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49 2023. 11.
[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
백창민(북헌터 대표)
2023. 11.
책이 출간되기까지는 긴 시간과 많은 과정이 필요하다. 1인 출판은 기획부터 편집, 마케팅, 영업 등 다방면의 업무를 개인이 해내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지만, 개인 창업으로서는 비교적 접근성이 좋기 때문에 1인 출판에 도전하는 움직임이 많아지는 추세다. 1인 출판에 대한 관심이 커진 만큼 그에 대한 궁금증이 많을 터. 〈출판N〉에서는 [작지만 강한 출판사를 만나다]를 통해 1인 출판사가 전하는 가감 없는 그들의 출판 도전기를 들어보고자 한다.
책으로 예술하는 출판사, 찬사와 혹평이 엇갈리는 출판사, 다른 출판사가 일을 의뢰하는 출판사, 언저리와 비주류를 자처하는 출판사, 안 팔리는 책을 더 안 팔리게 만드는 출판사, 책 만드는 재주는 뛰어나지만 돈 버는 재능은 없는 출판사, 하지만 출판사라고 말하지 않는 출판사…
수류산방은 도대체 어떤 회사일까? 2023년 창립 20주년을 맞는 수류산방 이야기를 듣기 위해 박상일 방장과 심세중 대표를 만났다.
수류산방 인터뷰에 함께 해주신 분들(왼쪽부터 박상일 방장, 조병준 작가, 심세중 대표)
수류산방의 탄생
박상일 박장님은 ‘박가서.장’ 출판사를 운영하면서 SK그룹에서 발행한 〈지성과 패기〉를 편집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에 출판사 ‘박가서.장’과 편집회사 ‘박가공.장’을 운영했어요. 박가서.장이 SK그룹에서 발행한 대학생 잡지 〈지성과 패기〉를 외주 받아 발간하기도 했죠. 1997년 IMF 사태가 터지면서 출판사 운영이 어려워졌어요. 그 무렵 사업을 접고, 디자인하우스에 입사하게 됐습니다. 그때 디자인하우스 입사 동기가 심세중 대표님이에요. 심세중 대표님은 대학을 졸업하고, 미술사 석사과정에 있을 때 디자인하우스에 입사했어요.
수류산방은 디자인하우스 출신 분들이 뭉쳐 창업한 회사라고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탄생했는지 궁금합니다.
IMF 사태 이후 디자인하우스는 이영혜 대표님을 중심으로 새로운 경영 시스템을 적극 도입했어요. 디자인하우스에서 일을 많이 배웠습니다. 그 무렵 디자인하우스는 부서 사람들끼리만 친하고, 다른 사업부와는 교류가 없었죠. 그런 분위기를 바꾸고 싶었어요. DES 사업부장과 〈DOVE〉 편집장을 지낸 박상일, 월간 〈디자인〉 기자였던 심세중, 디자이너 김용한, 사진가 이승무와 이한구… 술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자주 뭉쳤죠. 그러면서 서로 친해졌어요. 이 멤버가 2001년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 의재 허백련과 의재미술관』(디자인하우스, 심세중)을 함께 만들기도 했어요.
그렇게 친해진 사람들이 디자인하우스를 떠나서도 술 모임을 이어갔어요. 서울 성북동 성북아파트가 저희 ‘아지트’였어요. 모이면 주로 막걸리를 마셨어요. (웃음)
술자리가 이어지면서 회사를 만들자고 ‘의기투합’하셨나요?
처음에는 회사를 차릴 생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함께 ‘일’을 하게 됐어요. 편집장부터 편집자, 디자이너, 사진가까지 모여 있다 보니, 하나의 ‘팀’으로 자연스럽게 일할 수 있었어요. 일이 들어오면 세금계산서를 끊거나 사업자가 필요한 상황이 생기잖아요. 그래서 ‘회사’를 만들게 됐어요. 그때가 2004년이었습니다. 성북동에서 1년쯤 시간을 보내고, 2004년 말에 청운동으로 거처를 옮겼어요. 출판사 등록도 이 무렵(2004년 11월 5일)에 했습니다. 박가서.장 출판사를 하면서 ‘실패’를 경험했기 때문에, ‘단행본 출판’은 안 할 생각이었어요. ‘다른 일’을 해야 그나마 돈을 벌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수류산방(樹流山房)’이라는 이름을 어떻게 지었는지 궁금합니다.
2003년 겨울 성북아파트에서 자주 만나던 무렵이었어요. 자주 모이는 거처의 이름이나 짓자는 얘기가 나왔죠. 성북동에 작가 상허(尙虛) 이태준의 고택 ‘수연산방(壽硯山房)’과 화가 김환기, 수필가 김향안 부부가 머문 ‘수향산방(樹鄕山房)’이 있었으니까, 우리도 ‘산방’으로 지어보자는 말이 나왔어요. 그러다가 “공산무인 수류화계(空山無人 水流花開, 텅 빈 산엔 사람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라는 문장에서 ‘수류(水流)’를 따서 ‘수류산방’이라고 작업실 이름을 지었어요. ‘물이 흐른다(水流)’라고 하지 않고, 물(水)을 나무(樹)로 바꿨습니다. 이렇게 지은 이름이 ‘회사명(樹流山房)’이 됐어요.
수류산방 명함 뒷면: 명함 뒷면에 “樹流山房이 무엇고 하오시면 수류산방이올시다.”로 시작하는 소개 글이 있다.
인터넷서점에서는 ‘수류산방.중심’이라고 표기하는 곳도 있습니다. 수류산방에 붙어 있는 ‘중심’은 왜 붙었고, 어떤 의미인가요?
‘수류산방.중심’은 출판사 등록을 하면서 사용한 이름입니다. 초기에는 ‘수류산방.중심’이라는 이름으로 책을 출간하기도 했어요. 공식적인 회사명은 ‘수류산방’이에요.
