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4 2023. 06.
[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3. 06.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1인 출판은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 영업 등 다방면의 업무를 개인이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 창업으로서는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1인 출판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추세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터. 〈출판N〉에서는 [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를 통해 1인 출판사가 전하는 가감 없는 그들의 출판 도전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지난 4월 런던도서전 한복판에 게시된 영국 대형 출판사 블룸스버리(Bloomsbury Publishing)의 월페이퍼를 보고 한국 출판 관계자들은 반가운 마음에 웃음 지었다. 황보름 작가의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2022) 영문판 표지였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전자책으로 먼저 입소문을 탄 뒤 종이책 출간을 통해 20만 부 이상 판매된 도서였기에 잘 알려진 책이다. 그런데 이 책을 낸 곳이 당시 1년도 채 되지 않은 신생 출판사, 게다가 1인 출판사였다니! 지금까지 분야 1위 도서만 9종, 총 판매 부수 120만 부를 훌쩍 넘긴 베스트셀러 기획자가 독립하여 만든 출판사였다. 그는 어떻게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을까. 파주 명필름 카페에서 클레이하우스 윤성훈 대표를 만나보았다.
대표님이 제 예상보다 젊으셔서 살짝 놀랐어요. 출판 경력이 어떻게 되시나요?
2009년부터 편집자로 일했으니, 14년 정도 된 거 같아요. 저는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신입 시절을 보냈습니다. 현재 지와인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는 김보경 대표님이 당시 웅진지식하우스에서 절 뽑으셨죠. 정말 운이 좋게도 6년 정도 함께할 수 있었는데, 편집자로서의 기본 소양은 모두 김보경 대표님께 배웠습니다. 거기서는 주로 소설이나 에세이 등 문학 편집을 하다가 인플루엔셜과 다산북스로 오면서 분야를 확장했습니다. 짧게 있었지만 인플루엔셜에서는 경제경영서를, 다산북스에서도 처음에는 경제경영서를 하다가 이후에는 인문서를 맡았어요. 인문 팀장을 제일 오래 하긴 했네요.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경험하셨네요. 일부러 분야를 바꾸신 걸까요?
제 의지로 그랬다기보다는 다 회사에서 시켜서 그렇게 된 거죠. 이를테면 다산북스에서도 사실 처음에는 경제경영서 편집자로 일했는데, 대표님이 어느 날 갑자기 제가 경제경영 분야와 맞지 않는다면서 인문 팀장을 하라는 거예요. 이제 좀 경제경영 분야에 적응도 하고 이 분야 저자들과도 가까워졌는데, 갑자기 인문 분야를 맡으라고 하니 당황스러웠죠. 그런데 지나고 보니 대표님 말씀이 다 맞았어요. 모든 게 대표님의 큰 그림이었고, 실제로 인문 분야에서 더 좋은 성과가 났어요. 이처럼 그동안 다녔던 회사에서 여러 기회를 주셨기에 다양한 분야의 도서를 탐색해볼 수 있었고, 저한테 뭐가 더 잘 맞는지도 알게 된 거 같아요. 그리고 성향상 저는 하나를 깊게 탐구하는 스페셜리스트(specialist)가 아니라 두루두루 얕게 조금씩 좋아하는 제너럴리스트(generalist)여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출간하는 게 저한테 더 맞았던 거 같아요.
일반적으로 1인 출판사로 시작하는 경우 분야를 한정해놓는데, 클레이하우스 출간 목록을 보면 전 분야를 아우르는 거 같았거든요. 종합출판사로 운영하게 된 것도 여러 분야를 다양하게 해본 경험과 관련이 있는 거네요. 근로자로 일하시다가 직접 출판사를 운영해야겠다고 언제 결심하게 되었나요?
