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47  2023.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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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를 말한다: 전자출판계]
웹툰표준식별체계와 도서정가제
- 웹툰 분야 중심으로 -

 

 

 

서범강(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

 

2023. 09.


 

“도서정가제는 도서 판매 시, 도서의 가격을 사전에 정해 두어 그 가격 이하로 도서를 판매하지 못하도록 하는 제도를 말한다. 이는 도서 판매 산업에서 가격 경쟁을 억제하고, 출판사와 작가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제도로 만들어졌다. 일부 국가에서는 법적으로 규제되어 있으며, 도서 판매에 참여하는 모든 판매처에서 이를 준수해야 하며, 독자들이 도서를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있는 온라인 서점 등의 판매처에도 도서정가제가 적용되고 있다.”

 

도서정가제는 출판사와 작가들의 이익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한 제도로 인식되지만, 독자들은 특정 도서를 더 저렴하게 구매할 수 없기 때문에 이를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기도 한다. 동일한 출판 산업에 있는 이들 사이에서도 혹은 작가의 입장에서도 그 필요성에 대한 의견이 극명하게 나뉜다. 상황이 그렇다 보니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는 3년마다 출판 산업계 전문가들을 모아 도서정가제의 실효성과 필요성에 대해 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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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에 대한 웹툰 산업계의 견해

 

‘도서정가제’라는 말을 처음 접한 이후로 4년 정도의 시간이 흘렀다. 웹툰 산업을 대표해서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첫 회의에 참석했을 때는 용어 자체가 낯설게 느껴졌고 그동안 경험했던 회의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적응하느라 바빴던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당시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웹툰 사업을 하는 모든 이들이 국제표준도서번호인 ISBN(International Standard Book Number)을 발급받고 있는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에 도서정가제라는 용어는 거리감이 느껴졌다. 그렇다고는 해도 몇몇 웹툰 기업들을 포함하여 출판으로 시작해서 웹툰 사업을 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ISBN을 발급받기도 하였기에, 웹툰 산업을 대표하여 자리에 참석한 이상 책임을 제대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내용과 상황을 제대로 알아야 했다.

 

다음 회의의 참석을 준비하면서는 도서정가제라는 용어의 정의를 살펴보고, 무엇 때문에 만들어졌는지 출판 산업에 있어 어떤 의미를 지니며 왜 그렇게 중요하다고 얘기하는지를 이해하고자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노력을 기울였다. 도서정가제에 대해 어떤 판단을 하거나 의견을 전하기 이전에 전후 상황을 들여다보고 각자의 입장을 정확히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나름의 노력도 있었고 주변에서 여러 방식으로 상황을 알려주시고 이해를 도와주신 분들이 계셔서 다음 회의에 참석할 시점이 되어서는 도서정가제에 대한 개념도 잡히고 많은 부분의 내용을 축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이후에도 다수의 회의에 참석하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자연스레 세부적인 사항들도 정확히 알아갈 수 있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도서정가제에 대한 입장’을 전하자면 이렇다. 나는 단 한 번도 도서정가제에 대해 반대를 한 적이 없다. 이유인즉슨 출판인들이 그토록 소리를 높여 한 목소리를 내는 것에는 그럴 만한 사정이 있고 이유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회의에서도 출판 산업의 다양한 분야에 종사하는 분들은 대부분 도서정가제의 필요성을 강조했으며 그것이 중소 출판사와 서점을 살리는 일에 얼마나 중요한지를 표현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사정이 그렇다면 나 역시 도서정가제를 반대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이 들었다.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지지 의사를 밝힐 수는 있겠으나 도서정가제를 찬성하거나 반대하는 역할은 아니라고 판단했다. 기본적으로 웹툰 산업과 출판 산업은 서로 독립된 각각의 산업으로, 동일 영역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서정가제를 통해 중소 출판사와 서점이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필요에 따라 서로 협력하여 시너지를 낼 수는 있겠으나 그 이상으로 관여하거나 간섭하는 것은 서로 범위 밖의 일이 되는 것이다.