‘수류산방.중심’에서 ‘중’자가 ‘가운데 중(中)’이 아니더라고요.
‘중심’에서 ‘중’은 ‘가운데 중’(中)이 아닙니다. 버금 중(仲)이에요. 부동산 중개업(仲介業) 할 때 이 중(仲) 자를 씁니다. 심세중 대표 이름의 중자이기도 합니다. (웃음)
‘버금 중(仲)’을 쓴 것은 ‘사람들 주위에 머물자.’는 뜻으로 사용했어요. ‘사람(人)과 사람(人) 사이(中)에서 뭔가 해내자.’는 수류산방의 의지를 담고 있어요. 예전에는 수류산방.중심의 영문명을 수류산방은 forest camp로, 중심은 mind media로 쓰기도 했습니다. ‘마음을 중개한다.’라는 의미로 mind media로 표기했죠. 지금은 수류산방 영문명을 Suryusanbang이라고 표기합니다. ‘버금’은 첫째가지 않는다는 뜻이잖아요. ‘중심(中心)’이 아닌 ‘언저리’에 자리하자는 수류산방의 철학을 담고 있기도 합니다.
‘수류산방이 말하는 수류산방’이 궁금합니다. 수류산방을 뭐라고 소개하시나요?
‘해결사’ 구실을 하지만, 우리를 뭐라고 규정할지 저희도 여전히 고민 중입니다. 수류산방은 어떤 회사일까요? (웃음) 초창기에는 그때그때 문제 해결을 하는 ‘프로젝트 그룹’이라고 말하기도 했어요. 매번 다른 상황에서 프로젝트를 풀어가는 그룹이라는 의미였어요.
출판뿐 아니라 음반과 전시, 공연, 공간 기획, 기업 BI(Brand Identity) 작업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류산방은 ‘출판사’인가요? ‘기획사’인가요? ‘디자인 회사’인가요? 수류산방의 ‘정체성’이 궁금합니다.
쉽게 말하면 ‘광고 대행사가 하는 업무를 소규모로 하는 회사’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누군가 문제를 갖고 있으면 해결해주는 일종의 ‘흥신소’ 구실을 해왔어요. 출판사 등록을 했으니까 ‘출판사’이긴 합니다. 하지만 클라이언트의 의뢰는 결국 ‘콘텐츠’거든요. 저희는 ‘콘텐츠’를 책뿐 아니라 음반과 공연, 전시와 기업 BI로 풀어내기도 합니다. 그렇다고 일감을 먼저 찾아 나서지는 않고, 저희에게 ‘의뢰’가 들어오기 때문에 일을 계속하고 있어요. 저희가 하겠다고 나서기보다 다른 분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작업을 하게 됐어요.
‘들어오는’ 일뿐 아니라 일을 ‘만들어’ 하신다는 얘기도 있더라고요.
건축가 조성룡, 예술인이자 소리꾼 최은진 선생님 같은 분의 ‘속사정’을 알고 도와드리는 과정에서 일부러 ‘일을 만들기’도 했어요. 조성룡 선생님이 ‘소록도 마을 지키기’ 프로젝트를 진행하셨거든요. 이 프로젝트를 알리기 위해 심포지엄과 전시를 추진했죠. 전시는 보안1942 최성우 대표님의 도움을 받아 ‘건축의 소멸 - 보안여관에서 소록도를 생각한다.’라는 주제로 보안여관에서 개최했어요.
때로는 돈을 받고 일을 하는 게 아니라 저희가 투자를 해서 일을 ‘만들기’도 해요. 경제적으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죠. 오히려 저희 돈을 들여 일을 하니까, 마이너스라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무도 하지 않겠구나, 우리가 해야겠다.’라고 판단하면 일을 ‘만들어’ 합니다.
최은진 선생님은 1920~1930년대 ‘만요(漫謠, 재미있는 가요)’를 알리는 작업을 하시거든요. 2010년 최은진 선생님이 〈풍각쟁이 은진〉을 낼 때 음반 디자인과 소책자 작업을 함께 했어요. 음반 재킷이 책처럼 보이도록 만들었어요. 최은진 선생님께 다음 작업은 ‘실험적인 음반’으로 만들자고 제안했죠. 1930년대에서 1960년대 노래까지 하나하나 번안하고, 새로 작곡한 2곡도 함께 음반에 수록했어요. 그 결과물이 2018년 나온 〈헌법재판소〉입니다. 〈헌법재판소〉는 288쪽 분량의 책에 음반을 담아 발매했어요. 출시와 함께 음반에 담긴 노래를 알리는 공연 ‘은진철도 고고고’를 2~3번 개최하기도 했어요. 그 때 알았죠. ‘음반’은 ‘책’보다 수익이 더 안 난다는 사실을. (웃음)
최은진의 〈헌법재판소〉: 여느 음반처럼 CD에 소책자가 있는 형식이 아니다. 288쪽 분량의 책에 CD가 담겨 있다.
수류산방은 ‘대중출판’이 아니라 ‘장인출판’ 또는 ‘실험출판’의 영역에 자리한 출판사로 봐야 할까요?
저희도 궁금합니다. 수류산방은 어느 영역에 있을까요? (웃음) 대중적인 트렌드를 좇지 않고, 저희가 하고 싶은 일을 우직하게 하기 때문에, 그런 평을 할 수도 있겠네요. 주변 지인으로부터 가끔 이런 말을 듣기도 해요. “수류산방 만든 이가 돈이 많아?” 아마 ‘돈이 많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런 출판을 계속할 수 있느냐?’는 반문일 거예요.
박상일 방장님과 심세중 대표님의 ‘역할 분담’도 궁금합니다.
