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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9  202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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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서가 말하는 책 이야기
-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만난 ‘책’이라는 마음 백신 -

 

 

 

김은미(이천시립마장도서관 팀장)

 

2022. 02.


 

# 밥을 먹듯 책을 읽는 삶

 

언젠가부터 책을 읽는 것이 불편해졌다. 또렷했던 글자들이 흐릿해지기 시작했다. 드디어 ‘노안’이라는 불청객이 찾아온 것이다. 바늘에 실을 꿰기 위해 바늘을 눈앞에서 최대한 멀리 보내던 할머니의 모습, 신문을 보기 위해 끼고 있던 안경을 위로 올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낯설지 않다. 하지만 급격히 떨어진 시력에도 불구하고 책 읽는 것을 포기할 수는 없다. 이제 곧 돋보기를 맞춰야 할 것 같다. 필자에게 ‘책을 읽는다’는 행위와 ‘밥을 먹는다’는 행위는 크게 다르지 않다. 밥을 먹지 않으면 삶을 유지할 수 없듯이 책을 읽지 않으면 살아있음을 느낄 수 없다고 말한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어디를 가든, 누구를 만나든 필자의 가방 속에는 늘 책 한 권이 들어 있다. 잠시라도 혼자만의 시간이 주어질 땐 늘 책을 꺼낸다. ‘잠들기 전 독서’는 삶의 루틴이다. 그렇게 일 년에 150권 이상의 책을 읽는다. 독서 후에는 좋은 문장을 발췌하고 느낌을 정리해 개인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기고 있다. 개인 SNS에 축적한 사적인 독서 기록은 공적인 영역으로 확장하고 재구성하여 도서관 북큐레이션 코너에 활용하기도 한다. 자료실 내에서 운영하고 있는 ‘마장 크루’s Pick’ 코너와 마장도서관 인스타그램을 통해 소개하고 있는 ‘미미사서의 독서취향’ 코너가 그것이다.

 

망망대해와도 같은 책의 바다에서 도서관 이용자들이 꼭 필요한 책을 적시에 정확히 건져 올릴 수 있도록 길잡이 역할을 하는 것이 사서의 중요한 사명이라고 생각하기에 미미사서의 독서력과 전투력은 매일 매일 상승하고 있다.

 


‘마장 크루’s Pick’ 코너


‘마장 크루’s Pick’ 코너


마장도서관 인스타그램의 ‘미미사서의 독서취향’


마장도서관 인스타그램의 ‘미미사서의 독서취향’

 

# 책 중심의 도서관 프로그램

 

도서관 모든 프로그램의 기본은 ‘책’이 되어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명제이다.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도서관이 타 문화센터와 다른 점이라면 ‘책’이 중심이라는 점이다. 도서관의 모든 프로그램의 종착지는 책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사서의 독서력이 매우 중요하다. 독서력이 뛰어난 사서가 시민들로부터 사랑받는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다.

 

우리 도서관은 이용자들이 책과 친해질 수 있는 방법을 찾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해왔다. 우리 도서관만의 특별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책’이라는 기본에 충실한 결과, 코로나19라는 거대한 장애물을 만난 2020년 이후에 오히려 새로운 기회들과 만날 수 있었고 도전했던 목표에서 좋은 성과를 낼 수 있었다.

 

2020년에는 ‘내 방 안의 도서관’이라는 온라인 카페를 개설해 책 읽기의 다양성을 꾀하였고, 책을 통해 시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응원한 결과 ‘코로나 블루’가 침투할 틈을 내주지 않았다. 또한 “함께 읽기는 힘이 세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오픈 채팅방을 활용한 독서모임을 지속적으로 운영했다. ‘고독한방: 요한 밤 서로 만난 줄 문장의 ’, ‘사먼지책 털기: 놓고 읽지 않아 먼지만 쌓인 책 털기’ 독서모임을 통해 사담이나 잡음 없이 문장을 온전히 흡수할 수 있는 몰입독서를 이끌어 냈다. ‘도서관 책을 활용하지 않는 것’이 참여 규칙이었던 ‘사먼지책 털기’모임은 기획 의도가 참신하다는 찬사를 받으며 폭발적인 반응을 이끌어 냈다. 독서 인구 증가를 위해 무조건 도서관 책을 읽으라고 강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사먼지책 털기’ 참여자들은 다른 책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던 먼지 쌓인 책을 펼칠 수 있어 좋았고, 책을 구입했을 때 혹은 선물로 받았을 때의 설렘을 기억할 수 있어 기뻤다고 얘기했다. 집에 있는 책들의 먼지를 제대로 털었으니 이제 도서관 책장을 한번 털어보겠다고 결심하시는 분들도 계셨다. ‘우리 집 책’ 읽기에서 ‘도서관 책’ 읽기로 독서 영역을 확장시키는 것, 이것이 프로그램을 기획한 의도였고 기대 이상의 성과를 이루어 냈다.

