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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52  2024.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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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소전서림(素磚書林), 황보유미 관장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에는 그것이 있다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4. 03-04.


 

2020년, 청담동에 유료 멤버십 도서관이 생겼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콧대 높은 실험이자 파격적인 시도라며 모두 신기해했다. 부산 F1963 도서관, 최인아책방 등 한국에서 책 공간을 구독하는 모델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전형적인 도서관과는 다른 모습에 사람들은 호기심을 느끼면서도, 한편으로는 각자가 지닌 독서에 대한 통념으로 조금은 불편한 시선을 보내기도 했다. 그러나 4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의 우려가 무색할 정도로 소전서림(素磚書林)은 여전히 건재했고, 수많은 문인이 함께하고 싶은 공간으로 거듭났다. 그동안 어떤 마음과 방식으로 책의 숲을 굳건히 지켜온 걸까. 소전서림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소전서림(素磚書林)

소전서림(素磚書林)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이라는 이름처럼 참으로 아름다운 도서관입니다. 이 공간은 원래 갤러리였는데 도서관으로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그림 대신 책으로 공간을 채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게다가 특별히 ‘문학도서관’으로 말이죠.

 

소전서림은 소전문화재단으로부터 후원받고 있는데요. 김원일 재단 이사장님은 원래 기업인이셨는데, 대표직을 사임하고 갤러리를 지어야겠다고 생각하고 리움미술관, 교보타워 등을 설계한 세계적 건축가이자 마리오 보타(Mario Botta) 건축사무소에서 함께 일했던 다비데 마쿨로(Davide Macullo)에게 의뢰하여 이 건물을 만들었어요. 그래서 층고가 4.9m로 높아요. 갤러리를 오픈하고 나서 전시도 두 번 개최했습니다. 그런데 ‘문학 덕후’이셨던 이사장님이 사임하고 가장 많이 했던 일이 독서였대요. 특히 문학을 통해 기업 일을 하셨을 때 접하지 못했던 인간들의 세계를 접하면서 ‘인간이 문학을 읽는 것이 가장 좋은 행위다.’라고 생각하셨다고 해요. 그래서 문학은 물론 좋은 책을 읽는 문화가 퍼지길 바라면서 갤러리를 문학도서관으로 바꾸기로 결심한 거죠. 저는 사람들에게 소전서림이 도서관임을 각인시키기 위해서, ‘소전서림’ 앞에 항상 말하는 수식어가 ‘문학도서관’입니다. 그렇게 2020년 2월 22일에 소전서림이 문을 열었고, 지금은 자연스레 사람들에게 문학을 권하는 공간이 되었죠.

 

소전서림 황보유미 관장

소전서림 황보유미 관장

 

 

도서관 공간으로 리모델링하면서 무엇을 중요하게 생각했나요?

 

처음 갤러리였을 때 여긴 아무것도 없이 그냥 하얀 벽뿐이었어요. 작품만 걸면 됐으니까요. ‘화이트 큐브’였다고 보면 돼요. 소전서림 개관 당시는 여기저기서 책 관련 공간들이 한 차례 유행이 지나갔을 무렵인데, 특히 북카페에서는 책이 전시용인 경우가 많았어요. 일상에서 책을 볼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는 건 당연히 좋았는데, 책이 들러리가 되는 경우가 많은 게 아쉽더라고요. 그래서 ‘절대 책이 장식용이 되게 하진 말자.’라는 생각으로 접근했어요. 그래서 건축사사무소 원오원아키텍츠(101 architects) 최욱 소장님께 리모델링을 의뢰드릴 때, 첫 번째 요구 사항이 책이 중심이 되는 공간을 만들어달라는 거였습니다. 그래서 서가에 손이 닿는 부분까지만 책을 보관할 수 있게 했고요. 물론 사서가 책을 꺼내줄 수도 있지만 도서관에 오신 분들이 직접 꺼내 읽을 수 있게 만들었던 거죠.

