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 2019. 07.
사람들은 왜 어려운 이야기를 찾아 듣나?
최진영(과학과사람들 대표)
2019. 07.
#어른들이 과학에 관심이나 있을까
인간은 진화 과정에서 늦게 배운 일일수록 더 어렵게 느낀다고 한다. 보고, 듣고, 냄새 맡는 일보다 말하는 일이 어렵고, 말하는 일보다는 쓰고 읽는 일이 어렵다. 물론 그것보다는 방정식을 풀고 미적분을 하고 상대성이론과 양자역학을 이해하는 게 인간에게 훨씬 힘든 과제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요지는 인간이 어렵게 느끼는 일의 순서는 인류가 진화 과정에서 얻은 능력의 역순과 대체로 일치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기계는 우리가 어려워하는 일들을 비교적 쉽게 해결하고, 우리가 쉽게 하는 일들을 어려워하는 경향이 있다. 이를테면 로켓의 궤도는 쉽게 계산하는 반면, 고양이와 강아지를 구분하는 건 어려워하는 식이다. 지금은 기계지능(인공지능)이 하는 일과 인간이 하는 일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게 됐지만, 컴퓨터가 초기에 엄청난 속도로 수학 문제를 푸는 것을 봤을 때 사람들이 느꼈을 공포는 충분히 이해가 간다.
괜한 과학 얘기로 잡담을 길게 끄는 걸 보고 짐작하셨겠지만, 나는 과학 팟캐스트(Podcasts)의 진행자이다. 〈과학하고 앉아있네〉라는 팟캐스트에서 최 팀장이라는 별명으로 (성이 최 씨이고 직책이 팀장인데 이걸 별명이라니) 6년째 진행을 맡고 있다.
이 팟캐스트는 ‘과학과 사람들’이라는 곳에서 운영한다. 과학과 사람들이 팟캐스트만 하는 건 아니다. 기업을 대상으로 과학 교육도 하고, 다른 여러 행사도 한다. 하지만 대중과 만나는 일은 주로 팟캐스트와 강연이다. 말 그대로 ‘말로 하는’ 과학이다. 팟캐스트를 처음 시작할 때는 수식도, 그래프도, 우주 사진도 없이 정말 수다만으로 과학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의심도 했다. 하지만 오래전 우리 아버지들의 아버지들이 글자를 발명하기 전에는 정말 중요한 정보들도 동굴에 모여앉아서 말로 전해 들었을 것이다. 어쨌든 말로 못할 건 세상에 없는 것이다.
꽤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이 커뮤니케이션 방식은 의외로 효과적이었다. 우리 팟캐스트는 처음에 회당 다운로드 30만 선에서 시작해서 지금은 평균 회당 80만에 이른다. 사실 우리는 과학을 싫어한 게 아니라 수식과 시험을 싫어한 거였구나, 매일같이 깨닫고 있다.
과학만 이야기한다지만, 그 범위가 정말 넓다. “아기는 어떻게 생겨요?”라는 질문부터 “우주가 가속 팽창한다는 가장 강력한 관측 증거는 뭐죠?”에 이르기까지 그 범주와 수준이 정말 다양하다. 우리가 표방하는 것은 성인들을 위한 과학 콘텐츠, 어른들을 위한 과학 커뮤니케이션이다. 성인들을 위한 과학 콘텐츠라고 해서 ‘아기는 어떻게 생기나요’와 같은 ‘성인’ 콘텐츠를 과학적으로 다룬다는 건 아니다. 우리는 입시가 끝남과 동시에 과학에 대한 관심도 완전히 놓아버린 어른들에게 과학의 재미와 경이감을 되돌려 주는 일을 업으로 삼고 있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부터 책이 필요하다
우리가 하는 일은 처음부터 책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팟캐스트를 처음 시작했을 때 (당시 나꼼수가 회당 천만 청취자를 찍는다는 소문이 흉흉하던, 그야말로 팟캐스터들에게는 최고의 시절이면서 지혜의 시대이자 빛이던 시절) 놀랍게도 사람들이 싫어하는 과학 이야기를 하는 데 매주 몇십만명이 꾸준히 듣는 일이 일어났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냐고? ‘운이 좋았다’고밖에는 답을 못하겠다. 뭐 아주 약간은 우리가 잘한 면도 있었을까? 어쨌거나 자주는 아니어도 가끔은 척박한 분야에서도 콘텐츠가 하나쯤 뜨는 일은 일어나는 법이니까. 이렇게 가끔씩 일어나는 단발적인 성공이 긍정적인 흐름으로 연결되고,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이 적절한 보상을 받으려면 관련 산업 자체가 성장해야 하는데, 과학 콘텐츠 비즈니스의 핵심은 항상 책 그중에서도 단행본 출판이다.
우리나라에도 책이 아닌 과학 콘텐츠 산업이 있긴 하다. 약간의 과학잡지? 과학 다큐멘터리? 하지만 잡지 구독자 수와 다큐멘터리 시청자 수가 얼마나 되겠는가. 과학책 독서 인구의 범위가 단연 훨씬 크다고 할 수 있다. 특히 성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과학 콘텐츠들은 더욱 그렇다. 국내 과학 잡지나 다큐멘터리는 대부분 아동,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교육 시장에 포함된다.
