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14  2020. 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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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의 위기에 빠진 출판유통, 진화(鎭火)라도 가능할까?

 

 

 

송성호(대한출판문화협회 유통담당 상무이사)

 

2020. 09.


 

오늘 나는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I am Legend)』라는 책을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 바로드림센터에서(도매로 50퍼센트의 공급률로 공급된 책) 20퍼센트를 할인 받아 4만 원에 샀다. 마일리지를 10퍼센트 받아서 그것으로 커피까지 마셨다. 밥을 네 번 정도 먹을 돈이지만 책값이 비싸 보이진 않는다. 할인을 많이 해 주기 때문이다. 이 책을 펴낸 출판사 이름은 문학과창작동네S미디어그룹이라는 곳인데, 문학 코너를 보니, 그곳의 책들 외에 다른 출판사의 책들은 눈에 띄지 않는다. 매장에서 보이는 책들은 모두 ‘광고’라는 딱지가 붙었지만, 신경 쓰이지 않는다. 원하는 책을 싼값에 구했으니 그것으로 좋다.
오랜만에 책을 읽고 싶어서, 지방에서 휴가를 내 종로에 왔지만 어쩔 수 없었다.
교보문고 바로드림센터는 우리나라에 하나밖에 없는 오프라인 서점이기 때문이다.

 

앞에 언급한 리처드 매드슨의 소설, 「나는 전설이다」는 동명의 영화로도 만들어져 큰 인기를 끌었다. 영화가 개봉되자 잘 알려지지 않았던 원작 소설(「나는 전설이다」가 들어있는 단편소설집이다)도 덩달아 판매가 뛰었다. 하지만 소설과 영화의 결말은 천지 차이다.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인 공식처럼) 마지막 파라다이스가 될지도 모르는 곳에 도착해 치료제를 만드는 것으로 희망을 보여줬다면, 소설은 전혀 다른 끔찍한 결말이 기다린다. 흡혈귀 바이러스가 퍼져 인류가 멸종할 무렵, 홀로 남겨진 주인공은 산전수전을 겪다가 결국 흡혈귀에게 잡힌다. 전 세계에서 마지막 남은 인간, 그것이 「나는 전설이다」의 메타포다. 마지막 인간인 그(네빌)는 결국 건네준 독약을 마시고 인간으로서 죽는 것을 선택하면서 소설은 결말을 맺는다.

 

이처럼 하나밖에 남지 않은 서점과 도매유통, 무한경쟁 속에 경쟁력을 잃고, 결국 몇몇 출판사만이 남아 ‘잘 팔리는’ 책만 나오는 세상. 결국 ‘문화’가 전멸하는 순간이 바로 코앞에 닥쳤는지 모른다. 다소 과장된 감이 있어 보이는가? 가능한 시나리오다. 우리가 손 놓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충분히 이러고도 남을 수 있다. 지금 그 이유를 이야기해 보자.

 

출판유통이 왜 ‘소멸의 위기’인지 작금의 상황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바로 지금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현재 국내 도매 유통업체 1위인 북센은 2020년 5월, 사모펀드인 센트로이드인베스트먼트에 매각되었고, 2위인 인터파크송인서적은 지난 6월 9일 기업회생을 신청해서 법정관리 중이다. 이 두 도매 업체는 국내 도매 도서유통 중 50% 이상의 물류를 책임지고 있다. 이래도 출판이 살아남을 수 있을까?

 

또한 국내 오프라인 서점 2, 3위 업체인 영풍문고와 서울문고도 존폐의 기로에 서 있다. 영풍문고는 영풍그룹에서 기업분리 신청을 했고, 서울문고는 매각 협상을 논의 중이라는 소문이 돌고 있다. 그러는 중에 업계 1위인 교보문고는 공공연하게 도매사업 진출을 시작했다.

