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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5  202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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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정가제를 말한다: 서점계]
도서정가제 재개정을 바라보는 동네책방 운영자의 바람

 

 

 

한상수(행복한책방 대표)

 

2023. 07.


 

동네책방을 시작한 지 7년이 되었다. 2014년 10월에 개정된 현행 도서정가제는 나에게 동네책방을 시작할 엄두를 내게 했다. 10% 이내의 가격 할인을 포함해 정가의 15%까지 소비자의 경제상 이익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 현행 도서정가제는, 발행일로부터 18개월 미만 도서는 19%까지 할인이 가능하고 18개월이 경과한 도서와 실용서·참고서, 도서관 등에서 구입하는 도서는 무제한 할인이 가능했던 이전의 도서정가제보다는 큰 진전을 이룬 제도였다.

 

독립서점 전문 조사 회사인 ㈜동네서점(www.bookshopmap.com)의 조사에 따르면 2015~2022년 8년 동안 새로 생긴 독립서점은 1,031개, 이 중에서 휴·폐점한 곳은 216개, 현재 운영 중인 곳은 815개에 달한다. 비록 새로 생긴 독립서점 중 20%가 넘는 서점이 휴·폐점을 해 안타깝지만 2015년 이후에 새로 문을 연 독립서점이 1,000개가 넘었다는 것은 분명 현행 도서정가제가 가져온 훈풍이라고 해석해도 무리가 없을 듯싶다. 서점 운영으로 먹고 살기가 결코 쉽지 않은 이 나라에서 800개가 넘는 독립서점이 씩씩하게 운영되고 있다는 게 실로 놀라운 일이란 생각이 든다.

 

전국 독립서점 증감 추세(2015~2022년)

전국 독립서점 증감 추세(2015~2022년) 그래프

출처: ㈜동네서점

 

‘일물일가 원칙’을 보장하는 ‘완전 도서정가제’

 

동네책방 운영자들에게 서점을 운영하면서 가장 바라는 점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아마도 대부분은 가장 먼저 ‘완전 도서정가제’를 꼽을 것이다. 온·오프라인을 망라해서 한 권의 책을 전국의 어떤 서점에서든 같은 가격으로 사도록 하는 ‘일물일가 원칙’이 보장되는 완전 도서정가제는 서점 운영자들이 간절히 바라는 소원이다. 책이라는 똑같은 제품을 할인받아 살 수 있는 상황에서 동네책방을 응원하는 소수 이용자의 선의에 기대서는 지속가능한 동네책방 운영이 요원하기 때문이다. 할인과 마일리지 적립에 더해 굿즈와 무료 배송을 앞세우는 인터넷서점을 마다하고 기꺼이 착한 구매를 해주는 서점 이용자들에게 미안한 마음도 크다.

 

도서정가제를 바라보는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특히 더 많은 할인을 원하는 소비자들의 요구도 역지사지의 마음으로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완전 도서정가제는 정부가 획기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않는다면 현실적으로 무망한 일이란 생각이 든다. 그런데 역으로 완전 도서정가제는커녕 만약에 현재보다 개악된 형태로 도서정가제가 개정된다면 힘겹게 운영되는 서점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것은 협박이 아니라 엄연한 현실이다. 도서정가제 개악은 실질적으로 ‘가격 할인 제한 제도’라 할 수 있는 불완전한 도서정가제 환경에서 악전고투하며 겨우겨우 버티는 작은 서점들을 벼랑으로 밀어 넣는 일이다.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 글에서는 작은 서점의 운영자 입장에서 현실적으로 어려운 완전 도서정가제를 선언적으로 주장하기보다는 2023년 도서정가제 재개정에서 반영되어 서점 운영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부분들을 제안하려 한다.

 

첫째, 도서관의 지역서점 이용 확대

 

2022년 12월 8일에 시행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개정안에 추가된 내용 중 하나가 제7조의2(지역서점 활성화 지원 등) 조항이다. 법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적시되어 있다. 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다음 각 호의 요건을 갖춘 서점(이하 “지역서점”이라 한다)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정책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지원을 하여야 한다. ④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서점 활성화에 필요한 사항을 조례로 정할 수 있다. ⑤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교육감과 협력하여 관할 지역의 도서관이 도서를 구매하는 경우 지역서점을 이용하도록 독려하여야 한다.

 

이렇게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 내용이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에 포함된 것은 큰 의미가 있다. 이제 이러한 취지가 실효성을 갖도록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의 적극적인 행정이 뒷받침되길 바란다.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가 없는 지방자치단체에는 조례를 제정하도록 권고하고, 지역서점 인증제를 실시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에도 인증제 실시를 적극 권고하길 기대한다.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입 방식도 지역마다 천차만별이다. 도서정가제가 개정된 지 벌써 9년이 되었는데 아직도 입찰제로 도서를 구입하는 공공도서관이 적지 않다. 최대 10%까지만 할인할 수 있는 도서정가제가 실시되면서 도서 구입가가 똑같을 수밖에 없는데 행정 편의를 위해 입찰제로 도서를 구입하는 공공도서관의 행정 처리 방식은 지극히 불합리한 일이다. 실제로 이렇게 입찰제로 도서를 구입하는 경우 낙찰되는 업체는 도서 유통과 전혀 상관이 없는 업종인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입이 지역의 책문화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지역서점에서 이루어지고, 지역서점은 소중한 공적 재원으로 지원받는 일의 엄중함을 가슴에 새기며 지역의 책문화가 활성화될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면 좋겠다.

