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 2020. 03.
[칼럼]
조한열(북잼 대표)
2020. 03.
2009년 11월 28일, 애플의 아이폰이 국내에 첫 출시되었다. 2007년 6월 아이폰이 미국에서 공식 출시한 지 2년 만의 일이다. 이로써 국내에서도 본격적인 스마트폰 시대가 열리게 되었다. 물론 아이폰이 출시되기 전까지 스마트폰이란 물건이 세상에 나오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다. 블랙베리로 유명한 리서치 인 모션이나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꾸준히 스마트폰을 출시하고 있었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아이폰의 등장과 엄청난 성공은 단순한 스마트폰 시장의 확대가 아닌 모바일 시대라는 비가역적인 시대 변화를 몰고 왔다는 점에서 그 전까지 등장한 스마트폰들과는 차원이 다른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그 뒤 10년, 세상은 모바일로 급격히 재편되었다. 이는 혁신적인 속성과 함께 기존 산업을 뿌리째 뒤흔드는 파괴적인 속성을 함께 지닌 무서운 변화였다. 모바일 시대로 넘어오면서 스마트폰은 사람들의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몸의 일부가 되었으며, 외부를 인식하는 제7의 감각기관이라 불러도 무방할 정도로 단순 도구 이상의 지위를 획득하였다. 인터넷이 보급된 지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인터넷이 안 되는 PC를 구매한다는 건 상상할 수도 없는 것처럼, 스마트폰이 보급된 지 10여 년이 지난 지금, 스마트폰이 없는 일상은 원시시대와 같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처럼 스마트폰이 파괴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동안, 출판 산업 역시 그 파도를 무시할 수만은 없었다. 출판이란 것이 독자들에게 정보와 지식, 감정과 영감을 텍스트의 형태로 전달하는 산업이라 정의했을 때, 스마트폰을 텍스트 전달을 위한 새로운 매체로 인식한다면 스마트폰의 돌풍은 출판 산업의 기회 요소가 될 수 있었음은 분명했다. 하지만 출판 산업은 이런 인식에 있어 어려움을 겪었는데, 이는 이미 지난 수백 년간 출판 산업이 텍스트 전달의 매체로 종이 묶음 형태의 책을 고수해오고 있었다는 사실 때문이다. 출판 산업에서의 텍스트 전달 매체를 종이책으로 한정하는 순간, 스마트폰이라는 매체는 출판 산업이 활용할 도구가 아닌, 직접적인 경쟁 관계에 있는 위험 요소가 된다. 스마트폰 시대가 출판 산업에서의 기회가 될지, 아니면 위협이 될지 알 수 없는 양가적인 상황으로 인해 출판 산업과 스마트폰이라는 매체는 확실한 관계 정립이 되지 않은 채로 어정쩡한 상태에 머무르는 어려움이 지속되었다.
하지만 이런 어정쩡한 상황 속에서도 스마트폰을 활용하여 출판의 외연을 확장하려는 시도는 꾸준히 계속되었다. 우선 스마트폰에서 책을 읽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전자책은 이제 보편적으로 출판 산업 내에 자리 잡은 것으로 보인다. 물론 전자책을 기존 종이책의 단순한 디지털 변환으로 인식하느냐, 아니면 독자들에게 지식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새로운 매체로 인식하느냐에 따라 전자책을 대하는 태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어찌되었건 이제 출판 산업 내에서 전자책의 출판은 보편적인 형태로 자리 잡은 것만은 확실하다. 이는 교보문고나 예스24 등의 대형 서점들과 리디북스와 같은 전자책 전문 서점 등이 전자책 서비스를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진행해온 덕에 가능한 일이었다. 그간 야심차게 전자책 서비스를 론칭했던 KT나 신세계 등의 대기업들이 전자책 시장의 더딘 성장에 두 손을 들고 철수하는 동안에도, 서점들만은 꾸준한 투자가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전자책 서비스를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내릴 만하다.
