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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20  2021.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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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클럽을 만나다 ②]
독서모임의 변화를 선도하는 트레바리

 

 

 

 

 

2021. 4.


 

 

지난 1년간 우리는 일상의 많은 변화를 경험했다. 그중 가장 크게 실감할 수 있는 것이 바로 ‘비대면’일 것이다. 비대면과 온라인으로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이 점차 당연해지는 가운데, 독서모임도 그 모양의 변화를 꾀하고 있다. 트레바리는 이러한 변화의 선두에 서 있는 독서모임 플랫폼이다. 특히 사회적 거리두기로 각종 모임이 어려워지자 트레바리는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을 진행하며 독서모임의 궤도를 바꾸고 있다. 혁신을 주도하는 트레바리에서 아홉 시즌 동안 클럽장을 맡아오며 온라인으로 독서모임을 처음 진행했던 황두진 대표를 만나봤다.

 

독서클럽 현장 (제공: 트레바리)


독서클럽 현장 (제공: 트레바리)

 

〈출판N〉에 황두진 클럽장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웹진 독자에게 소개와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안녕하세요. 저는 건축가이며 제 이름을 딴 ‘황두진건축사사무소’의 대표입니다. 건축가로서 다양한 활동과 글쓰기를 병행해 오고 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이력서에 건축가와 작가라는 두 개의 타이틀을 넣고 있기도 합니다. 2004년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를 시작으로 2019년 『공원 사수 대작전』까지 여섯 권의 책을 썼습니다. 단행본 이외에 공동저술, 각종 매체 기고문까지 더하면 엄청난 분량의 글을 써온 것 같습니다.
건축가에도 여러 종류가 있지만 저는 ‘연구하는 건축가’가 되고자 했습니다. 지금까지 건축과 관련된 다양한 연구와 조사를 병행해 오고 있는데, 코로나19 이후 혼자 있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한국의 근대건축사를 조금씩 들여다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 비슷한 관심을 가진 분들을 페이스북에서 만나 2020년에는 「건축가 이훈우에 대한 연구」라는 학술논문을 ‘한국건축역사학회’의 학술지인 〈건축역사연구〉에 등재하기도 했습니다.
건축은 여러 사람들과 함께하는 협력 작업이지만 글쓰기는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 차이가 저에게는 큰 즐거움을 줍니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혼자 앉아 글을 쓸 때가 제가 가장 편안하고 행복할 때입니다. 지금까지는 주로 건축을 중심으로 정보와 생각을 전달하는 글을 써왔지만 언젠가는 창작 글쓰기도 해보고 싶습니다. 얼마 전 브런치에 가입하여 조금씩 시도해보고 있기도 합니다.

 

북클럽 커뮤니티 ‘트레바리’에서 클럽장을 아홉 시즌 동안 맡아 독서모임을 이끄셨는데요. 트레바리 소개와 더불어 클럽장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트레바리는 ‘유료 독서모임’을 사업 아이템으로 하는 스타트업 기업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모임을 시작하지만 유지하는 데 어려움을 겪습니다. 트레바리는 이러한 현실을 면밀히 관찰한 결과, 독서모임이 지속적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누군가는 귀찮고 어려운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그것을 사업으로 키워냈습니다. 저는 트레바리에 대해서 각종 매체를 통해 알고 있었지만, 직접적으로 연결된 시기는 현재 트레바리의 양대 거점(‘아지트’라고 부릅니다)의 하나인 안국동 노스테라스 건물 설계자로 참여하면서부터입니다. 이 건물에 트레바리가 들어오면서 기술적인 회의가 필요했는데 그때 대화를 나누다가 클럽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바로 아홉 시즌 동안 운영해온 ‘그래, 도시!’라는 클럽입니다.클럽장의 역할은, 우선 클럽의 취지에 맞는 책을 선정하고 그 책에 대한 발제문을 작성합니다. 이어서 ‘파트너’가 발제문을 최종 정리하는데, 중요한 질문, 진행 시간 등이 적혀 있는 모임의 가이드라인 같은 문서입니다. 트레바리가 학교는 아니지만, 클럽장이 교수라면 파트너는 조교라고 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클럽장은 전체적인 토론을 진행하는데, 멤버들이 활발한 소통을 할 수 있도록 돕는 일종의 퍼실리테이터 역할을 합니다. 동시에 전문가로서 그 책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설명을 하기도 합니다. 트레바리는 멤버 간의 친목 또한 중요하게 생각하는 모임이므로 클럽장은 이에 대해서도 신경을 써야 합니다.

