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5  2019.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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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남원에서 공동체의 싹을 관찰하다

 

 

 

혼다히로시(일본 도쿄대 인문사회계 연구과·문학부 교수)

 

2019. 07.


 

 

 

공동체의 부활?

 

안식년을 활용해 5월 초부터 전북대학교에 머물고 있다. 이곳을 택한 이유 중 하나는 사회인류학자로서 현장연구를 계속 해온 전북 남원 지역과 가깝기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사나흘 정도는 남원에 간다. 요즘은 이 지역에서 활기를 띠게 된 소위 '공동체' 활동에 관한 연구 자료를 현장에서 수집하고 있다.

 

'공동체'라는 말은 일본의 사회인류학과 사회학 분야에서도 아주 익숙한 말이다. 하지만 쓰기가 참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서구의 커뮤니티 또는 게마인샤프트 개념의 번역어로 도입된 이 말은 동아시아 지역사회 연구에서는 주로 농촌사회의 사회적 통합을 표현하기 위해 쓰여 왔던 용어다.

 

하지만 그러한 통합이 근대화 및 산업화 과정에서 약화되거나 변질됨에 따라 농촌사회의 현실에 그대로 적용하기가 어려워졌다. 실은 나도 1980년대 말부터 한국 농촌을 대상으로 하는 현장연구를 계속 해오면서 이 개념을 어떻게 쓸 것인지를 두고 수시로 고민했다.

 

그런데 요즘 한국 지역사회에서 이 '공동체'라는 말이 다시 각광받고 있다. '공동체 만들기'라든가 '공동체 지원'이라는 용어가 지방행정과 시민운동의 맥락에서 자주 쓰이고 있다. 경우에 따라 '마을'이란 용어로 대체되기도 한다. 일단은 특정 지역에서 활동하는 소규모 집단을 의미하는 듯하지만, 더 넓은 관계망을 가리키는 경우도 있다.

 

이 때는 재래 농촌 마을뿐만 아니라 갖가지 활동을 같이하는 단체나 모임도 포함된다. '공동체 만들기' 또는 '마을 만들기'라는 것은 행정과 민간이 연계해 소규모 집단의 사람들이 같이 하는 갖가지 활동을 활성화시킴으로써 지역 활성화와 주민자치를 촉진시키는 사업이나 활동으로 풀이된다.

 


남원시 공동체지원센터 페이스북 로고


남원시 공동체지원센터 페이스북 로고

 

요즈음 한국의 많은 지방자치체가 그러한 '공동체 만들기'나 '마을 만들기'를 행정 시책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내가 조사하고 있는 남원지역(전북 남원시 일원)에서는 진안군과 완주군 같은 도내 '선진지'에 비해 이런 시책이 늦게 시작됐다. 2017년 7월에 관계 조례가 제정된 것을 시작으로, 2018년 초에는 이 조례에 근거를 둔 중간지원 조직이 남원시 직영으로 발족됐다(이하, '지원센터'라고 함).

 

다만, 유사한 기관으로 문화도시 사업과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는 중간지원 조직들은 이미 설립돼 있었다. 나는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이 지원센터에서 진행되는 프로그램을 방청해 왔다. 프로그램 중에는 '마을공동체 코디네이터 입문과정'이나 '마을활동전문가 양성교육' 등의 교육 과정 및 '마을 계획단'과 '주민총회' 등 주민자치를 지원하는 실천적 프로그램도 들어있다.

 

'코디네이터(코디)'나 '활동전문가'라고 하는 말은 활동 경험이나 활동에 대한 전문 지식 및 기술을 바탕으로 시민운동이나 공익적인 활동에서 촉매 역할을 하는 사람을 말하는데, 요즈음 한국 지역사회에서는 일반적으로 '활동가'라는 말로 지칭된다. 지원센터의 교육과정은 활동가에게 요청되는 지식과 기술을 체계적으로 학습시킴으로써 기존 활동가의 역량 강화와 새로운 활동가의 양성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육을 이수한 (예비)활동전문가들은 마을 계획단 워크숍에 코디네이터로 참여하거나 시 주최의 원탁회의에 진행자나 기록자로 참여하는 등 공동체 활동의 현장에 즉시 투입되기도 한다.

 


마을공동체 코디네이터 입문과정 (출처: 남원시 공동체지원센터 페이스북)


마을공동체 코디네이터 입문과정 (출처: 남원시 공동체지원센터 페이스북)

 

 

 

확대되는 공동체

 

지원센터의 이러한 프로그램을 방청하면서 나는 여기에 모이는 활동가와 예비 활동가들이 참여하는 모임이나 사회활동에 대해서도 조금씩 알게 됐다. 그리고 이 센터의 프로그램과 센터 공간에서의 만남을 통해 이 지역 활동가들의 교류와 연계가 활발해져가는 모습도 가까이에서 보고 있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마을 계획단과 원탁회의에서 '코디' 역할을 하던 한 여성은 놀이와 놀이터를 주제로 한 모임을 만들었다. 여기에 센터 직원인 남성도 가입했다.

