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21 2021. 05.
2021. 5.
2000년 이후 서평 전문 잡지는 우리 일상에서 자취를 감추었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지금, 〈서울리뷰오브북스〉라는 이름으로 서평 전문 잡지가 돌아왔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지금까지 이어져 오던 칭찬 일색의 서평 관습을 과감하게 타파하고 좋은 점은 부각하고 안 좋은 점은 비판하는 객관적이고 사실적인 서평을 지향한다. 이러한 혁신적인 서평 문화를 만들어나가는 데에는 13인의 편집위원이 함께한다. 그 선두에서 서평의 새로운 척도를 세워가고 있는 홍성욱 편집장을 만나봤다.
〈출판N〉에 홍성욱 편집장님을 모시게 되어 영광입니다. 웹진 독자에게 소개와 인사말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 재직하고 있고, 과학기술학(Science and Technology Studies)을 전공하는 사람입니다. 과학기술학은 과학기술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분야로, 과학기술 자체에 대한 이해와 함께 과학의 역사, 철학, 사회학 등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대한 이해와 지식이 필요한 분야입니다. 어떻게 보면 이과와 문과,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two cultures)를 이어주는 분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최근 몇 년 동안 저는 과학기술과 대중문화의 접점을 탐구한 『크로스 사이언스』, 포스트휴머니즘의 사상적 맥락을 과학기술과 연관 지어 탐구한 『포스트휴먼 오디세이』, 실험실의 역사와 철학을 소개하는 『실험실의 진화』, 우리가 함께 살아가고 있는 기술의 역사를 대중적으로 소개하는 『모던 테크』라는 책을 썼습니다. 또 KAIST의 전치형 교수와 함께 『미래는 오지 않는다』라는 책을 썼습니다. 마지막 책은 미래라는 것이 얼마나 예측하기 힘든 것임을 명시하면서, 기존의 미래학을 강하게 비판한 책입니다.
미국에는 서평 전문지 〈뉴욕리뷰오브북스〉가 있고, 영국에는 〈런던리뷰오브북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있습니다. 새롭게 탄생한 〈서울리뷰오브북스〉에 대해서 소개 부탁드립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2019년에 탄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오랫동안 서평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해 왔고, 여러 출판사에서 책을 내면서 출판사 편집자나 대표에게 서평지를 만들어 보자고 했습니다. 다들 좋은 생각이라고 했지만, 선뜻 서평지를 만들자고 나서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2019년에 뜻을 같이하는 연구자들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학교 정치학과의 김영민 교수를 처음 만났고, 이후 철학을 하는 이석재 교수, 사회학자 김홍중 교수 등, 지금의 편집위원을 한 명씩 만났습니다. 내게 큰 영향을 준 좋은 책을 만나는 것도 인연이듯이, 이렇게 사람을 만난 것도 인연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만남이 이루어졌다는 것은 어찌 보면, 많은 이들이 저와 비슷한 필요를 느끼고 있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울리뷰오브북스〉를 만드는 데 뜻을 같이하는 열세 명의 편집위원이 모였고, 서울대학교에서 받은 지원금과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모은 기금으로 2020년 12월에 〈0호〉(창간준비호)를 냈습니다. 〈0호〉의 특집은 “2020: 미리 와 버린 미래”로, 코로나19라는 미증유의 팬데믹에 대한 성찰을 담았습니다. 이후 2021년 3월에 “안전의 역습”이라는 특집을 담아 〈창간호〉를 냈습니다.
우리나라는 서평 전문지가 2000년대 들어 자취를 감췄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현시점에서 서평 전문지를 제작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과거에 서평지가 어려움을 겪었던 데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먼저 20년 전만 해도 국내 저자가 쓴 좋은 책이 많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당시 출판시장은 해외 도서의 번역본이 주도하고 있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문학만이 아니라, 인문학, 사회과학, 자연과학, 경제경영, 자기계발, 논픽션 등의 영역에서 인기몰이를 하는 국내 작가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교수나 연구자도 일반 독자를 대상으로 책을 내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문가들 사이의 소통은 논문으로 하고, 더 많은 독자를 대상으로는 책을 쓰는 식이지요. 우선 출판시장 자체가 서평지를 낼 수 있을 정도로 무르익었다는 판단을 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지금도 어려운 부분인데, 국내 출판시장이 커졌고, 또 몇몇 출판사들은 국내 기준으로 보면 대형출판사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덩치가 커졌지만, 아직도 출판사 대부분이 소규모라는 것입니다. 이게 왜 문제인가 하면, 작은 출판사에서 어렵게 낸 책을 비평하거나 비판하는 문화가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신문에 서평을 연재하는 작가들, 신문 서평을 담당하는 기자들, 출판사 대표나 편집자들은 모두 출판을 사랑하고 출판시장을 키워야 한다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입니다. 거품이 있는 책을 그렇다고 얘기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지요. 학술서만이 아니라 상업용 대중서의 경우에도 대부분의 서평이 ‘주례사 서평’이 되는 이유입니다.
