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7 2022. 10.
[1인 출판사 인터뷰]
김세나(퍼블리랜서 대표)
2022. 10.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1인 출판은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 영업 등 다방면의 업무를 개인이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 창업으로서는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1인 출판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추세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터. 〈출판N〉에서는 [1인 출판사 인터뷰]를 통해 1인 출판사가 전하는 가감 없는 그들의 출판 도전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애서가(愛書家),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을 뜻하는 말이다. 그의 SNS 프로필에는 “애서가가 만드는 애서가를 위한 책. 녹색광선 발행인”이라고 조금은 담담하게, 또 조금은 담대하게 적혀 있었다. 첫 책이 나온 지 4년도 채 되지 않았는데 문학 덕후들 사이에서 꽤 유명한 출판사로 자리 잡은 녹색광선. 책을 아끼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위한 책은 무엇이고, 그는 어떤 마음으로 출판하고 있는 걸까.
출판 일을 하기 전에는 원래 어떤 일을 하셨나요?
일반 회사에서 직원 교육을 기획하고 진행하는 인사 담당자였어요. 일반적인 HRM(인적 자원 관리, Human Resources Management)과는 조금 다른데, HRM이 비용을 쓰지 않도록 사람들을 통제하는 경향이 있다면, 제가 하는 HRD(인적 자원 개발, Human Resources Development)는 직원들을 격려하고 동기를 부여하는 게 주 업무였어요. 그때 배운 것들이 출판하는 데 도움이 많이 되었습니다. 어차피 출판도 텍스트 작업에만 한정되는 게 아니고 디자이너, 번역가, 서점 MD 등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일이잖아요.
출판사를 하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으셨나요?
인사 업무가 누군가에게 동기 부여한다는 면에서 참 즐거운 일이지만, 스스로 중심이 되는 일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연차가 쌓이니까 그런 부분이 좀 힘들었어요. 40대를 앞둔 상황에서 이 일이 평생 내가 할 일인가 스스로 질문을 던졌을 때 물음표가 그려졌던 거 같아요. 확신이 없었다고나 할까요. 뭘 하면 좋을지 퇴직 3년 전부터 계속 생각했었어요. 그런데 회사 내에서 제가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약간 소문이 나 있었거든요. 그러니까 자기계발서를 권해야 하는 입장인데, 소설을 더 많이 권해서 특이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그래서 내가 진짜 좋아하는 게 뭔지 생각해보니, 뭘 하더라도 책과 관련된 일을 해야겠더라고요.
하지만 처음부터 출판사 창업을 떠올렸던 건 아니거든요. 그 당시는 상암동에 북바이북 같은 동네서점이 많이 생기던 시절이었어요. 퇴직금 받으면 그걸로 공간을 얻어서 서점을 하고 싶었어요. 그런데 서점을 하면 일단 자리 잡을 때까진 계속 한 공간에 머물러 있어야만 할 거 같았어요. 고민 끝에, 서점보다 좀 더 자유롭게 운영이 가능한 출판사 창업을 떠올렸죠.
퇴사 이후, 출판 일을 하기 위해 따로 준비한 게 있나요?
한동안은 그냥 평소에 하고 싶었지만 못했던 걸 했어요. 뭘 하더라도 디자인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공방을 다니면서 일러스트, 포토샵, 인디자인을 배웠어요. 학원을 안 다닌 이유는 제가 학원 스타일은 아니어서 왠지 공방에서 자유롭게 일대일 수업을 해야 더 잘 배울 거 같았거든요. 일주일에 한 번씩 인사동 화실을 다니며 크로키도 했어요. 창의성을 열어주는 시간이 필요할 거 같아서, 6개월 정도는 진짜 그냥 그렇게 학생처럼 디자인 배우고 그림 그리고 하면서 천천히 창업을 생각했던 것 같아요.
표지에 활용된 크로키를 대표님이 직접 그리셨다는 걸 알고 좀 놀라웠는데, 그런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군요. 처음부터 분야는 문학으로 정하고 시작하셨나요?
네, 그건 확고했어요. 제 생각엔 문학이 제가 가장 잘할 수 있는 분야였거든요. 실은 저희 아버지께서 작가이시고, 큰아버지께서 민요 연구를 하세요. 어렸을 때부터 집에서 콘텐츠를 풍부하게 접했죠. 회사에서도 제가 소설책을 권했을 때, “진짜 사고 싶게 만든다”라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출판 관련 경력이 없는 상태에서 책을 만들기까지 쉽지 않았을 거 같아요.
