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21  2021. 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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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물 수출 조건과 실상 ③]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미래를 위하여

 

 

 

신서희(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2021. 5.


 

지난 1, 2부에 걸쳐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시작과 역사를 살펴보았듯이, 한국어 저작물의 수출은 위기와 기회를 반복하며 조금씩 성장하고 있다. 지난 몇 년간 K-pop과 K-드라마 등 한국 문화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일각에서는 K-book의 가능성을 점치고 있다. 한국어 저작물, 즉 국내 출판 저작물이 K-pop과 K-드라마의 뒤를 이어, 한류의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을까? 이번 편에서는 이른바 K-book의 현실과 가능성을 진단하고, 국내 출판 저작물의 수출이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방안을 탐색해 보고자 한다.

 

K-book은 새로운 한류의 트렌드로 자리 잡을 수 있을까?

 

K-pop과 K-드라마의 부가적 산물로서의 K-book

 

2020년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키워드는 한류였다. 지난 연재에서 언급했다시피 코로나19로 인해 전 세계가 봉쇄되며 급성장한 OTT(넷플릭스 등)를 통해 K-드라마 열풍이 불었고, 이는 인기 있는 한국 드라마의 원작 소설이나 대본집, 포토에세이 등의 문의와 계약으로 이어졌다. 특히 러시아에서는 최근작인 〈철인 왕후〉뿐만 아니라 〈미남이시네요〉, 〈시크릿 가든〉과 같이 이미 오래전에 방영된 한국 드라마 관련 문의가 끊이지 않아 K-드라마의 인기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다른 한 축에서는 K-pop, 그중에서도 BTS의 영향력이 한국어 저작물 수출을 지배하고 있다. 직접적으로는 BTS 멤버들이 읽었거나 추천한 책에 대한 문의가 대폭 증가하고 있으며 간접적으로는 BTS를 다룬 책들까지도 계약이 성사되고 있다. 이와 같은 K-드라마와 K-pop의 인기는 한국어 교재의 인기도 끌어올리고 있다. 기존에 한국어 교재가 중국이나 대만, 동남아시아 위주로 수출되어 왔다면 최근에는 러시아는 물론, 프랑스와 같은 서유럽에서도 한국어 교재를 적극적으로 수입해 한류의 힘을 실감하게 한다.

 

‘글자’와 ‘언어’의 한계 – K-book을 가로막는 언어의 장벽

 

이처럼 K-드라마나 K-pop 등 인기 있는 한류 콘텐츠와 연관된 한국어 저작물의 수출은 호조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와는 관계없는 다른 출판 저작물은 한류의 물결에 동조하지 못하고 기존과 크게 다르지 않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는 출판 저작물은 ‘글자’와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는 근본적인 한계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K-pop은 화려한 퍼포먼스와 음악으로 한국어를 몰라도 즐길 수 있다. K-드라마는 각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그 내용을 충분히 즐길 수 있다. 그러나 책은 ‘번역’과 ‘출판’이라는 과정을 거쳐야 해외 각국의 대중 앞에 선보일 수 있으며, 그 과정은 적어도 1년 이상의 시간을 소모한다. 또한 책은 K-pop이나 K-드라마보다 소비자에게로의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단점도 간과할 수 없다.

 

국내 인기가 해외 인기를 견인한다 – 자체 경쟁력의 문제

 

지난 20여 년간의 한국어 저작물 수출 실태를 돌아보았을 때, 해외 수출에서의 인기를 견인하는 것은 결국 해당 저작물이 국내에서 얼마나 인정받았느냐로 귀결된다. 즉 해외 독자를 사로잡기 위해서는 국내 독자를 먼저 사로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일본에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있는 학습 만화 ‘서바이벌 시리즈’, 논픽션으로서는 유일하게 미주와 유럽 지역에 수출된 『아프니까 청춘이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등의 공통점은 국내에서도 놀라운 판매량을 기록한 초대형 베스트셀러였다는 점이다.

 

그러나 계속되는 출판 시장의 축소와 침체는 국내 출판 콘텐츠들의 자체 경쟁력을 저하시키고 있다. 논픽션 베스트셀러는 일회성 이슈에 휘둘리는 책 위주로 빠르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으며, 픽션 베스트셀러의 경우 “팔리던 책만 팔리는” 경향을 보인다. 이와 같은 출판 콘텐츠의 침체는 매력적인 콘텐츠의 부재를 나타내며, 이는 결국 수출 경쟁력의 저하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K-book을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무엇보다도, 양질의 콘텐츠가 필요하다

 

바로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한국어 저작물의 수출이 보다 활성화되기 위해 무엇보다 절실한 것은 양질의 콘텐츠이다. 자국에서 인정받지 못한 비운의 작품이 해외에서 인정받는 기적은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아주 드문 예외가 있을 수도 있겠지만, 해외에서 성공한 대부분의 콘텐츠는 이미 국내에서 인정받은 콘텐츠이다. 더구나 전 세계적으로도 출판 시장의 불황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해외 출판사들 역시 더더욱 “잘 팔리는” 저작물 또는 “잘 팔 수 있는” 콘텐츠에 집중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콘텐츠의 힘으로 독자들을 사로잡을 수 있는, 양질의 콘텐츠에 대한 수요는 그 어느 때보다도 높다고 할 수 있다.