‘공동 작업’을 한다고 보면 됩니다. 디자인하우스 시절부터 25년 넘게 함께 일하다 보니, 기획이나 편집, 디자인, 사진 작업을 넘나들며 ‘함께’ 일하고 있어요. 굳이 구분하자면, 글을 만지고 편집하는 일은 대부분 심세중 대표가 담당하고, 디자인은 주로 박상일 방장이 맡아왔죠. 처음에는 디자인할 사람이 없었거든요.
대외적인 업무도 함께 해요. 심세중 대표가 외부 조율을 맡는 경우가 많죠. 창업 동지인 김용한 이사님이 올여름 다시 합류한 후로는, 클라이언트와 커뮤니케이션하는 업무를 함께 해서 한결 든든해요.
수류산방이 일하는 법
클라이언트로부터 의뢰가 들어오면, 수류산방은 ‘어떻게’ 작업을 하나요?
문제를 풀어갈 때 ‘잡지(雜誌) 마인드’를 가지고 일을 합니다. 잡지는 피처(feature) 기사부터 사진 화보까지 여러 형식을 담고 있고, 내용으로 보면 패션부터 정치까지 다양한 콘텐츠가 ‘공존’하잖아요. 콘텐츠를 다양하게 풀어내는 ‘잡지 방식’을 선호합니다. 수류산방 구성원이 대부분 잡지를 거쳐서 그런지, 잡지 방식으로 일하는 걸 즐겨 해요.
수류산방은 ‘기획’과 ‘디자인’을 함께 하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클라이언트가 기획에 대해 ‘콘셉트’를 가지고 있는 경우 많이 부딪히지 않았나요?
그럴 때는 일을 못하죠. 함께 일을 안 합니다. (웃음) 저자가 ‘콘셉트’나 ‘그림’을 가지고 있는 경우 안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콘셉트와 그림을 만드는 건 ‘수류산방의 몫’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수류산방은 콘셉트를 정하고, 작업을 병행합니다. ‘기획’과 ‘디자인’을 함께 진행하죠. 작업 중간에는 클라이언트에게 ‘작업물’을 보여주지 않아요. 그렇게 완성된 작업물을 가지고 클리이언트를 만났을 때 ‘갈등’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요.
클라이언트와 생각이 좁혀지지 않을 때 중간에 일을 그만두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사례도 자주 있나요?
클라이언트를 처음 만날 때 감당할 수 없을 듯하면, ‘잘 생각해보고 결정하시라.’라고 미리 말씀드려요. 요즘에는 처음부터 단단히 설명해서 돌려보냅니다. (웃음) 그렇게 시작해도 수류산방 ‘작업물’을 받아보고 당황하는 건 요즘도 마찬가지예요. 하지만 그만큼 진행한 단계에서 그만두는 사례는 이제 많지 않아요.
작업물 때문에 클라이언트와 싸우기도 하나요?
때로는 싸울 때도 있죠. 생각이 다를 땐 싸워서 ‘결판’을 내야죠. 클라이언트 대부분은 수류산방 작업물을 처음 받아 봤을 때 ‘이건 아니다.’라고 생각해요. 익숙하지 않고, 상상하던 형태도 아니니까요. 심하면 ‘폭언’이 오가는 경우도 있어요.
배우 박정자 선생님도 처음에는 달가워하지 않았어요. 박정자 선생님은 30주년과 40주년 때도 다른 출판사에서 책을 냈는데, 모두 에세이류의 말랑말랑한 책이었죠. 50주년 책은 다르게 가자고 ‘기획’했어요. 50주년 책까지 비슷한 에세이로 낼 필요가 있을까 싶었어요. 한 사람의 50년은 ‘아카이브’로도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박정자’라는 배우의 50년을 통해 한국 연극 역사를 아카이빙하자는 구상으로 작업물을 만들었어요. 에세이를 생각했던 박정자 선생님이 처음에는 마음에 들어 하지 않았어요. 시간이 흐르면서 생각이 바뀌셨죠. 그렇게 탄생한 책이 『박정자와 한국 연극 오십년 1962~2012』(2012)입니다.
『박정자와 한국 연극 오십년 1962~2012』: 한 배우의 연기 인생과 한국 연극사 반세기를 교차해서 책으로 엮었다.
클라이언트와 일하는 과정이 쉽지 않아 보이네요.
작업 기간이 길어지면서 클라이언트로부터 ‘내용증명’이 날아온 적도 있습니다.
생각이 다른 클라이언트와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이 궁금합니다.
예전에는 클라이언트 미팅 때 이렇게 말씀드리기도 했어요. “환자가 병원에 와서 처방을 내리지 않고 처방을 받듯, 저희 작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콘텐츠에 대한 ‘솔루션’은 저희가 제시합니다. 클라이언트 생각대로 책을 낼 거라면 다른 출판사 통해 ‘자비 출판’을 하시면 되지, 굳이 수류산방에서 책을 낼 이유는 없습니다.”
처음부터 ‘믿고 맡기는’ 분도 있나요?
건축가 조성룡 선생님과 화가 김택상 두 분은 작업 과정에서 아무 말씀도 안 하셨어요. 조성룡 선생님은 2001년 발간한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를 작업하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서로 잊고 지내다가 10년쯤 지나서 정기용 선생님이 돌아가셨을 때 다시 만나 인연을 이어오고 있어요.
의재미술관에 이어 충청남도 홍성의 이응노 생가기념관도 조성룡 선생님이 설계하셨거든요. 『이응노의 집, 이야기』(이응노, 2012)와 조성룡 선생의 첫 책 『건축과 풍화: 우리가 도시에서 산다는 것은』(2018)을 발간할 때도 책이 나올 때까지 중간에 교정지를 보여드리지 않았어요.
수류산방에 대해 조성룡 선생님의 ‘믿음’이 굳건하셨나 봐요.
믿음도 있으셨겠지만 ‘얘들은 중간에 건드리지 않아야 잘 한다.’라는 것을 알고 계시지 않았나 싶어요. (웃음) 다행히 조성룡 선생님은 완성된 책을 마음에 들어 하셨어요.