 

그리고 읽는 행위를 지속하는 데 가장 최적의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가구들, 특히 의자에 신경을 많이 썼습니다. 세계적 건축가들이 설계한 의자, 명성 있는 가구 브랜드의 의자들을 도서관에 넣었고 콜렉티브 디자인 그룹 ‘ar3(이정형, 임지수, 최병석)’와 ‘리딩 체어(Reading chair) 프로젝트’를 통해 함께 만든 의자들은 의자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면서도 재미 요소를 더했죠. ‘다이스 체어(Dice Chair)’는 앉는 사람의 무게 중심에 따라 주사위 돌 듯 움직이며 앞뒤로 기울어져요. 그네 디자인으로 소음이 발생하지 않게 만든 ‘스윙 체어(Swing Chair)’, 말을 타듯 올라탈 수 있는 거위 모양의 ‘구스 체어(Goose Chair)’도 그렇고요.

 

구스 체어

구스 체어

 

 

아르텍(ARTEK), 핀 율(Finn Juhl), 칼한센앤선(CARL HANSEN & SON), 카시나(CASSINA), 프리츠한센(Fritz Hansen) 등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브랜드 의자도 있더라고요. 비싼 의자라서 저도 잠시 앉아봤습니다.(웃음) 의자뿐 아니라 조명도 신경 많이 쓰신 거 같아요.

 

네, 빛을 직접적으로 쏘기보다는 은은하게 흘러나와 안온한 분위기를 만들려고 했어요. 천장 조명을 한번 봐보세요. 창호 사이로 나오는 달빛 같지 않나요?(웃음)

 

 

그래서인지 지하인데도 들어오자마자 따듯한 분위기더라고요. 공간에 관한 고민과 더불어 한정된 공간에 어떤 책을 배치해야 할지도 고심하셨을 듯합니다. 도서관 큐레이션은 어떻게 진행하셨나요?

 

건축사무소에서 서가를 디자인한 후, 서가에 책이 얼마나 들어갈 수 있는지 대략 계산해 주셨어요. 그걸 참고하여 각 분야 도서 전문가들에게 양서를 골라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문학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김영준 열린책들 편집이사, 박혜진 비평가, 서효인 시인, 이현우 서평가, 철학 분야는 철학아카데미, 역사 분야는 백영란 역사책방 대표, 과학은 이명현 과학책방 ‘갈다’ 대표, 예술은 강영희 보안책방 운영자 등이 참여했어요. 그 결과 문학을 중심으로 인문, 철학, 예술 관련 서적까지 일부 포함하여 3만여 권 정도 소장하고 있습니다. 원래 도서관은 장서를 서가 공간의 70% 이하로 맞추고 있는데, 저희는 개관 후 4년이 지난 현재 거의 80~90%까지 차 있는 상태예요.

 

소전서림 예담(‘예술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공간)

소전서림 예담(‘예술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는 의미로 만들어진 공간)

 

 

양서, 그러니까 ‘좋은 책’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잖아요. 소전서림이 생각하는 좋은 책은 무엇일까요?

 

정의하기 쉽지 않은데, 저희가 생각한 양서는 ‘오랜 시간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책’이에요. 시대를 초월하여 인간의 삶에 도움이 되는 책, 즉 ‘고전’이라 할 수 있죠. 그래서 이미 시간이 검증해준 책들 위주로 소장하고 있어요.

 

 

그런 기준이라면 신간을 들일 때 더 많이 고민하실 거 같아요.

 

네, 굉장히 보수적으로 접근합니다. 저희 도서관에도 신간을 소개하는 코너가 별도로 있는데요. 여기서 저희가 눈여겨보는 작가들의 신간은 웬만하면 다 소개해요. 하지만 여기 소개되는 것과 책을 입고하는 것은 별개 문제예요. 미래 고전으로서 살아남을 책이라고 판단하는 책들만 소장합니다.

