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2 2022. 05.
대형 출판사를 그만두고 1인 출판사를 시작하다
이승현(좋은습관연구소 대표)
2022. 05.
그래, 그렇게, 시작했다. 나도 창업이란 걸 했다. 45라는 숫자가 내 목에 걸렸을 때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다른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혹은 다른 후배들이 그럴 것처럼 나도 창업이란 걸 시작했다.
창업 아이템으로 출판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가장 큰 장점이라고 할 만한 것은 소자본으로 1인 창업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책 한 권을 내는 것으로 ‘창업을 했다’라고 본다면, 500만 원 정도면 충분히 책 한 권을 낼 수 있다(물론 그 이하로도 가능하다). 그리고 대중성이 전혀 없는 책만 아니면 서점에서 내 책을 팔아주기 위해 여러 가지 도움을 준다. 책을 받아주고 매장에 비치도 해준다. 즉, 내 창업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도와준다. 마냥 혼자서만 하는 것이 아니라 서점이라는 우군이 있다니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추가로 하나만 더 얘기하자면, 소위 대박이라는 게 터지면 삽시간에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도 얻을 수 있다. 물론 대박은 로또 같은 것이다. 하지만 로또보다는 훨씬 터질 확률이 높다. 그러니 안 할 이유가 없다. 게다가 평균 이상의 지식을 갖고 있고 스스로 책 좀 읽었다 생각한다면 일단은 한번 맛은 볼 수 있을 정도로 진입 장벽이 낮다. 물론 사업적으로 계속 유지되느냐 마느냐는 그 다음 얘기지만. 아무튼 이런 등등의 이유로 여전히 많은 분들이 출판을 매력적인 사업으로 바라본다.
하지만 장점이 있으면 단점도 있는 것처럼, 사실 최근의 대외 환경을 생각하면 출판은 더 이상 잠재성이 없는 것으로 봐야 할지도 모르겠다. 출판을 콘텐츠 사업이라고 확대 해석하면 다르겠지만 출판 그대로만 본다면, 점점 사양길로 들어가는 산업이다. 아직도 구태의연한 시스템을 유지하고 있으며 인재는 점점 더 떠나가는 사업군이다. 출판업계에 들어온 지 20년이 다 되어 가지만 그때나 지금이나 책 만드는 과정에서 업그레이드(비용은 줄이면서 부가가치는 높아지는)된 점은 필름을 뽑아 인쇄하던 것에서 필름이 없어졌다는 정도이지 저자를 섭외하고, 편집을 하고, 표지를 고르는 과정은 그때나 지금이나 동일하다. 아, 한 가지 개선된 게 있긴 하다. 바로 작가와의 커뮤니케이션 속도. 지금은 카카오톡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소통하고 파일을 주고받고 있으니 이전보단 커뮤니케이션이 빨라졌다. 가끔 ‘옛날에는 카카오톡 없이 어떻게 책 만들었지’ 하고 생각할 정도다.
여하튼, 출판은 여전히 답보 중이고 인재는 유출되고 있으며, 나 같은 10년~20년차의 출판의 꽃가마를 탄 마지막 세대들은 조직에서 떠밀려나와 모두가 1인 출판 창업을 하고 있다. 책은 생각만큼 안 팔리고, 그러다가 정말 어쩌다 히트작이 나오면 ‘역시 출판의 맛은 이런 거야’ 하면서 쓴맛 단맛을 오가는 것. 그것이 출판 창업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계속 그럴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렇지 않을 거라고 보는 게 좀 더 맞을 듯싶다.
