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7 2021. 11.
문피아와 밀리의 서재 인수전의 의미와 셈법
서찬휘(대중문화 칼럼니스트)
2021. 11.
지난 2021년 9월 10일, 콘텐츠 업계에 큰 인수 소식이 둘이나 들려왔다. 이날 웹툰 업체인 ‘네이버웹툰’이 웹소설 업체 ‘문피아’의 지분 325만 5,511주(36.08%)를 1천82억 원에 취득하며 1대 주주에 올랐고, 음원 서비스 업체인 ‘지니뮤직’은 ‘밀리의 서재’의 지분 25만 주(38.6%)를 464억 원에 인수해 역시 1대 주주에 등극했다.
이번 인수에서 공교로운 대목은 인수 발표가 난 날이 같다는 점도 있지만 인수된 두 업체 모두 근본적으로는 텍스트 중심 콘텐츠를 다루는 업체라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각기 포털 웹툰과 음원 서비스라는 성격 다른 곳에 안긴 풍경을 보며 그 의미와 각자의 셈법을 짚어 본다.
문피아: 네이버 웹툰 파이프라인의 국내 중심축
문피아를 인수한 곳은 네이버 웹툰이다. 포털 네이버에서 웹툰 서비스를 총괄 운영하는 업체이자, 네이버 웹소설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네이버 웹툰은 바로 얼마 전 카카오 웹툰을 운영하는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와 피 터지는 인수전을 벌이기도 했다. 카카오 엔터테인먼트는 북미권 최초 웹툰 플랫폼인 ‘타파스’와 더불어 역시 북미권 웹소설 플랫폼인 ‘래디쉬’를 인수한 데 이어, 2020년부터 일본의 대형 출판·영상 미디어 그룹인 ‘카도카와’의 지분을 꾸준히 사들여 2021년 1월 517만 8,300주(7.3%)를 확보함으로써 최대 주주에 등극했다. 네이버도 이에 질세라 ‘태피툰’의 운영사 콘텐츠퍼스트의 지분 25%를 334억 원에 사들인 데 이어 북미권 웹소설 플랫폼 ‘왓패드’를 6,532억 원에 통으로 인수했다.
네이버 웹툰, 문피아 로고
이러한 인수전은 네이버와 카카오가 국내만이 아니라 국외에서의 몸집 불리기를 통해 세계를 무대로 하는 웹 기반 스토리 콘텐츠 시장의 주도권을 틀어쥐기 위함이라 할 수 있는데, 문피아 인수도 그중 하나다. 네이버 웹툰과 카카오 엔터테인먼트의 기업 인수 경쟁은 웹툰과 웹소설을 아우르고 있지만, 그 가운데 웹소설에 눈이 가는 까닭은 웹소설이 그 어느 때보다도 IP(지적재산권)로 엮이는 밸류체인의 시작점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주목의 이유는 한때 영상 업계에서 만화를 주목했던 이유와 비슷하다. 과거 영상 콘텐츠를 처음부터 개발하기 위해서는 최소 몇 억 단위부터 시작하는 비용을 들여야 했고 그 결과는 큰 성공 아니면 크게 망하는 것뿐이었다. 영상 업계가 만화를 주목했던 까닭은 처음부터 모험을 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안정적인 인기를 끈 작품을 선택해 영상화하면 팬층을 끌어들임은 물론 실패율을 낮출 수 있다는 계산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근래 웹소설에 주목하는 까닭은 바로 그 만화보다도 담아내는 서사가 분량 대비해 많은데 일러스트 외에는 연출과 작화라는 과정이 별도로 필요하지 않아 제작비 측면에선 한층 더 저렴하기 때문이다. 물론 웹소설은 일일 연재에 5천 자를 최소 단위로 삼아 주 단위인 웹툰보다도 연재 주기가 짧아 작가 개인에게 떨어지는 노동 강도가 절대 약하다고는 할 수 없고, 제작비가 낮다는 게 곧 가치가 낮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텍스트가 주인 소설이 압도적인 분량과 서사량으로 끊임없이 연재 형태로 진행되며 독자의 피드백을 받아내는데 ‘제작비’ 자체만은 영상은 물론 웹툰보다도 적다면 실패율을 한층 더 낮추는 단초로 삼을 수 있다.
자연스레 현재 IP 비즈니스는 웹소설을 웹툰으로, 그리고 이어서 반응을 보아 영상으로 제작하며 셋을 동시에 마케팅하는 전략으로 진행되고 있다. 카카오페이지에 연재되어 만화화와 영상화로 이어진 『김비서가 왜 그럴까』는 이러한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다. 이와 같은 대형 히트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포털 외의 웹소설 플랫폼이 무엇이냐 할 때 문피아가 제격이었던 셈이다. 4만 7천에 이르는 등록 작가 수를 기록 중인 문피아에는 지금도 끊임없이 수많은 웹소설들이 독자의 선택을 기다리고 있고, 포털보다 이용자 수는 적지만 이용자당 매출액은 높은 플랫폼으로서 가파르게 성장 중이다. 문피아에 연재된 대형 흥행 웹소설 『전지적 독자 시점』은 이후 만화로도 제작되었고 현재 영상화가 진행 중이기도 하다.