 


통인동 길담서원 외부


트레바리 안국 아지트가 있는 노스테라스 빌딩 (제공: 황두진건축)


노스테라스 빌딩의 단면도


노스테라스 빌딩의 단면도.
트레바리는 2, 3층에 자리 잡고 있다. (제공: 황두진건축)

 

코로나19 감염이 본격화되면서 트레바리도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습니다. 지난해 4월 처음 선보인 ‘랜선 트레바리’는 일주일 만에 정원 200명을 채우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는데요. 이처럼 온라인 독서모임이 성공할 수 있었던 동력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랜선 트레바리에 직접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저희 클럽을 코로나19 상황에 맞춰 온라인으로 운영해봤습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에 비해 아무래도 ‘공간적 비대칭성’이 가능하다 보니 다른 지역에서도 참여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동력이 아니었나 합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온라인 독서모임이 더 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특히 아지트에서 집이 먼 분들은 귀가 걱정 없이 자신의 공간에서 참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그리고 온라인 화면이 주는 평등하고 민주적인 느낌도 변수입니다. 물리적 공간에서는 사람들의 앉아 있는 위치가 미묘한 영향을 주는데, 온라인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원하면 자신의 모습을 감출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같은 콘텐츠를 다루더라도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경험은 다를 수밖에 없고, 그 차이에 따라 선호가 바뀔 수도 있는 것 같습니다. 코로나19 초기에는 온라인이 오프라인의 어쩔 수 없는 차선책으로 생각되었던 반면, 지금은 자체의 ‘물성’이 따로 있다고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 독서모임도 오프라인 독서모임 못지않게 큰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온라인 독서모임과 오프라인 독서모임이 어떻게 다른지, 온라인 독서모임만이 갖는 장점은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두 가지를 모두 해본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가장 큰 차이는 위에서도 언급한 공간 비대칭성입니다. 한 시즌 동안 온라인 모임을 해봤는데, 참여 인원은 줄었지만 그야말로 전국구 모임이 될 수 있었습니다. 오프라인 모임은 아무래도 수도권 지역에 계신 분들만 참여할 수 있는데 반해, 온라인 모임은 어디서나 참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들 가장 편안한 공간에서 편안한 복장으로 참여할 수 있다 보니(물론 화상 프로그램을 이용해서 배경을 가리기도 하지만요!) 늦게까지 이야기가 이어져도 귀가의 부담이 없다는 엄청난 장점이 있습니다. 화상 프로그램에 적응하기에 따라 화면 공유 기능을 통해 다양한 참고 자료를 공유해 가며 모임을 가질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병행하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다만 이 경우 상당히 정교한 기술적인 지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이를 트레바리 측에 계속 건의하는 중입니다.

 

온라인 모임을 준비하며 가장 신경 쓰셨던 부분은 어떤 부분이었나요? 특별히 신경 쓰신 이유도 함께 설명 부탁드립니다.