편집자로 일하며 막연하게 생각한 적은 있지만,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건 다산북스에서 팀장을 맡은 지 3~4년 차 정도가 되었을 때인 거 같아요. 너무 빨리 관리자로서의 역할을 요구받는다는 느낌도 들었고, 회사에 다니면서 해볼 수 있는 건 상당 부분 해봤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김선식 대표님께 비즈니스로서의 출판에 대해 A부터 Z까지 다 배운 게 가장 결정적이었던 것 같아요. 실제로 다산북스 출신의 성공한 창업가가 굉장히 많습니다. 출판인 후배들을 진정으로 위하고 직원들의 성장을 위해 교육과 지원 등을 아끼지 않은 김선식 대표님께 이 자리를 빌려 깊이 감사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편집자로서 저는 머리로만 생각했던 가설을 현실에서 실제 적용해보고 내 가설이 맞았는지 틀렸는지 검증해본 후에 성공률을 조금씩 높여가는 게 제일 재밌었는데, 큰 회사에서 할 수 있는 건 한계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가령 제가 책을 쓰는 것도 하나의 실험인 거죠.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된 책을 종이책으로 펴내는 거나 잘 안 팔렸던 책을 개정해서 출간하는 것도요. 그런데 100명 이상의 직원이 타고 있는 배에서의 실험은 윤리적으로 나쁜 행위일 수도 있습니다. 여러 사람이 걸려 있으니까요. 그런데 저 혼자 하면 상관없죠. 제가 판단하고 제가 책임지면 되니까요. 그래서 상업적인 논리에 철저히 맞는 것도 하고, 가끔은 실험적인 시도도 다양하게 해보고 싶은 마음에 독립하게 되었습니다.
내로라하는 편집자들도 막상 출판사를 차리면 저자 섭외부터 좀 막막한 감이 있잖아요. 그런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사실 회사 다닐 때는 창업 준비를 많이 못 했어요. 제가 팀장을 넘겨줘야 하는 상황이고 사업계획서를 작성하는 연말연시여서 최소한의 좋은 라인업을 남아 있는 팀원들을 위해 준비해두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클레이하우스를 창업하고 제 책이 처음 나왔고, 두 번째 책은 외서였어요. 세 번째는 원고가 없어도 출간할 수 있는 다이어리북이었죠.
다만 한 가지 믿을 구석은 있었는데 김수현 작가님이 『나는 나로 살기로 했다』(2016년 초판 발행)의 계약 기간이 끝나면 개정판을 클레이하우스에서 출간하겠다고 힘을 보태주셨어요. 그리고 사실 편집자 출신은 서점 영업이나 마케팅에 대한 막막함이 있는데, 이 부분은 웅진에서 만난 마케터인 신동익 팀장님이 전적으로 도맡아서 진행해주셨습니다. 거래처 계약, 공급률 협상, 물류회사 선정 등 신동익 팀장님 덕분에 전체적인 시스템 구축이 비교적 초기에 자리를 잘 잡을 수 있었습니다.
창업하고 가장 어려웠던 점은 무엇인가요?
제가 큰 회사만 다녀서 너무 당연히 누려왔던 것들이 사실은 당연한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책이 나오면 전 당연히 신간 매대에 진열되고, 그다음은 자연스레 분야 매대에 진열된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항상 책은 서점에 이렇게 누워 있다는 사실이, 어쨌건 매대에 다 깔리는 게 저한테는 너무 당연했거든요. 그런데 창업하고 나서 보니 저희 책이 신간 매대에 잠깐 있다가 바로 서가에 꽂히더라고요. 저희가 일일이 영업을 해야만 진열되는 거죠. 지금도 서점 관리가 가장 힘든 거 같아요. 그나마 전 직장에서 마케팅과 관련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고, 공격적인 판매비를 책정한 경험도 있었기에 마케팅 비용을 집행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은 없었습니다. 또 마케팅 실무는 모르는 게 너무 많았는데, 앞서 말했듯 다행히 처음부터 신동익 팀장님이 함께해주셔서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었어요.
2022년에 진행했던 송년회 모습.
‘클레이하우스’라는 이름은 어떤 의미로 지으신 건가요?