김택상 선생님은 청운동 시절 알게 된 분이에요. 저희를 불쑥 찾아오셨죠. 서로 만남을 이어오다가 책 작업을 하게 됐어요. 김택상 선생님은 정말 책이 나올 때까지 한마디도 안 하셨어요. ‘믿고 맡기는 분’이었어요. 『김택상의 색, 채의 건축술』(2020)은 그렇게 탄생한 책이에요. 김택상 선생님 역시 결과물을 무척 좋아하셨어요. 수류산방의 실험으로 보자면 ‘걸작’이 나왔는데, 많이 알려지지 않아 아쉬워요. (웃음)
처음부터 저자와 수류산방의 생각이 일치하는 경우도 있나요?
조병준 선생님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 이 땅이 아름다운 이유』(2005), 『퍼스널 지오그래픽』(2021), 김인환 선생님의 『과학과 문학: 한국 대학 복구론』(2018)처럼 원고에 거의 손을 안 대고 만든 책도 있어요. 아주 드문 경우죠. 그렇다고 이 작업들에서 수류산방이 크리에이티비티(creativity)를 발휘하지 않은 건 아니고요.
저자에게도 자신의 책에 대한 그림이나 희망이 있을 수 있어요. 하지만 출판사라면 저자가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까지 책으로 구현해낼 수 있어야 해요. 이 부분이 수류산방 출판 프로젝트의 핵심이자 도전 과제예요. ‘저자에게 그림이 있다면, 출판은 그걸 깨는 것에서 출발해야 한다.’라고 생각해요.
뭔가 해결되지 않는 분들이 알음알음 수류산방을 찾아오신다고 들었습니다. 그만큼 난도가 높은 프로젝트가 많았을 듯합니다. 수류산방이 진행한 프로젝트 중 가장 어려웠던 작업은 무엇이었나요?
늘 어려운 일의 연속이지만, 막상 가장 어려웠던 작업을 말하라고 하니까 금방 떠오르지 않네요. 수류산방에서 일하면서 ‘나쁜 일을 곧 잊는’ 버릇이 생겼어요. (웃음) 매일유업의 50년 역사를 아카이빙한 『매일 50』(2019)도 난도가 높은 프로젝트였어요. 무엇보다 작업량이 어마어마했어요. 방대한 기사와 논문, 인터뷰와 사진 자료를 정리해야 했거든요. 작업 기간도 32개월이나 걸렸어요. 1969년부터 2019년까지 매일유업 50년을 10년씩 끊어서 5권의 『아카이브북』으로 만들고, 요약본으로 『연대기』와 『생태학』 2권을 따로 만들었습니다.
『국립극단 70+ 아카이빙』(2021)은 원래는 논문집 형태의 책을 의뢰받았어요. 그리고 국립극단 내부에 아카이브 자료가 다 있다고 하니, 그 자료들을 구성해서 70년 역사를 정리해 주겠다고 제안했습니다. 수류산방의 선물이라고…. 그런데 막상 작업에 착수하고 보니, 아카이브 자료가 엉망이었어요. 국립극단이 지금까지 한 모든 공연과 팸플릿, 몇만 장의 사진까지… 모든 자료를 읽고 검토하면서 ‘아카이빙’하는 작업을 병행했어요. 이 과정에서 여러 연극 전문가가 쓴 책과 논문에도 오류가 적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됐어요. 잘못된 레퍼런스를 반복해서 참고했기 때문이죠. 확인 가능한 오류는 최대한 바로잡았습니다.
이런 노력 속에 1,300쪽이 넘는 『국립극단 70+ 아카이빙』이 탄생했어요. 난도가 높은 작업을 할 때면 ‘제명에 못 살겠구나.’ 생각이 들 정도로 힘들어요. 하지만 작업을 마치고 나면, 성장을 했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죠.
『국립극단 70+ 아카이빙』: 1,304쪽 분량의 벽돌책을 연상시키는 위용
듣기만 해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드네요. 작업 과정이 정말 힘들 듯합니다.
작업물을 만드는 과정도 쉽지 않지만, 정말 힘들 때는 따로 있어요. 예컨대 함께 작업해야 하는 담당자가 중간에 삐져서 여러 가지로 못 살게 구는 경우가 있어요. 스태프들이 울고불고 난리가 나기도 하죠. 클라이언트가 출판사나 디자인 에이전시를 전문가나 동등한 업무 파트너로 대하지 않고, 권위를 행사할 때 모멸감을 느끼죠. 그럴 때는 지금까지 작업한 내용을 아까워하지 않고, 바로 ‘파투’를 내기도 해요.
시간이 지날수록 작업이 쉬워져야 할 텐데, 어려운 프로젝트만 몰려오면 난감하겠네요.
역설적이지만 해결되지 않는 ‘난제’일수록 합의점이 잘 도출돼요. 그만큼 어렵기 때문에 공감대가 잘 만들어져요. 그런 ‘고민’을 직접 겪어 보지 않고 찾아온 분들이 저희 제안을 어려워합니다. 쉽게 말하면 그저 ‘예쁜 책’ 만들고 싶어서 온 분들이라고 할 수 있겠죠. ‘책 예쁘게 잘 만든다는 소문 듣고 왔는데, 뭐가 이렇게 복잡해?’ 이렇게 생각하면 일이 어려워지죠.
‘비용’과 상관없이 최고의 답이 나올 때까지 계속 작업을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현실적으로는 어느 지점에서 ‘타협’할 수밖에 없지 않나요?
클라이언트가 의뢰하는 프로젝트나 단행본 출판물이나 ‘이만하면 되었다 싶은답’이 나올 때까지 작업을 끝내지 않는 건 마찬가지예요. 물론 무한정 작업물을 붙들고 있을 수는 없어요. 어느 선에서는 타협을 한다고 볼 수 있죠. 하지만 최고는 아니더라도 저희 마음에 들 때까지 계속 작업을 합니다. 단행본 책값을 정할 때 회사 안에서 이견이 있을 때가 많아요. 책에 들인 공만큼 책값을 매기기 어렵거든요.