 

이처럼 책 읽기는 자발적이면서 즐거운 활동이어야 한다. 시민들이 즐거운 독서를 할 수 있도록 방법을 모색하고 연구하는 것이 사서의 역할이고, 그 과정에서 사서의 존재감도 확실히 드러날 것이다. 때로는 사서의 역량이 도서관의 수준을 평가하는 중요한 잣대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더욱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사먼지책 털기’ 홍보문과 오픈 채팅방 운영 모습


‘사먼지책 털기’ 홍보문과 오픈 채팅방 운영 모습

 

‘고독한방’ 전시회 모습


‘고독한방’ 전시회 모습

 

# 다독가, 작가와의 만남

 

‘사서는 다독가가 되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이유 중에 중요한 한 가지는 강연자 섭외와 관련이 있다. 시민들과 작가가 만날 수 있는 인문학적 소통의 자리를 만들기 위해 사서는 출판계의 동향과 작가에 대한 정보를 파악하고 있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다독’밖에 방법이 없다. 한정된 예산으로 인지도 있는 강연자를 초청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강연료 기준에 갭이 발생할 경우 섭외 메일의 진정성과 간절함의 정도가 강연 수락 여부를 좌우하기도 한다. 필자는 섭외 메일을 쓰기 전에 가능하면 작가의 전작을 읽으려고 노력한다. 그리고 책 내용을 자세히 언급하며, 작가의 마음이 움직이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팬심을 담아 작품에서 느낀 감동을 표현한다.

 

몇 가지 예를 들어 보겠다. 2021년 말 우리 도서관에 강연자로 오셨던 이재갑 교수님(한림대학교 성심병원 감염내과 교수)은 코로나19 시작과 함께 대한민국에서 가장 바쁘게 활동하시는 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귀한 시간을 쪼개어 우리 도서관 강연자로 오신 교수님께서는 “메일이 너무 감동적이어서 도저히 오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라고 말씀하셨다. 『말하기를 말하기』의 김하나 작가님은 “이거야말로 영화 〈대부〉의 대사처럼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이네요. 일단 두괄식으로 “좋습니다!”라고 호쾌하게 대답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정성 가득한 메일에 감동했어요.”라고 말씀하셨다. 『단순한 진심』의 조해진 작가님은 “제 소설을 좋게 읽어 주셔서, 책임과 사명을 갖고 일하시는 모습에, 사서님의 메일을 읽고 여운이 참 오래 갔습니다.”라고 말씀하시면서 초청을 수락해 주셨다. 번역가 권남희 작가님은 “강연 의뢰 메일을 받고 너무나 놀랍고 감동이었습니다. 저한테뿐만 아니라 의뢰 메일을 보낼 때마다 이렇게 정성을 들여서 보내실 텐데, 정말 대단하시다고 감탄, 감탄했습니다.”로 시작하는 장문의 메일을 보내주셨다. 그러나 쓰는 일과 말하는 일이 같지 않음을 수줍게 고백하시며 강연을 하지 못하는 상황에 진심으로 미안함을 표현하셔서 오히려 필자를 감동시키셨다. 특히 『말 그릇』의 김윤나 작가님 섭외 성공기는 매우 드라마틱했다. 첫 번째 강연 요청에서는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거절할 수밖에 없음을 미안해 하셨다. 이후 시간이 한참 흐르고 『당신을 믿어요』(김윤나, 카시오페아, 2019)를 읽는 도중, 책 속에서 뭔가 낯익은 에피소드를 발견했다. 김윤나 작가님을 섭외하기 위해 필자가 보냈던 메일의 내용이 하나의 사례로 소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반가움과 놀라움이 교차하는 가운데 특별한 인연을 핑계 삼아 작가님을 섭외하기 위한 두 번째 메일을 발송했다. 결과는 성공이었다. 한 권의 책이 소중한 인연으로 연결해주는 ‘붉은 실’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접 경험했던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 도서관과 책방

 

