련 분야에서의 평판과 윤리적 타격이라는 상징성도 존재한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소문과 평판이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곳이 문화예술 분야임을 상기한다면 그리고 해당 분야가 좁고 관계자들 간의 협업과 교류가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름 의미가 있다.

 

거듭 밝히지만 이 법의 궁극적 목적은 예술인들의 직업적 권리를 보호하고 건전한 성평등 문화를 조성하는 것이다. 시작과 배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국가 권력도 예술가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미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기본권이다. 다시는 블랙리스트 사태가 발생하지 말아야 한다는 취지를 강조한 것이며, 모든 문화예술인들의 당연한 권리를 보호하고 인권을 신장한다는 취지가 담긴 법이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법률로 강제하거나 규제하는 것보다 기본적 상식과 질서를 견지하면서 스스로 통제하고 건전한 문화를 만드는 것이다.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그 결과를 만드는 사람도 중요하고, 그 과정 또한 도덕적으로나 윤리적으로 상식을 지키면서 진행해야 한다는 취지이다. 그러한 문화가 존속해야 진정한 문화 강국이고 가치 있는 예술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박성혜

박성혜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구교수,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

발레리나 출신으로 무용에 관한 이론 연구와 비평 활동을 주로 한다. 국립현대무용단 선임연구원, 무용이론 박사, Post-Doc 과정을 거쳐 현재 한국예술종합학교 한국예술연구소 학술연구교수로 재직 중이다. 예술 작업에 집중하다가 ‘예술하는 사람’에게로 관심이 확대되어 문화예술 정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예술인 고용보험 제정 관여를 시작으로 예술인권리보장법 TF팀 위원을 거쳐 현재 문화체육관광부의 예술인권리보장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본업은 항상 예술적 글쓰기인 비평 활동이라고 여기고 있으며 예술과 노동에 관한 다양한 정책과 제도 논의, 담론 생성에 관심이 있다.
gissell@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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