 

좋은 번역이 수출의 가능성을 높인다

 

음악은 청각으로, 드라마나 영화는 시각과 청각으로, 웹툰이나 그림책은 시각으로 어필할 수 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출판 저작물은 오로지 ‘글’로 생각이나 감정을 전달하며, 이를 위해서는 좋은 번역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한류의 높은 인기로 한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한국어를 현지 언어로 번역할 수 있는 인력은 아시아 지역을 제외하고는 매우 적은 편이다.

 

최근 들어 한류의 영향으로 실무에서 유럽이나 미주 지역, 기타 한국어 저작물의 수출이 적었던 곳으로부터 문의가 증가하는 추세이다. 그러나 실질적으로 문의가 계약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번역’이다. 한국어 저작물에 관심을 보이는 해당 지역 대부분의 출판사들이 한국어를 직접 리뷰할 수 있는 인력을 구할 수 없기 때문에 영문 자료를 필수적으로 요구한다. 다행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초록·샘플 번역지원, 한국문학번역원의 번역지원 공모사업 등으로 영문 샘플이 마련된 경우가 있기는 하지만, 샘플만으로 계약이 이루어지기란 쉽지 않다. 대부분이 짧은 샘플 이외에 보다 상세한 영문 자료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계약 성사율이 높은 경우는 전체 영문 원고가 있는 경우이다. 또한 이라크, 사우디아라비아 등의 서아시아 지역은 검토를 위해 필수적으로 전체 영문 원고를 요청하고 있다.

 

에이전시를 비롯한 수출 네트워크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라

 

일부 해외 출판사의 경우 한국 출판사에 직접 연락을 취하기도 하지만, 수출의 최전선에 있는 것은 언제나 저작권 중개 에이전시이다. 특히 영미 유럽권의 경우, 에이전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라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미국은 독립 출판사나 소규모 출판사가 아닌 이상 저자의 직접 투고는 받지 않으며, 현지 작가들은 모두 에이전트(literary agent)를 선임한 후 해당 에이전트를 통해서만이 출판사에 원고를 보낼 기회를 얻는다. 미국이나 유럽의 출판사들이 타 지역의 작가를 섭외할 때도 마찬가지로, 해당 지역의 출판사나 작가와 직접 연락하기보다는 에이전시를 경유하는 것이 보편적이다.

 

또한 대부분의 에이전시들은 자체적인 글로벌 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 이와 같은 방대한 네트워크를 이용하여 출판 저작물은 전 세계를 돌며 소개되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다. 따라서 K-book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이미 체계적이고 전문적으로 자리 잡은 에이전시와 그 글로벌 파트너들을 십분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다.

 

한국어 저작물 수출의 발전과 성장을 기원하며

 

기회는 위기에서 온다. 코로나19라는 위기는 콘텐츠 업계의 전례 없는 활황을 불러일으켜 한류 콘텐츠의 전 세계적인 위상을 드높였다. 그 영향은 출판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다만, 여러 가지 한계에 부딪혀 아직 타 콘텐츠에 비해 작은 움직임을 보이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한류에서 이어지는 다양한 한국 콘텐츠에 대한 관심 확대, 그리고 한국어 공부에 대한 관심은 앞으로 한국어 저작물 수출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더불어 최근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 콘텐츠 번역지원 사업을 비롯하여 실무의 현실적인 고민을 해결할 수 있는 유관기관들의 지원책이 조금씩 늘어나고 있다. 이를 발판 삼아, 앞으로 한국어 저작물이 보다 많은 곳에서 사랑받을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기를 기원한다.

신서희(임프리마 코리아 에이전시 과장)

2009년부터 출판 저작권 중개 에이전시 ㈜임프리마 코리아에서 근무했으며, 한국미술저작권관리협회(SACK)를 거쳐 2018년 다시 ㈜임프리마 코리아로 복귀했다. 도서 저작권 업무를 비롯해 미술, 사진, 영상, 공연과 관련된 저작권 실무를 두루 경험했으며, 현재는 한국 도서의 해외 수출과 영미 유럽권 도서의 국내 수입을 함께 담당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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