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2 2024. 03-04.
인공지능 시대에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을 번역가
김보람(번역가)
2024. 03-04.
특출나게 잘하는 것도, 특별히 좋아하는 것도 없던 학창시절, 커서 뭐가 되고 싶냐 물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그거 말고 장래희망이 뭐냐고 물으면 ‘장래희망을 갖는 것’이라고 심드렁하게 대답하던 내게도 마침내 번역가라는 꿈이 생겼다. 그렇게 물어보던 장래희망이 드디어 생겼다는데 웬일인지 주변 사람들은 여전히 고개를 갸웃했다.
“미래에 사라질 직업 1위가 번역가라던데!”
때는 하필 토론토 대학교 제프리 힌튼(Jeffrey Hinton) 교수의 연구진이 딥러닝의 초기 형태인 새로운 학습 알고리즘을 제안한 2004년이었다. 이를 계기로 인공지능을 향한 관심이 재점화되었고 언론에는 ‘미래에 대체될 직업’과 ‘유망한 직업’에 관한 기사가 쏟아져 나왔다. 걱정 많은 어른들은 학생들에게 우리 세대는 반드시 전도유망한 직업을 선택해야 한다고 심각한 얼굴로 조언했다. 소심한 나는 번역가가 되고 싶다는 말을 몇 번 꺼내 보지도 못한 채 대학생이 되었고, 회사원을 거쳐 드디어, 결국엔, 어쨌든, 번역가가 되었다. 이미 구글 번역, 네이버 파파고 등 AI 번역 서비스가 시장에 나와 있던 2017년이었다. 그때도 여전히 AI에 대체될 직업 순위에는 번역가가 빠지지 않고 이름을 올리고 있었지만, 마침 2017년에 인공지능과 인간이 벌인 번역 대결에서 인간이 완승하면서 번역가의 미래를 낙관하는 목소리에 조금 힘이 실렸다. 역시 AI 번역은 멀었다고 강 건너 불 보듯 하던 나는 2023년이 되어서야 밥그릇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작년에 한국어가 서툴다는 일본인이 파파고 번역기를 활용해 한국 웹툰을 번역하여 번역상을 받았고, 챗GPT(ChatGPT)가 서른 시간 만에 집필했다는 책이 출간되었다. 예전에는 파파고나 구글 번역기의 성능이 번역가를 위협할 정도는 아니었으나, 생성형 AI인 챗GPT나 딥엘(DeepL) 번역은 다르다고 했다. 별거 있겠나 하는 안일함과 별거면 어떡하나 싶은 두려움에 미루고 미루다 챗GPT를 사용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챗GPT 대화창에 영문 소설의 한 단락을 넣으면서 (나보다 잘하면 어떡하나 싶어) 얼마나 떨렸는지 모른다. 실시간으로 쪼르륵 뱉어내는 번역문을 읽던 나는 매끄러운 문장에 헉, 하고 놀랐고, 관계사절 독해를 잘못한 부분을 발견하고 휴, 하고 안도했다. 묵은 체증이 내려가듯 속이 뻥 뚫리는 기분이었다. 조금 가벼워진 마음으로 “너 여기 틀렸대요~” 하고 지적했더니 세상에, 곧장 번역문을 수정하는 게 아닌가. 구글 번역이나 파파고는 틀리든 맞든 몇 번을 반복해도 똑같은 결과가 나오는데, 챗GPT는 그 자리에서 새로운 정보를 처리하고 학습하는 게 가능했다. 오역도 한 군데뿐이었는데, 그 문장조차 자연스럽다는 점도 놀라웠다. 기존의 AI 번역 서비스는 오역이면 한눈에 봐도 번역문이 부자연스러워서 굳이 원문을 비교할 필요조차 없었으나, 챗GPT의 번역문은 그냥 읽어서는 오역인지 아닌지 알기 어려웠다. 몇 년 사이 엄청난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었다. 그러나 이후 문단을 추가해 가며 성능을 확인해 보니 마음대로 원문을 생략하거나 없는 내용을 추가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자연스러운 문장을 쓰기 위한 챗GPT의 비법(?) 가운데 하나인 것 같았다. 드문드문 보이는 오역, 원문에 충실하지 않은 번역을 보면 아직 문학 번역에 쓸 수준에는 한참 못 미쳤다. 내친김에 이번에는 내 역서의 원문을 발췌해 챗GPT에게 번역을 시켜본 뒤, 내 번역문과 비교해 보기로 했다.