랜덤하우스랑 좀 비슷한 거 같아요. ‘랜덤(random)’이 ‘무작위로, 닥치는 대로’의 뜻이잖아요. 그게 좀 추상적인 표현이라면, ‘클레이(clay)’는 좀 더 구체화된 상징이에요. ‘점토, 찰흙’을 의미하는데 흙은 뭐든지 될 수 있으니까요. 특정 분야 출판사 느낌이 안 나게 하려고 했어요. 어떤 책을 낼지 한 분야에 가두지 말고 어디로든 확장할 수 있는 이름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인터뷰에 오기 전에 재미 삼아 챗GPT에 클레이하우스가 출판사로서 좋은 이름인지 물어봤어요. 창조성과 유연성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어서 좋은 이름이래요. (웃음)
일하시면서 챗GPT를 많이 활용하는 편이신가요?
저는 제한적으로만 활용해요. 은근히 영어로 이메일을 쓸 일이 많은데, 제가 영어로 마음대로 쓴 다음에 이 말을 제대로 고쳐달라고 요청하면 자연스러운 문장으로 고쳐주더라고요. 지금은 그 정도로만 활용하고 있습니다.
2021년에 창업하시고 현재도 1인 출판사이신가요?
최근에 1명 채용했어요. 올해 1월 2일에 첫 출근을 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클레이하우스에서 나오는 책들이나 마케팅 규모로 보면 1인 출판사라고 예상하기 어려웠거든요. 그간의 행보를 보면 대형 출판사와 작은 출판사의 장점만 뽑아서 효율적으로 책을 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대형 출판사와 1인 출판사를 모두 경험해본 입장에서 작은 출판사의 장단점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이전에 회사 다닐 때보다 지금이 일을 더 편한 방식으로 하는 거 같습니다. 큰 회사는 회의와 컨펌 과정이 굉장히 많은데, 지금은 그냥 제가 결정하면 끝이잖아요. 프로세스 자체가 굉장히 심플해서 효율적이에요. 물론 대형 출판사는 집단지성의 힘을 활용할 수 있는 장점도 있지만, 그게 과하면 오히려 소모적이고 비효율적이죠. 클레이하우스에서는 그런 과정이 없어서 대부분의 의사 결정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진행돼요. 여러 단계의 검증 과정이 필요한 게 아니냐는 질문도 많이 받고, 그 말이 틀린 것도 아니지만, 사실 출판은 누군가의 인사이트로 끌고 가는 면이 좀 더 큰 거 같아요. 또 책이 적게 나오기 때문에 출간하는 모든 책에 100% 힘을 쏟을 수 있고, 마케팅 자원을 투자할 수 있어요. 큰 출판사에서는 내부 경쟁에서 살아남은 전략 도서 위주로 마케팅 계획이 세팅되거든요.
작은 출판사의 최대 단점은 정보의 부재예요. 큰 회사에 있을 때는 그냥 가만히 앉아 있기만 해도 온갖 정보들이 들어와서 업데이트가 되는데, 여기서는 비교적 사람을 많이 만나는 편인데도 확실히 회사 다닐 때보다는 정보량이 적어서 많이 노력하지 않으면 금방 뒤처질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이 들어요.
창업하자마자 1년도 되지 않은 시점에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로 엄청난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이 책은 어떻게 베스트셀러가 된 걸까요?
당시 밀리의 서재에서 ‘이런 책이 있는데 클레이하우스는 소설 출판은 안 하시죠? 그래도 그냥 가볍게 한번 봐주세요’ 하고 제안해왔어요. 저도 소설을 출간할 생각은 딱히 없었는데, 읽다 보니까 작품이 너무 좋은 거예요. 리뷰를 보면 전자책을 먼저 읽은 독자들이 종이책으로 출간해달라고 요청하고 있었고, 소설 시장 트렌드에도 딱 맞는 책이었어요. 그래서 소설을 출판하지 않겠다는 고집을 바로 꺾었죠. 그런데 기대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독자들이 이 책을 읽어줬어요. 정말 운이 좋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열심히 한 건, 그래도 초반부터 마케팅에 굉장히 많은 돈을 썼어요. 저희 회사 규모에서 할 수 있는 마케팅 활동은 다 한 것 같아요. 사실 그렇게 광고를 해도 망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책은 노출이 될 때마다 반응이 왔어요. 그러니까 저희 입장에서는 그냥 좋은 원고가 있었고, 실력 있는 일러스트 작가님과 디자이너 실장님께 의뢰해서 표지를 예쁘게 만들었고 그리고 마케팅에 돈을 쓴 거죠. 특히 서점 이야기이고 책 이야기니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서점에 돈을 쓰면 되겠다’ 싶어서 서점 광고를 많이 했어요. 그러면서 원래 전자책을 읽었던 사람들의 입소문에 새롭게 종이책을 읽은 사람들의 입소문이 더해져 장기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었습니다.