사실 너무 모르니까 막연히 재밌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긴 했어요. 그 당시에 북스피어 김홍민 대표님이 출판 창업자를 위한 수업을 하셨거든요. 거기서 큰 얼개는 배웠어요. 그분이 하시는 말씀이 “확실한 콘셉트가 없으면 창업하지 말라”였거든요. 원고가 좋으니까 책을 내면 잘 팔리겠지, 하고 오는 사람이 많은데 그게 아니라는 현실을 짚어주셨어요. 본인 브랜드로 예를 들어 상세하게 말씀해주셨고, 세일즈 포인트 보는 법 등 경험에서 나온 노하우를 나눠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어요.
첫 책으로 오노레 드 발자크의 『미지의 걸작』을 내놓은 이유가 궁금하네요.
녹색광선의 첫 책 『미지의 걸작』
어쨌든 고전을 하게 된 이유 중 하나는 현실적인 문제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죠. 새로 생긴 출판사에 국내 작가가, 그것도 제 눈높이에 맞는 작가가 원고를 줄 리도 없거니와, 판권 비용도 좀 부담스러웠어요. 퇴직하고 막 시작하는데 비용을 많이 지출하게 되면 실리적이지 않잖아요. 퍼블릭 도메인(Public Domain)*으로 출간이 가능하다는 걸 앞서 말한 수업에서 알게 되었고, 어쨌든 고전이란 건 오랜 시간을 견뎌내고 만인에게 검증받은 원고잖아요. 문화예술계 지인들한테 첫 원고에 대한 자문을 다양하게 구했어요. 그때 『미지의 걸작』을 추천받았죠.
원고를 검토해보니, 이 소설은 19세기에 나왔지만, 21세기에 더 어울리는 이야기인 거예요. 발자크는 19세기 사람임에도 현대미술이 추구하고자 하는 방향을 꿰뚫고 있었구나 싶었고, 특히 예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한테는 흥미를 끌 만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어요.
원고가 2~3개 준비됐을 때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해서 절판된 작품 위주로 닥치는 대로 찾아다녔어요. 그때 슈테판 츠바이크의 『감정의 혼란』까지 준비가 되었는데, 여기서 난관에 부딪혔어요. 실제 물성을 가진 책으로 만들려고 하니 믿을 만한 제작처를 찾기 어렵더라고요. 그 무렵 한 모임에서 꽤 이름 있는 출판사 대표님을 우연히 뵙게 되었고, 제 이야기를 했더니 종이, 인쇄 관련 제작처를 소개해주셨어요. 운이 좋았죠. 물론 제작처에서도 이런 물성을 가진 도서 제작은 처음이어서 ‘이게 시장 반응이 있을까?’라는 물음표가 있었대요. 어쨌든 한 권 정도 빼고는 다 5쇄 이상은 찍었으니 놀랍다고 하세요.
결국 운도 준비된 사람한테 오는 거겠죠? 첫 책이 나왔을 때 독자들의 반응이 뜨거웠던 걸로 기억해요. 물론 워낙 좋은 작품인 덕도 있지만, 녹색광선 출판사가 단기간에 자리 잡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던 건 분명히 디자인과 만듦새 역할이 컸다고 생각하거든요. ‘인스타그래머블 세대’와도 코드가 잘 맞았다고 보고요.
창업할 때 ‘미술 서적 중에는 내가 원하는 북디자인이 존재하지만 일반 단행본 중에는 없구나’하고 생각했죠. 북디자인에 관해 제가 제일 영감을 많이 받은 책들이 예술서거든요. 크기가 크긴 했지만 표지를 패브릭이나 가죽으로 만들고 후가공을 박으로 찍고 사진을 넣는 형태들이 정말 예뻐 보였어요. 그런데 준비하다 보니까 이게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걸 알게 되어 잠시 망설였죠. 그런데 어쩌면 저는 이걸로 큰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예술적인 성취 비슷한 것을 이루고 싶었나 봐요. 그래서 비용이 좀 들고 잘 안되더라도 그냥 내가 애초에 생각했던 대로 만들어보자 했습니다.
제작 관련 리스크가 일반 책들보다는 있는 편인데, 용감하게 시도하셨군요.
