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1 2022. 04.
오늘도 읽고 쓰는 시간을 만듭니다
구선아(작가, 책방 연희 운영자)
2022. 04.
2017년 1월, 책방 연희는 연희동 주택 2층에서 시작되었다. 글을 쓰며 책을 읽고 도시를 공부하는 개인 작업실에 조금의 사치를 보태 연 책방이었다. 누군가는 비싼 취미를 시작했다고 했고, 누군가는 금세 다른 직장을 찾을 거라고 했다. 9년간 대기업 광고대행사에 다니다 덜컥 연 책방이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책방 창업을 결정하고 두 달 만에 책방을 열었고, 책방을 열고 두 달이 지나 퇴사했다. 하지만 2018년 1월, 지금의 책방 자리인 홍대입구역 경의선책거리 인근으로 자리를 옮긴 후 책방은 만 5년을 넘어 여섯 살이 되었다.
책방 연희는 ‘책, 연희(演戲, a play)하다’의 줄임말로 말과 글, 동작으로 책과 도시의 삶을 이야기하는 도시인문학서점이자 독립출판물과 기성출판물 중 큐레이션한 책을 판매, 소개하는 큐레이션 서점이다. 말과 글, 동작이라고 함은 책을 팔고 사는 행위 외에 강연, 모임, 전시, 공연 등 책을 중심으로 한 다양한 활동을 말한다. 그리고 많은 사람이 묻는 도시인문학서점이란 도시의 가치와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활동, 문화에 관한 책을 다루는 서점이다. 또한, 동시에 도시의 가치를 증진하고 문화를 생산, 소비하기 위한 장소다. 개인이 도시에서 자주적으로 행복하게 살 기회를 조금이라도 만들었으면 하는 나의 마음이 담겨 있다. 이렇게 쓰고 보니 거창하지만 사실 들여다보면 모든 책방이 도시인문학서점이라 불려도 좋으리라.
책방 내부 한편의 모습
맥락적 읽기를 지향하는 큐레이션
『도시에 산다는 것에 대하여』에는 “‘더 많은 선택권’이 곧 ‘더 큰 만족’을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너무 많은 선택 가능성이 특정 수준을 넘으면 스트레스가 된다”는 문장이 나온다. 이는 도시의 삶뿐만이 아니라 책을 고르는 독자에게도 적용된다. 대형서점이나 온라인서점에서 베스트셀러나 추천 도서가 계속 인기를 끄는 이유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작은 책방은 모든 책을 다루지 않기 때문에 손님과 독자들이 조금은 스트레스를 줄여 책을 고를 수 있다. 일단 책방 운영자에 의해 일차적으로 선택되어진 책이다.
책방에 놓이는 모든 책은 직접 고른다. 정말 매일 많은 이메일이 온다. 출판사의 각종 이벤트와 책 소개, 독립출판 책 입고 문의다. 그중 관심 가는 책과 책방에 어울리는 책을 고르기도 하고 다른 서점이나 도서관에서 발견한 책을 들이기도 한다. 책방 연희는 작은 동네 책방치곤 책이 꽤 많은 편이다. 커피와 음료를 판매하지 않기에 20평 공간이 모두 책을 위한 공간이다. 모임이나 클래스가 있을 때는 책 공간을 비집고 들어간다.
서가는 손님이 맥락적 책 발견을 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이를테면 가족을 주제로 한 서가는 가족 – 엄마 – 아빠 – 할머니 – K 장녀 – 형제자매 – 육아 - 임신과 출산 – 결혼 – 비혼 - 싱글 등으로 이어진다. 이는 나의 책 읽기와 책 구매 방식과도 같다. 책방을 열기 전 회사를 다니며 틈만 나면 크고 작은 서점을 방문했고 월급날이면 장바구니에 넣어둔 책을 여러 권씩 샀다. 이때부터 시작된 나의 책 읽기와 책 구매 방식이 적용된 것이다. 하지만 맥락적 책 발견을 적극적으로 돕는 분류 캡션은 없다. 캡션 대신 운영자가 작은 원고지에 직접 쓴 책 소개 글이나 리뷰, 발췌한 문장을 책에 붙여둔다. 재밌는 점은 책을 사는 많은 손님이 책과 함께 그 메모를 함께 얻길 바란다는 것.
책방 운영자의 책과 큐레이션 메모
그리고 책방에서 지향하는 큐레이션 키워드가 있다. 그중 몇 개를 소개하자면 도시인문학서점의 정체성과 책방 운영자인 나의 관심사와 취향의 교집합 키워드인 #산책 #동네 #로컬 #도시의_삶이다. 동네를 걷고, 도시를 걷고, 여행지를 걷고, 그곳에서 경험하거나 살아가는 책들이다. 특히 코로나로 일상이 축소화되고 우울감이 잦았던 작년엔 #산책 키워드의 책을 많이 추천했다. 매일이 반복되는 하루 같아도 사실 똑같은 하루는 없다. 피곤하고 지루한 일상이지만, 잠깐의 동네 산책은 하루를 기분 좋게 만들어준다. 산책하며 동네 책방, 꽃집, 빵집, 카페, 문구점을 돌아보고, 옆집 할머니, 할아버지, 동네 꼬마와 자전거 타는 학생에게도 “안녕” 인사를 건네 보면 어제와는 다른 하루가 된다. 사소한 걸음과 인사 그리고 내 가방 속 책 한 권의 산책을 통해 우리의 하루는 좀 더 명랑해질 것이므로.