 

먼저, 국내 도매유통 1위인 북센은 이미 사모펀드에 매각되었다. 이후 시나리오는 명백하다. 북센을 인수한 사모펀드는 주주들의 이익만을 극대화할 것으로 보인다. 수익률 추구로 인해 창고를 하나 더 지어서 책이 아닌 다른 물품을 유통하겠다는 이야기도 떠돈다. 수익이 되는 사업에 더 관심을 보일 것이고, 책 공급에 대해서는 출판사에 공급률 할인을 요구하거나 서점 거래처에 더 높은 공급률로 책을 공급하거나 영업사원을 줄이는 등 비용을 줄이는 일에 더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3년 후까지 웅진그룹이 다시 사들일 수 있는 권리(콜옵션)를 조건으로 걸었지만, 그것도 수익률이 개선되었다는 것이 전제되어야 가능하다.

 

더 기막힌 일이 벌어지고 있는 인터파크송인서적 이야기를 해 보자. 2020년 6월 9일 인터파크송인서적이라는 도매유통이 기업회생신청을 했다. 2,400여 개가 넘는 출판사는 망연자실할 수밖에 없었다. 거래처를 잃은 동네서점들은 폐업의 위기를 겪고 수많은 작은 출판사는 인터파크송인서적의 기습적인 기업회생신청으로 인해 한 달 반 정도의 매출이 사라졌다. 작은 출판사에게는 생활비나 다름없는 돈이다.

 

인터파크송인서적에 따르면, 2017년 송인서적 부도 이후 인터파크송인서적으로 새롭게 출범했지만 매출 증가에도 불구하고 적자가 지속되어 왔다고 한다. 2018년 영업매출 254억 원에 영업 손실 21억 원, 2019년에는 403억 매출에 손실 13억 원이다. 출판계에서는 이것이 인터파크의 경영 능력 부족이라고 판단하고, 출판사 피해 최소화를 위해 분투 중이다. 대한출판문화협회가 〈긴급대책회의〉를 소집하고, 이후 채권단을 구성해 대한출판문화협회, 출판인회의, 1인출판협동조합 등 출판계의 18개 대표단체 150여 명이 ‘인터파크 규탄 출판인 총궐기대회’를 개최하면서 책임 요구와 함께 인터파크의 무책임경영을 질타하고 사태 해결을 촉구했다. 당연히 인터파크는 최대한 출판계의 희생 없이 이를 책임지고 해결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인터파크송인서적은 이전에도 이미 두 번의 부도사태를 맞아 왔다. 그때마다 출판계는 자기 살을 내어주면서 살려냈다. 2017년 두 번째 부도사태 때에도 장부의 80%를 탕감해 주고, 남은 20%는 언제 권리행사를 할지 모르는 주식으로 받았다. 그 후 3년 정도밖에 되지 않았는데 또다시 인터파크에서 손을 뗀 것이다. 특히, 출판계는 2017년 인수 당시 인터파크가 책임경영을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전 협의도 없이 기습적으로 기업회생을 신청한 것에 분노했다. 지금 출판계에서는 인터파크송인서적을 매각보다는 차라리 파산하는 것이 낫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그만큼의 시장을 다른 도매상에서 조금씩 가져가 남은 도매상이 더 건전해지는 것이 좋은 방법이라는 의견이 나올 정도다. 인터파크송인서적에 대한 출판계의 기대는 거의 없다고 해도 무방하다.

 

아주 조금 과거로 돌아가 보자. 유통에 대한 또 한 가지 중요한 지점이 있다. 국내 도매서점업계의 소멸로 이어질 수 있는 사건이기 때문이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은 북센에 이어 서적 도매 유통 2위의 위치에 있었다. 인터파크송인서적이 없어지면 규모 있는 도매 유통은 북센과 한국출판협동조합, 북플러스 정도의 세 회사밖에 남지 않는다. 이들은 과연 무사할 수 있을까?

 

지난 4월, 교보문고가 도매시장에 진출한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이에 대한출판문화협회가 각 단체 및 기관의 관계자를 초청하여 좌담회를 개최했다. 좌담회에는 다음과 같은 의견이 나왔다. 하나, 현재 지역서점은 도매상으로부터 책을 원활하게 공급받지 못한다. 둘, 공급률 역시 지역서점에게 불리하게 적용되고 있다. 셋, 교보문고의 도매사업 본격화는 도매상의 무한경쟁 상황에서 도매상의 위기와 지역서점, 중소출판사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다 등이다.

 

확실한 사실은 교보문고가 도매 시장에 진출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몇몇 도매 유통사는 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교보문고가 낮은 수익률을 통해 위의 두 가지 주장을 대체할 수 있는 모델을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세 번째 주장은 당연한 결과로 이어질 것이다.