출판 비전을 세우기까지
창업을 하면서 가장 염두에 둔 것은 과거를 답습하는 창업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었다. 좀 더 트렌디하며(=시대의 흐름을 반영하는, 트렌디한 주제를 쫓는다는 것이 아닌) 기존의 출판 룰과는 다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생산과 판매 시스템의 개선이었다. 그렇지 않다면 과거와 동일한 출판이 될 거라 생각했고, 그렇게 되면 출판업의 현실 논리 속에 갇힐 수밖에 없을 거라 생각했다. 나는 나의 생각을 옮길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사실, 2013년에 회사를 옮기면서 잠깐 창업의 기회가 있었지만, 행동에 옮기지 못했던 이유는 바로 출판에 대한 나의 확신이 없어서였다. ‘좋은 책을 내고 싶다, 많이 팔고 싶다’는 생각은 있는데 어떤 출판을 해야 하는지, 나의 출판 비전을 무엇으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 정리를 하지 못했다. 그 말인즉슨, 결국은 많이 파는 것으로 출판의 목표를 정할 수밖에 없게 되는데, 책이라는 게 내내 족족 잘 팔기란 정말 쉽지 않고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이런 목표는 결국 사업의 영속성에 계속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즉, 많이 파는 것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어떤 출판을 해서 사회에 메시지를 낼 것이냐’였다. 그게 명확하지 않은 상태에서는 불안한 출발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회사에서 근속 5년이 될 무렵 다시금 창업에 대한 고민과 내가 해야 하는 출판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한 문제에 집중해보기로 했다. 우선 사람들이 책을 읽는 이유와 책을 멀리하게 된 이유에 대해 주목해보기 시작했다. 이 질문은 창업의 비전을 세우기 이전에 출판의 미래와도 연관된 것이었다. 과거에 비해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한다. 그 이유는 뭘까? 나는 두 가지에 주목했다. 지식과 정보로서의 가치와 재미로서의 가치. 이 두 개의 가치가 다른 미디어에 뺏기고 있다고 생각했다. 책을 통하지 않고서도 고급 정보를 실시간으로 얻을 수 있고, 책 이상의 재미를 주는 영상 등이 넘쳐나는데 더 이상 머리 쓰면서 책을 읽어야 할 이유는 없는 것이었다.
나는 좀 더 근본적으로 이 문제를 바라보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재미를 찾고 지식과 정보를 찾는 이유는 뭘까? 좀 뭉뚱그려 말해서 ‘변화’가 아닐까? 결국은 해당 지식을 내 것으로 만들고, 책에서 말하는 그런 사람 혹은 책을 쓴 사람처럼 되려고 하는 것 아닐까? 그러려면 읽는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움직여야 한다. 즉 공부를 하고 실천을 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책의 역할이 지식 제공에 머물렀다면 이제는 그 사람을 변화시키는 환경을 구체적으로 제공하면 미디어와 차별화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이는 결국 출판을 제조에서 서비스로 바라보는 생각 전환이었다.
그렇게 생각하고 둘러보니 이미 많은 출판사들이 이런 활동들을 하고 있었다. 다만 하나의 사업으로 보기보다는 마케팅적으로 활용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었다. 우리 책을 사면 작가와의 만남이라는 서비스를 제공해 당신이 원하는 재미를 좀 더 극대화시키겠습니다. 우리 책을 사면 매주 혹은 매달 양질의 콘텐츠를 메일로 받을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실제로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는 비포 앤 애프터가 명확한, 학습을 주제로 ‘학습단’이라는 독자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었다. 책을 사서 카페라는 공간에 독자들이 모여 함께 학습하는 서비스였다. 이 방식은 적극적인 어머니 층이 독자로 있는 유아·초등 과정의 책과 아주 잘 들어맞아 마케팅적으로도 도움이 많이 되었다. 회사는 이를 성인으로 확대하는 시도를 했다. 이번에는 ‘완독단’이라는 이름으로 완독이 어려운 학습서를 함께 공부한다거나, 두꺼운 벽돌 인문학 책을 함께 읽는다거나 하는 등의 독자 서비스를 실험해보았다. 성인의 경우에는 아동 학습서에 비해 직접적인 도서 구매로 연결되지 못하다 보니 이런 마케팅 활동을 회의적으로 보는 시선이 많았다. 하지만 독자들이 책으로 지식을 얻은 기쁨만큼 책 한 권을 스스로 완독하고 뗐다는 기쁨을 더 크게 표현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새로운 출판이 이런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이미 이런 사업을 하는 곳은 많았다. 학원이 대표적으로 그런 곳이었다. 학원을 다니려면 지정된 교재를 사야 되고, 그것은 결국 책이 입장권의 역할을 하는 것과 같았다. 경매 노하우를 얻기 위해 경매 학원을 수강하고 그곳에서 추천하는 책을 구매하는 행위 역시 이와 유사했다. 그런데 이제 창업하는 마당에서 내가 학원 같은 독자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결국은 독자의 독학 과정을 돕는 정도로 타협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를 독자에게 제공하기 위해서는 독자의 언어로 이 과정을 이해시키는 것이 필요했다. 그래서 당장 비용이 많이 들고 판매에서 출판사 브랜드력이 결정적인 학습서 시장을 노크할 순 없다고 생각했고, 자기계발 분야에서 이를 독자들에게 ‘습관’으로 소개하고자 했다.