(좌)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표지
작은 출판사가 마케팅 비용을 많이 쓰기가 사실 어렵잖아요. 기준이 있을까요?
기본적으로 모든 책에 어느 정도까지는 다 써요. 그런 다음 반응이 없으면 일정 비용까지만 쓰고 멈추고, 반응이 있는 책에는 계속 더 씁니다. 미리 제가 섣불리 판단하지 않아요. 저희는 상업적인 관점에서 최소 3,000부는 초판 인쇄를 하는데, 어쨌든 이 정도 초판 부수를 소화하려면 마케팅 비용을 어느 정도 쓸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저희 출판사는 다른 1인 출판사보다 BEP(Break-Even Point, 손익분기점)가 높은 편인 거 같아요. 1만 부 팔았어도 적자인 책도 있죠. 사실 제가 일을 그렇게 배워서 다른 작은 출판사처럼 하는 방법이 뭔지 잘 몰라요. 그냥 팔리는 책은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적절한 마케팅 행위가 있어야, 1만 부 팔 책을 3만 부 팔 수 있고, 3만 부 팔 책을 10만 부 팔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더 공격적으로 투자하는 거 같아요. 매출 대비 판매비를 대략 15~20%는 쓰는 거 같습니다. 인건비 등 들어가는 공통비가 적기 때문에, 그 돈을 아껴서 마케팅 비용에 쓰는 거죠. 당연히 저희 방식이 정답은 아니고, 전략적 선택의 문제 같아요.
그래도 어쨌든 지금까지 분야 1위 도서만 9종, 총 판매 부수는 120만 부를 훌쩍 넘긴 베스트셀러 기획자로서 베스트셀러를 만드는 비결이 있을 것 같은데요?
모든 독자는 어떤 책을 읽으면 그 다음 읽을 책을 찾습니다. 기획자가 해야 할 일은 바로 그 다음 책을 기획하는 거지요. 쉬운 예를 들어볼게요. 『창문 넘어 도망친 100세 노인』(요나스 요나손(Jonas Jonasson), 2009)을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을 위해 그 다음에 읽을 책으로 『오베라는 남자』(프레드릭 배크만(Fredrik Backman), 2012)를 출간하는 거죠. 이런 식으로 대부분의 베스트셀러에는 계보가 있어요. 그 계보를 이해하고 지금 인기 있는 책을 읽은 독자가 다음에는 어떤 책을 읽을지 예측하는 것이 상업 출판 기획의 핵심이라고 생각해요.
다른 책을 따라 하라는 게 아니라 그 독자들이 읽을 만한 다음 책을 떠올리라는 의미예요. 그런데 일반적으로 출판사에서는 이런 방식보다는 저자가 원하거나 편집자의 취향에 기대어 기획하는 경우가 더 많은 거 같아요. 이제는 독자가 좋아하는 책을 기획하는 방식으로 사고방식을 약간 전환하면 어떨까 싶어요. 대단히 창의적이거나 독자의 마음을 꿰뚫어볼 필요도 없는 일이에요.
그리고 기획 단계에서부터 어떤 마케팅 플랜으로 이 책을 타깃 독자와 만나게 할 건지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최초의 마케팅 마중물을 염두에 두고 도서를 기획하면, 어떤 책을 내고 어떤 책을 내면 안 되는지 더 명확히 판단이 설 거예요. 지금 제가 하는 이야기는 제가 예전에 다산북스에서 팀장님으로 모셨던 포레스트북스의 김선준 대표님께 배운 내용입니다.
