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7 2019. 11.
[서점다이어리 4]
이용주(우분투북스 서점 대표)
2019. 11.
초록색 책방, 노란 불빛의 책방, 먹거리를 파는 서점, 음식과 정원에 관한 책이 많은 책방…
사람들은 저마다의 방식으로 우분투북스라는 책방을 기억한다. 누군가는 책방의 컬러와 분위기를 떠올리는가 하면 또 다른 누군가는 책방에서 발견한 책의 인상으로 책방을 기억에 담는다. 그런가 하면 다른 이는 주인장과 나누었던 대화로 책방의 시간을 기억하며, 어떤 독자는 책방에서 머물며 책을 읽었던 시간과 그때 흘러나온 음악으로 책방의 인상을 간직하기도 한다. 이처럼 책방은 사람들이 저마다 느낀 다양한 요소들이 연결되면서 하나의 이미지로 완성되어 간다.
우분투북스 전경(왼쪽), 우분투북스 테마서가(오른쪽)
우분투북스, 3년의 시간을 넘다
2016년 8월 중순, 어느 화창한 주말 오후. 술집과 음식점이 즐비한 골목에 책방 하나 열었다. 초록색 외관에 간판의 영문 로고만 하얀 색인 책방은 돌출간판 하나 없이 심플한 모습이다. 그렇게 시작한 책방은 어느 덧 3년을 넘겼고, 그 사이 책방 맞은편의 중국음식점은 지난달 네 번째 간판을 바꿔달았다.
3년, 흔히들 소규모 자영업이 성공적인(?) 안착을 가르는 분기점이 되는 시간이라고 한다. 그렇다고 3년을 넘긴 것이 곧 성공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그 시간을 버텨내고 나니 책방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 공간으로서 인지도가 생겼고, 그런 만큼 자주 찾아주는 단골도 늘어났으며, 몇몇 분들은 공간에 애정을 가지고 뭔가 자발적으로 해주시기도 한다.
예를 들면 책방 앞에 화단을 만들고 가꾸어 주시는 분 덕분에 책방은 계절마다 꽃과 풀이 옷을 갈아입으며 싱그러움을 유지한 채 손님을 맞이한다. 그런가 하면 책방에서 내어준 차 한 잔, 책방에서 틀어놓은 음악, 책장에서 우연히 발견한 책 한 권에 감동하여 단골이 되고 자신의 재능을 발휘해 책방 외관을 손수 그림으로 그려 액자에 담아 선물해 주시는 분도 계신다.
그런 분들의 마음과 응원이 오늘의 책방을 만들어오고 3년을 넘긴 지금도 책방을 지키게 하는 힘이다. 3년을 돌아보니 책방이 살아남기 어렵다는 시대에 책을 팔아 책방을 유지한 일이 무엇보다도 감사한 일이요, 책방을 사랑해주고 책방에 소중한 마음과 솜씨를 나누어 주신 분들이 계시니 돈보다 더 중요한 사람을 얻은 셈. 그러니 3년 이후는 그분들의 소중한 마음을 잊지 않고 함께 나누고 성장하는 공간으로 나가기 위해 또 한 걸음 더 내딛는 시간으로 채워지지 않을까.
책방의 일, 업의 본질에 충실하는 것
책방을 시작한 뒤 한동안 많은 분들이 책방에 오셔서 훈수(?)를 두셨다. 커피나 음료를 팔아야 한다거나 책방이 눈에 잘 안 들어오니 돌출 간판을 달라거나 공간을 더 늘려야 한다는 등 책방을 오래도록 곁에 두고 싶은 마음에서 우러난 충고들이다. 지금이야 그런 훈수를 두는 분들이 거의 없지만 돌이켜보면 책방은 책만 팔아서는 먹고살 수 없는 타고난 운명이라는 게 사람들의 공통된 생각임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어서 조금 씁쓸하기도 했다.
그 씁쓸한 태생적 한계에 관한 우려의 목소리를 들으며 약간의 오기(?) 같은 것이 발동했다. 책방이 책으로 먹고살 수도 있음을 증명해보리라는 생각 말이다. 사실 최근 몇 년 사이에 생긴 책방들은 나름의 주제와 개성이 뚜렷한 공간들이 많다. 음식점으로 치면 모든 메뉴가 다 있는 종합 분식점이 아니라 한두 가지 메뉴만 취급하는 전문 음식점인 셈이다. 전문점의 생명은 전문성을 유지하는 것이다. 손익을 맞추기 위해 다른 메뉴를 들이는 순간 전문점의 개성은 사라진다.