“And yet, my growing belly ensured I could not hide in routine forever. By February, I had to resew buttons to widen my skirts.” - 『흐르는 강물처럼』(셸리 리드(Shelly Read), 김보람 옮김, 다산책방, 2024)
위 문장에서 챗GPT의 번역문에 오역은 없지만, 편집자가 본다고 생각하니 내가 다 아찔했다. “챗GPT 선생님, 혹시 번역기 돌리셨어요?”라고 물으며 두 번 다시 작업을 맡기지 않을 것만 같다. 다음 비교 예문을 하나 더 보자.
“People often fall for the illusion that they can perform a difficult feat after seeing someone else accomplish it effortlessly. How many times have we replayed Whitney Houston’s “And A-I-A-I-O-A-I-A-I-A will always love you” in our heads, thinking that it can’t be that hard to hit that high note? Or attempted to create a soufflé after watching someone make one on YouTube? Or started a new diet after seeing those before and after pictures?” - 『씽킹 101』(안우경, 김보람 옮김, 흐름출판, 2023)
『씽킹101』은 미국에 사는 한국인 저자가 영어로 집필한 도서로, 저자로부터 한국인 독자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예시를 바꾸는 등 적극적으로 의역해 달라는 요청을 받고 작업했다. 챗GPT의 번역문을 확인한 다음, 한국 문화에 맞는 예시로 대체해 더 자연스럽게 번역해 달라고 주문했지만, 저자의 섬세한 요청사항까지 반영해 주진 않았다. 뒤이어 소제목의 번역을 보면, 같은 원문을 번역한 게 맞는지 싶은 의문이 들 정도로 결과물이 다른데, 둘 중 하나가 오역해서가 아니라 두 언어의 서로 다른 특성 때문이다. 영어는 명사 중심의 언어지만, 한국어는 서술어 중심의 언어라 그렇다. 예를 들어 ‘Nice words for nice words’라는 표현을 우리말로 옮긴다면, ‘좋은 말에는 좋은 말’보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라고 번역할 때 훨씬 말맛이 산다.
“Illusion of Knowledge”
“Curse of Knowledge”
‘Illusion of Knowledge’를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라고 번역한 이유도 마찬가지다. ‘Illusion of Knowledge’ 꼭지에는 누군가의 주장을 듣고 처음에는 얼토당토않은 소리라고 생각하더라도 그럴싸한 설명이 덧붙으면 금세 신뢰하게 된다는 내용이 뒤따른다. 챗GPT처럼 ‘Illusion of Knowledge’를 ‘지식의 환상’이라고 옮기면 세부 내용을 쉽게 짐작하기 어렵지만,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라는 꼭지 제목을 보면 ‘헛소리에 관한 얘기가 나오겠거니’하고 어감과 내용을 예상할 수 있다. 그러나 사전의 특별한 요청이 없었더라면 나도 ‘Illusion of Knowledge’를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라고 옮기지 않았을 것이다. 또 명사형으로 직역하듯 번역하는 편이 더 어울릴 때도 많다. 그러면 대체 어쩌란 말이냐고? 최선의 번역은 상황에 따라 다르므로 저자-번역자-편집자 간에 소통이 중요하고, ‘Illusion of Knowledge’를 ‘지식의 환상’, ‘안다는 착각’,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등 뭐라고 번역할지에 대해 번역자가 고민하는 과정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나는 번역할 때 못해도 예닐곱 번의 수정을 거친다. 초고 작업을 할 때는 당장 번역하는 문장과 직전 문장에만 집중할 뿐 다음을 궁금해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나도 모르게 상상의 나래를 펼치다가 영향을 미칠까 봐 그렇다. 