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1 2018. 10.
세상 끝의 하드보일드 술집에서 - 영화 프로듀서가 출판에게
김정영(영화 프로듀서)
2018. 10.
최근에 일본의 지역영화제를 다녀온 후 도쿄에 들러 세노 갓파의 『작업실 탐닉』이란 책에서 보았던 코미디언 나이토 진이 차린 도쿄의 바를 찾아갔다. 그곳은 회원제라고 일본 프로듀서가 이야기했지만, 기어코 신주쿠 골든가로 들어서서 바의 문을 여니 역시 12개의 의자만 놓인 아주 작은 바였다.
개빈 라이얼의 소설 『심야 플러스 원』(Midnight Plus One)을 너무나 좋아했던 난 문 앞에 서성이며 있으니 동행한 일본 여배우가 들어가서 우리 일행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고 그러니 문 앞에 앉아 계셨던 백발의 할아버지 둘이 나가셔서 겨우 자리가 났다. 들어선 그곳은 온갖 추리소설이 비치되어 있고 각종 독립영화제 포스터와 함께 작가들이 키핑한 위스키들이 늘어서 있었다. 난 눈이 동그랗게 되어 환호성을 지르니 주인이 한국에도 심야 플러스원이 번역되었나 해서 당연히 번역되었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그러니까 그분이 그 책을 말하며 오신 분은 처음이라며 『심야 플러스 원』의 알코올 중독 주인공이 마시는 술을 만들어 주었다. 주인공 케인이 마시던 화이트 버건디를 들이키고 약간 용기를 내어 물어봤다. 사사키 조도 오냐고 하니 사사키 조가 키핑한 위스키를 또 따라 주는 게 아닌가? 이런 횡재가….
이 술집을 알게 된 것은 10여 년 전에 『작업실 탐닉』이란 괴짜 책에서다. 그 책엔 이런 글이 있었다. “책을 많이 읽자! 커피 한 잔만 참으면 문고본을 살 수 있고, 밥 한 끼만 거르면 단행본을 살 수 있다. 책 살 돈이 없는 친구한텐 내가 가진 책을 빌려주면 되고, 어차피 읽는 거 읽은 게 아깝지 않게 내용이 좋은 책은 친구들끼리 서로 추천하면 얼마나 좋은가. 좋은 책을 읽고 감동했으면 독자로서 그 책을 써준 작가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는 상이라도 주는 게 어떤가?” 이러며 코미디언 나이토 진은 ‘일본모험소설협회’를 만들어 초기회장이 되었고 이 ‘심야 플러스 원’이란 술집의 매상은 모험소설협회 자금으로 충당되었다. 그리고 전국의 500여 명의 회원이 모여 미스터리 또는 하드보일드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만든 것이다.
자리가 없어 서서라도 책에 대해 토론한다고 책에 쓰여 있다. 가보니 도호 영화사 직원, 자동차전문 광고감독, 자전거광, 게스트하우스 주인 등등 다양한 추리소설의 팬들이 모여 있었다. 또한 계속 문을 열고 들어오려는 사람들도 뭔가 덕후의 냄새를 피우는 올드보이들이었다. 그들이 모여 아무렇지 않게 책 속의 권총과 총기를 이야기하고 아무렇지 않게 귀신과 요괴의 그림을 감탄하며 보고 벽에 붙은 고전영화 포스터를 봐도 어제 본 듯하게 떠드는 희한한 세상 끝의 바… 신묘한 바….
〈그림 1〉 『작업실 탐닉』 (kyobobook.co.kr 제공)
해마다 한국영화는 약 300여 편을 극장에서 만나게 된다. 그중 원작소설이 바탕이거나 웹툰이 바탕인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지고 아마도 점점 더 비중이 높아지리라 예상된다. 영화의 사이즈가 커지듯이 검증된 베스트셀러로 영화를 만들길 원하는 것은 투자사들의 생리다. 하지만 업계의 가장 짜릿한 것은 아무도 모르는 소설이나 만화원작으로 걸작이 만들어졌을 때의 짜릿함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취향”이 중요하다. 난 취향은 길러진다고 생각된다. 그리고 그 취향이 깊어지고 나누어질 때 기쁨은 배가 된다.
세노 갓파의 책에선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의 작업실을 들여다보며 그들의 취향과 무슨 책을 보는지가 잘 나와 있고 나도 결국은 그 작업실의 단면도를 보다가 올해 드디어 신주쿠로 찾아간 거 아닌가. 이렇게 출판이 취향의 다양함을 잘 찾아내어 나이토 진이 쓴 책 두 권 『읽지 않고 죽을 건가』와 『읽지 않으면 두 번 죽는다』 같은 괴상한 제목의 책들도 좀 출판해주고 개빈 라이얼의 다른 작품들도 물론이고 국내 작가의 많은 미스터리 모험소설들을 발굴하여 세상에 내어 주길 간절한 마음으로 바란다. 혹시 아는가? 나와 내 친구들도 ‘심야 플러스 원’ 서울지부를 만들지도… 당신들과 함께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