이쯤에서 필자의 진짜 취미를 고백해야 할 것 같다. 필자는 작은 공간이지만 책방지기의 취향과 성향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동네책방을 구경하는 것을 매우 즐긴다. 도서관과는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는 동네책방이 주는 푸근함이 참 좋아서다. 책방에서 우연히 만난 귀한 책 한 권을 사들고 나올 때의 기쁨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온라인 서점에서 장바구니에 담아 결제할 때는 결코 느낄 수 없는 희열이다. 수많은 책들을 스쳐 지나간 후 결국 내 손에 들어온 책 한 권이 주는 의미는 특별하다. 그 특별함은 대부분 깊이 있는 독서로 연결된다. 많은 사람들이 책방 골목을 한가로이 누비고 책을 고르는 풍경이 자주 목격되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이유이다. 영화를 보고, 공연을 감상하는 것과 더불어 책방 투어가 취미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서 책방지기들이 행복한 미소를 지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필자는 우리 도서관 북큐레이션에 활용하기 위한 아이디어와 영감을 동네책방에서 많이 얻었고, 책방에서 현장 수서한 독립출판물을 특성화 도서로 선택해서 장서 구축을 하기도 했다. 필자는 도서관과 책방이 경쟁관계가 아닌 상생관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든 책은 다양한 형태와 의미로 우리들의 삶을 살찌우기 때문이다.

 


동네책방


동네책방
 


독립출판물을 주제로 한 장서 구축 모습


독립출판물을 주제로 한
장서 구축 모습

 

# 책모임과 책 친구

 

비슷한 관심사를 가진 사람들끼리는 쉽게 친구가 되곤 한다. 대화의 주제가 넓고 깊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함께 읽고 토론하는 책모임을 통해 독서력을 키워나간다. 책모임에서 만난 사서와 이용자 역시 좋은 책 친구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책을 권하고, 책 이야기를 나누고, 감동을 서로 공유하다 보면 독서력은 향상되고 친밀도는 높아진다. 책 인연으로 만난 사서와 이용자 간의 끈끈한 연대와 믿음은 도서관이 성장하는 데 있어 든든한 밑거름이 될 뿐만 아니라, 다양한 책모임을 파생시켜 독서 인구 증대에 기여할 수 있다. 좋은 책 친구를 옆에 두고 책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맛있는 음식을 나눠 먹고 좋은 여행지를 공유하는 것만큼이나 삶을 풍요롭게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필자는 여전히 책모임에서 만난 이용자들과 꾸준히 책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좋은 책을 발견하면 소개해 주기도 하고, 새로운 책모임에 대한 아이디어를 공유하기도 한다. 또한 도서관 홍보가 필요할 땐 책 친구들이 총출동하여 일등 홍보대사가 되어 주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르겠다. 그들은 책 친구이자 우리 도서관의 든든한 ‘빽(Back Ground)’이다. 올해는 많은 사람들이 다정한 책 친구 한 명쯤 곁에 둘 수 있었으면 좋겠다.

 

# ‘책’이라는 마음 백신

 

코로나19가 가져온 일상의 변화만큼 도서관 안에서도 새로운 시도와 도전으로 크고 작은 변화가 있었다. 소통과 나눔의 플랫폼이 자연스럽게 온라인으로 이동하였고, 각자의 안전한 공간에서 자유롭게 만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모색이 시작되었다. 도서관은 코로나 팬데믹의 한복판에서, 단절과 중단으로 인한 시민들의 불안을 최소화하고 코로나 블루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마음 응급실 역할을 해야만 했다. 생활 방역과 더불어 마음 방역의 중요성이 강조되었고 그 중심에 도서관이 있었다. 이제는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을 스스로 돌보고 치유해야 하는 시기가 되었다. ‘책’이라는 마음 백신이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여러 번 반복적으로 맞아도 부작용은 없으니까 모두가 기꺼이 마음 백신을 맞기 바란다.

 

여전히 코로나 팬데믹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올해도 직접적인 만남을 통한 교류를 회복하는 것은 쉽지 않을 듯하다. 나의 움직임이 누군가에게 해가 될 수도 있다는 불안감과 공포감은 자연스럽게 멈춤을 선택하게 하고, 그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가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다. 멈춤의 시간을 그저 버텨내려 애쓰기보다는 사람을 향한 따뜻한 시선과 인문학적 관점을 포함하고 있는 책들을 집중해서 읽어보기를 사서로서 권한다. 책 한 권이 주는 묵직한 위로를 경험하다 보면 삶의 태도와 방향에 많은 변화가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김은미 (이천시립마장도서관 팀장)

현재 이천시립마장도서관 팀장으로 재직 중이며 25년차 사서이다. 도서관 일이 여전히 너무 재미있다고 말하며, 새로운 일에 도전하는 것을 즐긴다. 사람을 읽는 사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좋은 사서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 2020년에 국립중앙도서관 주관 제14회 도서관 혁신 아이디어 및 우수 현장사례 공모전에서 최우수상(문체부장관상)을 수상했으며, 2021년에는 한국사서협회 주관 ‘제1회 한국사서상’ 공공도서관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woori74@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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