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51 2024. 01-02.
[출판계 리더에게 듣는다]
김선식(다산북스 대표)
2024.01-02.
우려와 두려움이 우리의 내면을 지배했던 한 해
2023년 출판계를 간단히 회고해 보면 “지속적인 도서 판매 감소로 인한 불황의 체감지수가 상당히 높았고, 2024년에는 이 현상이 더 심화되리라는 우려와 두려움이 우리의 내면을 지배했던” 한 해였다. 이런 불황의 원인으로 여러 요인이 지목되고 있지만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잠시 붐업(Boom-up)된 독서 시장의 거품이 빠지면서 나타난 결과로 볼 수 있다. 아마도 2024년 독서 시장은 더 깊은 바닥에 이르게 될 것이다.
다산북스 로고
또 하나의 요인은 도서 소비자의 고령화와 양극화 현상이다. 독서 시장에 새로운 세대의 소비자가 유입되거나 생겨나지는 않는데 ‘오십’이라는 키워드가 들어간 책들이 인기를 얻는 것은 빨라지는 독서 시장의 고령화 때문이다. 코로나19 팬데믹 시기에 책을 통해 삶의 문제를 풀고자 했던 독자들은 어디로 간 것일까? 우리나라의 국제적인 여행수지 적자가 큰 폭으로 증가한 데서 알 수 있듯 책에서 답을 구하던 소비자들이 여행으로 급격하게 이동했다. 독서 인구는 점점 줄고 있지만, 핵심 독자층의 독서량은 오히려 증가하는 양극화 현상도 심화되고 있다. 우리 출판계가 이 핵심 독자층에 갇혀 있거나 폭넓은 세대로 외연을 확장하지 못한다면 불황의 체감지수는 더욱더 높게 나타날 것이다.
마지막 요인은 판매와 홍보 채널의 다양성 증가이다. 서점이라는 채널에 의존했던 판매와 홍보 방식이 매우 다양해지면서 여기에 대응한 출판사와 그러지 못한 출판사 사이에 판매량 급락 현상이 매우 복잡한 양상으로 나타났다. 대표적으로 인터넷 서점의 지속 성장을 주저앉힌 ‘쿠팡의 성장’은 전체 도서 시장에서 의미 있는 포지션을 확보하면서 유통계에 충격을 주었다. 쿠팡뿐만 아니라 네이버 스토어, 카카오 선물하기, 펀딩, 공동 구매, 유튜브와 인스타그램 인플루언서의 도서 판매 등등 판매 채널의 외연이 빠르게 확장되고 있는데 출판사들의 걸음은 매우 느리기 때문에 여기에 민첩하게 대응하는 출판사와 그러지 못하는 출판사의 격차가 더욱 커지고 있다.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 좋다”
최근 여러 출판사 관계자들에게서 ‘불황이지만 다산북스는 잘되는 것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듣곤 한다. 2023년 불황에도 불구하고 다산북스는 지속적인 성장을 견인해 왔다. 주위 사람들이 필자에게 불황에 잘 대응하는 비결을 묻을 때마다 짧게 들려주는 이야기는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 좋다.”라는 일본의 경영의 신,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의 명언이다. 불황이나 호황은 근본적으로 변화의 속성을 갖고 있다. 변화를 잘 다루는 조직이나 사람은 그에 잘 대응할 수 있다. 변화 속에서 기회가 새어 나온다. 변화가 없다면 새로운 기회는 창출되지 않으며 고정된 세계만 존재한다. 그러나 이 세계와 우주는 끊임없이 변화한다. 변화를 멈출 때 그것을 소멸이라고 한다. 우리가 존재하는 우주라는 세계도 끊임없이 운동(팽창)하고 있으며, 운동을 멈출 때 소멸하게 될 것이다.
왜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 좋다.”라고 했을까? 호황이면 호황의 등에 올라 누구나 함께 상승할 수 있다. 그러나 불황일 때 소비자는 수입이 줄면서 구매도 줄어들기에, 눈높이를 높여 더 깐깐하게 따질 수밖에 없다. 불황일 때는 차별화된 상품을 만드는 회사만 선택받게 되고 그 회사는 더 크게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마쓰시타 고노스케는 “호황도 좋지만 불황은 더 좋다.”라고 말한 것이다. 개인이나 조직의 진짜 역량이 불황 속에서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 유연함을 길러야 한다
그렇다면 변화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필자도 출판사를 창업하고 수많은 불황과 호황의 주기를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대응해 왔다. 변화를 잘 다루기 위해서는 변화가 모든 에너지를 가진 물질(인간)의 기본 속성임을 이해해야 한다. 변화는 모든 실체가 존재하고 있다는 증거다. 존재에서 생존으로, 그리고 번창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변화를 거부하고 기존의 방식을 고수하는 태도를 경직이라 하고, 변화를 수용하는 태도를 유연함이라고 한다.