 

온라인 모임은 오프라인 모임에 비해 조금 더 세심한 준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모임이 시작되기 전 사람들이 입장하는 상황의 경우 오프라인에서는 서로 인사를 나누며 자연스러운 분위기가 형성되지만, 온라인에서는 약간 어색합니다. 그래서 배경 음악을 틀어 둔다거나, 입장 즉시 클럽장이 먼저 인사를 건넨다거나 하는 즉각적이고 세세한 노력들이 필요합니다. 쉬는 시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저는 그때마다 DJ가 되어 음악을 틀곤 했습니다. 요컨대 오프라인 못지않게 친밀감과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다양한 방법을 사용하려 노력했습니다. 모임이 진행되는 중에도 소외되는 분이 없도록 클럽장이 잘 신경을 써야 합니다. 특히 오프라인에 비해 온라인은 서로 직접 만나서 편해지는 과정이 생략된 채 모임이 진행되기 때문에, 어색한 상황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런 상황을 클럽장이 잘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오프라인과 온라인을 통틀어서 아홉 차례나 독서모임을 이끄셨는데요. 그만큼 재미있는 사건이나 좋은 사람들도 많았을 것 같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이나 클럽원이 있으신가요?

 

트레바리의 여러 클럽 중에서도 저희 ‘그래, 도시!’만이 갖는 몇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우선 저희는 클럽 특성상 도시와 건축에 대한 책을 많이 읽기 때문에 번개모임을 겸해서 답사를 많이 다닙니다. 답사는 읽었던 책 내용과 관련해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이고 또 서로 친해질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에 정말 인기가 좋습니다. 저도 이 과정을 통해 평소에 가보지 못했던 곳들을 많이 가게 되었습니다. 코로나19가 끝나면 가까운 외국에 나가볼까 하는 계획도 갖고 있습니다.
또 다른 저희 클럽의 특징은 재가입자의 비율이 높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간 아홉 시즌을 해오고 있는데 그중 대부분을 참석해온 멤버들도 있습니다. 본인들 스스로 농담 삼아 ‘고인 물’, 심지어는 ‘썩은 물’이라고 하시기도 합니다. 오래 하다 보면 ‘클럽장과 멤버’보다는 일종의 ‘지적 동반자’ 같은 느낌이 드는데, 이분들께 특별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습니다.
온라인으로만 모임을 진행했던 시즌에는 답사도 단 한 번 밖에 못 갔습니다만, 그래서 더욱 기억이 납니다. 그때 멤버들은 전국에서 가입한 분들이었기 때문에 대한민국의 중심인 대전에서 모여 답사를 진행했습니다. 서울, 전주, 원주, 부산 등지에서 모인 분들을 보니 정말 감동적이었습니다.

 


통인동 길담서원 외부


김남천의 소설 「경영」과 「맥」을 읽은 후
그 공간적 배경인 충정로 일대를 답사했다. (사진: 황두진)


서울 구도심에 대한 일련의 책들을 읽은 후 세운상가 지하의 세운 베이스멘트를 방문했다. (사진: 황두진)


서울 구도심에 대한 일련의 책들을 읽은 후
세운상가 지하의 세운 베이스멘트를 방문했다.
(사진: 황두진)

 

트레바리는 유료회원제 독서모임이라는 독특한 성격을 갖고 있는데, 이 때문에 회원들은 더욱 열심히 참여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트레바리가 어떤 독서문화를 만들어간다고 생각하시나요?

 

어떤 분들은 트레바리가 사교모임이 아닌지에 대해 묻곤 하시는데, 독서모임 맞습니다. 저는 일부러 아주 두껍거나 어려운 책을 선정하기도 하는데 다들 어떻게든 읽어오시고 토론도 활발하게 합니다. 혼자서는 어려운 일이지요. 트레바리는 독서를 커뮤니티 활동으로 인식하게 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회비를 내도 주어진 시간 내에 일정 분량 이상의 독후감을 제출하지 않으면 모임에 참석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한 불만도 있지만, 트레바리가 독서 클럽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확인시켜주는 제도이기 때문에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얼마든지 책을 읽을 수 있지만, 트레바리가 지향하는 지점은 독후감과 토론을 통해 서로 생각을 교환하며 사고의 폭을 넓히는 것입니다. 이와 함께 책의 내용과 관련 있는 장소를 찾아간다면 더할 나위 없겠죠. 그런 점에서 트레바리는 독서를 사회적 경험으로 확대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추가적으로 유료클럽이기 때문에 모임의 환경이 쾌적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클럽은 독자 발굴과 확대, 더 나아가 출판 산업 진흥에 중요한 역할을 할 것 같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북클럽 활동이 출판계와 독자 사이에 어떠한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하시나요?