맞아요. 제작이 쉬운 책은 아니랍니다. 제작 관련 에피소드를 하나 들려 드릴게요. 표지를 일러스트로만 작업하다가 『타키니아의 작은 말들』을 만들 때 처음으로 다른 종이로 바꿔서 흑백 사진을 출력해봤어요. 그런데 제가 원하는 느낌이 안 나오는 거예요. 두 번 정도 더 시도해보다가 옵셋으로 안 찍고 비용이 훨씬 많이 들지만 디지털로 찍었더니 그 느낌이 나는 거예요. 어쩔 수 없이 책 가격도 17,500원에서 18,800원으로 인상했답니다. 게다가 이 소설은 판권을 사서 작업한 것이기도 했고요.
정가가 18,900원도 아닌 18,800원인 이유가 왠지 있을 거 같은데요?
온라인 서점에서 팔 때는 할인이 되잖아요. 제가 독자라고 가정했을 때 할인된 금액이 16,900원 정도면 가격 저항이 낮을 거 같았어요. 직관적인 판단이었죠. 그렇지만 올해만 해도 종이값이 벌써 3번 올랐고, 제작비도 올라서 앞으로 책 가격을 더 인상해야 할 수도 있어요. 저는 독자로서 원래 책값에 관대한 사람이지만, 그렇지 않은 독자도 많거든요. 그런데 제 솔직한 심정은 책이 지닌 물성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독자님들이라면 가격은 크게 신경 안 쓰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신생 출판사들이 제일 어려워하는 게 홍보 마케팅이잖아요. 책은 나왔는데 어디에 어떻게 알려야 할지 고민이 많죠. 심지어 서양 고전이다 보니 저자를 통한 홍보도 할 수 없었을 테고요. 그런데 녹색광선은 첫 책을 내고 나서 바로 반응이 오기 시작했단 말이죠. 비결이 있나요?
저는 페이스북이 없었으면 아마 출판사 운영을 못 했을 거예요. 그 정도로 초기에 페이스북 친구들에게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신문이나 잡지에 유료 광고를 해도 별로 효과가 없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어요. 저희 책은 제작 단가가 비싼 편인데, 신문사나 잡지사 기자들한테 100부씩 보내는 것은 무의미해 보였어요, 기자님들은 하루에도 수십 권, 수백 권의 도서를 받을 테니까요.
당시 제가 페이스북에 창업기 비슷한 글을 조금씩 올렸는데, 페이스북 알고리즘 때문인지 책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였고, 제 이야기를 재밌어하시더라고요. 발자크에 관한 이야기도 엄숙하게 다루지 않고 캐릭터 사진을 올리면서 ‘연애왕인 동시에 자본을 사랑하는 속물적인 작가’라고 유머러스하게 소개했고요. 소설 소개도 딱딱하지 않게, 흥미를 끌 수 있을 만한 내용을 자주 SNS에 올렸어요. 시간이 좀 지나니 SNS에 저희 책이 소개되길 기다리는 사람이 생겼어요. 잠재 독자들이 보였다고나 할까요. 그러고 나서 첫 책이 딱 나왔는데, 제 예상보다 훨씬 반응이 좋았어요.
‘선 홍보, 후 출간’ 전략을 잘 쓰셨네요.
제 페이스북 친구들이 하나 같이 하는 말이 있어요. 발자크, 츠바이크, 푸시킨 다 이름은 들어봤지만 사적인 이야기는 아는 게 없었는데, 제가 이 사람들의 인간적인 욕망, 기쁨, 슬픔에 관해 공유해주니 좋았대요. 마치 살아 있는 작가처럼 느껴져서요. 제가 그 작가들의 대변인 역할을 한다고 생각하면서 댓글 등으로 많이 응원해주세요. 예를 들어 츠바이크 작업을 할 때는 츠바이크의 유서를 공개했고, 그 유서는 책에도 담았는데 그 유서를 읽고 감동했다는 분들도 많았죠.
푸시킨의 삶을 들여다보면, 이 분이 사랑하는 여자의 명예를 지키고자 결투하다가 죽었거든요. 푸시킨은 굉장한 로맨티스트인데 그 성정이 작품에 반영되었다는 이야기, 러시아 사람들이 실제로 호불호 없이 사랑하는 작가는 푸시킨이라는, 이런 이야기들을 좋아하시더라고요. 거기에 러시아 문학, 독일 문학, 프랑스 음악 등 여러 분야의 전공자들이 자기가 경험했던 문화도 댓글로 달면, 거기에서 파생되는 이야기들이 생기는 거죠.