『전지적 독자 시점』 웹소설, 웹툰 포스터
지금은 인터넷이 연결되는 단말기라면 뭐든 바로 TV화를 시켜주는 넷플릭스, 왓챠 등 OTT(Over The Top) 서비스가 국내외를 막론하고 기존 지상파 및 케이블, 종편 등 TV 채널의 우위를 단숨에 무너뜨리고 있는 시점이다. 콘텐츠 업체들은 얼마나 많은 IP를 보유하고 있는가로 싸우게 되었다. 웹소설은 바로 그 싸움의 최신 무기가 되어 있다. 네이버 웹툰의 문피아 인수는 그런 점에서 문피아가 지니고 있는 충성도 높은 독자층과 질 좋고 다양한 작품들의 라인업을 네이버 웹툰의 주 무기인 웹툰과 연결하면서 북미권의 왓패드와 일본의 ‘라인망가’ 등으로 연결해나갈 국내외 파이프라인의 국내 중심축을 세우기 위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을 KT의 밸류체인으로 돌린다
한편 밀리의 서재는 ePub 기반 전자책으로 제작된 ‘도서’를 정액제 구독 모델로 제공하는 업체로, 소설만이 아니라 비창작 기반 콘텐츠도 대상으로 한다. IP 비즈니스라는 측면에서 보자면 밀리의 서재는 다소 다른 위치에 서 있다. 엄밀히 말해 밀리의 서재가 제공하는 전자책 대부분은 밀리의 서재 전용이 아니라 여타 전자책 서비스에도 제공되고 있어서, 이들 전자책의 내용물로 직접 완전히 다른 매체인 영상이나 만화를 제작할 수 있는 건 아니다. 다만 유독 밀리의 서재가 주목 받는 까닭은 구독형 대여 모델을 적용한 전자책 업체 가운데 대표격이기 때문이다.
음원 기반의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진행하는 업체인 지니뮤직이 텍스트 기반의 전자책 서비스 업체 밀리의 서재를 인수한 건 다소 생뚱맞다는 인상을 주기 충분했다. 하지만 지니뮤직이 밀리의 서재에 눈독을 들인 강력한 동인에는 밀리의 서재가 지니고 있는 주요 기능 가운데 하나인 ‘오디오북’과 이를 구현하기 위한 인공지능, 즉 AI가 있다.
밀리의 서재 오디오북
오디오북은 그야말로 책을 소리로 읽어주는 기능을 뜻한다. 성우나 아나운서, 유명 연예인을 기용해 육성으로 읽어주는 사례도 있지만 어느 업체에서도 그 수가 아주 많지는 않다. 전자책 업체들의 오디오북 상당수는 밀리의 서재 경쟁사인 ‘윌라’처럼 육성 녹음한 오디오북을 전면에 내세운 경우가 아니면 결국 많은 경우 기계 낭독 기능인 TTS(Text-To-Speech) 중심이다. 밀리의 서재는 이 TTS에 AI를 동원해 좀 더 자연스러운 합성음을 지원함과 더불어 1시간 분량으로 책에 대한 요약해설을 해 주는 리딩북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지니뮤직은 이 오디오북 콘텐츠를 음원을 중심으로 하는 자사 서비스에 더하려는 구상으로 밀리의 서재 인수전에 나섰다.
지니뮤직이 스토리성을 지닌 ‘책’까지 오디오 기반으로 서비스할 수 있게 되면 노래에 한정되는 음원을 넘어서는 종합 오디오 플랫폼으로 발돋움할 수 있다는 복안이었던 셈인데, KT는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IPTV 서비스인 올레TV와 OTT인 시즌(SEEZN), 케이블 채널인 SKYTV 등 자사가 꾸리고 있는 계열 서비스 안에 밀리의 서재의 오디오북을 활용한 콘텐츠들을 집어넣으려 하고 있다.