프로젝트도 마찬가지예요. 예산을 넘어서더라도 결과물이 만족스러울 때까지 ‘계속’ 작업합니다. 이 책이 탄생해야 하는 이유, 그 가치가 표현될 때까지 일을 밀어붙여요. 국립현대미술관과 함께 만든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2022)도 그런 사례였어요. 이번에 예술가 문신 ‘탄신 100주년’을 맞아 출판물로 정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문신 선생의 조각 작품을 전면 사진만 찍지 않고, 전후좌우 8면을 돌아가면서 촬영해서 수록했어요. 그래야 작품의 입체감을 살릴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시간과 품이 많이 드는 작업일 수밖에 없어요.
공을 많이 들여 작업을 하시는데요. 기관이나 클라이언트가 예산을 충분히 배정하나요?
기관이나 클라이언트는 감안해서 예산을 더 책정한다고 하지만, 수류산방이 들이는 품에 비해서는 한참 모자란 경우가 대부분이죠. 그래서 저희 작업 과정을 알고 있는 담당자들은 미안해하는 경우가 많아요. 다음에 다시 작업할 때는 충분히 예산을 배정하겠다고 말하지만, 그런 여유 있는 상황은 생기지 않아요. 다음에 다시 프로젝트를 하더라도 담당자가 바뀌는 경우가 흔해요. 과제는 늘 어렵고, 예산은 부족하고, 기간은 언제나 빠듯하죠.
수류산방이 생각하는 출판
수류산방은 단행본을 낼 때 저자를 어떻게 ‘섭외’하는지 궁금합니다.
수류산방에서 책을 내는 필자 중에 티켓파워를 지닌 베스트셀러 작가는 거의 없어요. 조병준 선생님을 비롯해 모두 ‘훌륭한 저자’ 분들이지만, 이른바 ‘유명한 저자’는 없죠. 저희와 인연이 이어져서 책을 낸 저자가 대부분입니다. 곧잘 하는 말이지만, 잘 팔리는 저자라 해도 그 분의 가장 덜 팔린 책이 수류산방 책일 거예요.
저희가 내는 책 중 상당수는 팔릴 가능성이 많지 않은 원고일 수 있어요. 그러다보니 ‘콘텐츠 파워’가 있다고 보긴 어려워요. 그런 콘텐츠를 재료 삼아 수류산방은 일을 합니다. 콘텐츠를 어떻게든 살리고 싶어서, 일반 출판사에서 하지 않는 형태와 디자인, 물성으로 책을 만들어요.
영화계에는 ‘좋은 시나리오로 만든 영화도 흥행이 안 될 수 있다, 하지만 나쁜 시나리오에서 출발한 영화가 흥행할 수는 없다.’라는 말이 있더라고요. 출판계에도 ‘좋은 원고로 만든 책이 안 팔릴 수는 있지만, 나쁜 원고로 만든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지 않는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어요. 원고가 부족할 때는 출판사도 어쩔 수 없지 않나요?
흥행이 될 만한 원고, 잘 팔리는 원고가 ‘좋은 원고’라고, 반대로 팔리지 않는 원고라서 ‘나쁜 원고’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예쁜 배우, 월드 스타를 캐스팅했다고 ‘좋은 영화’가 탄생하는 건 아니잖아요. 유명 배우가 없어도 감독은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어야 해요. 저자와 출판사 관계도 이와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출판은 ‘저자의 역할’을 지나치게 강조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저자 = 흥행’이라는 공식 속에 출판 방정식이 빈약해졌어요. 좋은 원고를 쉽게 얻는 방법의 하나가 번역서일 거예요. 그런데 문학적 필력이 부족하거나 저자의 유명세가 아쉬운 원고를 가지고도 출판사는 ‘좋은 책’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자의 몫에 참여해 함께 집필할 수도 있고, 저자를 독려해 성장해 나가기도 합니다. 그렇게 하면서 책을 깊이 이해하는 ‘안목의 공동체’가 만들어지죠. 어떤 상황에서도 책을 만들어내는 게 수류산방의 도전 과제예요.
‘책’은 쓰는 걸까요? 만드는 걸까요? 저자가 원고를 쓰지만, 책은 수류산방이 만들어요. 이런 의미에서 수류산방에서 내는 출판물은 ‘저자만의 책’이 아니에요. ‘수류산방의 책’이기도 해요. 저자가 원고를 쓰지만, 출판사는 책을 상품화하는 과정에서 돈과 인적, 무형적 자원을 가장 적극적으로 투입하는 주체이기도 해요. ‘우리가 함께 만든 책’이죠. 이런 관점으로 보면, 저자의 책을 출판사가 ‘대신’ 팔아 준다고 말할 수도 없어요.
외주로 들어오는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와 자체적으로 책을 내는 ‘단행본 출판’의 비중을 어떻게 조절하시나요?
단행본 출판물은 계속 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많이 내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절충점으로 찾은 방법이 있습니다. 기관이나 클라이언트로부터 외주를 받아 작업한 결과물을 출판할 수 있는 성격으로 보완해서 ‘유료 판매’로 적극적으로 돌리고 있어요.
『국립극단 70+ 아카이빙』과 『문신文信: 우주를 향하여』(2022)는 그렇게 출판한 책입니다. ‘비매품’을 ‘판매용’으로 돌리는 거죠. 수류산방도 기획과 투자를 해서 ‘파는 책’으로 돌리는 사례가 많아요. 순수하게 단행본을 내는 경우는 1년에 1권 낼 때도 있고, 더 낼 때도 있어요. 2023년에는 지금까지 이우성 산문집 『좋아서,』 한 권만 나왔어요. 수류산방 책은 ‘제작비’가 많이 들어요. 일반 출판사와 비교해서 제작비가 2~3배 정도 더 들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서 단행본은 생각보다 많이 내지 못하고 있어요.