처음에야 자본금을 가지고 시작하니 마케팅 비용을 어느 정도 쓸 수 있겠지만, 그렇게 투자한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이후에는 비용을 쓰기가 쉽지 않잖아요. 어떻게 보면 클레이하우스도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잘 되었기에 이후 책에도 투자할 수 있었다고 보는데요. 그래서 한편으로는 창업 직후 1~2년이 참 중요하지 않나 싶습니다.
네, 제가 하는 방식의 출판에서는 창업 초창기가 참 중요하다고 봐요. 그때 적자가 나더라도 어쨌건 이 출판사의 존재를 저자나 서점에 알려야 자리를 잡을 수 있거든요. 이익 관리는 나중에 하면 되는 거고, 처음에 시작하는 출판사는 인지도를 높이고 영향력을 가지는 게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이런 생각은 인플루엔셜 문태진 대표님께 배운 거예요. 상업 출판사라면 저자에게도 서점에도 ‘이 출판사는 그래도 홍보에 신경을 쓰는 회사네’ 하고 인지되어야 파트너로 인정받을 수 있거든요. 사실 대부분의 저자도 출판사에 가장 바라는 것이 바로 마케팅이에요. 세상에 나온 줄도 모르고 사라지는 책이 얼마나 많아요. 제가 저자라도 책이 나왔는데 출판사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너무 싫을 거 같아요.
클레이하우스가 마케팅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서점 쪽일까요?
일단 지금까지 돈을 쓴 걸로 따지면 그런 거 같은데, 요즘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전 마케팅이에요. 어떻게 하면 대기 독자를 출간 전에 미리 만들 수 있나 생각해요. 그래서 전자책으로 먼저 출간하거나 텀블벅 같은 크라우드 펀딩도 눈여겨봐요. 장기적으로는 모든 책을 ‘전자책 선 출간’할까 고민 중이기도 해요. 전자책이나 텀블벅 등에서 검증을 받은 책만 종이책으로 출간하는 방식도 생각한 적이 있어요.
종이책이 안 팔릴까 봐 전자책 발행을 고민하던 출판사들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있었는데, 출판 환경이 많이 바뀐 것 같습니다. 대표님 역시 전자책 독자와 종이책 독자는 엄연히 다르다고 보시는 거죠?
그것도 그렇고, 책은 원래 입소문으로 파는 거잖아요. 그래서 출판사에서 서평 이벤트도 많이 하고요. 책을 무료로 수십 권씩 제공하는 게 다 입소문을 위한 거잖아요. 독자들이 책을 읽고 온라인 서점에 리뷰도 쓰고 SNS에 포스팅도 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서평 이벤트를 하는 건데, 이 역할을 전자책, 특히 구독제 플랫폼에서 해주는 거 같아요. 심지어 무료도 아니에요. 그리고 공짜로 받아서 읽은 책보다 자신들이 직접 돈을 지불하고 읽은 책에 대한 애정이 훨씬 더 높고 진정성도 있어서 의도했던 입소문도 더 잘 나는 거 같아요. 그러니 안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이처럼 저는 전자책 선 출간이 종이책 판매를 막는 게 아니라 오히려 훨씬 더 증폭시켜준다고 생각해서 특히 소설 분야에서는 적극 활용하고 있습니다.
또 책을 만들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게 있나요?
독자가 완독할 수 있게 만들려고 노력해요. 잘 읽히는 책으로 만들기 위한 과정에 에너지를 많이 씁니다. 요즘에는 표절 이슈가 많아서 저작권 부분도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그리고 최근에 생긴 중요한 기준이 있어요. 국내 독자에 한정하지 않고 글로벌 독자를 염두에 두고 기획을 하고 원고를 살펴봅니다. 세상이 바뀌었어요. 이미 드라마나 영화, 음악 같은 경우는 진작 K-콘텐츠 시대가 열렸지만, 출판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아시아는 말할 것도 없고, 영미권이나 유럽에서도 잘 되는 책이 많아요. 그들이 이제 한국 책을 찾기 시작한 거죠.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흔, 2018)가 영국에서 10만 부 팔렸다고 하잖아요. 한국 도서가 세계 시장에서 기회가 더 많아질 거라고 봐요. 그래서 세계 시장까지 염두에 두고 책을 내야겠다고 더 강하게 생각하게 됐어요.