 

지역서점 인증을 받은 서점에서 공공도서관 도서를 구입해야 하는 지방자치단체를 대상으로 어떤 서점은 매년 수천만 원씩 도서를 납품할 기회를 갖지만, 1년에 단 한 권도 납품하지 못하는 서점도 적지 않다. 공공도서관 관할부서인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공도서관의 도서 구입 방식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출판문화산업 진흥법의 ‘지역서점 활성화 지원’의 취지에 맞게 운영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역할을 담당하길 바란다.

 

둘째, 학교도서관에 대한 경제상의 이익 제공 금지

 

2022년 12월 8일에 시행된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개정안 제22조 6항에는 “제5항에도 불구하고 국가, 지방자치단체,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른 공공기관 및 「도서관법」 제4조제2항제1호에 따른 공공도서관에 간행물을 판매하는 자는 정가의 10% 이내의 가격 할인만 제공할 수 있다.”고 규정해 공공기관과 공공도서관에 추가적인 경제상의 이익(마일리지)을 제공하지 않도록 개정되었다.

 

초안에는 학교도서관과 대학도서관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개정안이 상정되었는데 교육부의 강력한 반대로 난항을 겪다가 결국 학교도서관과 대학도서관은 경제상의 이익을 계속 제공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사립대학이 많은 대학도서관은 논외로 치더라도 똑같은 공적 재원으로 운영되는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이 다른 처우를 받는 게 합리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올해 개정되는 도서정가제에서는 학교도서관도 공공도서관처럼 10% 이내의 가격 할인만 적용받고 추가적인 경제상의 이익은 제공받지 않는 내용이 꼭 들어가길 바란다.

 

실제로 이렇게 제공되는 마일리지는 학교에서 회계 항목으로 잡기 애매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일부 학교는 마일리지를 받지 않는 대신 도서 납품에 필수적인 마크(MARC, Machine Readable Cataloging)와 장비 작업비를 무상으로 해달라고 요구하는 경우도 있다. 추가적인 경제상의 이익은 개인 소비자를 위한 혜택이고 공공기관에는 맞지 않으니 학교도서관에 대한 마일리지 제공은 없애는 게 합리적이다. 현재 지역서점에서 학교도서관에 도서를 납품할 경우 얻는 수익률이 15% 내외이므로 마일리지 5%가 결코 적지 않다.

 

그리고 출판문화산업 진흥법 제7조의2 ⑤항에 명시된 것처럼 학교도서관의 도서 구입이 꼭 지역서점에서 이뤄질 수 있도록 교육청의 적극적인 독려가 이뤄지길 기대한다. 예전과 비교하면 지금 학교도서관에서 지역서점을 이용하는 빈도는 많이 늘었다. 바람직한 일이지만 아직도 지역서점이 아닌 유통업체나 인터넷서점에서 구입하는 경우도 적지 않으므로 관할 관청의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 전국 각지에 있는 서점들이 지역에 있는 학교도서관에 안정적으로 도서 납품을 할 수 있다면 지속가능한 서점 운영에 큰 힘이 될 수 있다.

 

셋째, ‘경제상의 이익’ 범위 확대 – 택배비와 신용카드사 제공 혜택 포함

 

독자가 도서 구입으로 인해 생기는 이익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도서정가제에서 허용한 ‘경제상의 이익’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대형 인터넷서점의 서비스는 날로 진화해 저녁에 주문한 책을 그 다음날 새벽에 받아보는 서비스까지 등장했다. 일정 금액 이상 구매 시 택배비도 무료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무척 편리하다. 최근에 여러 인터넷서점에서 무료 택배 서비스의 도서 구입비 기준을 1만 원에서 1만 5천 원으로 올렸는데, 3천 원 가까운 택배비를 감안한다면 이는 책 정가의 20%에 해당하는 비용이다.

 

이러한 서비스가 가능한 것은 인터넷서점의 무료 배송 비용을 도서정가제에서 허용한 ‘경제상의 이익’ 범위에 포함시키지 않기 때문이다. 독자가 무료로 책을 받아보는 것은 도서 구입에 따른 이익이 분명하므로 택배비를 ‘경제상의 이익’ 범위에 포함시키는 것이 상식적이다. 독자가 무료로 받은 택배비는 해당 독자가 쌓아놓은 마일리지에서 차감시키도록 해야 한다. 더불어 독자가 도서를 구매할 때 도서 판매자가 아닌 신용카드사 등 제3자가 추가로 제공하는 경제적 혜택도 ‘경제상의 이익’ 범위에 포함시켜야 한다. 이것도 도서 구입에 따른 이익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법률상의 허점을 이용해 다양한 방법으로 도서정가제를 피해가는 편법들이 성행하는 상황이다. 원칙을 분명히 정하고 그 원칙에 위반되는 행위에 대해서는 단호한 조치를 취해야 한다.