지니뮤직, 밀리의 서재 로고
지니뮤직이 밀리의 서재를 인수한 까닭에는 AI를 이용한 큐레이션과 음성 합성을 활용하기 위한 기초 콘텐츠가 필요했다는 판단도 있었던 듯 보인다. 멜론이 멜론스테이션이라는 오디오북 서비스를 2020년 6월 시작한 시점에서 뒤늦게라도 오디오북 탑재가 필요하기도 했을 터고, 유튜브 뮤직 등이 강점으로 내세우는 큐레이션을 구현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부문에 AI를 활용하는 기술의 도입은 중요했다. 밀리의 서재 인수는 그런 점에서 분명 직접 개발보다는 손쉽게 기능을 얹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문제는 KT가 구축하고 있는 밸류체인이 대중들에게 많은 선택을 못 받고 있다는 점이다. 지니뮤직은 멜론(카카오)와 플로(SKT)에 이어 3대 음원 서비스라고 불리곤 했지만 점유율 면에서 멜론의 반에 못 미치는 15.1%를 기록 중이다. 현재는 새로 등장한 유튜브 뮤직과 스포티파이에도 자리를 위협받고 있는 처지다. 올레TV가 맡고 있는 IPTV는 이미 OTT의 강세 앞에서 지나간 유행이 되어가고 있고, OTT로 내세운 시즌(SEEZN)은 올레TV모바일에서 바꾼 이름이지만 구성 면에서 IPTV와 큰 차이가 없는 상태로 국내 서비스 중인 OTT 중에서는 최하위 급인 2%대 점유율을 보이고 있다.
KT 밸류체인 개념도(출처: KT)
여기에 밀리의 서재는 자회사도 아닌 증손회사로 편성되었다. 다시 말해 밀리의 서재는 KT그룹 → 시즌 → 지니뮤직이라는 지배 구조 말단에 위치한다. 콘텐츠 활용과 이를 위한 투자가 계열사 간에 유기적으로 이루어지기에는 다소 어려운 부분이 있을 수밖에 없다는 분석이 나오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KT '밀리의서재' 증손회사 편성, IPO 앞두고 최선의 선택인가〉, 이진휘 기자, TOP DAILY, 2021.09.13.)
두 업체의 인수전에 비추어 본 콘텐츠 업계의 셈법
네이버 웹툰의 문피아 인수, 그리고 KT의 밀리의 서재 인수에는 여러 가지 결로 해설할 만한 부분이 있지만 결국 미디어 환경 변화에서 점유율 싸움에 대응하기 위한 IP 확보전이자 기술적 대응이라는 점만은 공통점이 있다. 그리고 그 모든 싸움은 비단 네이버 웹툰과 KT만이 아니라 양 사의 동종 콘텐츠 업계가 모두 혈안이 되어 치르고 있고, 또한 모두가 공통된 문제의식을 지니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OTT를 위시한 영상 미디어 채널과의 연결점을 향한 콘텐츠 제작이 필요하고, 이를 담보하기 위한 물량 공세가 필요하며, 나아가 결국은 각 사가 오리지널리티와 권리를 쥔 콘텐츠를 만들거나 확보해내기라도 해야 한다 - 그러지 못하면 곧바로 밀려날 것이다 - 는 점이다. 이는 콘텐츠 제작과 유통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게 된 현 시점 미디어 업계의 숙제다.
단지 무엇을 원작으로 영상화에 성공했다는 것에 기뻐하고 의미를 부여하던 시대의 낭만(?)은 그야말로 구시대의 유물이 되고 있다. 동시다발 연결과 노출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볼 게 이다지도 많은 시대에 대중의 반응은 곧바로 돌아설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만에 하나 이 미디어 전쟁에서 단순하게 접근하려 드는 곳이 있다면 어느 하나도 얻지 못할 것이다. 국내는 물론 국외에서의 파급력을 챙기기 위한 인수전에 연일 불을 뿜고 있는 웹툰 업계의 선택은 그야말로 살얼음판 같은 긴장감을 자아내고 있지만, 전 국민 대상 이동 통신이라는 압도적인 캐시 카우를 지니고 있는 탓인지 미디어 사업에서는 언제나 다소 안일하고 어정쩡한 KT의 선택에는 다소 우려스러운 부분이 있다.
업계에 업체가 난립하고 있다는 건 결국 강고하게 버텨내는 곳으로 정리될 미래가 기다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사람들은 귀찮아하기 때문에 결단코 난립을 좋아하지 않는다. 버텨낸 업체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말 자체는 쉽지만, OTT를 위시한 영상 콘텐츠 업계는 오래지 않아 다가올 게 분명한 자율주행 자동차 시대와 주 4일제로의 노동 환경 변화에 따를 영상·음성 엔터테인먼트 수요 확대를 직시해야만 오롯이 대응할 수 있다. 사람들은 정리된 판세 속에서 더 많고 재미난 콘텐츠를 쉽게 제공받길 원하며, 갈수록 손발이 자유로워질 상황에서도 즐길 수 있을 엔터테인먼트를 필요로 한다. 이번 두 업체의 인수전은 그 과정으로 가는 업체들의 복잡다단한 사정과 일말의 셈법을 엿볼 수 있는 사건이다.
서찬휘(대중문화 칼럼니스트) 만화 칼럼니스트, 만화 창작자, 여행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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