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52  2024.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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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의 현황과 쟁점

 

 

 

이승민(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박사(행정법))

 

2024. 03-04.


 

다시 도마 위에 오른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최근 이른바 ‘문화산업공정유통법’ 제정이 화두가 되고 있다. 유정주 의원과 김승수 의원이 2020년 12월과 2022년 11월에 각 법안을 발의하였고, 작년 3월에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이하 문체위)에서 대안으로 「문화산업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통과되었다. 이 법안은 같은 해 6월에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에 회부되어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도 제출되었으나, 7월에 법사위가 문체위 요청에 따라 위 법안을 반려하여 현재 문체위에서 다시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학계와 산업계에서는 이 법안에 대한 우려를 여러 차례 표했는데1), 현재 법안이 소관 상임위원회에서 재논의 중이기 때문에 법안의 내용이 추후 달라질 가능성이 있기는 하지만, 일단 작년 3월에 통과된 문체위 대안을 중심으로 법안의 쟁점을 몇 가지 언급하고자 한다.

 

법 이미지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의 제정 근거

 

이 법안은 이른바 ‘검정고무신 사태’가 배경이 된 것이다. 즉, ‘검정고무신’의 그림 작가가 불리한 저작권 계약을 맺었다가 법적 분쟁에 휘말려 사회적 논란이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문화산업에서의 공정한 유통환경 조성 또는 상생협력을 법제화하자는 움직임이 발생한 것이다. 이에 문화상품과 관련하여 현장에서 발생하는 여러 불공정행위들을 유형화하여 이에 대한 강제력 있는 금지 및 제재 규정을 도입하자는 것이 이 법안의 취지이다.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의 주요 내용 및 쟁점

 

이 법안은 법의 적용범위를 정하기 위한 몇 가지 핵심 개념을 정의하고, 10가지 유형의 금지 행위에 대해 규율하고 있으며, 그 위반에 대해 각종 제재를 부과하는 체계로 구성되어 있다.

 

먼저, 위 법안 제2조는 문화산업법 제2조 제1호 및 제2호의 “문화산업”과 “문화상품” 개념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이에 의하면 문화산업은 영화, 비디오, 음악, 게임, 출판물, 방송, 만화 등 제반 콘텐츠를 비롯하여 문화재, 대중문화예술 등에 관한 모든 산업을 포괄하고, 문화상품은 예술성·창의성·오락성·여가성·대중성과 같은 문화적 요소가 내재되어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유·무형의 재화와 서비스 및 이들의 복합체를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 법안에 따른 규제 범위는 무척 넓어진다. 이는 진흥법제인 문화산업법의 정의를 규제법제에도 그대로 인용함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이다.

 

그리고 법안 제5조 내지 제7조는 상생협력에 관한 규정을 두고 있고, 제12조는 표준계약서에 관해 규정하고 있으며, 제13조 제1항 및 제2항은 10가지 유형의 금지행위를 규정하고 있다. 이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주하여 (주)케이디앤리서치가 제출한 〈2021년 콘텐츠산업 10대 불공정행위 실태조사(2021. 9. 15.)〉 연구보고서에서 정리한 10가지 불공정해위 유형을 그대로 반영한 것으로(문체위 수석전문위원 검토보고(2023.02) 참조) 아래 표와 같다. 이러한 금지행위 규정을 위반할 경우 법안 제15조 및 제16조에 따른 시정명령 및 이행강제금, 제20조 내지 제22조에 따른 형사처벌 및 과태료가 부과될 수 있다. 그러므로 금지행위의 내용이 무엇인지가 중요한 의미를 갖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는 그 실증성과 중복 규제 측면에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10대 불공정행위 유형