지그소 퍼즐(Jigsaw Puzzle)을 맞출 때처럼 한 번에 한 조각씩 들쭉날쭉한 홈에 꼭 맞는 다른 조각을 찾는 데만 집중하는 것이다. 초고를 마치고 전체적인 윤곽이 드러나면, 그때부터는 글의 흐름을 타며 문장을 다듬는다. 저자의 의도를 놓치지 않으면서도 잘 읽히게끔 글을 고친다. 완성된 그림을 떠올리며 삐뚤빼뚤한 퍼즐 조각을 반듯하게 맞추고, 잘못 끼워 놓은 조각의 제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다. 이렇게 하면 시간은 좀 걸리더라도 오역을 줄일 수 있고, 행간에 숨은 의미를 찾으며 글맛을 살리는 번역문을 쓸 수 있다. AI 번역은 몇 년 사이 놀랄 만큼 발전했고, 번역하는 속도는 인간이 감히 넘볼 수도 없는 수준이지만, 문학 작품 속 토씨에 녹아 있는 저자의 의도까지 전달하려고 애쓰는 번역가의 수고를 AI가 따라잡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다면 챗GPT를 온라인 사전이나 검색 포털 사이트처럼 도구로 활용하는 건 어떨까? 책을 번역하다 보면, 문장을 독해하는 시간보다 그에 필요한 정보를 검색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이 들기도 하는데 그럴 때 챗GPT를 활용할 수 있다면 작업 시간이 대폭 줄어들 것 같았다. 다양한 방식으로 다양한 정보를 요청해 본 결과, 챗GPT는 단순히 정보를 취합하는 수준을 넘어서서 사용자의 요구에 맞게 브리핑하듯 정보를 제공했다. 이렇게만 보면 훌륭한 비서가 따로 없지만, 문제는 원문의 내용을 덜거나 없는 내용을 덧붙여서 그럴듯한 번역문을 만들어 낸 것처럼, 진위가 가려지지 않은 정보를 가공해 스토리를 만들기도 했다는 점이다. 게다가 출처도 제공하지 않았다. 하물며 학교 과제를 제출할 때도 출처가 불분명한 참고 자료를 가져다 쓰지 않는데, 내 이름이 찍힐 역서에 이런 정보를 갖다 쓸 순 없는 노릇이다. 참고할 배경지식을 찾는다면 모를까 중요한 정보를 챗GPT에게 물어볼 일은 없어 보였다.
마지막으로, 번역의 품질을 결정하는 요소로 열정을 빼놓을 수 없다. 시간과 공을 들일수록 결과물은 나아지지만, 받는 품삯은 적어지는 작업이기에 그렇다. 『논어』에 나오는 “지지자불여호지자, 호지자불여락지자(知之者不如好之者, 好之者不如樂之者)”라는 구절은 AI와 인간의 번역 실력 겨루기에도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공자가 말했듯 아는 자는 좋아하는 자보다 못하고, 좋아하는 자는 즐기는 자보다 못하다. 그리고 ‘열렬한 애정을 가지고 열중하는 마음’은 인간의 것이다. 마음이 없는 AI에게 열정을 바랄 수는 없다.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는 생각 없이 퍼즐 조각을 맞추는 단순함, 조각이 맞물려가며 그림이 드러날 때의 짜릿함, 등장인물이 꿈속까지 따라올 정도의 몰입감, 몰랐던 사실을 깊이 있게 알게 될 때의 만족감, 적절한 표현을 넣어 문장을 다듬어나갈 때의 순수한 즐거움이 있다.
그중에서도 나는 문장을 다듬는 마지막 과정을 특히 좋아한다. 내가 고민한 흔적을 너무 티 나지 않게 그러나 혼자 만족할 수 있을 만큼은 문장에 담을 수 있어서다. 예를 들자면, 나는 원문에 나오는 ‘she’를 무조건 ‘그녀’라고 번역하지 않는다. ‘그녀’라고 쓸 때도 있지만 아예 생략하거나 이름을 적거나 ‘그’ 혹은 ‘그 여자’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말로 할 때 ‘그 여자’라고는 해도 ‘그녀’라고는 말하지는 않으니까 입말의 맛을 살리고 싶은 문장이라면 그렇게 적는 것이다. (그러나 편집 단계에서 ‘그녀’로 수정된다고 해서 토를 달거나 불만을 품진 않는다!) 다른 예로, ‘worker’를 ‘노동자’나 ‘일꾼’으로, ‘Labor Day/May Day’를 ‘노동절’로 옮긴다. ‘품삯을 받고 일하는 사람’이라는 담백한 의미의 표현으로 충분할 때 ‘시키는 대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수동적 의미를 지닌 ‘근로자(勤勞者)’라는 표현을 쓰지 않으려는 것이다. 그러나 시대적 배경이나 상황을 고려했을 때 ‘근로자’라는 표현이 더 정확할 수 있고, 그럴 땐 망설이지 않고 사용할 것이다.