변화에 잘 대응하지 못하면 조직이나 개인은 정체되고, 기존의 방식으로 열심히 일을 하면 할수록 더 깊은 늪에 빠지게 된다. 기존의 관점을 고수하면서 그 강도를 높인다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관점을 바꾸고 변화의 실체가 무엇인지부터 확인해야 한다. 변화의 실체를 확인하는 가장 중요한 작업이 학습이다. 다산북스는 창업 이후 19년 동안 학습에 주력해 왔다. 특히 2022년 한 해 동안 다가올 2023~2025년의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조직과 시스템을 정비하고 조직에 불필요한 사업이나 관행을 폐기했다. 조직의 유연성을 길러 변화에 대응하기 위한 과감한 조치였다. 2023년부터는 신입직원 교육 프로그램, 본부별 교육 프로그램, 팀장 리더십 교육, 신입 팀장 멘토링과 코칭, R&D 경영(매주 금요일을 R&D 날로 정하고 오후 1시부터 5시까지 본부별 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한다.), 독서경영 활성화를 통해 교육을 내실화하고 있다.
변화에 대응하는 태도 중 가장 중요한 건 배우려는 자세를 갖추는 것이다. 구성원들이 학습으로써 성장하려는 의지를 가져야 변화에 능동적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그러지 않으면 변화를 거부하거나 회피하게 된다. 다산북스는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법을 학습해 왔고 이제는 본부장은 물론 팀장도 스스로 교육을 진행하면서 자신의 지식과 노하우를 계속 발전시켜 교육의 질적 고도화를 이루어가고 있다.
디지털 전환 시대(Digital Transformation, DX)에는 협력이 필수다
“뛰어난 리더는 자기 자신을 최고 상기자(Chief Reminding Officer)로 여긴다.”라는 말처럼 필자는 다산북스가 가진 중심 철학과 세계관을 오랫동안 반복하며 상기해 왔다. 상기하지 않으면 잊히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기 때문이다. 변화에 대응하고 그 변화를 능숙하게 다루려면 탁월한 창의성이 요구된다. 탁월한 창의성은 집단이 가진 중심 철학과 세계관이 깊은 안목과 감각과 만날 때 발휘된다. 안목을 키우기 위해서는 다양한 경험과 높은 수준의 감각을 갖추어야 하고, 지금 같은 디지털 시대에 그런 탁월한 안목을 가지려면 다른 조직과의 협력과 협업이 필수적이다.
다산북스는 ‘집단 지향성’이란 중심 철학과 세계관을 굳건히 하고자 블로그 글쓰기를 권장하고 있다. 분기별로 대표를 비롯해 각 본부장과 팀장은 우리가 지향하는 바가 무엇이고, 그것이 현재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성장한 점과 한계에 부딪힌 점은 무엇인지, 이를 통해 앞으로 어떤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움직이려 하는지를 다산북스만의 철학과 세계관에 기초하여 글쓰기를 통해 솔직하게 표현하고 소통한다.
‘The Joy of Story’는 다산북스의 슬로건이다. ‘스토리의 즐거움을 전 인류와 함께 나눈다.’로 표현한다. 더 구체적으로 서술하면 ‘우리는 스토리의 즐거움을 통해 최고의 베스트셀러를 창조하고 독자·저자·직원의 자아실현을 돕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라는 것이 다산북스의 중심 철학이며 세계관이다. 철학과 세계관은 관점을 만들고 관점은 집단 방향성을 부여해 준다. 다산북스의 철학과 세계관의 중심에는 ‘Joy’라는 개념이 존재한다. “어려운 것을 더욱 쉽게, 쉬운 것을 더욱 깊게, 깊은 것을 더욱 재미있게”라는 방식을 통해 ‘Joy’라는 개념을 구현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콘텐츠를 창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당연히 이 ‘Joy’라는 개념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탁월한 창의성이 요구될 수밖에 없다.
어떻게 협업할 것인가?