구분 연구 내용
(1) 제작활동 방해
정당한 이유 없이 제작방향의 변경, 제작인력의 지정·교체 등 문화상품 제작업자의 제작활동을 방해하는 행위
(사례)
투자배급사, 방송사 등이 공동제작이 아닌 경우에도 제작사의 권한이나 감독권한을 침해하여 개입하는 경우
(2) 문화상품 수령/유통 거부
정당한 이유 없이 문화상품의 수령을 거부 또는 반품하거나 수령한 문화상품의 판매를 거부하는 경우
(사례)
연재하던 웹툰 작가에게 매출이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강제 연재 종료를 요구하는 경우, 게임제작사로부터 게임을 수령한 퍼블리셔가 별다른 이유 없이 게임 출시를 보류하고 유통하지 않는 경우
(3) 납품 후 재작업 요구
및 미보상
문화상품을 납품한 후에 이 문화상품의 수정·보완 또는 재작업을 요구하면서 이에 소요되는 비용을 보상하지 아니하는 행위
(사례)
유통업자가 주문하면서 제작한 일러스트, 스토리 등에 대하여 무리하게 수정을 요구하거나, 수십 회가 넘는 수정작업에 대한 대금을 지급하지 않는 행위
(4) 기술정보 강제 양도
문화상품 관련 기술자료 및 정보의 제공을 강요하거나 유용하는 행위
(사례)
온라인 게임 공급업체가 게임 제공을 위한 소스코드 및 운영매뉴얼 일체를 무상 양도하도록 콘텐츠 제공 계약서에 명시
(5) 판촉·유통 비용 전가
판매촉진에 소요되는 비용 또는 합의하지 아니한 가격할인으로 인한 비용 등을 문화상품제작업자에게 부담시키는 행위
(사례)
영화관, 공연장, IPTV 등의 유통업체가 무료초대권, 반값 할인 행사와 같은 판촉활동에 소요되는 비용을 제작업자에게 과도하게 부담시키는 경우 및 계속적 판매관계로 감소하는 유통비용을 지속 부담시키는 경우 등
(6) 자기계열사 상품과의
차별 취급
자기 또는 자기의 계약회사가 제작한 문화상품을 다른 문화상품 제작업자가 제작·공급하는 문화상품과 차별하여 취급하는 행위
(사례)
제작·배급·상영으로 이어지는 수직계열화로 인한 스크린 독점문제, 방송사가 자사 투자작품에 한해 프라임 타임에 재방송하여 타 제작사의 방송진입을 제한하는 경우 등
(7) 특정 결제방식 등 강요
문화상품 유통업자가 특정한 문화상품 판매대금 결제 방법, 가격, 조건 등을 부당하게 지정·제한하거나 강요하는 행위
(사례)
구글, 애플의 인앱 결제방식 강제 등
(8) 현저히 낮은 대가 책정
문화상품 제작에 통상적으로 지급되는 대가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대가를 정하거나 공급계약에 명시된 대가를 정당한 이유 없이 감액하는 행위
(사례)
애니메이션의 낮은 광고수익을 이유로 방영권료를 편당 제작비 대비 10% 미만으로 책정하는 관행, 계약서를 작성하지 않고 견적서만 받은 뒤, 일이 끝나자 견적서보다 낮은 금액의 계약서를 작성하는 단가 후려치기 행위
(9) 문화상품 사재기
및 구매 강요
판매순위에 관한 정보를 왜곡시킬 목적으로 스스로 제작 또는 유통하는 문화상품을 직접 구매하거나 제3자로 하여금 구매하게 하는 행위
(사례)
대량구매 방식으로 음악차트 순위, 게임인기 순위를 조작하는 관행
(10)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
및 무상 양수 등
지식재산권의 양도를 강제하거나 무상으로 양수하는 행위 또는 통상적인 거래 관행에 비추어 현저히 낮은 수준으로 지식재산권의 사용으로 인한 수익을 분배하는 행위
(사례)
엔터테인먼트에서 소속 작곡가의 저작권과 저작인격권을 회사가 영구히 행사한다는 계약 강요, 주요 유통사가 2차 저작권(부가판권) 관련 수익 및 권리에 있어 우월적, 독점적 지위를 요구하는 경우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에 대한 우려

 

1. 규제 실증주의의 측면

 

모든 규제는 그 도입에 앞서 규제의 필요성이 인정되어야 한다. 규제의 필요성은 시장의 실패가 있는 경우에 인정될 수 있으며, 실증적이고 면밀한 상태조사를 통해 확인되어야 한다. 시장의 실패가 확인되더라도 규제의 수단과 방법이 적절해야 한다.