 

 

소전서림이 유료 도서관이잖아요. 개관 당시 연회비 66만 원이라는 사실에 많이들 놀라워했고, 그래서 ‘도서관의 공공성’ 관련 이슈가 있었던 걸로 기억해요. 도서관은 불특정 다수가 공평하게 비용 부담 없이 지식과 정보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보기 때문이죠. 도쿄 롯폰기 분키츠(文喫, Bunkitsu) 서점이나 도쿄 모리타워의 멤버십 도서관 ‘아카데미 힐스(Academy Hills)’처럼 해외에는 유료로 운영되는 책 공간이 많다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런 모델이 생소하다 보니 다소 의아하게 보는 시선도 초기에는 있었던 거 같습니다.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네, 소전서림이 한국에서 땅값이 가장 비싸다는 청담동에 생기다 보니 강남 특유의 지형적 상징성과 결부되어 초기에는 약간 왜곡된 시선으로 보시는 분들도 있었어요. 하지만 소전서림은 공공도서관이 아닌 민간도서관이고, 세금으로 운영되는 게 아니다 보니 인건비, 운영비 등을 충당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수익을 내야 해요. 그래야만 공공도서관과 달리 차별화된 경험들도 제약 없이 제공할 수 있고요.

 

한편으로는 최적의 환경에서 책을 읽을 수 있게 신경을 많이 썼는데 정작 독서에는 관심이 없고 가구나 소품 사진만 찍으러 사람들이 마구잡이로 와서 독서 분위기를 해치는 걸 막고 싶기도 했습니다. 어느 정도 제약을 두고 싶었던 거죠. 그리고 무엇보다 소전서림이 오래 자생할 수 있었으면 했어요. 그게 이사장님의 바람이기도 했고요. 단순히 후원금만으로 운영된다면 한계가 있잖아요. 우리가 사라져도 소전서림은 남아서 문화애호가들과 오랫동안 책을 통해 성장하길 원한 거죠. 그래서 유료화한 겁니다.

 

 

현재 이용료는 어느 정도 되나요?

 

2024년 3월 현재 기준 반일 이용권(3만 원)을 구매하면 방문할 수 있습니다. 연간 회원권 가격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도서관을 좀 더 대중화하기 위해 10만 원으로 낮췄어요. 연간 회원은 1일 3시간 소전서림을 이용할 수 있고 독서회나 낭독회, 강연 등도 할인가로 참여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책 읽는 문화에도 돈 쓰는 것을 아깝게 생각하지 않았으면 해요.

 

개관 당시 〈경향신문〉 인터뷰를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때 기자님이 이런 조언을 해주셨어요. “유료 이용에 동의한다. 그러나 1년에 한 번쯤은 문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소전서림을 경험하고 싶지만, 그 3만 원도 없어서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한 배려도 있었으면 한다.”라고요. 너무나 소중한 이야기였어요. 그래서 프리 데이(Free day)를 만들어서 그런 분들이 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따뜻한 마음이네요. 소전서림 이용자는 대략 얼마나 되나요?

 

이용자들이 좀 더 편하게 입장할 수 있도록 소전서림 전용 앱을 개발했어요. 앱을 통해 가입한 회원은 1,800여 명 되고, 아직 가입하진 않았지만 앱을 다운로드한 회원 수는 훨씬 많아요. 저희는 이런 분들도 잠재적 회원이라고 생각하죠. 그래서 그들을 유입할 수 있는 일종의 장치로, 행사가 있을 때 일반권(일일권)을 판매하기도 해요. 한번 경험해보면 ‘여기 정말 괜찮은 책 문화 공간이구나.’ 생각하게 되고, 그러면 연간 회원도 더 늘어날 거라고 기대하고 있습니다.

 

 

저도 소전서림 앱을 다운로드해서 들어가봤는데요. 소장 도서 검색도 할 수 있고 이용자 수와 예약(입장) 가능 수가 한눈에 나와 있어서 편리해 보이더라고요. 최대 50명까지만 입장 가능한 걸 보고, 말씀하신 대로 최적의 독서 환경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게 보였어요. 소전서림을 사랑하고 찾는 이들은 주로 어떤 사람들인 거 같나요?

 

주로 차분하게 혼자 책 읽는 걸 즐기는 사람들이 옵니다. 얼마 전에 재밌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요즈음 카페에서 일하거나 책 읽는 분들이 많잖아요. 그런데 한국 카페는 외국 카페와 달리 무조건 다 음악이 나온대요. 반면에 소전서림은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분위기에서 조용히 책을 읽을 수 있어서 좋다고 하더라고요. 그리고 굉장히 다양한 연령대가 찾아오고요. 최근에는 젊은 커플들도 많이 오더라고요. 각자 조용히 책 읽으면서 데이트하는 게 참 멋지지 않나요? 좋아 보였어요.