작품을 둘러싼 또 다른 새 콘텐츠가 생산되는군요. 그렇게 독자들이 남겨준 이야기 하나하나에 반응해주시는 모습이 출판사의 팬을 만드는 마케팅의 바람직한 사례라고 생각했어요. 독자들과 ‘티키타카’를 잘하는 출판사 같다고나 할까요.
네, 좋은 에너지를 서로 많이 주고받아요. 응원하면서 기다리고 있다고 표현해주시는데, 이게 안개 속에 있는 거랑은 진짜 달라요. 우리 책을 기다리는 사람이 있으면 스스로 타임라인을 만들게 되거든요. 그러니까 저한테는 페이스북이 저만의 작은 사무실이자 직장동료들 같아요. 동료들에게 업무 진행 상황을 공유하는 기분으로 페이스북을 하고 있습니다.
문학은 특히 번역이 중요하잖아요. 번역가를 섭외하는 데 공을 많이 들이셨을 거 같은데, 어떠신가요?
『미지의 걸작』은 지인의 도움을 받았어요. 첫 책이 중요하다고 생각했거든요. 출판사로서 자기 색깔을 처음 보여주는 거니까요. 그래서 제 인맥을 최대한 활용했죠.
두 번째 책은 지인 남편의 친구한테까지 가서 부탁했어요. 이게 얼마나 좋은 원고이고, 이 책이 꼭 나와야 하는 이유를 역자님께 전화로 프레젠테이션 한 거 같아요. 그 모습에 역자님이 감명을 받으셔서 해주셨죠. 세 번째부터는 앞서 나온 책들의 퀄리티를 보고 흔쾌히 작업해주셨어요. 그런데 번역가님들이 다들 비슷한 말씀을 하세요. 자기 이름이 박힌 예쁜 책을 소장하고 싶다고요. 그것도 영업 포인트가 된 거 같네요.
인스타그램에 녹색광선 책이 많이 올라온 이유가 다 있는 거겠죠.
인스타그램을 운영한 지는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젊은 독자들의 반응이 어느 정도인지, 어떤 경우에 반응이 오는지 체크하기 위해서 시작했죠. 여기서도 무척 재밌는 분을 만났어요. 어느 날 한 독자님이 메시지를 보내주셨는데, 저희와 잘 어울리는 독특한 책방이 있다는 거예요. 약국이라고 하셔서 한번 가봤죠. 택배로 보내도 되지만 얼굴도장도 찍고 책방을 구경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책을 들고 직접 갔어요. 약사님인데 책을 좋아해서 약국 한가운데 작은 서점을 만들었대요. 공간도 개성 있지만, 이분이 책 홍보를 참 재밌게 하세요. 책방 이름이 ‘아독방(아직 독립 못 한 책방)’인데 유머 코드가 잘 맞아서 책이 나오면 편집자 사인본, 역자 사인본으로 이벤트를 함께 자주 열었어요.
부산의 ‘주책공사’ 책방 사장님도 감정 표현을 열렬하게 해주시는 개성 있는 분인데, 『패배의 신호』 때 새 책이 나왔다고 말씀드렸더니 전화를 주신 거예요. 읽고 눈물 흘렸다고 하시면서 100권 팔겠다고 주문해주셨죠. 진짜 100권을 파시더라고요. 저는 출간 초기에 기세가 그렇게 올라오면 그게 쭉 간다고 믿거든요. 그러기 위해선 동네서점들과 협업하는 게 좋다고 생각하고, 인스타그램은 동네서점과 소통하기 좋은 매체 같아요.
바이럴은 동네서점에서 시작된다고 하잖아요.
네, 맞아요. 책방 주인들을 보면 저와 같은 40대가 많으세요. 제 20대를 떠올려보면 〈키노〉 잡지를 읽고 문화원에 가서 영화 보고 하는 문화적인 감성이 있는데요. 그 감성을 그대로 가진 분들이 책방을 운영하시니까 결이 잘 맞아요. 망원동에 모 번역가님이 운영하는 ‘번역가의 서재’라는 예쁜 책방이 있어요. 4주 동안 진행되는 프로그램이 있는데, 매주 한 번씩 모여서 『마틴 에덴』을 읽고 이야기를 나눈 다음 마지막 주에 영화를 본대요. 영화 좋아하고 책 좋아하는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감성이 저희 브랜드와 잘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녹색광선 출판사 내부 모습
그렇다면 녹색광선의 정체성은 무엇일까요?
