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사이드

Vol.17  2020.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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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어느 출판 편집자의 하루

 

 

 

출판인A

 

2020. 12.


 

 

 

작년 초에 방영한 tvN 《로맨스는 별책부록》을 기억하는가? ‘책을 만들었는데, 로맨스가 따라왔다?’라는 카피라니! 현실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사정을 모르는 친구들은 드라마를 보고 매회마다 진짜로 저런 일이 있냐며 얼마나 물어보던지……. 일에 치여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가고, 로맨스는커녕 존재만으로도 행복한 업무 환경을 만들어줄 이종석과 이나영은 더더욱 없는, 현실적인 출판 편집자의 하루를 소개한다.

 

 

 

 AM 07:00 

파주행 셔틀버스는 놓치면 답이 없다

 

졸린 눈을 비비고 일어나 재빨리 씻는다. ‘10분만. 아니, 5분만 더…….’ 침대에 누워 게으름을 피우고 싶지만 안 된다. 차가 없는 뚜벅이들은 파주행 셔틀버스를 놓치면 답이 없다. 월급의 일부를 택시비로 고스란히 토해내고 싶지 않다면 서둘러야 한다. 대충 준비를 마친 뒤 주섬주섬 옷을 껴입고는 ‘파주 출판 단지’로 향하는 셔틀을 타기 위해 집을 나선다.

 

 


시계 이미지


‘아침 5’분과 ‘업무 5분’은 왜 이렇게 다른 걸까?
역시 시간은 상대적인 개념인 게 확실하다.

 

파주로 출근한다는 이야기를 처음 꺼냈을 때, 친구들은 내가 어디 멀리 유배라도 가는 양 걱정했다. 파주는 서울보다 북한이 더 가까운 거 아니냐는 우스갯소리도 했다. 하지만 다녀보니 한 분야의 산업 단지가 형성되어 있다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만큼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동료와 선후배가 한데 모여 있는 것이니. 조언을 얻을 곳도 많고 함께 고민해 줄 사람도 많다. 조금 멀긴 해도 어차피 사람 사는 곳이고, 일하는 곳이다. 교통이 정말 편리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눈에 보이는 단점보다 장점도 많은 곳이다. 혹시라도 위치 때문에 출판인이 되길 망설이는 친구들이 있다면 일단 한번 다녀보고 직접 경험하기를 추천한다.

 

 

 

 AM 08:45 

업무 준비는 역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내리는 것부터!

 

무사히 셔틀버스에 타서 눈을 잠깐 붙이고 나면 어느새 회사에 도착한다. 오늘도 마음을 다잡으며 사원증을 꺼내 들고 (일부러라도) 웃으며 사무실에 들어간다. 컴퓨터를 켜고, 부재중 전화를 확인하고, 아침잠을 깨워줄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까지 준비하면 비로소 진짜 오늘의 업무 준비 완료.

 

 


업무 이미지


직장인들이 왜 그렇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달고 사는지 이제야 이해가 된다.
커피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거였어!

 

 

 

 AM 09:00 

편집자는 생각보다 많은 일을 한다

 

본격적인 업무가 시작되면 내가 가장 먼저 하는 일은 ‘판매량 체크하기’다. 출판은 책이 나오고 바로바로 판매량을 통해 그 결과가 눈에 보이는 산업이다. 독자가 돈을 주고 구입할 만한 가치가 있는 책인지 아닌지, 출간 즉시 그 성패가 드러나는 것이다. 그 점이 이 업의 묘미이기도 하지만, 이로 인해 다소 스트레스를 받는 것도 사실이다.

 

 


판매 그래프 이미지


판매 그래프를 보며 미소 짓는 일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나도 쭉쭉 상승 곡선만 그리는 책을 내고 싶다…….

 

‘한 권의 책만 내는 것도 아니니 너무 판매 부수에 일희일비하지 말라’는 조언을 자주 듣지만, 나는 여전히 판매량에 휘둘린다. 그러나 이것은 내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앞서 말했듯 판매량은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즉각적인 반응을 보인다. 이는 내가 능동적으로 책을 팔아보고자 노력했을 때의 성취감이 될 수도 있고, 반응이 없을 때는 우울감에 빠지기도 하는 양날의 검이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판매가 이루어지지 않았을 때, 독자 탓을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이 책은 정말 좋은 책인데, 바보 같은 사람들이 가치를 몰라보고!’ 같은 소리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이유가 어찌 됐든 독자가 알아주지 못하면 편집자는 고민해야 한다. 내가 책의 어떤 점을 살리지 못했는지, 왜 독자를 소구하지 못했는지……. 선택받지 못했다면 어쨌든 편집자는 제대로 된 포인트를 잡지 못한 것이다. 카피에서든 표지에서든 소개 자료에서든. 나는 그럴 때마다 다음 책은 조금 더 치열하게 고민해야겠다고 반성한다. 물론 반응이 나중에 와서 역주행하는 책도 있고, 판매량이 높진 않지만, 가치 있는 양서도 있다. 그러니 조금은 여유를 가지고 지켜보는 노력도 필요하다는 말에 동의한다.