 

웹툰과 출판은 별개의 산업… 도서정가제 적용 논의에 대한 우려

 

이는 웹툰에 도서정가제의 적용 여부를 논하는 것에도 마찬가지다. 출판과 웹툰은 그 개념과 정의는 물론, 활동 영역에 이르기까지 모든 면에서 결을 달리한다. 출판은 종이 인쇄 방식을 통한 유형의 결과물로 오프라인 유통을 목적으로 하지만, 웹툰은 디지털 제작 방식을 통한 무형의 데이터로 온라인 서비스를 목적으로 한다. 서로 다른 영역의 산업이기에 맞지 않는 정책을 적용하는 자체가 잘못된 일이고, 오프라인 환경의 인쇄 출판물을 유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정책을 온라인 환경의 디지털 콘텐츠의 유통에 끼워 맞출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또한 억지스러운 일이다. 게다가 웹툰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대한민국에서 급속도로 빠르고 높은 성장을 나타내며 글로벌을 대표하는 콘텐츠로 자리를 잡아가는 웹툰에 지원과 장려를 하지는 못할망정 이해할 수 없는 잣대로 웹툰의 성장에 족쇄를 채우는 것은 가당치도 않다.

 

물론 웹툰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는 이슈가 제기된 이유는 서두에 언급했듯, 일부의 웹툰 기업이 ISBN을 발급받은 사례가 있기 때문임을 알고 있다. 기본적인 논리를 살펴보면 ISBN을 받은 출판물은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게 되어 있으며, 웹툰이 ISBN을 발급받았으니 당연히 도서정가제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웹툰이 도서정가제의 적용을 받아야 한다기보다 ISBN을 발급받은 웹툰은 도서정가제를 따라야 한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이를 판단하고 결정하기 위한 회의에서도 출판 산업을 대표하여 나온 분들은 ‘ISBN 발급을 받지 않는다면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을 필요나 이유가 없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언급하기도 했다. 이를 미루어 보면 ISBN이 아니라면 출판과 웹툰이 서로 엮일 이유가 없고, 도서정가제의 대상은 웹툰을 말한다고 보기보다는 ISBN을 발급받은 대상을 말하는 것이 확실하다.

 

허나 여기에서도 상황에 맞지 않거나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는데 그렇다면 어째서 ISBN을 발급받은 대상에 해당하는 ‘웹툰 작품’이 아니라 ‘웹툰 플랫폼’에 도서정가제를 적용하려고 하는가라는 점이다. 즉, 웹툰 플랫폼 그 자체에서 코인에 대한 이벤트나 혜택을 적용하는 것은 물론 혁신을 위한 다양한 서비스 방식을 실험하고 시도하는 것에 대해서까지 제한하자는 것이다. 엄밀히 따지면 웹툰 플랫폼에는 ISBN을 발급받은 작품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작품들도 상당히 많이 존재하는데 말이다. 이는 ISBN을 발급받지 않은 작품까지 도서정가제를 적용받게 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며 웹툰 플랫폼에도 발전적이지 못한 영향을 끼치는 결과를 만든다. 이로 인해 결국 글로벌 웹툰 산업의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해외의 여러 강력한 경쟁자들이 웹툰 기업을 운영하며 대한민국이 만들어낸 다양한 방식들을 적용하고 활용할 때, 정작 국내 웹툰 기업들은 발목이 잡혀 역차별을 당하는 기이한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따라서 출판 산업과 웹툰 산업이 서로 윈윈(win-win)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웹툰 산업은 출판 산업이 추구하는 도서정가제를 전혀 반대하지 않으며 반대할 이유도 없다. 다만 서로 다른 산업의 정책을 상대에게 적용하는 것에는 분명하게 반대한다. 이 부분에 대한 견해의 차이는 결국 ISBN을 발급하느냐 아니냐의 문제로 볼 수 있다. 그런데 국제 ISBN 사무국에 따르면 “ISBN은 단일 출판물에 대해 발행되는 것으로, 대중에 출판 유통 체인을 통해 공급되는 경우에 발행한다”고 전하며 “웹사이트에 연재되는 방식은 ‘단일 출판물’이 아니므로 ISBN 발행 대상에서 제외된다”고 했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웹툰은 2024년부터 ISBN을 발급받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미 발급을 받은 경우는 어떻게 정리를 할 것인지 검토를 해봐야 할 일이겠지만, 이제 앞으로는 출판과 웹툰이 ISBN이나 도서정가제로 엮일 이유가 사라진다는 말과 같다. 그 말인즉슨 서로 협력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서 상호 발전하는 관계가 되어야 할 출판 산업과 웹툰 산업이 더 이상 불필요한 이슈로 관계가 어색해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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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 대응책으로서의 ‘웹툰표준식별체계’의 필요성

 

이를 위해 무엇보다 가장 시급한 것은 웹툰 산업에 가장 타당하고 적합한 ‘웹툰표준식별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이미 그 필요성과 중요성은 인정이 되었고 준비가 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진행에 있어 속도를 내고 있지 못하다는 것에 있다.