프랑스의 소설가이자 번역가였던 발레리 라르보(Valery Larbaud)는 번역을 “말의 무게를 다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이 저울의 수평을 맞추려면 고려해야 할 요소가 너무나 많다. 말의 뉘앙스, 문화, 어원, 발음, 음절 수의 차이 등 일일이 셀 수 없을뿐더러 그 차이는 아주 미묘할 때가 많다. 다섯 번 고쳐 쓴 문장을 여섯 번째 고쳐 쓰며 고민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때로는 멀미 날 만큼 고되기도 하지만, 문학 번역 작업의 꽃이기도 하다. 나는 이러한 과정을 거친 글과 그렇지 않은 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고, 또 이런 고민을 할 수 있는 건 번역을 향한 애정을 가진 인간뿐이라고 믿는다.
일하는 순간이 가장 평화롭고 자유롭다고 느낄 때마다 이른바 ‘덕업일치(德業一致)’를 이뤘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뿌듯하다. 어스레한 방 안, 모니터와 마주 앉으면 세상의 모든 소음과 근심이 사라지고 텍스트와 나만 남는다. 마음만 먹으면 말 한마디 없이 하루를 보낼 수 있을 정도라 아주 가끔은 동료가 있으면 좋겠다 싶기도 한데, 챗GPT를 쓰고 있으니 말동무가 생긴 것 같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물론 앞에서도 말했듯 챗GPT의 번역이나 출처 모를 정보를 내 번역문에 가져다 쓸 일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어로 적힌 사용 설명서를 읽어야 한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AI 번역기를 실행할 것이다.
딥엘은 챗GPT보다 더 뛰어나다고들 하는 걸 보면 AI 번역 기술은 이미 상당한 수준임이 틀림없고, 단순한 번역에 사람 손이 필요하지 않은 날은 이미 도래했는지도 모른다. 적어도 기술 번역 분야에서 이미 보편화한 MTPE(Machine Translation Post Editing) 방식이 출판 번역의 한 분야로 자리 잡을 날은 머지않은 듯하다. 문학 작품이 아니라 실용서 등 정보 전달이 주목적인 책이라면 충분히 가능하다. 그러면 감수를 전문으로 하는 번역가가 생길 수 있고, 책을 만드는 시간과 비용이 줄어들면서 외서 출간이 늘 수도 있다. 결과적으로 다양한 유형의 번역 일감이 생길지도 모른다. 어떤 형태로든 변화는 찾아올 것이고, 이를 막을 길은 없다. 아무리 외면하고 반대해도 내일의 태양이 떠오르는 것처럼. 그러나 텔레비전과 전자책의 등장으로 라디오와 종이책이 소멸하지 않았듯 번역가라는 직업도 사라지진 않으리라 믿는다.
오늘도 나는 향긋한 초의 심지에 불을 붙이고, 연필로 밑줄을 그어가며 종이책을 읽는다. 빠르고 간편하게 소비할 문장이 아니라 오래도록 간직하며 음미하고 싶은 문장을 쓰고 싶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나는 퍼즐 조각의 모퉁이를 닳도록 만지작거린다.
참고 문헌
김보람 번역가
국제관계학을 전공한 뒤 비영리 민간단체와 대기업에서 일했다. 지금은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며 글맛이 살아 있는 번역을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힐빌리의 노래』(J. D. 밴스, 흐름출판, 2017), 『씽킹 101』(안우경, 흐름출판, 2023), 『흐르는 강물처럼』(셸리 리드, 다산북스, 2024), 『할아버지와 꿀벌과 나』(메러디스 메이, 흐름출판, 2019)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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