이번 런던도서전에서 깨닫고 오신 거군요?
영국 블룸스버리 출판사에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를 부스 메인 도서로 엄청 크게 세팅해준 거예요. 그걸 현장에서 딱 보는데, 진짜 런던까지 출장 온 보람이 있더라고요. 덕분에 이 책은 이미 많은 국가에 수출되었는데, 런던 도서전 이후에도 계속 해외 여러 국가에서 연락이 오고 있어요. 그리고 저희 출판사에서 『비가 오면 열리는 상점』(유영광)이라고 6월에 나올 책이 있는데, 이것도 텀블벅에서 2,000만 원 정도 펀딩된 기대작이에요. 아직 출간도 안 됐는데 벌써 6개국(폴란드, 포르투갈, 이탈리아, 일본, 대만, 러시아)에 판권 수출이 되었어요. 출간도 되지 않은 책을 영문 샘플 번역도 하고 영문 프로포절(Proposal) 자료도 만들어, 저희 책 수출을 도와주시는 에이전시에 보내는 등 사전에 노력을 많이 했습니다. 대만에서는 심지어 7개 출판사에서 오퍼를 하는 등 경쟁이 정말 치열했어요. 그리고 폴란드 수출이라니! 뭐랄까, 신인 작가의 첫 책이 국내 출간도 되지 않았는데, 이렇게 판권 수출이 이뤄지는 걸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더라고요. 한국 출판의 위상이 얼마나 높아졌는지 몸소 느꼈습니다.
(좌) 2023 런던도서전 블룸스버리 부스에 전시된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대표님께서는 저자로서 2021년 『나는 도망칠 때 가장 용감한 얼굴이 된다』라는 책을 냈는데요. 출판기획자로서 도망의 기술에 관해 책을 쓴 게 좀 새로웠어요. 출판업계 이야기가 아니라 일반 대중을 타깃으로 한 책이었단 말이죠.
전 평소에도 설레발을 잘 치는 편이라, 그 책도 엄청 잘 될 줄 알았어요. 한 10만 부 팔 줄 알았죠. (웃음) 에세이처럼 개인적인 이야기도 전하면서, 다양한 철학과 문학 콘텐츠에서 오늘을 살아내는 현대인에게 꼭 필요한 삶의 기술을 발견한 책인데, 영미 인문서나 자기계발서에는 이런 책이 많거든요. 그런데 국내 저자가 쓴 도서는 이렇게 혼합 장르가 많지 않아서 한번 도전해봤죠. 쓰면서 진짜 재밌었고, 팔릴 줄 알고 광고도 좀 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제 기대가 과했던 거죠.
왜 안 팔렸다고 생각하세요?
아무도 이 책을 기다리지 않았거든요. 저자인 저만 기다렸다고 할 수 있죠. 이때는 앞서 말한 사전 마케팅을 전혀 하지 못했어요. 그냥 책 내고 서점에 광고한다고 해서 되는 게 아닌데 말이죠. 그리고 몇 년 전만 해도 이런 종류의 책은 카드뉴스를 만들어 포털에 노출하는 식으로 광고하면 판매로 연결이 잘되었어요. 그런데 제가 창업하던 그 시점부터 이런 식의 마케팅 효과가 확 떨어지기 시작한 거 같아요. 그래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우수출판콘텐츠 지원금도 받고, 4개국 판권 수출도 하고, 재판도 찍어서 손해 보진 않았습니다. (웃음)
카드뉴스 마케팅이 이제는 왜 효과가 없어졌을까요?