 

 



업무 이미지

 

이후에는 저작권 문의에 대한 이메일 회신을 하고, 투고 원고를 읽고, 저자에게 원고 피드백을 주고, 다양한 독자 문의에 응대하고……. 미팅이 있는 날에는 저자나 디자이너 등을 만나 책에 대한 이야기로 두세 시간을 훌쩍 보내기도 하며, 감리가 있는 날이면 인쇄소에 나가 직접 감리를 본다. 누군가는 가만히 책만 만지면 되는 직업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편집자는 생각보다 다양한 일을 한다.

 

 

 

 점심 12:00 

때로는 ‘스몰토크’가 기획의 초안이 되기도 한다

 

점심은 나의 힘! 금강산도 식후경이라고, 역시 맛있는 걸 먹어야 힘이 난다. 머리도 더 잘 돌아가는 느낌이고. 점심을 먹고 나면 다른 편집자들과 함께 출판 단지 산책에 나선다. 예전에야 점심을 함께 먹으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지만, 코로나 시대에는 실내에 앉아 말을 많이 나누기도 어려워져 대화와 소통을 위해서라도 산책이 필수가 되어버렸다. 점심 메뉴를 정하는 시간부터 치열한 회의가 시작된다. 돈가스? 어제 먹었고. 부대찌개? 냄새 배서 탈락. 오늘의 메뉴는 콩나물국밥이다!
때로는 점심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이 꿀맛 같은 시간이 자유로운 아이템 회의가 되기도 한다. 업무가 아닌 개인적으로 읽고 있는 책, 관심 있는 작가의 동향, 즐겨보는 유튜브 채널 등을 이야기하다 보면, 자연스레 책으로 만들어보면 좋을 콘텐츠에 대한 이야기로 흘러간다. 때로는 이런 이야기들이 자리에 앉아 회의를 통해 쥐어짜 낸 아이디어보다 더욱 좋은 기획안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참신한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면, 수많은 회의를 잡기 전에 사무실이 아닌 다른 곳에서 환기를 시켜주는 것도 좋을 것 같다.

 

 

 

 PM 14:00 

기획 회의: 도대체 ‘MZ 세대’가 뭔데요?

 

모든 출판사는 기획 회의를 한다. 좋은 기획은 좋은 책을 만드는 첫걸음으로, 가장 중요한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또 기획안은 편집자의 귀중한 총알이기도 하니 아이디어가 떠오를 때마다 메모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좋다. 출판사마다 다르겠지만 우리는 에디터가 기획안을 써오면 먼저 팀 내부에서 회의를 거치고, 기획안이 좋다 싶으면 전체 회의를 통해 출간 여부가 결정된다. 각 에디터가 가지고 온 기획안을 검토하고 나면 대화는 자연스레 ‘요즘 사람들이 관심 있는 것’으로 흐른다.
오늘의 주제는 ‘MZ세대 파헤치기.’
MZ세대(MZ generation). 사전적 의미로는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 출생한 Z세대를 통칭하는 말이다. 이들은 디지털 환경에 익숙하고, 최신 트렌드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남과 다른 이색적인 경험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회사 이미지


MZ세대. 나도 그들이 궁금하다.

 

회의 중에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는데, 어느 출판사의 부장이 사원을 불러 ‘그래서 도대체 MZ세대가 좋아하는 게 뭐냐고’ 물어봤다고 한다. 나 역시 MZ세대에 속해 있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맞고, Z세대는 아니니 ‘반(半) MZ 세대’라고 해야 할까. 내가 만약 그 자리에 섰다면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었을까?
“그래서 MZ세대는 뭘 좋아하는데?”
“네? 글쎄요……. 저도 잘…….”
“MZ세대를 잡아야 산다”라는 말이 농담으로 들리지 않는 것처럼, 이들은 주류 문화를 이끌고 각 분야의 주요 구매층을 장악했다. 그러니 그들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확실히 필요하다. 그러나 새로운 세대를 이해한다는 게 노력만으로 되는 일일까? 답답한 부장님의 마음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다. 아마 그분도 그렇게 해서는 제대로 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으리라.
출판계 혁신을 위한 단초는 여기서 발견할 수 있다. 물이 고이지 않고 계속해서 흐르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각과 신선한 아이디어를 내놓고, 주요 소비층인 또래 독자의 요구를 앞서 파악할 수 있는 젊은 피가 많이 들어와야 한다. 특히 출판업은 트렌드를 읽어내고 민감하게 반응해야 하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성공 경험이 많은 훌륭한 선배와 새롭고 신선한 시각으로 책을 바라보는 후배, 그리고 이들이 책에 대해 자유롭게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조직문화가 필요하다.