위즈점하우스 ‘북릿’
북이십일 ‘카드북’
일부 출판사들은 서점들을 통한 전자책 제공에 만족하지 않고, 서점이라는 유통 체인의 매개 없이 직접 독자들과 연결하겠다는 D2C(Direct to Consumer) 서비스를 시도하였다. 이런 시도가 가능한 이유는 물리적인 유통이 필요 없는 디지털 유통의 속성 때문이었다. 더구나 스마트폰 시장을 양분하고 있는 구글과 애플이 만들어놓은 앱 마켓을 통해 직접 독자들의 스마트폰 속으로 출판사의 서비스(앱)를 집어넣을 수 있는 길이 열려 있었기 때문에 D2C 서비스는 출판사들에게 도전 욕구를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이는 마치 대형 방송사의 유통 채널을 이용하지 않고 직접 유튜브를 통해 콘텐츠를 배포하는 크리에이터들의 모습과도 유사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출판사들 중에서 자본력이 있는 곳은 좀 더 과감한 시도를 진행하였다. 짧은 지식 콘텐츠를 광고와 결합하여 무료로 제공하고자 했던 위즈덤하우스의 ‘북릿’ 서비스나 카드 형태의 콘텐츠를 만들어 판매하고자 했던 북이십일의 ‘카드북’ 서비스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아기 상어로 유명한 ‘핑크퐁’ 서비스도 처음에는 삼성출판사의 D2C 서비스로 시작되었다. 삼성출판사의 인기 아동 도서 콘텐츠를 이용하여 300개가 넘는 앱을 제작한 것이 현재의 ‘핑크퐁’ 서비스로 발전한 것이다.
물론 출판사가 자체 D2C 서비스를 개발하고 운영하는 데에는 높은 초기 투자 비용이 요구되었다. 때문에 출판사 자체 앱을 통한 서비스 사업은 자본력이 충분한 출판사에서만 가능한 일로 여겨졌다. 하지만 초기 비용을 받지 않고 수익셰어 방식으로 출판사들과 협업하는 앱 개발사들이 등장함으로써 출판사들이 큰 부담 없이 D2C 서비스 앱을 독자들에게 제공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 그 결과 박경리의 ≪토지≫나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완서 전집, 조정래 전집 등의 대형 작가나 작품이 앱으로 출시되었다. 열린책들 세계문학 전집이나 살림지식총서, 문학동네 시인선 등의 시리즈 역시 출판사가 앱을 통해 직접 독자들을 연결하려는 D2C 서비스의 일환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출판사의 D2C 서비스는 오래 지속되지 못했다. 스마트스터디의 ‘핑크퐁’처럼 도서라는 형태를 벗어나 동영상 등을 적극 활용한 콘텐츠 서비스로 발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도서 자체만의 서비스로서는 성장의 한계를 보였다. 특히 헤비한 도서 구매자들은 일부 도서만 서비스되는 개별 앱을 통해 전자책을 구매하기보다는 서점의 종합 앱을 통해 전자책을 구매하고 관리하기를 원했다. 게다가 1인당 한 달 평균 30개 이상의 앱을 다운로드하던 시절이 끝나고 6개월 동안 1~2개의 앱만을 다운로드하는 환경으로 시장이 변화함에 따라 개별 출판사의 소규모 앱은 경쟁력을 갖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으며, 서비스 운영이라는 측면에서 책을 제작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역량이 출판사들에게 요구되었다는 점도 D2C 서비스의 어려움을 가중시키는 요인이었다.
왼쪽 위에서부터 시계방향으로 박경리의 ≪토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박완서 전집, 조정래 전집 앱
이보다 더 중요한 핵심 어려움은 전자책 시장이 장르물 위주로 확대되었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전자책 독자 중 상당수가 장르물에 돈을 지불하고 있었으며, 이에 반해 종이책 독자들의 전자책으로의 이동은 더디기만 했다. 출판사들이 D2C 서비스를 통해 직접 만나고자 했던 독자들은 기존 종이책 독자였으나, 실제 종이책 독자들은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을 선호했기 때문에 플랫폼 측면에서의 불균형이 발생했다. 지금은 장르 콘텐츠 시장의 강자로 자리 잡은 카카오페이지 역시 초기에는 기존 출판 시장의 주류 영역이었던 자기계발, 경제, 경영, 문학, 취미, 실용 등의 영역에 도전했다가 참패하고 다시 서비스를 개편하여 장르물 위주로 콘텐츠를 재정비하고 나서야 급격한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전자책을 종이책의 단순한 디지털 변환이 아닌 새로운 매체로 재정의하려는 시도도 꾸준히 계속되었다. 그중에서 쉽게 눈에 띄는 시도는 멀티미디어와의 결합이다. 이런 경향은 주로 취미나 여행, 어학 등의 실용서에서 나타났는데, 그 이유는 종이책 매체에서는 제공할 수 없는 기능이 앱을 통해서는 제공될 수 있기 때문이다. 종이책과 함께 CD 등의 부가 매체로 제공되던 정보가 스마트폰 앱을 통해 책의 내용과 통합되어 제공됨으로써 독자들의 편의성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었다. 그 예로 OPIc 수험서에 말하기/듣기 기능이 결합된 크레듀 오픽 시리즈 앱을 들 수 있으며, 종이책과 함께 제공된 이 앱을 통해 수험 공부의 효과를 배가시킬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멀티미디어를 활용하여 새로운 매체를 만들려는 주요한 시도의 한 축에는 오디오북이 있다. 오디오북만큼은 기존 종이책 독자들에게도 관심 사항이라고 할 수 있다. 많은 독자들이 출퇴근이나 운전을 할 때 양질의 콘텐츠를 소비하고자 하는 욕구가 있으며, 특히 종이책을 읽지 못하는 상황에서 오디오북은 읽기의 대안으로서 주목받고 있다. 그러나 국내 오디오북 시장은 예상만큼 성장하고 있지 못한데, 그 원인은 오디오북 도서 종수의 부족함에 있다. 우선 오디오북은 제작 단가가 매우 높다. 종이책을 전자책으로 변환하는 비용에 비한다면 약 30배 이상의 높은 단가를 요구한다. 그렇기 때문에 판매 예측이 되지 않는 오디오북을 출판사들이 직접 제작하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신간 오디오북을 찾는 독자들의 욕구를 충족시켜 줄만큼 충분한 오디오북 종수의 확보는 요원한 상황이다.