우분투북스는 ‘자연, 건강, 음식을 주제로 한 책방’이다. 책방에 갖추어 둔 책의 80% 정도가 그런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 우연히 책방에 들어와 책장을 둘러본 분들도 “여기는 음식 책이나 정원, 나무에 관한 책이 많네요. “하고 느낄 정도다.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흘러 이제 사람들은 우분투북스를 그런 책방으로 기억하고 일부러 찾아온다. 그렇게 찾아와서 책장을 둘러보며 대형서점에서는 보지 못하던 책을 발견하는 기쁨을 맛보고 즐거워한다. 독자가 새로운 책을 발견하고 책의 가치를 알아보는 일은 그 책을 고심해서 들여놓은 책방지기의 기쁨이기도 하다.
매일 책방에 들일 책을 고르는 기준은 자연, 건강, 음식이라는 세 가지 주제에 적합한가 아닌가가 최우선이다. 그런 주제에 맞는다면 그림책부터 인문학, 소설, 사회학은 물론 과학 분야까지 모두 책방에 들여놓을 수 있다. 책방지기가 매일 책방에서 하는 일의 80%는 책을 고르는 일이다. 새로 나온 책을 고르는 데 많은 시간을 들이지만 종종 이미 나온 책들 중에 잘 모르고 있던 책들을 다양한 키워드로 검색하여 검토하고 고르는 일을 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을 고르는 또 하나의 기준이 생겼다. 자주 오시는 단골손님들의 취향에 맞는 책인가 하는 기준이 추가된 것. 즉 사람이 보이고 사람에 맞춘 도서의 선정과 선별이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누군가 ‘좋은 책방의 기준은 좋은 손님’이라고 한 말이 기억난다. 매년 쏟아져 나오는 책은 너무나 많고 아무리 안테나를 세우고 있어도 책의 출간 여부를 잘 모르는 책은 생기게 마련이다. 이럴 때 책방의 독자 중에 특정 분야의 책 가운데 책방지기가 잘 몰랐던 것을 소개해 준다면 책방의 책장은 더욱 풍성해진다.
북큐레이션 강의(왼쪽), 우분투북스 내부 책장(오른쪽)
공간의 힘, 이야기를 담다
책방을 열고 매년 새로운 시도를 하나씩 해왔다. 매년 한 차례 해외의 서점을 탐방하며 안목을 넓히는 일과 그렇게 해외 서점에서 배운 것을 적용해 매년 새로운 서비스를 한 가지씩 늘려가는 것이다.
첫해에는 팜파티, 직거래 장터 등 농촌과 교류를 통해 책방 손님들에게 건강한 먹거리를 나누고 알리는 일을 했다. 제철음식을 생산하는 농가를 소개하고 농산물을 나누는 일은 책방을 시작하며 생각한 ‘건강한 책과 먹거리로 도시와 농촌을 잇는다’는 콘셉트를 실천하려는 노력의 하나였다. 그 뒤 몇몇 2차 가공 농산물은 책방에서 판매도 했고, 그 중 작두콩 차는 환절기만 되면 많은 손님이 찾는 인기 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농가와의 교류나 직거래 장터는 지금도 1년에 두 차례씩 진행한다.
둘째 해에는 도서 구독 서비스인 〈책 정기구독〉을 선보였다. 〈책 정기구독〉은 매월 3~5만원 내외의 책을 책방지기가 직접 골라 개인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방식의 서비스다. 매달 책과 함께 편지를 써서 보내기 때문에 30명 내외로 인원은 제한된다. 인원이 제한되기 때문에 신청하시고 대기하는 분들도 몇 분 계신다. 자신의 취향에 맞는 책을 집에서 받아본다는 편리함과 편지라는 아날로그적인 감성이 우분투북스 〈책 정기구독〉의 매력이다.
셋째 해에는 〈블라인드 데이트북〉 서비스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한 달에 5권 정도로 시작한 서비스는 지금은 월 30여 권으로 늘었다.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책을 선정해 약간의 힌트만 제공한 상태로 포장해 판매하는 방식이다. 제목을 모르고 사야 한다는 부담은 독자의 궁금증과 ‘호기심’으로 작용해 책을 구매하는 요인이 된다. 시간이 지나면서 ‘책을 선물하고 싶은 분들이 ’선물 책‘으로 구매하기도 하는 등 관심이 다양하게 반영되어 꾸준하게 유지되고 있는 서비스다.
책 정기구독 서비스(왼쪽), 블라인드 데이트북(오른쪽)
이처럼 새로운 서비스는 의도된 기획이기보다는 외국의 서점을 탐방하면서 직접 보고 확인한 것들을 적용해 보는 과정에서 시작된다. 책방을 준비하던 해부터 매년 한 차례씩 일본과 유럽, 미국의 책방을 탐방했다. 책방이 어렵다는데 선진국이라고 하는 그들은 조금 나은가? 그렇다면 그들은 어떻게 책방을 운영하는가 등이 궁금해서 직접 찾아가본 것. 그렇게 보고 확인한 것을 책방에서 직접 실험적으로 도입해본 것이 새로운 서비스의 시작이었다. 책방을 하는 많은 분들과 경험을 공유하고 자리가 생길 때마다 나누다 보니 비슷한 서비스를 하는 책방도 늘었다.