 

이번 법안의 경우, 위에서 언급한 (주)케이디앤리서치의 연구보고서가 근거로 언급되어 있고, 이 외에 다른 실증적 근거는 찾기 어렵다. 위 연구보고서에서는 불공정행위를 10가지 유형으로 정리한 다음, 프리랜서들로부터 이러한 불공정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는지에 대해 조사하였는데, 87%가 불공정행위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그리고 조사 결과 답변된 유형은 법안 제13조의 금지행위 규정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그러나 이 조사는 이번과 같은 포괄적인 규제 법안의 근거가 되기에는 미흡한 점이 있다. 유형별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7) “특정 결제방식 강요”는 구글, 애플과 같이 앱 마켓 생태계를 지배하는 글로벌 빅테크 기업들의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의 결과일 뿐, 국내 문화상품 유통업자의 행위와는 관련이 없다. 그리고 (1) “제작활동 방해”, (6) “자기계열사 상품과의 차별 취급”은 주로 방송산업에서 발생하는 행위여서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의 소관 사무이며, 스크린 독점의 문제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행위의 문제로서 공정거래법의 규율 대상이다. (4) “기술정보 강제 양도”, (9) “문화상품 사재기 및 구매 강요”, (10) “지식재산권 양도 강제, 무상 양수 등” 또한 전형적인 불공정거래행위로서 공정거래법의 적용 대상이다.

 

한편, (2) “문화상품 수령/유통 거부”, (3) “납품 후 재작업 요구 및 미보상”, (8) “현저히 낮은 대가 측정”은 규제 대상으로 삼는 것에 매우 신중할 필요가 있다. 그런데 상기한 연구보고서에서는 프리랜서들을 상대로 설문지에 불공정행위 유형을 열거해 두고 해당 경험이 있는지 묻는 식으로 조사를 했다. 그러다 보니 자신이 받은 대가가 불충분하다고 생각한 프리랜서들이 각 행위 유형들을 보고 자신도 그러한 불공정한 일을 겪었다고 답변한 것인데, 이러한 상황에서 87%라는 답변은 오히려 낮은 것일지도 모른다. 프리랜서들에게 진정으로 불공정한 상황이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일정 규모 이상의 표본을 확보하여 이들의 창작물 또는 저작물이 제대로 제작·완성된 것인지를 확인하여야 한다. 그렇지 않고서 프리랜서의 87%가 불공정행위를 ‘경험’했다는 점에 큰 의미를 두고 이를 규제의 근거로 삼아서는 안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실제적인 조사는 이루어지지 않았고, 관련 기업들의 입장도 제대로 청취되지 않았다.

 

문화상품의 경우에는 주관적인 측면이 많기 때문에 불량품 여부가 객관화되기 어려워 분쟁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이를 정부가 일방적으로 법적 규제를 통해 금지하거나 개입하는 것은 시장의 왜곡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시장경제와 사적 자치에 맡기는 것이 바람직하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할 수 있는 역할은 계약서 작성과 증빙자료 수집·정리를 교육·지원하는 것이며, 서면계약서 교부를 법으로 강제하는 방안을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5) “판촉·유통비용 전가”의 경우도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판촉비용 전가를 함부로 규율하여 발생한 폐해는 이미 대규모유통업법의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다. 대규모유통업법 제11조는 판촉행사의 요건과 절차를 매우 엄격하게 정하면서 대규모 유통업자가 50% 이상의 비용을 분담하도록 강제하였고, 다만 납품업자가 자발적으로 요청하여 다른 납품업자와 차별화되는 판촉행사를 진행하려는 경우, 즉 ‘자발성’과 ‘차별성’이 있는 경우에만 예외를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자발성과 차별성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여 심지어 대규모 유통업자가 판촉비용의 대부분을 부담한 사건에서도 관련 절차 위반을 인정하고 제재를 부과하였고, 이는 대법원에서 그대로 인정되었다(대법원 2020. 5. 14. 선고 2018두52044 판결).

 

이러한 공정위와 대법원의 입장은 판촉행사의 큰 위축을 가져왔는데, 특히 다수의 유통기업들이 ‘코리아 세일 페스타’와 같은 국가 차원의 행사에 불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었고 여기에 코로나 팬데믹까지 겹치자, 공정위는 「대규모유통업에서의 거래공정화에 관한 법률 제11조 적용 가이드라인」(2020. 6.)을 제정하여 자발성과 차별성 요건을 넓게 해석하기에 이르렀다. 이는 애초부터 함부로 규제하지 말았어야 할 대상에 대해 현실에 맞지 않는 규제를 했기 때문인데, 이번 법안이 시행되면 공정위의 승소에도 불구하고 공정위 스스로 입장을 완화할 수밖에 없었던 촌극이 문화산업에서 다시 발생할 수 있다.