자기계발은 독자 스스로 변화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학습보다는 낮은 허들을 갖고 있는 분야이다. 나는 좋은 습관을 만들고 싶지만 만들지 못하는, 나쁜 습관을 끊고 싶지만 끊지 못하는 우리의 현실을 주목했다. 이미 사람들은 이것에 돈을 쓰고 있었다. 특히 나쁜 습관은 중독이라는 이름으로 병처럼 다뤄지면서 사람들에게 긴급성을 요구하고 있었다. 좋은 습관은 이보다는 더 넓은 개념으로 다뤄지고 있었고 조금은 광의적으로 해석되고 있었다. 그래, 변화(지식과 정보의 습득, 재미의 습득)를 위한 좋은 습관을 한 권씩 정리해서 내보자. 그리고 이를 실제 생활 속에서 실천할 수 있도록 돕는 아주 작은 서비스를 제공하자. 그러면 책 판매에도 도움이 될 것이다. 책을 내는 것은 동일하지만 책을 통해 이루고자 하는 가치는 다르다. 그리고 출판을 제조가 아니라 서비스로 해석하는 새로운 시도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나의 출판 비전이 이렇게 만들어졌으니 그 과정이 다소 험난하더라도 나는 버틸 수 있을 것이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인 출판을 시작하다
2019년 9월 나는 회사를 만들었다. 이름은 “좋은습관연구소”. 변화를 만들 수 있는 좋은 습관을 콘텐츠로 제공하고 이를 실제 습관으로 만들 수 있도록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것이 내가 내세운 사명문이었다.
회사의 비전을 정하고 같이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색했다. 평소 알고 지내던 영업자 출신의 선배와 이 주제를 놓고 한참을 토론했다. 하지만 선배는 이렇게 얘기했다. “좋은 취지고 의도인 줄은 알겠는데, 책 내기를 그렇게 형식화하면 기획의 폭이 좁아져 책 만들기 어렵지 않을까? 독자 서비스도 하고 책도 내고 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나는 내 뜻을 굽히지 않고 고집했다. 그때는 막 비전을 세우고 일을 계획하던 시절이라 타협이란 없었다. 그리고 내가 하면 될 것 같았다. 결국 그 선배와는 함께 하지 못하고, 혈혈단신 1인 출판을 시작했다. 이제 와서 하는 얘기지만, 그 선배의 우려와 지적은 어느 것 하나 틀린 게 없었다. 나는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데 1~2년의 시간을 썼다. 그리고 지금까지 총 19권의 책을 냈다.
내가 내고 있는 책은 기본적으로 “습관 시리즈”라는 범주에 속해 있다. 여기서는 첫 번째 책을 내는 과정을 간단히 소개하겠다. 첫 번째 책은 습관의 필요성을 가장 많이 느끼는 영어 회화를 다룬 책이었다. 이 책의 경우 총 20일이라는 기간 동안 매일 10문장을 공부하는 것으로 커리큘럼이 짜여 있다. 20일은 어떤 것을 습관으로 만들기 위한 가장 최소한의 시간이다. 연구소에서는 이 책을 중도 포기 없이 완독할 수 있도록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을 독자 서비스로 운영하고 있다. 출간된 지 2년이 넘은 시점이지만 아직까지도 매달 30명 정도가 학습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책 판매가 여의치 못해 아직 초판도 다 팔지 못했다. 초기에는 독자 서비스가 인기를 얻어 책 판매를 이끌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그것은 그저 이상에 불과했다.