높은 수준의 탁월한 창의성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외부 조직과의 협력과 연결이 필수적이다. 왜 우리는 협업을 지속적으로 창조하지 못하는 것일까? 이는 아이디어 차원에서만 협업을 진행하여 단편적인 이벤트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협업을 통해 탁월함을 배우려면 우선 관점과 마인드셋(mindset)부터 바꿔야 한다. 협업을 하려면 우리가 어느 단계에 있는지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어야 한다. 최소 6개월에서 1년 전부터 협업을 준비해야 한다. 책이 출간된 후 진행하는 일은 협업이 아니라 광고이며 퍼포먼스일 뿐이다. 퍼포먼스에서 협업으로, 단기에서 장기로, 이벤트는 포괄적인 연계 및 구조화를 통해 파트너사와 함께 협업의 안정화 단계를 창조해야 한다.
디지털 전환 시대는 네트워크가 가능한 세계이다. 그 연결된 네트워크를 통해 마케팅을 실행하면 효과적인 마케팅 결과를 만들어낼 수 있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앱은 고객과 연결되어 있으므로 디지털 사업에 가장 필요한 도구이다. 마케터들은 자사에 맞는 앱을 어떻게 개발하고 구현할 것인지 적극 고민해야 한다.
다산북스에 2024년은 콘텐츠 공급사에서 콘텐츠 그룹으로 한 발짝 더 나아가 독자성을 갖게 되는, 중요한 전환의 해가 될 것이다. 그래서 콘텐츠의 독자성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 이를 독자들과 어떻게 직접 연결할 것인지가 화두이다. 이제 출판계는 디지털 전환 시대에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의 기회를 스스로 모색해야 한다. 자체 앱을 개발하고 자신만의 독자성을 확보할 수 있는 디지털 세계를 창조해야 한다. 디지털 세계는 빅데이터로 연결된 세계이다. 우리는 그것을 해석하고 연결을 재구축하여 기존의 데이터 종속관계로부터 탈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조직은 3~5년간 지속적인 체질 개선을 통해 디지털 유연성을 기르며 디지털 세계와 도구들을 더욱더 열심히 학습해야 하는 도전을 눈앞에 두고 있다.
다산북스 사옥
그래서 우리는 탐구하고 있다
필자는 요즘 과학책 읽는 즐거움에 빠져 있다. 과학에서는 죽음을 ‘인간이 획득한 능력’이라고 말한다. 죽음이야말로 다세포 생물인 인간이 진화하면서 획득한 능력이라는 뜻이다. 우리 안에 함께 살고 있는 단세포 생물인 바이러스에는 죽음이 없다. 죽음이 없다면 진화도 없다. 과학책을 읽으면서 필자는 138억 년 동안 이어져 온 진화의 흐름 속에 호모사피엔스(인간)로 존재하는 것 자체가 매우 특이한 우연이며, 그런 존재로 살다가 이 우주로 사라지는 것(귀환)이 얼마나 큰 행복인지 배우게 되었다. 또한 138억 년 지구 역사를 통해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이 우연이고, 찰나이며, 빛(기쁨)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자연스레 겸손한 자세를 배워가는 중이다. 과학 공부를 오래전부터 했더라면 사고가 더 유연했을 것이고 삶도 더 풍족해졌겠지만, 늦게라도 알게 되어 다행이라 생각한다.
“정말로 어려운 단 한 가지 일은 자신이 믿는 바를 증명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탐구하고 있다.”라는 문장을 필자는 매우 사랑한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 매우 단순하다. 탐구하는 조직만이 탁월함에 이를 수 있게 된다. 탐구하는 조직이 되려면 그 전에 변화를 수용하고 다루는 법을 학습해야 한다. 변화를 수용하고 다루게 되면 ‘몰입’의 순간이 찾아오고, 몰입이란 완전한 자기 선택과 기술을 갖추었을 때 가능하다. 먼저, 기술이 없는 경우도 연습과 반복을 통해 기술을 갖추게 되면 ‘몰입’이 가능하다. 하지만 ‘탐구’는 자신이 믿는 바를 누구나 알 수 있게 증명하는 일로 ‘몰입’보다 한 단계 높은 일이다. “무서운 깊이 없이 아름다운 표면은 존재하지 않는다.”라는 니체(Nietzsche)의 말에 비유하자면 몰입은 ‘표면’이고 탐구는 ‘무서운 깊이’이다.
평생을 자기 철학을 위해 안경 렌즈를 깎으며 살았던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는 그의 대표 저작 『에티카』(1677)의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시작한다. “모든 고귀한 것들은 드물고 힘들다.” 우리가 변화를 수용하고, 능숙하게 다루고, 몰입과 탐구를 통해 탁월함을 추구하는 것은 고귀하고 드물고 힘든 일임이 분명하다. 2024년 모든 출판인의 건투를 빈다.
김선식 다산북스 대표 다산북스를 창업하여 지금까지 대표를 맡고 있으며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으로 일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