‘클라이언트 프로젝트’와 ‘단행본 출판’의 매출 비중도 궁금합니다.
단행본 출판 사업은 수류산방 전체 매출에서 5%도 안 될 거예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수류산방은 ‘출판사’라고 말하지 않아요. 〈출판N〉 인터뷰 제안을 주셨을 때 선뜻 답을 드리지 못한 이유도 이 때문이에요. 매출이 크지 않다고 업무 비중이 적은 건 아니에요.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단행본 출판 사업이 30% 정도 됩니다.
수류산방 현판: 수류산방은 성북동, 청운동, 팔판동 시대를 거쳐 신문로2가(경희궁길)에 새롭게 둥지를 틀었다.
작업을 할 때마다 관련 자료를 ‘전부’ 찾아 읽으신다고 들었습니다. 수류산방은 작업을 할 때 연구자가 밝히지 못한 오류까지 잡아내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이 과정이 말처럼 쉽지 않을 텐데요.
솔직히 ‘미치도록’ 힘들 때가 많아요. ‘책 만들기’를 넘어서 ‘책 쓰기’를 하거나 저자의 몫까지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있어요. 저희 작업 중에는 『국립극단 70+ 아카이빙』처럼 공동 저자가 많거나 『매일 50』처럼 저자가 분명하지 않은 책도 있거든요.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2011~2012)처럼 구술 자료를 바탕으로 책을 내는 경우도 마찬가지예요.
필자가 많을 경우 아무도 ‘내 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어요. 원고 내용에 오류가 있어도 책임지지 않는 경우가 있어요. 결국 수류산방이 ‘우리 책’이라는 생각으로 작업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번에 책을 내면 언제 또 내겠느냐, 저자는 앞면만 볼 때 우리는 옆면과 뒷면을 다 본다.’라는 마음으로 오류를 잡아내려고 애써요.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는 경우가 많죠. 아무리 책 만들기에 공을 들여도, 내용에 오류가 있으면 ‘책의 가치’가 훼손될 수 있잖아요.
애플 창업자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했다는 ‘뛰어난 목수는 가구의 보이는 면뿐 아니라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 신경 쓴다.’라는 말이 떠오르네요.
원고는 ‘저자 책임’이지만, 책이 나오면 출판사와 ‘공동 책임’이 되니까요. 저자가 쓴 원고를 비판적으로 의심하고 검증하는 관점으로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원고를 읽는 ‘첫 독자’이자 ‘마지막 작업자’라는 책임감으로 작업에 임해요.
수류산방이 일하는 방식이 남다르다 보니, 선호하는 ‘인재상’이 따로 있을 듯합니다.
수류산방은 ‘편집’과 ‘디자인’의 구분이 별로 없어요. 책을 만드는 전체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함께’ 하고 있어요. 때로는 저자가 편집자처럼 교정을 함께 하기도 해요. 저희는 책 만드는 과정을 나누지 않아요. 원시공동체처럼, 르네상스 이전 시대 장인들처럼 모든 사람이 모든 작업을 함께 하죠.
이런 이유로 저희는 스태프를 ‘에디터’나 ‘디자이너’라고 하지 않고 ‘PD’라고 부릅니다. 말 그대로 프로젝트를 이끌어가는 ‘프로듀서’를 지향하기 때문이에요. 사정이 이렇다 보니 편집 또는 디자인만 하고 싶은 분은 함께하기 어려워요. 수류산방이 ‘공채’로 사람을 뽑지 못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공채로 뽑은 적도 있지만, 일을 감당하지 못하고 떠나는 경우가 종종 있었어요. 수류산방을 이해할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는 분을 어렵사리 만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가끔은 수류산방이 안데르센 동화 『완두콩 공주』에 나오는 공주의 감수성을 지향하는 게 아니냐고 얘기할 때가 있어요. 작업을 할 때는 침대요 20장, 솜이불 20장을 깔고도 완두콩 한 알 때문에 잠 못 이뤘다는 공주처럼 예민해져야 해요. 종이와 판형, 디자인까지 ‘심미안의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그렇다고 수류산방이 그런 수준에 도달했다고 말씀드리는 건 아니에요.
수류산방 책만이 지니는 독특함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수류산방 책에 ‘편집 후기’라고 할까요, 저희가 쓴 글을 한 편 정도 넣으려고 하고 있어요. 이번 책이 어떤 과제였고, 그 시간 동안 수류산방은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글을 통해 ‘방점’을 찍고 가려고 해요. 이번에 20주년 기념으로 출간한 『건축의 무빙: 책으로 본 20~21세기 건축의 모험』(이건섭, 2023)에도 「수류산방 책의, 건축의 무빙, 20년」이라는 글이 12쪽 분량으로 담겼어요.
작업을 할 때는 ‘아마추어의 관점’을 유지하려고 애써요. 한국 지식사회는 식민지 관점이나 대외종속 관점을 취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른바 ‘전문가의 함정’이죠. 전문가가 자기 지식체계를 고집하면서 대중과 동떨어진 경우가 있어요. 지식 분야마다 자기만의 성(城)이나 영역을 쌓는 경우가 흔하죠. 그러다 보면 현실에 대한 총체적 접근에서 프로가 아마추어보다 오히려 못할 때도 있어요. 그래서 수류산방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모르는 아마추어의 관점에서 출발해요.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의심하고, 다시 점검하는 프로세스로 일을 합니다.
20주년을 맞아 출간한 『건축의 무빙』: 수류산방이 직접 쓴 ‘맺음말’이 인상적이다.