 

 

 

 PM 16:00 

한 권의 책을 만든다는 것

 

오후가 되어서야 비로소 ‘본업’을 시작한다. 원고를 살펴보며 여기저기 다듬고 정리하는 일. 사실 날것의 원고를 읽는다는 건 꽤 피로감이 쌓이는 일이다. 어미를 바꾸고, 조사를 넣었다 뺐다가, 저자가 써 내려간 내용이 사실인지 사실관계 확인도 해야 한다. 그래서 많은 편집자들이 오늘도 한 글자를 가지고 고민에 고민을 거듭한다. 남들은 그런 것쯤 독자들은 아무 신경도 안 쓴다고 말하지만, 그래도 편집자는 ‘아’ 다르고 ‘어’ 다른 그 느낌을 누구보다도 더 잘 캐치하는 사람들이니까. 이런 고민이 때론 피곤하긴 해도 즐겁고 유쾌한 고민이라고 생각한다.

 

 



책 이미지

 

편집자로서의 즐거움 중 하나는 다양한 세상을 들여다볼 수 있다는 점이다. 자기계발서를 맡으면 나도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과 성공을 갈망하는 동기부여를 받고, 심리서를 맡으면 원고의 내용이 꼭 나를 향해 하는 말처럼 느껴져 마음의 위로를 받곤 한다. 다양한 미시사를 다룰 때도 내 안의 세계를 넓혀가는 재미가 있다.

 

 

 

 PM 18:00 

저녁이 있는 삶은 내 체력에 달렸다!

 

야근을 하는 경우도 있지만 나는 되도록 정시에 퇴근하려 노력하는 편이다. 야근을 자주 하다 보면, 야근이 습관이 되기도 하고, 낮 동안 약간 늘어지는 느낌을 받기 때문이다. 시험기간에 밤을 새우겠다고 마음먹으면 마치 시간이 무한대로 늘어난 듯한 느낌에 친구들과 밥도 먹고 커피도 마시며 느긋해지는, 그런 상황에 비유하면 이해하기 쉽다.
퇴근을 하고 집에 가면 밥을 먹고 운동을 하러 간다. 폭력적인 업무 강도에 야근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 아니라면 ‘저녁이 있는 삶’은 자신의 체력에 달렸다고 생각한다. 사실 나도 얼마 전부터 체감한 사실이다. 운동을 하기 전에는 정말 체력이 달려서 6시에 퇴근해도 집에 도착하면 녹초가 되어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운동을 시작한 뒤로는 저녁이 되어도 에너지가 남아있는 기분을 느끼고, 운동이 없는 날에는 취미 생활을 하기도 하며,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담소를 나눌 체력도 생겼다. 그러니 우리 모두 운동합시다!

 

 

 

출판, 세상의 목소리에 누구보다 빠르게 반응해야 하는 일

 

어쩌다 편집자로서 직장에서의 하루를 적어 내려간 일기장같이 되어버렸지만, 그 과정에서 확실히 알게 된 것이 있다. 역시나 출판업은 세상의 목소리에 누구보다 빠르게 행동해야 하는 일이라는 것. 책을 잘 만들고 잘 팔려면 빠르게, 넓게, 다양하게 알아야 한다.
다양한 분야에 조금씩 관심을 갖는 건 원래부터 하던 일이었기 때문에 마냥 즐거울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직업’이 되니 만사가 귀찮아질 때가 있다. 좋아하던 책을 읽는 것도 피곤하고, 재밌는 드라마를 봐도 ‘이걸 어떻게 하면 책으로 만들 수 있지?’ 같은 생각이 떠오르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지켜보고 그 이야기를 직접 다루는 이 업이 좋다. 그러니 나는 새로워지기 위해 계속해서 노력해야 한다. 새롭고 참신한 것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부정적인 의견을 제시하기보다 열린 마음으로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이런 노력이 필요한 건 비단 나뿐만이 아니라 출판계의 모든 사람에게 해당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읽기가 생활이고 쓰기가 직업인 여느 멋진 편집자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지만, 나는 앞으로도 여러 가지 분야에 항상 관심을 기울이고 노력하며 발전하는 편집자가 될 것이다. 2021년의 목표는 ‘고이지 않고 계속 구르는 것’으로 하겠다.

출판인 A

어느 출판사의 편집자. 단순히 책을 내고 끝인 편집자가 아니라 마케팅, 홍보, 유통까지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기울이고 세심하게 살피며 일하는 종합 출판인이 되고 싶다. 어쩌다 출판계에 들어온 지 시간이 꽤 흘렀지만, 여전히 새로운 책을 만들 때마다 모든 것이 새롭고 또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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