 

소전서림 황보유미 관장

소전서림 황보유미 관장

 

 

소전문화재단의 목표가 “독서를 통해 지극히 좋은 상태에 도달하게 한다.”던데, ‘지극히 좋은 상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나이 들면서 우리가 가져야 할 목표 같긴 한데, 내 마음 안에 다툼이 없는 상태가 아닐까 싶어요. 그런데 다툼이 당연히 없을 수는 없고, 인간은 원래 ‘욕망덩어리’인데 책을 통해서 이를 다스려가는 상태라고나 할까요. 타인은 물론 자신과의 싸움도 있잖아요. 고전을 통해 이런 상대를, 자기 자신을 이해할 수 있는 거죠. 소전서림은 그 길을 함께 가보자고 제안하는 거고요.

 

 

그 길을 함께 가기 위해 소전서림에서는 작가, 출판사, 독자와 함께 다양한 프로젝트도 하고 있더라고요. 특히 저는 ‘이 계절의 소설’ 프로젝트가 인상적이었어요.

 

‘이 계절의 소설’ 프로젝트도 다음 시즌이면 벌써 1년이 되네요. 이 프로젝트는 소전서림의 회원이 매달 선정하는 ‘이달의 소설’ 세션과 분기별 평론가들이 선정하는 ‘이 계절의 소설’로 나뉘어 진행됩니다.

 

저희가 ‘이달의 소설’ 선발대 독자들에게 매달 한 권씩 1년에 12권의 신작 장편소설을 발송해요. 독자들은 신작 장편소설 10~20여 종 중 자신이 선정한 작품을 읽고 다음 달까지 100자 정도의 짧은 감상문과 점수를 부여하는데, 해당 작품이 미래에 고전이 될 것인지 가늠하는 ‘고전지수’가 선정 기준이에요. ‘고전지수’는 ① 주제의 보편성, ② 구성의 탁월함, ③ 문체의 예술성, ④ 인물, 사건의 문제성과 새로움, ⑤ 다양한 해석이 가능한지 5개 항목에서 점수를 매기는 거예요.

 

‘이 계절의 소설’은 그 계절에 주목할 만한 장편소설을 고르고, 다양한 비평과 논의를 한 다음 이를 독자들에게 소개하는 프로젝트입니다. 평론가 6인이 온라인 독서모임 플랫폼 ‘그믐’에서 실시간 좌담을 진행해요. 공유된 신작 장편소설 목록에 대한 인상평과 트렌드에 관한 토론이에요. 저희는 책 읽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것과 동시에 오늘날의 고전이 나오기 위해서는 비평 담론의 장(場)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소전서림의 책 읽기 모임 ‘소전독서회’ 2024년 1월~2월 겨울방학 시즌 도서

소전서림의 책 읽기 모임 ‘소전독서회’ 2024년 1월~2월 겨울방학 시즌 도서

 

 

작가 후원도 열심히 하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네, 다른 곳과는 차별화된 지점이죠. 작가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고 싶어서 ‘문학과 친구들’ 즉, 상주 작가 후원을 시작했어요. 장편소설을 쓰는 조건으로 작가에게 매달 150만 원씩 창작지원금을 드려요. 500만 원 이내로 취재비도 지원하고, 장편소설 제출 시 특별 고료도 지급해요. 작가님이 요청하시면 전문가 멘토링도 지원하고요. 이렇게 작품을 쓰는 데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는 거죠. 작품 집필로 자기 삶을 영위할 수 있도록요. 상주 작가 1기는 도서관에서 집필 작업을 하셨고, 지금은 본인이 원하는 공간에서 하세요. 또 재단에서 강원도 홍천에 작가를 위한 ‘인문학 레지던스(Residence)’도 만들고 있어요. 2026년 완공이 목표인데, 상주 작가로 선정되면 독채 빌라에서 지내며 숙식과 생활비를 지원받게 됩니다.