또 한 축은 #글쓰기 #책_만들기이다. 직접 책을 쓰고 만드는 운영자로 인해 읽고 쓰는 것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이 찾는다. SNS로 개인의 일상과 이야기를 표현하고 노출하는 게 자연스러운 시대다. 블로그, 카카오페이지, 브런치 등 온라인 글쓰기 플랫폼도 다양해졌다. 미디어 환경의 변화, 출판문화의 변화, 자기표현 욕구의 발현으로 인해 글쓰기에 관심 있는 사람이 많아졌고, 글쓰기가 지속되면 대부분 책 출간으로 관심이 이어진다. 보통 출판사 투고를 하지만 최근엔 직접 책을 만들고 파는 독립출판에 관심이 많다. 혹자는 책을 읽는 사람은 없는데, 책을 쓰고 싶은 사람만 많다고 할 정도로 출판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이와 같은 현상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이들이 모두 예비 생산자이자 예비 소비자로 새로운 층을 형성하여 다양하고 단단해질 출판문화를 기대해 봐도 좋지 않을까.
#책방 #1인가게 키워드의 책도 인기다. 특히 책방을 열기 전 여행자의 눈길로 쓴 『여행자의 동네서점(2016)』과 책방을 열고 난 후 동료의 마음으로 쓴 『퇴근 후, 동네 책방(2020)』을 보고 오거나 구매하러 오는 손님이 꽤 있다. 흥미로운 사실은 작은 책방에 오는 손님 중 많은 사람이 책방지기를 꿈꿔본 적 있거나 꿈꾸고 있다는 것. 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는 낭만적인 책방 운영자는 찾아보기 힘들므로 대부분 꿈에 머문다. 하지만 책방의 운영에 낭만이 전혀 없다고도 할 수 없다. 무거운 책 박스를 나르고 책을 정리하고 손님을 기다리는 침잠하는 시간 속에도 낭만은 있으니까.
읽고 쓰는 시간을 만듭니다
책방 연희는 오픈 이래 책을 중심으로 여러 분야의 문화예술을 접목한 콘텐츠로 북토크, 전시, 작가와의 초청, 각종 클래스, 마켓, 세미나 등의 활동을 꾸준히 기획, 운영하고 있다. 전시 30회, 북토크 및 강연 60회 이상, 문화예술 관련 클래스 및 모임 약 90개, 컬래버레이션 행사 40여 회 이상을 진행했다. 팬데믹 시대가 되며 온라인 모임과 강좌도 점차 늘렸다. 이전에도 온라인 모임이 종종 있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빠르게 기획하여 움직였다. 이는 오프라인 모임에 참여하기 힘든 타 지역 거주자와 해외 거주자도 책방 연희의 느슨한 멤버가 되는 기회를 가져다주었다.
모임과 클래스를 살펴보면 맥락적 책 발견과 같이 책을 중심으로 연결된다. 함께 책을 읽고 질문지를 통해 책과 그 언저리의 이야기를 나누는 책방 연희 월간 독서 모임과 작가 또는 번역가, 편집자를 초청해 책 이야기를 나누는 북토크와 독서일기 쓰기, 에세이 쓰기, 소설 쓰기, 노래 가사 쓰기와 같은 글쓰기 프로그램이 주를 이루고, 이와 연결되어 책 기획하기, 디자인하기, 여행책 만들기, 그림책 스토리보드 만들기 프로그램이 정기적으로 열린다.
드로잉산책 워크숍을 진행 중인 모습, 2021서울국제도서전 책 도시산책 이병률 시인 낭독회 모습
모든 모임과 클래스는 직접 기획한다. 강사를 섭외하고 홍보하고 참가자에게 단체 문자를 보내는 일까지 모두 책방 운영자의 몫이다. 느슨한 커뮤니티를 만드는 게 즐겁다지만 수고로운 일이 한두 개가 아니다. 가장 힘든 건 모객이다. 단 한 번도 예외 없이 프로그램 안내를 올릴 때면 신청자가 없으면 어쩌지?, 몇 명이나 신청할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도 꾸준히 모임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건 코로나 시국에도 어김없이 오른 책방의 월세와 관리비에 보탬이 되기 위한 일이기도 하지만, 누군가에게 새로운 시작이기도 하고 또 누군가에겐 기회가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지난 2월 독립출판의 경향부터 만드는 과정, 유통까지 모든 것을 알아보는 “독립출판의 A to Z” 워크숍을 진행하였다.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한 참가자가 모임에 참여해 쓴 출판기획서 덕분에 출판사 두 곳과 연락이 되어 계약을 앞두고 있다며 감사의 인사를 건네 왔다. 또 지난해 100일간 매주 한 편의 글을 쓰는 온라인 모임인 “엄마들의 글쓰기”에 연속 두 번 참여했던 참가자는 그 글을 엮어 독립출판물을 출간했다. 또한, 책방 연희에서 진행하는 프로그램 운영을 시작으로 여러 책방과 기관에서 강의하고 활동하는 창작자도 여럿 있다. 이들 모두는 책방 덕분이 아니다. 책방에서 만든 시간을 잘 잡은 개인의 선택 때문이다. 책방 연희의 책과 여러 읽고 쓰는 모임을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책 읽기와 글쓰기가 특별한 것이 아니라는 걸 알았으면 한다.