서평지를 낸다고 하니까 가장 많이 들은 얘기가 “국내에 서평을 할 만큼 좋은 책이 많은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이런 질문을 하는 사람들의 출판계에 대한 기억이 20-30년 전에 머물러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합니다. 국내에서 나오는 책은 그 양이나 질을 봐도 이미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사람들이 책을 안 읽는다고 하지만, 수많은 독서 클럽이 계속 만들어지고 있으며 활발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는 책에 대한 얘기와 사진이 넘쳐납니다.
더 어려운 부분은 ‘어떻게 서평지가 객관성과 중립성을 담보하는가’라는 것입니다. 과거의 서평지들은 결국 이 부분에서 어려움을 겪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대중서의 경우에는 출판시장을 살리기 위해서, 학술서의 경우는 서로 아는 사이에 얼굴 붉히기 싫어서, 좋은 얘기만 서평에 쓰는 식이죠.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이런 문제를 극복하고, 중립성과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재정적으로 광고 등에 의존하지 않고 독립적인 재정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이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덧붙여, 작은 시도지만 서평을 쓰는 책을 출판사에서 제공받지 않습니다. 광고는 받지만 광고하는 책을 리뷰하지도 않고요. 또 서평자와 관계가 있는 저자의 책에 대해서 서평을 쓸 때는 이런 이해상충을 명확히 밝히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서평지 〈서울리뷰오브북스〉가 어떤 기대효과를 가져올 수 있을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영화와 영화평을 예로 들고 싶습니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영화평도 좋아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영화평을 보기도 하고, 영화를 본 뒤에 영화평을 찾아 읽기도 합니다. 예전에는 우리나라 영화평이 다 칭찬 일색이었습니다. 비판을 하면 영화사로부터 협박 전화를 받기도 했다지요. 그리고 이런 칭찬 일색의 평을 보고 극장을 찾은 관객은 실망하기 십상이었습니다. 이런 문화가 영화 자체의 발전을 막았을 뿐만 아니라, 영화 시장이 확장하는 데에도 나쁜 영향을 주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평론가들이 개봉 영화에 대해서 별점 하나를 주는 경우도 많습니다. 물론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영역입니다만, 제대로 된 영화평이 관객의 안목을 높여 주었음은 물론이고, 국내에서 제작되거나 수입되는 영화의 수준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서평지의 역할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좋은 서평은 책을 좋아하는 독자의 풀(pool)을 넓힐 수 있고, 장기적으로 출판되는 책의 수준을 올리는 데에도 기여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의 서평이 아니라, 숨겨져 있는 좋은 책을 발굴해서 제대로 평가하고, 거품이 있는 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메스를 들이대는 서평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좋은 서평은 책만큼이나 세상의 화제가 될 수 있는데,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바로 이런 서평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미디어 콘텐츠가 점점 더 확산되는 가운데, 〈서울리뷰오브북스〉와 같은 서평 전문지의 등장은 어떤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하시나요?
우선, 디지털 미디어와 책이 꼭 경쟁관계에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유튜브가 사람들의 관심을 빼앗고 있지만, 유튜브 내에도 ‘북튜브’처럼 책과 관련된 내용이 많이 있습니다. 북튜브를 통해 책에 대한 이야기를 접할 수 있고, 팟캐스트나 SNS를 통해서도 책을 접할 수 있습니다. 디지털 버전의 e-book도 확산세이고요. 그렇지만 종이책은 그 나름의 물성을 지니고 있고, 따라서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종이책과 미디어 콘텐츠를 상충되는 것이 아닌, 상생적인 것으로 보기 시작하면 새로운 가능성이 가득한 독서의 장이 열릴 것이라고 봅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우선 물성을 지닌 종이책으로 시작했습니다. 그렇지만 2021년 4월에 e-book을 출판했고, 네이버와 협력해서 독자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디지털 버전을 출판할 계획입니다. 2022년에는 유튜브 채널 등을 개설해서 서평자와 저자를 더 많은 독자와 연결하려는 계획도 가지고 있습니다.