하지만 상황이 반전될 가능성은 언제든 있다. 2018년 네이버가 오디오북 서비스의 대명사였던 오디언을 인수한 이후, 아직까지 크게 눈에 띄는 행보를 하고 있지는 않지만, 인공지능 스피커 등에서 소구되는 오디오 콘텐츠의 확보를 위해 대규모 투자를 단행할 가능성도 없지 않다. 그 외에 밀리의서재나 윌라 등의 서비스 업체 역시 오디오북 콘텐츠의 확보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점과 기존 서점 등에서도 꾸준히 오디오북 제작에 비용을 집행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춰, 어느 순간 오디오북 시장이 폭발하는 임계점이 찾아올 가능성은 충분히 존재한다.
마지막으로 살펴볼 시도는 도서 서브스크립션(정액제) 서비스다. 독자들은 상당히 원하는 서비스이면서도 출판사로서는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서비스가 바로 정액제 서비스다. 교보문고 SAM 서비스를 시작으로 밀리의서재 등의 서비스가 나오면서 이 시장을 두드리고 있으며, 그 뒤 리디북스와 예스24 역시 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하지만 출판사로서는 이 상황이 썩 달갑지만은 않은데, 출판사 입장에서는 이미 음반 시장에서 콘텐츠 제공자들이 어떤 지위로 격하되었는지 목격한 터라, 도서 시장만큼은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된다는 정서가 강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자본력을 앞세워 출판사들에게 콘텐츠 비용을 보전하면서 크리티컬 매스에 도달할 만큼의 유료 구독자 수를 확보하는 데 성공한다면 판이 달라질 가능성은 충분하다. 물론 현재 도서 시장의 비용구조를 놓고 볼 때, 매우 큰 투자금액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으며, 그 자금을 원활히 조달할 수 있는 플레이어가 있으리라 상상하기는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위에서 살펴봤듯이 스마트폰이 등장한 이후 10여 년간 출판 앱을 통한 다양한 시도가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런 시도들이 모두 성공한 것은 아니지만, 작은 성공과 실패를 거듭하면서 여러 교훈과 시사점을 남긴 것 역시 사실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가 맞닥뜨린 질문은 다양한 출판 앱을 통한 독자와의 직접 만남이라는 시도가 여전히 유의미하느냐는 점이다. 앱은 디지털 콘텐츠를 담아내는 그릇이다. 콘텐츠를 앱이라는 컨테이너에 어떻게 담아내느냐에 따라 매력도가 차이 난다. 요즘 유행하고 있는 펭수 콘텐츠 앱을 만든다면 사람들의 관심을 얻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시장의 변화에 대해서도 냉정하게 바라봐야 한다. 지금은 앱을 개발하고 제작하는 비용보다 사람들이 앱을 발견하고 설치하도록 유도하는 비용이 훨씬 높기 때문이다. 이 비용이 앱을 통한 수익을 훨씬 상회한다면 앱이라는 컨테이너는 결코 매력적일 수 없다. 앱이라는 컨테이너의 발견과 설치에 소요되는 높은 비용의 문제를 해결할 때만이 출판 산업에서의 앱을 통한 새로운 시도가 유의미할 수 있을 것이다. 조한열(북잼 대표) 서울대학교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개발자 출신으로서 2010년부터 출판 관련 앱 개발을 진행해왔으며, 2011년 북잼을 창업한 이후 주요 출판사들과 함께 도서 앱을 개발하고 운영해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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