 

실제로, 교보문고는 자신의 도서 매입가에서 5% 정도의 수수료만 붙이고 책을 공급한다는 공문을 각 서점에 뿌린 바 있다. 출혈경쟁으로 시장을 잡겠다는 태세다. 보통 도매는 매입가의 10% 정도의 마진이 없으면 생존이 어려운 것이 현재의 구조다. 지금은 적자를 보더라도 공격적으로 시장을 선점한 후에 일정 시간이 지나, 도매상 몇 군데가 없어지고 교보문고가 15% 이상의 마진을 갖고 폭리로 장사한다면 그것을 막을 제동장치는 완전히 없어질 것이다.

 

교보문고의 독과점이 진행되면 어떻게 될까? 도매 서점이 줄어들고 한 개의 도매상과 소매상만 있는 상상을 해 보자. 당연히 출판사는 책을 공급할 곳을 찾지 못하고 적정공급률에 못 미치는 공급률로 책을 줄 수밖에 없다. 지역서점은 마진 없이 장사하다가 소리 없이 퇴락의 길을 걸을 것이다. 머잖아 작은 출판사와 지역서점은 소멸할 수도 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판산업을 황망하게 한 사건이 있었다. 도서정가제 개정 시한을 3개월 앞두고 출판계와 서점, 소비자단체 등이 도서정가제 개선을 위해 협의한 사항이 있었는데, 문체부는 이를 무시하고 재검토를 한다고 전했다.
곧장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한국작가회의, 대한출판문화협회, 한국출판인회의, 전국서점조합연합회, 동네책방네트워크 등 출판 관련 단체를 포함한 작가, 독서, 도서관 등 문화계 전반의 30여 개 이상의 단체들이 모여 “도서정가제 사수를 위한 출판문화계 공동대책위원회”를 꾸려 도서정가제 사수 투쟁을 하고 있다. 또한 8월 20일에는 1인출판협동조합, 책읽는사회문화재단, 한국작가회의, 웹소설협회, 동네책방네트워크,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 각 분야별 전문가가 참여해 도서정가제 현안 관련 긴급토론회 〈문체부가 뒤흔든 도서정가제, 어디로 가는가?〉를 대한출판문화협회에서 개최했고, 열띤 토론을 이어갔다.

 

도서정가제는 중요한 부분이다. 다시 도서정가제 사안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할 기회가 있으면 좋겠다.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는 서울신문 칼럼에서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도서정가제가 사라지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반면교사가 될 사례가 최근에 나왔다.

 

김택규 교수의 ‘온라인 서점의 무차별 할인이 가져온 폐해’에 따르면 2010년 중국에서도 책의 할인 판매 폐해에 따른 논의가 있었다. 할인이 만연하면 지역서점 경영에 충격을 주고, 도서 유통의 전체 발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것이라면서 ‘신간 1년 내 할인 판매 금지’와 ‘할인율 15% 이내 제한’ 등을 제안했다. 현행 한국의 도서정가제와 비슷한 내용이다. 그러나 이 정책은 채택되지 않았다. 지난 10년 동안 어떤 변화가 나타났을까.

 

온라인 서점의 약진, 지역서점의 몰락, 출판사 경영의 악화다. 할인 탓이다. 당당, 징둥, 톈마오 등 중국 3대 쇼핑 플랫폼은 도서를 고객 확보를 위한 미끼 상품으로 삼았다. 할인율 50% 내외 이벤트가 수시로 벌어졌다. 2019년 중국 온라인 서점의 도서 평균 할인율은 41%였다. 2018년에 비해 6%나 상승했다. 지역서점이 버틸 수 없는 건 당연하다.

 

출판사도 견디기 어려워졌다. 수익성이 급격히 나빠졌다. 온라인 서점은 출판사에 40% 내외의 공급률을 요구했다. 출판사는 할인에 참여할수록 경영이 어려워졌다. 인세, 인건비, 임대료 등 기초 비용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 탓에 2019년 출판 종수가 전년 대비 6.7% 줄어들고 감소폭도 확대됐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2019년 소설 베스트셀러 목록이다. 톱10 중 2019년 신간은 전무했다. 가장 최근에 나온 책이 2010년 출판한 류츠신의 ‘삼체’였다.