 

2022년 7월 29일 박보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웹툰업계와 간담회를 주최하고 ‘국제 표준으로 자리를 잡을 수 있는 웹툰을 위한 웹툰만의 고유한 웹툰표준식별체계’를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또한 2022년 12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는 공정거래위원회, 창작자, 14개 만화·웹툰 분야 협회·단체, 웹툰업계 등과 함께 ‘웹툰 생태계 상생 환경 조성을 위한 협약’을 체결하며 웹툰표준식별체계의 도입을 발표함과 동시에 웹툰표준식별체계 도입에 필요한 제도 개선과 관련된 연구를 진행하며 정리된 내용과 계획을 발표했다. 이는 대한민국의 창작자와 웹툰 산업 종사자 그리고 대중을 대상으로 한 약속인 만큼 반드시 지켜져야 하며, 그리될 것이라 믿는다. 하지만 중요한 점은 단순히 없던 것이 생기는 것 정도로 그치는 게 아니라, 그것이 만들어져야 하는 이유와 갖춰져야 하는 이유를 제대로 알고 준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번 기회를 빌려 웹툰표준식별체계의 시작과 과정 그리고 완성에 이르기까지 꼼꼼히 따져보며 살펴보기로 한다.

 

한국웹툰산업협회는 웹툰 산업의 혼란을 막고 올바른 성장의 기틀을 마련하기 위해 도서정가제의 대응책으로 ‘웹툰표준식별체계’의 필요성과 추진을 주장하였다. 이는 출판 산업과 웹툰 산업의 불필요한 갈등과 충돌을 막고 도서정가제가 필요하다는 출판 산업을 지지하면서도 웹툰 산업의 성장 동력과 운영, 관리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말하자면, 양쪽 모두 문제는 해결하고 필요한 것은 확보하는 일석이조의 대안을 내놓은 것이다.

 

웹툰은 현재 한 해에도 수많은 작품이 만들어지고 유통되고 있다. 이제는 국내뿐 아니라 글로벌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해외 시장을 통한 공급도 상당히 늘어나고 있다. 한류와 함께 대한민국의 콘텐츠 시장을 견인하며 한국의 문화를 알리고 수출을 통한 무한자원으로 거듭나고 있지만, 웹툰 산업의 데이터 수치와 통계는 언제나 추산일 뿐 정확하지 못하다. 이는 웹툰 산업에서 어떤 작품들이 누구에 의해서 얼마나 만들어지고 어떻게 어디로 유통되고 있는지, 가격은 얼마이며 매출과 수익은 어느 정도인지 확인할 방법이 없다 보니 설문에 참여하는 일부 웹툰 기업과 작가들이 제공하는 정보를 토대로 짐작하는 정도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것이 웹툰의 정보를 다루는 웹툰표준식별체계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이며, 반대로 웹툰표준식별체계가 존재한다면 가장 기본적인 것부터 시작해 다양한 것들을 해결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대표적인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웹툰 홈페이지 메인 화면

대표적인 웹툰 플랫폼인 네이버웹툰과 카카오웹툰 홈페이지 메인 화면

 

 

이렇듯 웹툰 산업에 주요 정보들을 기록하고, 관리하고, 보존하고, 파악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웹툰 산업에 꼭 필요한 ‘웹툰 통합 전산망’을 구축할 수 있게 된다. 나아가 소중한 웹툰 데이터들의 유실을 막고, 정확한 데이터 수치와 통계를 확보하여 마침내 웹툰 산업의 완성을 위한 환경도 조성된다. 이 외에도 웹툰표준식별체계가 필요한 이유는 아무리 강조해도 부족할 정도로 많다. 이제는 지속적인 연구를 통해 어떻게 하면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웹툰표준식별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지를 정리하고, 더 이상의 지체 없이 웹툰의, 웹툰에 의한, 웹툰을 위한 웹툰표준식별체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서범강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으로 웹툰의 국제 표준화와 불법 복제, 저작권 보호를 목표로 ‘웹툰표준식별체계’를 추진 중이며, 웹툰 및 출판 작가, 애니메이션 감독으로도 활동 중이다.
bumgang.seo@inamu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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