최근 한 독자분이 녹색광선을 위한 구호를 지어주셨는데, 이 문장을 듣자마자 너무 마음에 들었답니다. “가치 있는 것은 아름답게, 아름다운 것은 가치 있게!” 검증된 좋은 콘텐츠를 오래 소장하고 싶도록 아름다운 물성을 가진 어떤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녹색광선의 아이덴티티 아닐까요?
그럼 대표님께서는 좋은 콘텐츠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일단 재미가 없으면 안 돼요. 몰입감이 뛰어나면서 여러 방면으로 질문을 던질 수 있어야 합니다. 완독 후 여운이 남아 독자 스스로 생각해보게 만드는 책이 좋은 책 같아요. 또한 물성으로도 충분히 아름다움을 구가할 수 있는 책이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녹색광선 책이 가진 패브릭의 까슬거리는 질감이 좋다는 이야기를 독자들이 많이 하시더라고요. 아무리 콘텐츠가 완벽해도 완벽한 물성으로 담아내지 않았을 때 관심을 끌 수 있는 요소가 줄어든다고 보거든요. 일단 아름다우면 눈길을 끌고, 만져보고, 갖고 싶게 하고, 그래서 독자가 소장을 하게 되면, 좋은 콘텐츠를 접할 기회를 확장한 셈이잖아요. 그런 포인트를 놓치지 않으려고 해요.
발행인으로서 고민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요?
출판사들의 공통 고민 같은데, 좋은 원고를 어떻게 찾고 수급할까를 매일 생각해요. 그런데 그건 괴로움은 아니에요. 어떻게 보면 즐거움이기도 해요. 그런데 정말 사고 싶은 판권이 있으면, 편집자들이 보는 눈은 다 똑같아서 이미 팔린 경우가 많죠. 또 지금은 환율도 엄청나게 올랐잖아요. 얼마 전에도 마음에 딱 드는 원고를 찾았지만 선인세를 우선 헤아려보고 난 뒤 책이 완성되었을 때 어느 정도 흥행할 수 있을까 가늠해 보고는 포기했어요. 마음에 드는 좋은 원고를 현실적인 여건에서 찾는 게 제일 어려운 거 같습니다.
저희 출판사 이름은 에릭 로메르의 영화 제목에서 따왔는데요. ‘녹색 광선’은 해 질 무렵 드물게 볼 수 있는 자연 현상이고, 주인공은 영화 내내 녹색 광선으로 대변되는 어떤 걸 찾아다녀요. 마지막에 어떤 대사도 없이 녹색 광선이 보이면서 영화가 끝나는데, 저는 편집자가 그런 존재인 것 같아요. 끊임없이, 원고를, 녹색 광선 같은 원고를 찾아다녀야 하는 운명!
이런 부분에서 기획자는 모험가랑 비슷한 성향이 있다고 보는데, 그렇기에 건강과 체력에 신경을 많이 써야겠구나 싶어요. 올 상반기에 몸이 조금 안 좋아서 작업을 많이 못 했거든요. 뭔가 귀한 것을 찾아다니려면 내 몸과 건강에 좀 더 신경 써야겠구나 싶었죠.
10년 후의 녹색광선, 어떤 모습이 그려지나요?
어쨌든 평생 할 일을 찾았다는 게 너무 좋아요. 회사에서 했던 일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취감이 있어요. 제가 살아있는 한은 어쨌든 10년 후에도 즐겁게 하고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고요. 한 10주년쯤 되면 그때는 저희 책을 사랑하는 독자님들과 예쁜 공간에서 함께 즐길 수 있는 자리, 아름다운 녹색 감성 같은 파티를 하고 싶어요.
꼭 초대해 주세요. 인터뷰 감사합니다.
박소정 대표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가치 있는 것은 아름답게, 아름다운 것은 가치 있게’라는 모토로 ‘녹색광선’에서 애서가를 위한 책들을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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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세나 퍼블리랜서 대표 출판 전문지 〈기획회의〉 편집자, 이색서점 ‘세렌북피티’ 운영자를 거쳐, 현재는 출판 커뮤니티 ‘퍼블리랜서’에서 출판하는 사람들을 연결하고 있다. 이들이 더 행복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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