과학책은 읽기 힘들어하고, 과학 강연도 잘 안 듣는 성인들이 우리 팟캐스트를 재미있게 듣는 이유는 뭘까? 아마도 과학을 전문가의 언어에서 일반인의 언어로 일종의 ‘번역’을 해주기 때문일 것이다. 그 역할을 제대로 하려면 해당 분야의 새로운 정보들을 꾸준히 업데이트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우리는 과학 출판계 동향을 부지런히 살피고 국내 과학지식 커뮤니티의 주된 이슈들도 파악하려 애쓴다. 중요한 저자들과 국내 독자들의 관심 방향은 말할 것도 없다.
#잘 몰라도 관심은 있어요
우리는 일주일에 한 번씩 업데이트되는 팟캐스트 외에도 오프라인 과학 강연과 행사 등을 통해 청취자들을 직접 만나기도 하는데, 이 행사는 (간혹 자체 기획도 좀 있긴 하지만) 대개 출판사와 저자들과 함께 진행된다. 과학책의 경우 ‘대박’의 가능성이 크지 않고, 간간이 성공했다고 해도 출판시장에서 흔히 말하는 성공의 규모와는 약간 거리가 있어서, 마케팅 규모와 예산 자체도 좀 작은 편이다.
그러니 해당 콘텐츠에 관심이 있는 성인 독서 인구들이 모여있는 과학 전문 팟캐스트 플랫폼은 출판사들에게 당연히 매력적일 것이다. 게다가 오프라인 행사를 통한 저자와의 직접적인 소통의 요구도 명확한 편이어서, 연사와 주제만 적절히 선택하면 매회 100~200명 정도의 청중들을 동원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다.
참석자들은 주제에 따라 약간씩 다르지만 6대 4 정도로 남성 비율이 높은 편이다. 연령은 30~40대층이 많았다가 최근에는 대학생, 대학원생까지 내려가고 있는 추세다. 가끔 아이를 데리고 오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대체로 성인들이 온다고 보면 무리가 없다. 성비와 연령비는 처음부터 현재까지 큰 변동 없이 (여성이 약간 늘어나는 정도?) 유지되고 있다.
가끔 출판사 분들이 놀라기도 한다. 과학책 강연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올 줄 몰랐단다. 우리나라에 과학에 관심이 많은 이들이 이토록 많았나? 글쎄, 확실한 건 여기 오는 사람들이 모두 과학 ‘덕후’는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과학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입시라는 목적 없이 순수하게 과학의 재미를 느끼고 싶은 사람들이 어른이 되어 다시 돌아오는 풍경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어른의 수학〉 같은 유료 강좌도 진행했다. 시험문제를 잘 풀기 위한 수학 공부가 아니라, 삼각함수, 미적분 등과 같은 수학이 어떻게 우리의 일상 세계에서 도출되었는지를 알려주는 강좌였다.
#사람들은 호기심을 갖고 있다고 믿어라
다음 중 어떤 강의에 가장 많은 사람이 왔을까?
1) 나의 코스모스 : 서울대학교 천문학과에서 정년퇴임하신 노천문학자가 본인의 인생과 천문학을 반추하는 이야기.
팟캐스트나 다른 행사를 진행하다 보면 사람들이 평범한 기획자의 생각과는 사뭇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다는 걸 알게 되면서 겸손해질 때가 있다. (꽤 자주 예상과 다른 결과를 보게 되면 누구나 그런 마음이 든다.) 사람들은 과학을 모르지만, 과학적 성찰을 갈구한다는 것. 학창 시절에 물리와 화학을 끔찍하게 싫어했던 사람도 세상의 본질에 대한 호기심이 없어서가 아니었다는 것 말이다.
앞에서 제시한 질문의 정답은 1번이다. 청중의 수는 1)-2)-3)순으로 많았다. 특히 첫 번째 행사를 함께하셨던 홍승수 교수님의 경우는『코스모스』의 번역자라는 타이틀 외에는 대중적으로 알려질 기회가 많은 분도 아니었다. 소위 스타 지식인과도 거리가 먼 분이셨지만, 정말 많은 사람이 모여들었다. 노(老) 천문학자의 이야기를 들으러 강연장을 빽빽이 채운 사람들은 무슨 얘기를 듣고 싶었을까.
평생 하늘을 바라보고 살아오셨던, 우주의 비밀을 밝혀내려고 하셨던 분의 강의에서 전해 들은 경이감을 나눠 갖고 돌아갔을까? 강의가 끝난 후 청취자들은 감동의 후기를 남겼고, 그전까지는 대중 활동도 거의 없으셨던 (아마 그날이 교수님 인생에서 미적분을 못 하는 사람들을 가장 많이 만난 날 아니었을까) 교수님은 그날 청중의 열기에 대해 두고두고 말씀하셨다고 한다.
사람들은 왜 어려운 책을 사고, 어려운 과학 얘기에 귀를 기울일까? 사람들은 삶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싶어 하고, 그런 의미를 줄 수 있는 ‘만남’을 기다린다. 나는 사람들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는 만남을 기다린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그 사실을 기획자들이 잊으면 우리는 자꾸 유명한 연사나 베스트셀러의 작가처럼 안전하고 비싸고 뻔한 (그래서 다소 지루한) 일들밖에 만들 수 없기 때문이다. 과학책을 만드는 일도 비슷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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