 

‘문학과 친구들’ 상주작가: 박현옥(「듣는 사람」, 현대문학, 2022), 양선형(「스나크 사냥」, 문학과지성사, 2014)

‘문학과 친구들’ 상주작가: 박현옥(「듣는 사람」, 현대문학, 2022), 양선형(「스나크 사냥」, 문학과지성사, 2014)

 

 

‘문학과 친구들’ 지원 사업을 통해 나온 작품이 있나요?

 

첫 사례가 2023년 11월에 출판사 민음사에서 출간된 이혁진 작가의 『광인』이에요. 700여 쪽 분량의 장편이에요. 현재 저희 소전문화재단 출판사인 ‘소전서가’를 통해 출간 예정인 장편소설도 몇 작품 대기하고 있어요.

 

이혁진, 『광인』

이혁진, 『광인』

 

 

특별히 단편이 아닌 장편에 방점을 찍고 지원하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숏폼 시대이다 보니 책도 덩달아 얇아져요.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건 긴 이야기성, 그러니까 구술성인데, 우리가 스스로 그 능력을 퇴화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까 고민했고 긴 호흡을 통해서만 전달할 수 있는 삶, 인간의 진실성이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북아트갤러리(Book Art Gallery)는 소전서림이 ‘북아트’ 장르를 폭넓게 소개하고, 문학과 미술이 결합된 의미 있는 북아트 작품을 전시하기 위해 설립된 공간이라고 들었습니다. 문학이 지닌 다양한 표현 방법의 가능성을 선보이고 대중들이 문학과 더 많은 접점을 만들어 갈 수 있도록 어떤 시도를 하고 있나요?

 

소전서림 장서는 문학이 70% 정도로 가장 많고, 20% 정도가 예술 서적들이에요. 그만큼 문학과 예술이 중심인 거죠. 위대한 문학 작품들은 당대 예술, 철학 등을 바탕으로 혹은 긴밀하게 소통하면서 만들어졌습니다. 저희는 문학도서관이지만 문학뿐 아니라 예술, 철학 등을 함께 읽어나갈 수 있는 구조를 만들고 싶어요. 북아트갤러리도 그 연장선에 있습니다. 예술가가 문학 작품을 자기만의 해석을 바탕으로 예술, 주로 미술로 보여준 사례가 많아요. 그걸 책으로 묶어서 수공으로 아름답게 보여줘서 책 자체가 아트(Art)라고 할 만큼 아름다운 책도 있고요. 활자가 아닌 그림으로도 문학을 즐길 수 있는 거고, 저희는 그게 문학 읽기의 확장이라고도 생각해요.

 

북아트갤러리에서는 주로 고전문학과 그림을 연계하여 특색 있는 전시를 진행하고 있어요. 단테(Dante)의 신곡 북아트전, 돈키호테(Don Quixote) 북아트전, 앨리스(Alice) 북아트전에 이어 최근에는 박태원의 소설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소전서가, 2023)을 주제로 ‘구보(仇甫)의 구보(九步)’ 전시가 있었어요. 소설 속 주인공이 거닌 경성 거리를 따라 산책하듯 책 내용과 삽화를 큐레이션 하여 보여줬어요. 앞으로도 문학과 예술을 결합한 방식으로, 예술에 관심 있는 대중을 문학 독자로 넘어올 수 있도록 계속 노력할 거예요.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박태원,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그동안 소전서림을 운영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였는지 궁금해요.

 

저희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절에 개관했거든요. 지금 생각하면 오프라인 공간에 사람이 안 오는 게 너무 당연한데, 그땐 우리가 방향을 제대로 못 잡아서 그런 줄 알고 고민이 많았어요. 팬데믹이 끝나고 이전과 다르게 사람들이 밀려오는데 그때 정말 기쁘더라고요. 물론 도서관이 무조건 사람이 많아야 좋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쨌든 사람들이 와서 책을 읽어줘야 도서관이 가장 빛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작가님들이 일부러 시간 내어 찾아주시고, 오고 싶은 공간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뿌듯하더라고요. 그렇게 문학을,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소전서림으로 모여들면 좋겠습니다.