독자들을 관리하는 카카오톡 단체 채팅방
책은 쪽박 아니면 대박이라는 말처럼 우연처럼 베스트셀러라는 기회가 찾아오기도 하지만 서비스는 그렇지 않았다. 성공하는 서비스를 보면 조금씩 계속해서 퀄리티를 높이면서 사용자의 만족도를 유지하고 사용자를 끌어모으기 위한 어마어마한 마케팅 비용을 쏟는다. 그럼에도 사용자의 시간을 점유하고 사용자의 습관이 되는 서비스가 되는 건 쉽지 않다. 물론 그런 전문 서비스 기업들과 내가 경쟁하는 상황은 아니지만, 독자들이 매력을 느끼기 위해선 좀 더 차별적인 요소들이 필요했다.
첫 번째 책을 그렇게 초판도 팔지 못하면서 뒤이어 두 번째, 세 번째 책 모두 유사한 과정을 겪었다. 그리고 모든 책을 독자 서비스가 가능한 책으로 만들기도 어려웠다. 학습의 요소가 강한 책일수록 독자의 니즈도 크고 그걸 서비스로 구현하기도 쉬웠지만, 그렇지 않은 책은 일반 단행본처럼 ‘이런 좋은 습관이 있으니 알아서 열심히 책에 나온 대로 따라해 보세요.’ 정도가 되어버리고 말았다. 창업을 하며 내가 본래 하고자 했던 의도와는 점점 거리가 멀어졌다. 그리고 내는 책마다 초판 수준에서 성적이 맴돌다 보니 더 많은 책을 빨리빨리 내려는 생각이 강해졌고, 이 생각은 책을 펴내는 일과 독자 서비스라는 두 개를 동시에 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나는 고민을 안고 주변 분들에게 의견을 구하기 시작했다.
내 고민을 듣는 분들은 하나같이 하나를 포기하라고 했다. 책을 포기하든지 독자 서비스를 포기하든지. 지금 역량으로는 둘 다 잘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다. 두 가지 모두를 붙들고 있다가는 둘 다 제대로 못하는 일이 생긴다고 했다. 틀린 말이 아니었다. 결단이 필요했다.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아도 이를 실현하는 것은 결국 현실 위에서 작동할 수밖에 없다. 나는 이렇게 생각하고 독자 서비스에 대한 관리를 연구소에서가 아닌 독자 스스로 하는 것으로 체재(體裁)를 바꾸었다.
즉, 이전에는 책을 읽고 책 속 실천 과제(예를 들면, 경제 신문을 읽고 인증하는)를 출결 관리하듯 관리했던 일을 이제는 독자들이 스스로 알아서 하는 방식으로 전환했다. 연구소는 그저 그 터를 열고 닫는 정도로만 시스템을 유지하도록 했다. 대신 습관 콘텐츠 개발에 집중하기로 했다. 결국은 잘 팔리는 책이 나와야 더 많은 독자들을 데리고 올 수 있고, 이들의 습관 만들기도 서비스로 유지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내려놓으니 마음이 좀 편했다. 그리고 ‘좋은 습관’의 브랜딩을 좀 더 체계적으로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사람들이 ‘좋은습관연구소’에 대해 좋은 이미지를 갖고 믿어주는 것이 중요했다. 그래야 이들이 우리가 하고자 하는 서비스에 대해서도 좋은 의도로 받아 줄 거라 생각했다.