 

한편, 남원 시가지 교외에 있는 한 동네에서는 사회복지관에 의한 CO(지역조직화) 사업의 일환으로 골목 놀이터를 5년 전부터 실시해왔다. 이 동네에서는 재작년부터 '마을 모임'이라고 총칭되는 갖가지 모임 활동도 진행 중이다. 최근 놀이와 놀이터 모임과 사회복지관이 손을 잡고 거기에 지원센터와 소비자 협동조합도 참여해서, '남원 놀이터 변화를 바라는 공동 기획특강'이 개최됐다. 연이어 사회복지관이 주최해온 골몰놀이터가 체험학습 위주에서 놀이 중심으로 개편돼 놀이와 놀이터 모임 등의 관련 모임과 고등학생 봉사단의 참여로 실시됐다.

 

한국의 지역사회에서 활동하는 사람들에게는 이러한 빠른 움직임이 흔한 일이며 특필할 만한 일이 아니라고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난 석달 동안 남원의 이러한 활동들을 지켜보면서 나에게는 참으로 현장에서 '공동체'가 만들어져가는 생동감이 인상적이었다. 이러한 '공동체'는 우리 연구자들이 다루어온 공동체와 어떤 연관이 있을 것인가? 그리고 남원과 같은 한국 지역사회에서 이러한 새로운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어떤 함의를 찾아낼 수 있을까? 이번의 현장연구 과정에서 이러한 물음이 서서히 형태를 갖추게 됐다.

 

 

 

개념과 실천의 사이

 

한국 지역사회에서 '공동체(共同體)'라는 말은 당연히 자생적인 어휘가 아니라 아마도 책과 같은 매체를 통해 문어(文語)적인 지식으로 도입된 개념이었을 것이다. 그것도 현실에서 극히 추상화된 개념으로서 말이다. 원어(原語)인 커뮤니티나 게마인샤프트는 서구 사회에서 고유 어휘로 사용돼왔겠지만 사회과학적인 개념으로서의 공동체는 그러한 말로 파악된 사회적 현실을 일단 해체시킨 후 다시 재구성한 관념적인 창조물이었다.

 

다시 말하면, 경험으로서의 공동체는 때로는 삶의 현장에서 생생하게 느껴지기도 하나(예를 들어 같이 어울려서 소통감을 느끼고 하나가 된 것 같은 느낌이라 할까), 사회과학적인 개념으로서의 공동체는 삶의 현장에서 괴리된(추상화된) 표상으로 구축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표상으로 삶의 현실을 포섭하려고 한다면 아마도 모래알처럼 손아귀에서 빠져나갈 것이다.

 

실은 집단과 귀속, 공유된 자원과 규약, 협동적인 활동, 아니면 구성원들 간의 호혜적인 상호 행위 등 공동체 개념을 구성한다고 흔히 언급되는 갖가지 요소들은 어쩌면 객관적으로는 포섭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감지할 수 있는 현상과 추상화된 개념 간에는 쉽게 뛰어넘을 수 없는 거리가 있다. 또한, 거기에 이론적인 시각이 항상 개입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소위 '공동체' 활동의 현장에서는 이러한 경험적으로 파악하기 어려운 개념을 어떻게 수용하고 있을까? 이러한 개념을 수용하고, 거기에 나름의 소원이나 희망을 담고, 실제의 행동으로 옮기고, 또한 그 성과를 평가한다는 것은 상당히 복잡하고 머리가 아픈 일이며 때로는 동어반복("우리 모임이 공동체라고 하면, 공동체 활동이란 바로 우리들이 하는 활동이다.")이나 어긋남("우리 모임은 공동체다. 하지만 공동체로서 아직 역량이 부족하다.")을 초래할 수 있다. '공동체'라는 말 대신에 '마을'이란 고유 어휘를 쓴다 하더라도 현재의 사회적 실천과 과거 '마을'의 현실은 상당히 괴리돼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러한 개념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다.

 

한편, 그러한 현실과의 괴리가 이 모호한 개념에 독특한 힘을 주고 있다는 것도 사실인 것 같다. 사회적인 실천의 현장에서는 사람들이 한편으로는 이 개념에 각기 다른 의미를 부여할 수 있으며, 다른 한편으로는 이러한 담론을 통해 같이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은 남원의 사례만 봐도 다양한 '공동체'를 발견할 수 있다. 재래의 농촌 마을을 기반으로 한 상부상조 활동 및 협동적인 경제활동(마을 사업 등)을 비롯해, 사회적 경제와 협동조합 등의 경제 활동, 그리고 육아 공동체, 놀이 모임, 교육공동체 및 청년협동조합 등 사회복지/교육의 대체 기능을 지니는 활동도 '공동체'로 파악된다.