글꼴로 ‘명조체’만 사용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한때는 ‘명조체’만 고집할 때가 있었죠. 지금은 명조체뿐 아니라 고딕이나 다른 글꼴을 사용하기도 해요. 홍성택 대표님이 안그라픽스에서 10년 일한 후 홍디자인을 설립하셨어요. 그 즈음(2000년 전후) 그 분이 몇몇 프로젝트에서 ‘명조체’만 쓰는 작업을 선보였어요. 홍성택 대표님의 프로젝트를 인상 깊게 봤습니다. 다른 곳은 몰라도 수류산방만큼은 명조체 위주로 작업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제목을 강조하기 위해 꼭 서체를 키우거나 바꿔야 할까요? 그런 생각은 ‘편의적인 발상’일 수 있어요. ‘서체 바꾸기’가 과연 ‘디자인의 본령일까?’를 고민한 시간이 길었습니다. 서체 바꾸기 관행에 ‘질문’과 ‘의심’을 던져본 거죠. 하나의 서체를 쓰더라도 위치와 크기에 따라 본문과 제목, 캡션 등 서로 다른 기능을 직관적으로 부여할 수는 없을까, 조판 디자이너라면 그런 도전을 피하지 않아야 해요. 고전적인 편집과 서체 디자인 분야에서 예전부터 이런 실험과 작업을 해왔던 것으로 알고있습니다.
모든 관성과 관행에 ‘왜?’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일을 하시네요.
당시 박상일 방장님은 명조체만 사용하면서 이런 말을 하기도 했어요. ‘한쪽 손을 묶고 한 손만으로 싸움을 하는 상황과 비슷하다. 한계 안에서 자유자재로 작업할 수 있을 정도가 되면, 즉 명조체만으로 능수능란한 디자인 작업이 가능할 때 다른 글꼴을 쓰겠다.’ 수류산방에서 일하는 스태프 중에는 ‘제발 다른 글꼴도 쓰면 안 되냐.’라고 울상 짓는 친구들이 있었죠. 요즘에는 필요할 때 다른 글꼴도 쓰고 있어요. (웃음)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에서 펴낸 정기간행물 〈공예+디자인〉은 독특한 편집과 디자인 작업으로 찬사와 혹평을 동시에 받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박상일 방장님은 『지금, 한국의 북디자이너 41인』(프로파간다, 2009)에 소개되기도 하셨는데요. ‘수류산방이 지향하는 북디자인’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공예+디자인〉은 ‘불편한 가독성’으로 느리게 읽도록 만들었어요. ‘속독(速讀)’이 아닌 ‘완독(緩讀)’을 이끌어내기 위한 장치였죠. 몇몇 유명한 디자이너 분들이 “최악의 디자인”이라고 ‘혹평’을 한 것과 달리, 발행기관과 독자는 ‘호평’을 해주셨습니다.
수류산방은 소규모 디자인스튜디오에서 할 법한 디자인 스타일을 출판계의 편집 디자인에 적극적으로 적용해 왔어요. 출판 분야가 상대적으로 보수적일 수 있는데, 전문 디자인을 쉽게 번안한 저희 디자인을 벤치마킹하는 사례도 생겨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렇게 20년 정도 책을 내다 보니 ‘수류산방 디자인 스타일’, 이른바 ‘산방 스타일’이 확산되기도 했어요. 하지만 어떤 인용이나 언급도 없이, 저희 디자인을 ‘비슷하게 표현하는’ 사례를 보기도 하죠. 서점에 가서 책을 들쳐보기가 힘듭니다. 어쩌면 수류산방 북디자인은 ‘장렬하게 전사한’ 디자인 힌트와 선례를 만들어오지 않았나 싶습니다.
‘표지’ 디자인 작업은 어떻게 하시나요?
표지 디자인을 가장 나중에 합니다. 수류산방 책 표지만 모아서 보면, 일관성이 있다거나 ‘예쁜 표지’라고 말할 수는 없어요. 실용적인 면에서는 불편함이 느껴지는 디자인이 나오는 경우도 있어요. 조병준 작가의 『제 친구들하고 인사하실래요?』는 앞뒤 표지가 비슷합니다. 심지어 앞표지에 바코드와 책값도 있죠. 『도시마: Toshima』(정세영, 2009)와 『한국의 자연유산』(이선, 2009),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 시리즈, 『이남규李南奎 1931~1993: 한국의 서정 추상 화가』(이남규, 2013)는 책 재킷을 펼치면 한 장의 포스터가 되도록 작업했어요.
다만 표지 작업을 할 때 ‘원칙’은 있습니다. 표지는 그 책의 본문과 동일한 그리드를 사용합니다. 저희가 보기에 한국 출판물에서는 본문 그리드를 가지고 표지를 만드는 경우가 흔치 않아요. 수류산방은 앞표지부터 본문, 책을 덮을 때까지 이어지는 시각적 경험의 ‘일관성’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보통 출판사들에서 내는 책 중에 표지와 본문 디자인이 따로 노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요. 수류산방은 그렇지 않아요. 수류산방은 본문의 틀과 포맷을 최대한 완성한 다음에, 표지를 만드는 과정으로 넘어 갑니다.
우문(愚問)입니다만, ‘디테일’과 ‘크리에이티비티’ 중에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수류산방은 무엇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시나요?
(이 질문에 대해서는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한 김용한 이사님이 답을 해주셨다.) “수류산방에서 디테일과 크리에이티비티는 분리할 수 없어요. 디테일 없이 크리에이티비티는 존재할 수 없고, 크리에이티비티 없는 디테일은 공허할 수 있죠.”
기획과 편집, 디자인에 들이는 공력만큼 ‘제작’에도 각별히 신경 쓰실 듯합니다. 수류산방은 인쇄 감리를 꼭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제작 과정에서 에피소드가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수류산방 초창기 10년은 박상일 방장님이 직접 감리를 했어요. 저희 책이 제작 난도가 낮은 편은 아니거든요. 제작처에서 ‘그런 종이는 들어보지 못했다’라거나 ‘도대체 어떻게 작업하라는 거냐?’라며 되물어오는 경우가 많았어요. 다행히 제작에 자부심을 가지고 실험해 보거나 퀄리티 관리를 잘 해주는 거래처를 만나면 한시름 놓죠.