 

 

소전서림의 요즈음 고민은 무엇일까요?

 

앞서 말했다시피, 홍천에 문인들을 위한 인문학 레지던스를 준비하고 있는데요. 물리적인 공사도 잘 마쳐야겠지만, 공간을 채울 다양한 프로그램도 기획해야 하거든요. 우선 홍천이 산골이기 때문에 작가님들만 딱 모셔두고 집필하라고 하면 작가님들도 굉장히 힘들어해요. 고립되는 거니까요. 그래서 소전서림의 회원들도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북스테이(Book Stay) 등도 구상하고 있습니다.

 

‘읽는 사람 : 당신을 ____할 300권의 고전’ 포스터

‘읽는 사람 : 당신을 ____할 300권의 고전’ 포스터

 

 

그리고 올해 ‘읽는 사람’ 캠페인을 시작했어요. 캠페인은 더 많은 사람이 문학을 가까이하고 나아가 문학을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장을 마련해 보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어요. 첫 시작으로 북아트갤러리에서 ‘읽는 사람 되기’ 전시를 하고 있습니다. 국내 독자들을 위한 300권의 고전 리스트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법의 읽기를 제안하는데요. 북마스터(Book Master)와 함께하는 도슨트(Docent) 프로그램부터 고전 도서를 한눈에 보면서 ‘나만의 서가’를 완성해가는 프로그램, 희귀 고전 북아트 코너, 14권의 고전소설을 직접 소개하고 같이 읽기를 제안하는 ‘이달의 고전’ 코너 등을 잘 운영해서 독자들이 자신만의 독서 이유와 방법을 찾아갔으면 해요. 또 올해 처음으로 서울국제도서전도 나갈 예정이라 어떻게 하면 잘 준비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북마스터와 함께 읽는 고전 섹션: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북마스터와 고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북마스터와 함께 읽는 고전 섹션: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북마스터와 고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도서관을 시작으로 북아트갤러리에 이어 레지던스 설립까지! 소전문화재단의 세계관이 확장되는 느낌이에요. ‘소전(素磚) 유니버스(universe)’라고나 할까요.(웃음) 마지막으로 출판인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책이 여러 흥밋거리에 밀리고 있는 시대잖아요. 책 읽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환경에서 책이 성전처럼 모셔지는 것보다 일상에서 책이 더 자주 독자와 만날 수 있다면, 좀 더 응원할 수 있다고 봐요.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다양하게 책을 소개하는 공간이 더 많이 생겨났으면 합니다. 소전서림 역시 좋은 책을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분들과 책을 지키고 있는 독립군의 심정으로 더 많이 연대하고 싶습니다. 책이 가진 힘을 믿고 사랑하는 모든 분께 응원을 보냅니다.

 

 

 

인터뷰 내내 소전서림 외벽에 층층이 쌓인 흰 벽돌 사이로 따스한 빛이 스며드는 기분이었다. 참고로 소전서림을 짓는 데 쓰인 벽돌은 건축가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가 쾰른(Köln)의 콜룸바 미술관(Kolumba Museum)을 지을 때 사용한 벽돌을 오마주한 제품이라고 한다. 콜룸바 미술관의 건축적 분위기를 만드는 데에 춤토르의 부단한 수고가 있었듯, 소전서림도 문학과 예술을 감상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부단한 수고와 노력을 했으리라. 흰 벽돌로 둘러싸인 책의 숲, 이곳에는 책이 있고, 사람이 있고, 진심이 있었다.

 

 

황보유미(소전서림 관장)
서울에서 국문학과 불문학을, 파리에서 커뮤니케이션학을 공부했다. 파리 유학 시, 공연·예술 전문지 〈월간객석〉의 파리 통신원을 하며, 무용칼럼니스트로 활동했고, 이후 국립발레단,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재단법인 예술경영지원센터 국제사업부에서 일을 했다. 2018년 소전서림의 인테리어 공사부터 시작해 현재까지 소전서림 관장으로 일하고 있다.

yumi@sojeonfdn.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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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나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에서 출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느슨하지만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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