 

2. 중복 규제의 측면

 

‘검정고무신’ 사건은 잘못된 저작권 계약 관행에 의한 것인데, 이러한 경우는 예술인권리보장법에서 이미 불공정행위로 다루고 있으며, 저작권법도 개정 논의가 진행 중이다. 게다가 이번 법안에는 정작 서면계약 체결을 강제하는 내용은 없고 공정위와 방통위가 관장하는 다른 법에 이미 존재하는 온갖 금지행위 규정들만 모아 두고 있다. 특히, 공정거래법과의 중복은 심각한 수준이다. 문체부도 그 소관 법률인 문화산업법, 콘텐츠산업법, 음악산업법, 출판법, 만화진흥법, 대중문화산업법, 영화비디오법 등에 각종 불공정행위 금지조항을 이미 다 마련해 두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중, 삼중으로 규제 법안을 만들 이유가 없다.

 

또한, 이번 법안은 문체부의 전문규제를 창설하고 있다. 그런데 경제규제 분야에서는 일반법인 공정거래법이 제정되어 있고 공정위가 일반경쟁규제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문규제를 창설하기 위해서는 해당 산업분야에 대규모의 투자를 수반하는 공익설비가 투입되거나 자연독점이 발생하는 등의 특수성이 있어야 하고, 전문규제기관의 전문성과 우월성이 담보되어야 한다. 나아가 전문규제를 창설하는 것은 공정거래법과 같은 일반경쟁법이 갖추지 못한 사전규제를 시장지배적 사업자에게 부과하기 위한 목적인 경우가 많은데, 이번 법안처럼 불공정거래에 대한 금지행위와 같은 사후규제를 위해 전문규제를 창설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이러한 금지행위 방식의 사후규제 관할권 창설은 필시 일반경쟁규제기관과 사이에서 중복규제를 낳을 수밖에 없다.

 

중복제재 방지 조항을 마련하더라도 한계가 있는데, 예컨대 전기통신사업법 제54조의 중복제재 금지조항이 있지만 방통위와 공정위는 하나의 사안에 대해 그 규제 목적과 대상 행위가 다르다면서 별도의 제재를 부과한 사례가 있었고 법원 또한 이러한 중복제재를 그대로 인정하였다(서울고등법원 2014. 10. 29. 선고 2012누22999 판결). 게다가 중복제재 여부는 조사가 이루어진 이후에 판단되는 경우가 많아서 중복제재 방지 조항만으로는 중복조사까지 예방하기는 어렵고, 행정조사기본법의 공동조사 제도 또한 실제에서는 거의 활용되고 있지 않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검정고무신’ 사건을 현재와 같은 전례 없이 강력하고 포괄적인 규제 법안의 근거로 삼는 것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또한, 위 법안에 대해서는 법사위 전문위원과 방통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중복규제 우려를 지적하였는데, 그에 앞서 과연 이와 같은 규제의 필요성이 있는 것인지, 그 수단이나 방법이 적절한 것인지 의문이 든다.

 

*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1)
최난설헌,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의 의의와 법리적 검토”, 전파통신과 법포럼 세미나 발표자료, 2023. 9. 11.
권남훈, “‘검정고무신법’은 갑질 해법일까”, 〈매일경제〉, 2023. 10. 11., https://www.mk.co.kr/news/contributors/10847663
홍대식, “문화산업공정유통법안은 ‘검정고무신사태’ 방지법이 아니다”, 〈법률신문〉, 2023. 10. 18., https://www.lawtimes.co.kr/opinion/192211?serial=192211
이규호, “문화산업공정유통 관련 법안 검토”, 한국미디어정책학회·정보통신정책학회 세미나 발표자료, 2023. 11. 8., https://www.youtube.com/watch?v=1AW4yG-zVgw

 

이승민

이승민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박사(행정법)

서울대학교 법학과(학사) 및 동 대학원(석사, 박사), Harvard Law School(LL.M)을 졸업하였으며, 사법연수원 36기로 전 법무법인(유) 율촌 변호사를 거쳐 현재는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부교수로 역임 중이다.
seungminlee@skku.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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