 

넷째, 손상된 도서(리퍼 도서)의 제한적인 할인 판매에 대해

 

현행 도서정가제 아래에서는 리퍼 도서를 처리할 방법이 전혀 없다. 따라서 대부분 폐기할 수밖에 없어 안타까운 심정을 호소하는 출판사 관계자들이 많다. 서점에서 위탁판매제를 시행하는 한 생길 수밖에 없는 리퍼 도서를 잘라서 폐기하는 건 경제적으로나 환경적인 측면에서 볼 때 큰 낭비이다. 실제로 이 책들은 독자가 보는 데 아무런 지장이 없는 멀쩡한 책이다. 출판사에서도 리퍼 도서를 줄이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인다고 들었다. 그래도 뭔가 숨통을 트이게 해줄 필요가 있다.

 

지역서점에서 리퍼 도서를 할인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하고 싶다. 출판사에서 리퍼 도서에 대해 스티커, 도장 등으로 별도 구분을 하여 판매를 희망하는 서점에 공급하면 된다. 이렇게 하면 서점의 수익에도 도움이 되고 저렴한 책 구입을 원하는 독자들에게도 호응을 얻을 수 있다. 독자들이 지역서점을 찾을 이유 하나를 더해주는 효과도 있다.

 

서점인들의 반대 의견이 높은 사안이라 다소 조심스럽지만 공인된 도서전이나 책 축제 행사장 등에서 출판사가 자사의 리퍼 도서를 제한적으로 할인 판매하는 방안에 대해서는 열린 자세로 허용하면 좋겠다. 리퍼 도서도 엄연한 출판사의 재산인데 특별한 행사장에서 자사의 책을 독자들에게 할인 판매하는 것도 못하게 하는 건 과도한 규제란 생각이 든다. 이렇게 하면 책 축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되고 책 축제에 참여하는 출판사들에도 호응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매혹적인 존재, 동네책방

 

행복한책방 파주점 외관 및 큐레이션 책꽂이 사진

행복한책방 파주점 외관 및 큐레이션 책꽂이 사진

 

 

작은 동네책방의 운영자로서 도서정가제 개정 방향을 바라보는 일은 절실할 수밖에 없다. 도서정가제에 영향을 받는 여러 이해당사자 중 하나로서 서점만이 가장 중요하다고 얘기하려는 건 아니다. 이해당사자들 모두 각자의 입장이 있을 터이고 나의 입장이 중요한 만큼 다른 상황에 있는 이들의 처지도 서로 돌아봐야 할 것이다. 그렇지만 서점은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다른 이해당사자들과 처지가 다르다.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이들은 책을 좋아하고 책을 통해 만나는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긴다. 비록 큰돈을 벌지는 못해도 오랫동안 책방을 운영할 수 있기를 소망하는 건 책방 일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비록 공간은 작아도 책방이 지닌 가치나 의미는 크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도서정가제는 전국의 작은 책방들이 그나마 유지될 수 있도록 돕는 최후의 보루이고 최소한의 환경이다. 전국 각지에서 각자의 개성을 뽐내면서 책을 사랑하는 독자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으며 우리의 독서생태계를 풍성하게 만드는 작은 책방들이 계속 존재할 수 있기를 바란다. 올해의 도서정가제 개정안이 작은 책방 운영자들에게 절망이 아닌 희망의 빛을 보여주길 간절히 소망한다.

 

서평가 조 퀴넌(Joe Queenan)의 독서 편력기인 『아직도 책을 읽는 멸종 직전의 지구인을 위한 단 한 권의 책』(위즈덤하우스, 2018)에 나온 문 닫은 동네책방에 대한 헌사로 글을 마무리하려 한다.

 

“서점이 문을 닫은 바로 그때부터 우리 마을의 삶의 질은 서서히,
그러나 돌이킬 수 없이 내리막길에 접어들었다고,
마을은 드물고 귀하며 아름다운 그 무엇을,
결코 대체될 수 없는 매혹적인 것을 잃었다.
마을의 심장은 여전히 뛰고 있었지만 그 맥박은 이제 예전 같지 않다.”

 

* 웹진에 실린 글의 내용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의견과 다를 수 있습니다.

 

한상수

한상수 행복한책방 대표

행복한책방 대표이자 동네책방을 다루는 월간지 〈동네책방동네도서관〉을 발행하는 사회적 기업 행복한아침독서의 대표이다. 저서로 『나는 책나무를 심는다』(한권의책, 2017)가 있다.
childli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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