13명의 편집위원이 함께 구성한 만큼 내용이 알차고 특별할 것 같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만이 갖는 특징과 장점은 무엇이 있나요?
〈서울리뷰오브북스〉의 가장 큰 특징은 모든 결정이 편집위원들 사이의 격식 없는 토론을 거쳐서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서평할 책 선정, 특집 주제 선정, 새로운 코너 신설, 외부 필자 섭외, 디자인, 마케팅, 새로운 사업 기획까지 모든 일을 함께 상의합니다. 편집위원 모두가 〈서울리뷰오브북스〉의 편집장이며 주인이라고 생각하고 참여합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서평지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이렇게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시간과 노력을 쏟지 않을 것이라고 봅니다. 편집위원 한 분 한 분이 다 자신의 전문 분야에서 인정받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대중적인 글쓰기에도 능하신 분들입니다. 편집위원 열세 분과 이들의 협력이 〈서울리뷰오브북스〉의 가장 큰 자산이라고 생각합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는 편집 방향만이 아니라 원고에 대해서도 서로 검토합니다. 편집위원들이 쓴 원고나 외부 필자가 쓴 원고가 들어오면 구글독스(google docs)에 올려서 모든 사람이 보고, 논평하고, 수정을 제안할 수 있도록 합니다. 일주일 동안 이 과정을 거치는데, 지난 호에 실린 제 원고를 예로 들자면, 원고를 올리자 이에 대해서 수십 개의 논평이 달렸습니다. 논평에는 띄어쓰기나 맞춤법에 대한 간단한 수정 제안도 있지만, ‘글이 읽기 어렵다’, ‘내용이 이해가 안 된다’, ‘더 친절하게 설명해 주면 좋겠다’와 같은 논평도 있습니다. 필자들은 이런 논평을 참고해서 글을 여러 번 고칩니다. 외부 필자에게 원고를 청탁할 때도 이렇게 글에 대한 수정 요구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분명하게 합니다. 책이 나오기 전에 이런 과정을 거치는 곳은〈서울리뷰오브북스〉 외에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서평이 갖는 힘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이와 함께 서평 전문지와 서평 문화가 필요한 이유도 함께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가 창간호에 실린 권두언에서 피터 싱거의 예를 들어 얘기했지만, 좋은 서평은 묻힐 뻔한 책을 발굴해서 세간의 화제가 되게 만들기도 합니다. 정말 좋은 책과 인구에 회자되지만 그렇지 못한 책을 구분하는 것은 건강한 독서 문화를 위해서 매우 중요한 작업입니다. 우선은 저희 같은 서평지가 이런 일을 하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책을 좋아하는 모든 독자가 자신만의 심미안을 가진 서평가가 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입니다. 좋은 서평과 좋은 책, 좋은 저자, 책에 대해 애정을 가진 독자. 이렇게 네 개의 축은 피드백으로 연결된 네트워크 속에 있다고 봅니다. 좋은 책은 좋은 서평을 낳을 수 있는 토양이 되고, 이는 더 많은 독자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비판적인 서평은 독자에게 책에 대한 심미안을 키워주며, 이는 더 좋은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방향으로 저자를 자극할 수 있습니다. 반면에 주례사 서평은 책에 대한 실망을 낳고, 결국 독자를 책과 출판시장에서 멀어지게 하는 결과를 낳을 것입니다.
끝으로 독자들에게 하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서울리뷰오브북스〉를 만들면서 책도 더 많이 사게 되었고, 잡지도 여럿 구독하기 시작했습니다. 책을 구매하고 잡지를 정기 구독하는 게 저자나 출판사에게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몸소 느꼈기 때문입니다. 유튜브 영상을 하나 만드는 데에도 꽤 많은 노력이 듭니다. 그렇지만 책의 경우에, 저자가 책 한 권을 내기까지는 1년에서 수년의 시간과 노력이 들어갑니다. 서평지는 이런 책들을 꼼꼼하게 읽고 쓴 서평을 담은 책이지요. 너무 상투적인 말로 들리겠지만, 독자 여러분들의 애정과 관심만이 책과 서평지 모두를 살릴 수 있는 길이라고 봅니다. 책을 내보니까, 이 말이 정말 가슴에 와닿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