 

할인이 일상화하면 신간은 거의 팔리지 않는다. 한계비용이 낮아져 할인 공급이 가능한 구간만 주로 판매된다. 책이 나와도 팔리지 않으니, 좋은 책을 쓰는 데 열정과 시간을 바칠 만한 저자도 줄어든다. 양질의 책을 개발할 출판사의 존재도 불가능하다. 오염된 환경에 곰팡이 번지듯 할인 공세에 맞춤한 저가·저질 콘텐츠만 주로 번성할 뿐이다. 양서를 출판하더라도 잘 판매되지 않으니 수익을 맞추려고 가격이 빠르게 치솟는다. 부조리한 일이다. 중국에선 뒤늦게 이 폐해를 깨닫고, 도서정가제 도입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이 법은 문화재인 도서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다.” 독일 ‘출판물정가법’ 제1조다. 전 세계 수많은 도서정가제의 취지는 같다. 책을 상품이 아니라 문화재로 보는 것은 ‘사실’이 아니라 ‘철학’의 문제다. 철학이 있는 정책만이 공동체 전체를 위해 좋은 방향을 제시한다. 책 같은 문화상품에서는 소비자 후생이 가격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반드시 그 후생에 질적 차원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구독 등과 관련해 현행 제도에 손볼 부분은 분명히 있다. 그러나 정부가 ‘철학’을 잃어서는 곤란하다.


* 출처 : 도서정가제는 철학의 문제다(서울신문, 2020.08.12.)

 

또, 한기호 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다음과 같이 정리한다.

 

문화체육관광부가 도서정가제를 재논의하라는 청와대의 일방적 지시를 출판과 서점 단체에 통보함에 따라 업계의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어제 몇 출판평론가들과 이에 대한 논의를 했다. 이구동성으로 내린 결론은 다음과 같다. 먼저 논의의 결론만 간략하게 정리한다.

 

지금은 작은 출판사에서도 좋은 책을 펴낼 수 있다. 그러나 그럴 수 있는 시대는 곧 종말을 고할 것이다. 독자는 당장은 책을 싸게 구입할 수 있다. 그러나 책의 다양성이 사라져 읽고 싶은 신간을 아예 찾기 어려워질 것이다.

 

-출판사는 10여 개 정도만 살아남을 것이다.
-교보문고를 제외한 대형서점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온라인서점은 3개가 남아 각축을 벌일 것이다.
-도매상, 중·소형서점은 모두 사라질 것이다.


* 출처 :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블로그

 

앞서 공상과학소설 같은 문장을 써 놓았지만, 출판평론가조차도 이러한 우려를 현실로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래도 출판유통이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을까? 과연 독자는 책값이 싸지기만 바라는 것인가? 불이 붙었으면 진화(鎭火)라도 해야 한다. 그 다음에 살 길을 모색해야 한다.

 

우리가 손 놓고 있을 때, 책과 유통의 독과점은 점점 더 심해질 것이고, 독자가 외면할 때 출판유통은 소멸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다. 여기서 ‘우리’는 비단 출판계 종사자라고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책을 읽는 독자, 정책 당사자, 독서단체, 작가 등 모든 관련된 사람이다.

 

홍세화 선생은, 『민주주의의 무기, 똘레랑스』라는 책에서 “좋은 사상은 그 자체로 힘을 갖지 않는다. 운동성이 더해져야 그것이 실현될 수 있다.”고 했다.

 

책은 한 나라의 문화를 상징하는 거울과도 같은 상품이다. 문화 선진국은 말로만 떠들고, 생각만 한다고 그냥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책 읽는 문화를 만들고, 좀 더 나은 환경에서 책을 생산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연구해야 한다. 소멸의 길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의 힘이라도 절실한 때다.

송성호(대한출판문화협회 유통담당 상무이사)

이상북스 대표. 대한출판문화협회 유통담당 상무이사. 마포공동육아사회적협동조합 참나무어린이집 이사장, 1인출판협동조합 이사장을 지냈으며 여러 곳에서 출판 기획, 창업 등을 강의했다. 지속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책을 만들며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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