처음에는 카드뉴스가 콘텐츠로 인식됐다면, 지금은 광고인 게 너무 드러나서 그런 거 같아요. 포털의 인터페이스 변화로 점차 그 영향력이 줄어든 거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이제 그 문법대로 반복해서는 안 된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유명 유튜버 등 이미 팬덤이 있는 작가의 책 말고는 판매가 다 안 된다고들 얘기하는데, 그게 또 확장성이 떨어져서 팬들 사이에서만 소비되고 끝나는 경우가 많거든요. 어떻게든 돌파구를 찾아야 하는데, 사실 저도 요즘 가장 고민되는 지점이에요. 저희가 경험으로 터득한 성공 공식들이 1~2년만 지나도 가치가 없어져서 계속 다른 돌파구를 찾지 않으면 금방 뒤처질 것 같은 두려움이 항상 있어요.
마케팅 비용도 제가 아까 많이 쓴다고 자신 있게 얘기했는데, 가성비가 점점 떨어져요. 광고 효과가 점점 떨어진다는 느낌을 받으니까 ‘내가 언제까지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좀 들어요. 제가 오늘 얘기했던 많은 내용도 저의 원칙이고 제 경험에서 우러나온 출판사 운영 방식이긴 하지만, 이것 역시 시장의 변화에 따라 계속 수정해 나가야겠죠.
출판 환경이 너무 빠르게 변하고 있어서 따라가는 게 쉽지 않다고 다들 말씀하시더라고요. 언젠가 출판사 창업을 하고 싶은 분들에게, 특히 출판사 근로자로 일하고 있는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저도 정말 출판으로 먹고살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굉장히 오래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6~7년 차까지만 해도 전직 시도를 하곤 했었죠. 출판계를 떠나고 싶어서 발버둥 치던 시절이 분명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책을 좋아하는 것에서 좀 벗어나서 이 일을 비즈니스로 보기 시작하면서 세계관이 바뀌었어요. 책도 수많은 사람이 소비하는 하나의 상품임을 인정한 순간부터 돌파구가 좀 보였던 거 같아요.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읽는 사람이 없으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요. 책이 읽히기 위해 뭘 해야 하는지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그걸 잘 가르쳐줄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모든 비즈니스의 본질은 소비자의 문제나 용건을 해결해주는 거거든요. 그런 비즈니스 관점에서 출판 일을 하니, 저자나 편집자가 아니라 독자들의 마음이 보이기 시작했고, 그렇게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책을 하나씩 출간하면서 조금씩 길이 트였던 거 같아요. 제 경험이 그러하니 저는 비즈니스 시선으로 출판업을 보고, 그것을 배울 수 있는 사람과 조직을 찾으라는 이야기를 가장 먼저 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출판에 대한 열패감에 빠져 있거나 자조적인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고, 대신 근거 있는 낙관주의로 무장한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을 많이 만들면 좋을 거 같아요. 누구나 자주 만나고 어울리는 사람들에게 많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나 자신을 그런 환경에 둘 수 있도록 노력하는 거죠. 또 꼰대처럼 보이는 선배일지라도 노하우를 많이 물어보세요. 다들 신나서 자기가 아는 모든 것을 알려주려고 할 거예요. 저도 그럴 거고요. 눈치를 채셨겠지만 제가 이 인터뷰에서 제 노하우인 척 이야기한 것도 다 앞서 실명으로 언급한 훌륭한 출판 선배님들이자 대표님들께 배운 거예요. 그러니 출판에 욕심 있는 분들이라면, 더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배워서 자신만의 영역을 공고히 만들어 가면 좋겠습니다.
겸손함과 자신감 사이를 적절히 오가는 윤성훈 대표를 보며, 1인 출판사인 클레이하우스가 왜 작은 출판사로 보이지 않았는지 알 수 있었다. 멋진 분들에게 잘 배우고 좋은 동료를 만나서 성과를 낼 수 있었다고, 지금 역시 주변 사람들 덕분에 좋은 작품을 만나 운이 좋았다고 그는 이야기했지만, 그걸 ‘우연’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말고 아무도 없을 듯하다. 운도 준비된 사람만이 받을 수 있는 신의 선물 같은 거니까. 인터뷰에 다 담을 수는 없었지만 그의 이야기 곳곳에서, 그가 신의 선물을 받을 자격이 충분해 보였다. 오랜 시간 배우고 익히고 실행해본 ‘노력’이라는 이름으로.
윤성훈 대표
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에서 출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느슨하지만 다정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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