 

또한 '공동체' 활동은 다양한 모임과 활동의 연쇄적이자 중첩적인 축적을 통해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 즉 인적 네트워크 및 신뢰와 호혜성의 규범)의 형성과 축적을 가능하게 하기도 한다. 그리고 소규모 집단을 기반으로 한 합의 형성과 연대적 행동을 통해 사람들은 시민자치와 풀뿌리민주주의를 꿈꾸기도 한다. 결코 하나의 구심점으로 수렴되지 않는 다양한 활동이 '공동체'나 '마을'이란 이름 아래 이야기됨으로써 활기와 역동성이 생기고 있다고 본다.

 

 

 

남원의 사정

 

여기에 모이는 경력 활동가와 예비 활동가들이 이구동성으로 말하고 있듯이, 지원센터가 이러한 역동성을 촉발시키는 촉매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나도 현장에서 실감하고 있다. 한편, 최근 남원에서 공동체 활동의 네트워크가 순식간에 확산되기 시작한 배경에는 이 지역 나름의 사정이 깔려있기도 하다. 하나는 지원센터가 설립되기 전에 공익성을 추구하는 시민 활동이 이미 상당한 축적을 보이고 있었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예가 생활협동조합(생협)이다. 2006년에 임의단체로 설립된 이 지역의 생협은 2010년에 조합법인으로 개편됐으며, 독립된 매점과 활동 공간도 갖추었다. 남원 시가지 외곽에 잇따라 건설돼가고 있던 아파트 단지에 사는 기혼 여성들이 이 생협 활동의 주축을 이뤘는데, 모임 활동, 음식 교육 활동과 조합원 교육을 통해 활동가 역할을 하는 인재를 착실히 키워왔다. 생협을 포함한 여러 시민단체 활동을 통해 지역사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자 하는 현지 활동가들이 자생적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

 

또 하나의 사정은 지원센터의 갖가지 사업과 센터와 연계된 단체와 모임 활동들이 타 지역에서 남원으로 이주한 사람들에게 이 지역사회에 관여할 수 있는 활동의 장을 열어주고 있다는 것이다. 진학 내지 취업 때문에 도회지에 살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사람, 본인이나 가족의 직장을 따라 이주해온 사람, 전원생활 내지 편안한 생활환경을 찾아 이 지역의 농촌과 시가지로 이주한 소위 귀농 귀촌인 등 이 지역에 연고가 없거나 있어도 지역사회와의 유대가 약해진 사람들이 뜻을 같이하는 이웃과 지역주민들과 만나 같이 뭔가의 활동을 펼쳐나가는 데에 지원센터의 사업과 활동이 확실히 한몫을 하고 있다.

 

또한, 이 지역 특유의 사정으로 지리산 권역에 일찍부터 이주해 정착한 귀농 귀촌인들의 존재도 간과할 수 없다. 지리산 기슭에 자리한 산내면 일원에는 대안적 삶과 공동체를 추구하는 사회운동을 통해 1990년대 말부터 이곳에 연고가 없던 도시 주민들이 속속 유입됐다. 초기 귀농인들은 탁아시설, 방과 후 돌봄, 친환경 상품을 구매할 수 있는 매장 등 대안적인 삶을 실천하는 데에 필요한 환경을 스스로 만들어왔다. 2000년대 중반 이후로는 시골살이를 꿈꾸는 사람들이 다른 경로를 통해서도 유입됐으며, 또한 갖가지 모임 활동도 활발해졌다.

 

이러한 의미에서 산내면 일원은 남원시 권역 안에서도 소위 '공동체' 활동의 선진지라 할 수 있겠다. 지원센터 설립을 전후해 여기에 민영 중간지원조직도 설립됐다. 이 단체의 중개로 남원 시내 시민단체들의 네트워크도 만들어지고 있다. 산내의 활동가들이 지원센터 관련 사업과 활동에 참여하기도 한다. 산내 귀농 귀촌인들에 의해 축적돼온 공동체 활동의 경험과 지식이 최근의 '공동체 만들기'와 어떻게 융합해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앞으로 탐구해 나가야 하겠다.

 

실은 이렇게 몇 달 동안 일상적으로 현장연구에 종사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것은 참 오랜만이었다. 1989년 여름부터 일 년 동안 남원 북서부의 한 농촌에서 현장연구를 했는데, 가까운 곳에 살면서 장기적인 조사를 하는 것은 그 후로 처음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이라고 하듯이 생활의 현장에서 사람들이 '공동체'란 낡은 포대에 어떤 내용을 담으려고 하는지 가까이에서 볼 수 있는 기회가 되고 있다.

혼다히로시(일본 도쿄대 인문사회계 연구과·문학부 교수)

本田 洋. 일본 도쿄대학(東京大學)에서 문화인류학 전공. 박사과정 재학 중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원 인류학과에 유학하며 남원 지역을 중심으로 농촌사회의 사회경제적 변화 및 지속성, 한국 지역사회의 역사와 현황에 대해 사회인류학적인 시각에서 현장연구를 실시해왔다. 2002년도 일본에서 처음으로 한국학 전공 대학원 과정으로 설립된 도쿄대학 대학원 인문사회계연구과 한국조선문화연구전공으로 전임돼 현재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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