 

절대적으로 필요한 역할입니다. 클럽장 대부분이 분야의 전문가들이기 때문에 멤버들은 잘 엄선된 책들을 접할 수 있습니다. 역으로 이러한 과정을 통해 좋은 책들이 좀 더 많은 독자를 확보하게 됩니다. 클럽장 중에는 저자들도 많은데, 이 경우 멤버들은 저자의 이야기를 직접 들어볼 수 있는 장점도 누리게 됩니다. 출판계와 트레바리 같은 독서모임 플랫폼들이 서로 윈-윈하기를 바랍니다.

 

독서모임의 리더이자 글을 쓰시는 한 사람으로서 앞으로 독서문화가 나아가야 할 바람직한 방향에 대해 말씀 부탁드립니다.

 

여러 분야의 책들을 다양하게 읽는 경험과 특정 주제의 책들을 깊이 있게 읽는 경험이 모두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우리에게 정보와 지식도 주지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감성을 자극하는 일도 합니다. 그래서 독서를 다양한 방식으로 할 필요가 있습니다.
또 하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독서와 실천이 병행되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지만, 그에 못지않게 자신이 무언가를 직접 해보는 것이 소중한 경험이 됩니다. 음악을 좋아하면 음악에 대한 책을 읽는 것과 동시에 스스로 악기를 배워보거나 음악회에 자주 가거나 해야 하는 것과 같습니다. 책을 통해서만 인생관이 형성된 사람이 얼마나 편협한지, 영화 〈굿 윌 헌팅〉이 잘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까. 아마 저도 그런 생각 때문에 ‘그래, 도시!’에서 답사를 강조하는 것 같습니다.

 


통인동 길담서원 외부


트레바리에서 주최한 공개 강좌에서 저서인
『무지개떡 건축』에 대해 강의했다. (사진: 황두진)


온라인으로 진행된 시즌 중 근대 도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강경을 방문했다. (사진: 황두진)


온라인으로 진행된 시즌 중
근대 도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는 강경을 방문했다.
(사진: 황두진)

 

마지막 질문입니다. 독자들이 책을 더 좋아하고 가까이 할 수 있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궁극적으로는 독서가가 작가로 변하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이런 과정을 겪었는데 책을 써보는 것이야말로 책을 더 좋아하게 되고 이해하게 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는 좋은 책들을 어마어마하게 많이 필요로 합니다. 누구나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서로 꺼내 놓는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북클럽을 만나다]는 독자발굴과 확대, 더 나아가 국내 출판산업 진흥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국내 북클럽의 선진 또는 성공사례를 소개합니다.

황두진(건축가, 트레바리 클럽장)

196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와 미국 예일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고 미국과 한국의 건축사 자격증을 갖고 있다. 재미건축가 김태수의 사무실을 거쳐 2002년 황두진건축사사무소를 창설했다. 대표작으로는 〈캐슬오브스카이워커스〉, 〈원앤원 63.5〉, 〈춘원당〉, 〈무카스〉 등과 〈시마크 호텔 호안재〉와 같은 일련의 한옥 프로젝트가 있다. 서울시 건축상, 김종성 건축상, 대한민국 공공디자인 대상, 대한민국 한옥 대상 올해의 한옥상 등을 수상했다. 저서로는 『당신의 서울은 어디입니까』, 『한옥이 돌아왔다』, 『건축가 김수근』, 『무지개떡 건축』, 『가장 도시적인 삶』, 『공원 사수 대작전』 등이 있다. 실무 건축가로서는 특이하게도 한국 근대 건축사 논문인 「건축가 이훈우를 찾아서」를 공동 집필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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