브랜딩의 핵심은 첫 번째도 두 번째도 콘셉트에 맞는 책을 잘 만들어 잘 파는 일이다. 나는 어려운 개념을 습관으로 윤색하는 작업 그리고 특정 직군의 습관을 소개하는 일로 방향을 잡았다. 『시장 조사를 잘하는 습관』, 『트렌드를 읽는 습관』, 『돈의 흐름을 읽는 습관』 등이 바로 개념을 습관으로 윤색하는 작업에 해당하는 책들이다. ‘시장 조사가 무엇이다’는 식의 개념과 법칙 대신 ‘시장 조사는 이런 것들을 평소에 꾸준히 반복하는 겁니다’라는 식으로 습관으로 풀어 전달했더니 독자들은 이해하기 쉽고 친절한 책이 나왔다고 했다. 그런 이유 때문이었는지 판매 반응이 좋았고 모두 중쇄 이상을 판매했다. 특정 직군의 습관을 소개하는 책의 경우 『좋아하는 일을 끝까지 해보고 싶습니다』, 『남의 마음을 흔드는 건 다 카피다』, 『결국엔 콘텐츠』 등을 냈다. 이 책들은 각각 번역가, 카피라이터, 방송 PD 직군에서 일하는 작가들이 자신의 직업 세계를 조망하고 그 세계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이런 습관이 필요하다고 알려주는 책이다. 이 책들도 모두 중쇄 이상의 판매 성과를 거두었다.
좋은습관연구소의 책들
이런 식으로 현재 나는 19번째 좋은 습관까지 개발을 마쳤으며 앞으로 100번까지의 좋은 습관 개발을 목표로 하고 있다. 시작할 때는 5년 안에 100번까지 마무리한다는 계획을 세웠지만 벌써 3년을 써버려서 앞으로 도합 10년 안으로는 무슨 일이 있어도 마무리해보려고 한다(1년에 10권을 내는 꼴이다). 과거의 창업 선배들은 10권 정도의 책을 내보면 출판의 생리나 앞으로의 과제 등을 안다고 했고 출판사로서 생존의 교두보는 확보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건 옛날 얘기인 것 같고, 내 경우 100권을 목표치에 두고 100권 이후에 내가 생각했던 출판의 비전과 과제를 재점검하고 사업의 방향성을 다시 점검하고자 한다. 그러니 100권을 내는 그때까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버티고 생존해야 하며, 창업의 뜻을 적어도 책만큼으로는 그때까지 반드시 유지하려고 한다. 10년이라는 시간이 너무 긴 것 아니냐고 하는 분도 있지만 내 능력치로 볼 때는 그 정도는 해봐야 뭔가 좀 알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
길게 말씀드렸다. 창업을 하면서 지금까지 겪었던 수많은 시행착오 중 가장 중요한 비전 설계와 이를 어떻게 해석하고 실현할 것인가에 대해 말씀드렸다. 모두들 꿈을 크게 꾸고 비전을 웅대하게 세우고 시작해야 한다는 말을 한다. 하지만 막상 해보니 그것은 그림 속 이상 같았다. 결과적으로 보면 내가 갖고 있는 자원에 대한 정확한 분석 없이 설계도를 그렸다고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러니 창업의 큰 결심과 다르게 결국은 기존 출판과 크게 다르지 않은 출판을 한 셈이 되었다. ‘이게 올바른 것인가, 유의미한 것인가, 언제까지 이렇게 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지금도 매일 같이 회고를 하고 있다. 큰 회사에 있다가 1인 출판으로 창업을 하면서 가장 많이 한 시행착오도 결국 이 부분이라 해야겠다. 큰 회사에 있을 때는 생각한 대로 다 해냈으니, 지금도 이렇게 하면 될 거라는 생각. 그것은 정말 착각이었다. 설계도가 아무리 멋져도 시공 능력이 없다면 설계도는 아무 소용없다는 걸 뒤늦게서야 체감할 수 있었다.
그러면 나는 왜 출판 대기업 출신인데도 불구하고 시공 능력이 떨어지는 걸까. 이 얘기는 이번 글에서는 다 하지는 못할 것 같다. 어쩌면 이 내용을 듣고자 원고 청탁을 한 건지도 모르겠는데 엉뚱한 소리만 늘어놓은 것 같기도 하다. 만약 다음 기회가 주어진다면, 왜 대형 출판사에서 본부장(실장)의 자리까지 역임했음에도 불구하고 시공 능력 수준은 그것에 미치지 못하는지 처절한 자기반성의 글을 한 번 더 쓰도록 하겠다.
이승현(좋은습관연구소 대표) 2003년 출판계에 들어와 21세기북스, 리디북스, 길벗 등 대형 출판사와 전자책 서점을 거친 다음 2020년 1인 출판사 ‘좋은습관연구소’를 창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