나의 내일과 책방의 내일
예상하지 못한 코로나의 습격으로 인해 책방이 휘청했다. 본래 유동인구가 많은 상업지역에 위치해 손님이 북적북적하는 책방은 아니라 그 피해가 소소할 거로 생각한 건 오만이었다. 2년 넘게 사그라지지 않는 코로나는 사람들의 소비와 활동 방식을 바꿔놨고, 오프라인 마켓이나 큰 행사도 줄었다. 작은 북토크나 책방 모임의 개최 혹은 참여도 소극적으로 변했다. 아직까지는 작은 책방에 들러 직접 책을 고르고 사고 분위기를 느끼고 오프라인을 통한 작가와의 만남이나 프로그램 참여를 원하는 사람도 있지만 코로나가 잠식되더라도 생활의 변화는 이전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
그래도 책방 연희는 반짝이는 내일을 꿈꾼다. 오프라인이라는 한정된 공간 외에 다른 동네, 다른 도시에서 책방 연희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의 확장을 지속적으로 도모한다. 그 한 예로 현재 제주 애월의 대형 카페 안에서 숍인숍 ‘책방 애월(2019~)’을 운영 중이다. 오프라인뿐 아니라 온라인을 통해 제약 없는 책방의 책과 프로그램 경험을 위해 자체 온라인 플랫폼과 서비스도 준비하고 있다.
여행 사진을 전시 중인 책방 모습
최근엔 새로운 콘텐츠 기획에 더욱 힘쓰고 있다. 제일 애쓰는 콘텐츠는 두 개다. 하나는 “책방운영자의 사생활”이라는 이메일 뉴스레터 구독서비스다. 자신만의 공간에서 책방을 함께 운영하는 ‘아직 독립 못 한 책방’, ‘책바’, ‘밝은책방’ 그리고 책방 연희의 이야기다. 약사, 바텐더, 작가, 변호사가 이야기하는 말 못 한 에피소드와 숨겨둔 취향을 3개월간 매주 두 편의 에세이로 발행하는 서비스다. 또 하나는 로컬에세이집 ‘그래서 시리즈’다. 지난해 『그래서, 서울』, 『그래서, 제주』가 출판사 방과 협업으로 출간했고 올해 『그래서, 부산』과 『그래서, 강원』 출간을 앞두고 있다. 나는 콘텐츠를 직접 기획하고 생산하는 것에 큰 매력을 느낀다. 일단 재미있다. 책방을 운영하는 일이 나의 창작에 끊임없는 영감을 주고 있는 건 확실하다. 앞으로도 책방을 중심으로 계속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만들고 전하고 싶다.
책방은 손쉬운 창업에 비해 유지는 만만치 않다. 작은 책방이 생겨나는 것을 살펴보면 차별화된 비즈니스 모델이 미비한 상태에서 문을 여는 곳이 많다. 더군다나 코로나 시대 비대면 소비가 증가하고 있고 1~2인 운영 체제에서 오는 피로감은 더욱 커졌다. 그래서 누군가는 나에게 잘 버텼다고 말한다. 내가 잘 버틴 것일까. 책방은 내가 버텨야 하는 혹은 버텨내야 하는 것이 아니다. 책방을 찾아주는 손님과 독자와 프로그램 참여자들에 의해 버텼고 버텨내고 있다. 덜컥 연 책방이었지만 나에게 책방 연희는 책, 책방, 사람, 동네 그리고 무엇들과 관계를 맺어주는 삶의 중요한 지점이 되었다. 언제까지 책방을 운영하겠다고 다짐할 순 없지만 나 그리고 누군가의 읽고 쓰는 삶을 위해 오늘도 책방 문을 조용히 연다. 작고 조용한 오늘이 모여 빛나는 나의 내일이, 누군가의 내일이 되길 바라며.
구선아(작가, 책방 연희 운영자) 서울 경의선책거리 인근에서 책방 연희를 운영하며 읽고 쓰는 삶을 삽니다. 책 문화와 도시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몇 권의 책을 썼고 몇 권의 책을 엮었고 몇 권의 책을 만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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