책방의 일은 책을 고르고 진열하며 판매를 통해 지속가능한 운영을 담보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책방에 손님이 찾아온다는 걸 전제로 한다. 책방을 찾아올 수 없는 손님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서비스는 책방이 찾아가는 것이다. 〈책 정기구독〉은 바로 책방이 독자에게 찾아가는 서비스인 셈이다. 블로그나 SNS 등 온라인 활동도 책방의 이야기를 널리 알리고 공유함으로써 책방의 서비스를 맛보고 싶은 분들에게 다가가는 방식의 하나인 셈이다.
외부 활동, 경험을 나누다
책방을 시작한 이래 지속적으로 하고 있는 활동 가운데 하나가 외부 강연이다. 책을 고르고, 진열하고 특정한 주제로 서가를 꾸미거나 개인에게 맞춤형으로 제공하는 책 추천 서비스를 운영한 경험을 강의를 통해 나누는 일은 도서관재단에서 일할 당시 우연한 계기로 시작했다. 지금도 한 달에 적게는 2~3회에서 많게는 5회 이상 진행하고 있다. 주로 서점과 도서관, 학교나 기업 및 관련 단체나 기관의 요청으로 이루어진다.
〈북 큐레이션〉을 주제로 한 강의는 책방을 시작하려는 분들은 물론 공공 도서관 사서, 학교 도서관의 사서 교사 분들이 수강 대상이다. 책은 많고 독자들이 책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는 점점 줄어들고 있는 현실에서 어떻게 하면 다양한 책을 독자들에게 좀 더 친근한 방법으로 소개할 수 있을 것인지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다. 책방을 열기 전 후로 매년 한 차례씩 다녀온 해외 서점 및 도서관 탐방을 통해 보고 듣고 경험한 것들도 강의를 통해 소개한다.
사회생활을 시작하고 오랜 기간 출판, 잡지, 도서관 분야에서 일을 한 경험이 개인적으로 책방을 시작하고 책방의 주제와 이슈에 맞는 책을 북 큐레이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외부 강연 요청을 수락하고 강연을 하는 이유 중 하나도 그렇게 책과 관련한 공간들이 다양해진 독자들의 취향을 반영해 적절한 서비스를 제공함으로써 더 많은 분들이 활발하게 공간을 이용하여 공간이 활성화되기를 바라는 마음 때문이다.
때로는 작은 책방을 하나 운영하면서 참 다양한 일을 하고 있구나 싶기도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진 경험을 나누어 책과 관련한 일을 하는 분들이 조금이라도 나은 환경과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면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하자는 마음으로 접근하고 있다.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 활동을 포함한 대전의 책방들과 함께 연대하는 일도 마찬가지다. 각자의 공간에서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함께 풀어야 할 공동의 일은 함께 머리를 맞대고 풀어 가는 것이 ‘우리가 있기에 내가 있다’는 우분투북스 책방의 정신과도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책방을 시작하고 3년의 시간이 흘렀다. 돌아보면 부족하고 아쉬운 점도 많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잘해왔다는 생각이다. 그 사이 전국에 동네책방들도 두 배 이상 늘어나 500개를 넘어섰다. 그런데도 여전히 새로운 책방이 문을 열 준비를 하고 또 문을 연다. 이제 그렇게 규모가 늘어난 책방들이 동네 구석구석에서 자신들의 목소리를 내고 지속가능한 운영을 해갈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3년의 시간으로 안주할 수 없는 이유다. 3년을 건너온 경험과 책방 우분투북스와 함께 해주신 분들의 응원의 힘으로 다시 3년, 다시 5년을 향해 긴 호흡으로 한걸음 한걸음 내딛고자 한다. 우분투!!
〈전국동네책방네트워크〉는 동네책방 활성화와 지속가능한 운영을 위해 전국 80여 개 동네책방이 함께하는 단체입니다. ‘동네책방’은 전국 각지에서 지역 사회와 함께 독서문화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며, 단행본 도서를 주로 취급하는 작은 서점입니다. 여기서 ‘작은’의 의미는 규모의 크고 작음이 아니라 속도와 효율, 자본과 물질만능의 사회에서 조금 더디더라도 함께 천천히 공동체적인 삶의 가치를 추구한다는 뜻입니다. 이용주(우분투북스 서점 대표) 우분투북스 책방지기로 일하며 북큐레이션연구소 소장으로 도서관, 서점 및 학교 등에서 북큐레이션 관련 강의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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