요즘도 인쇄소나 여러 제작 업체를 찾고, 배우고, 함께 상의하는 건 수류산방 PD의 중요한 과업입니다. 예전에는 박상일 방장님이 인쇄소에 직접 가서 ‘밤샘’을 하는 경우가 다반사였어요. 중간에 ‘제작 사고’가 나서 처음부터 다시 작업하는 경우도 많았죠.
가장 최근에 출간한 『건축의 무빙』도 의도한 대로 제작되지 않아 박상일 방장님이 굉장히 난감해하셨다고 들었습니다.
표지의 규격과 두께를 제본소 가이드대로 마무리했는데, 책을 받아 보니 1mm 정도 더 크게 작업하는 게 맞았습니다. 접지도 더 깔끔하게 나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어요. 제본도 ‘환양장(책등이 둥글게 잡힌 형태)’으로 작업을 요청했는데, ‘각양장(책등이 평평한 형태)’으로 나왔어요. 새로 나온 수입 친환경 용지를 시도해 봤거든요. 제작 업체에서 생소해서 그랬는지, 표지가 더 두껍게 나오지 않아서 손에 쥐었을 때 탄탄한 느낌이 덜 나더라고요. 자잘한 아쉬움들이지만, 디테일에서 저희 실험의 완성도가 결판이 납니다.
책을 매개로 다양한 실험과 도전을 하고 계신데요. 대형출판사로부터 임프린트 제안을 받지는 않으셨나요? 그런 제안이 있었다면 안정적인 ‘출판 실험’도 가능하지 않았을까요?
수류산방을 걱정하는 몇몇 분이 ‘안정적으로 출판을 하려면, 대형출판사 임프린트로라도 들어가야 하지 않느냐.’라고 말씀하긴 했죠. 그런데 수류산방의 출판 스타일과 사업 모델을 받아들일 수 있는 대형출판사가 있을까요? 있다 하더라도 서로 감당하기 어려웠을 겁니다.
수류산방의 책 이야기
단행본 출판사는 독자에게 팔릴 책을 기획해서 책을 만들고, 판매하는 프로세스를 가지고 있습니다. 수류산방의 출판 프로세스는 이와 다른가요?
단행본 책을 만드는 출판 프로세스 자체는 같아요. 다만 다른 출판사가 ‘팔릴 책’에 집중한다면, 수류산방은 ‘팔리지 않을 책’이라도 만들기로 결정하곤 합니다. 안 팔린다고 가치를 지니지 않는 책일까요? 수류산방은 ‘말로 된 책’뿐 아니라 ‘말도 안 되는 책’, ‘말이 되어야 할 책’까지 만듭니다.
수류산방 단행본은 문화예술 분야 책이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대표님과 방장님이 생각하는 수류산방의 ‘출판 분야’ 또는 ‘출판 키워드’는 무엇인가요?
출판 분야나 키워드가 따로 있진 않았어요. 전진삼 선생님이 만드시는 건축 잡지 〈와이드WIDE〉의 디자인을 몇 년 맡기도 했거니와, 한때 건축사 조성룡 선생님과 사무실을 같이 쓰면서 건축과 관련된 일이 계속 이어지긴 했죠. 심세중 대표님이 예술과 미술사를 전공했기 때문에, 그 분야 책도 조금은 했어요. 책을 그때그때 만나는 분들의 인연으로 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히 문화예술 분야 책이 많아졌습니다.
‘사업 영역’과 ‘출판 분야’를 좁힐 생각은 안 하셨나요? 분야를 좁히면 해당 분야에 대한 전문성과 노하우 축적이 쉬울 수 있잖아요.
솔직히 그런 생각은 해보지 않았어요. ‘출판 사업’에 대해 관심이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지만, 저희가 나서서 ‘출판 분야’를 좁힐 생각은 하지 않았죠. 저희를 찾아왔거나, 저희가 만나게 된 원고나 분야라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라고 내맡기는 편이었습니다. 클라이언트 업무 역시 사사(社史)나 특정 영역으로 좁히자는 구상이나 논의를 한 적은 없어요. 일을 하다 보니 ‘아카이빙’ 성격이 강한 작업이 많이 들어오긴 했습니다.
어찌 보면 ‘효율’을 생각하지 않는 작업 방식일 수 있어요. 하지만 분야를 좁히지 않더라도 저희가 작업하는 분야가 모두 연결된다는 생각은 하고 있어요. 분야를 가리진 않지만, 문학은 섣불리 다가갈 영역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첫 책 『20세기 건축의 모험』이 수류산방에 여러 가지 의미를 갖는 책으로 알고 있습니다.
『20세기 건축의 모험: 건축가 이건섭과 책을 타고 떠나는 현대건축과 디자인 여행』(2005)은 수류산방의 편집과 디자인 방식에 단초가 된 작업이에요. 수류산방이라는 이름으로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작업해본 건 이 책이 처음이었죠. 실험적인 시도가 많은 만큼 오류도 많은 책이에요.
박우진 사진가에게 특별히 요청해서 3개월 동안 촬영한 사진들이 하나의 작품이 되도록 했어요. 팁과 주석 역시 보조적 장치에 머물지 않고, 본문과 비슷해지도록 새롭게 처리했어요. 책에 넣고 싶었던 온갖 아이디어를 이 한 권에 다 담아 본 셈이 되었습니다. 이 책 때문에 수류산방이 출판 등록을 했기 때문에, 수류산방의 ‘첫 책’이 되었죠.
출간한 모든 책이 각별하겠지만, 수류산방 책 중에 특별히 의미를 부여하는 책이 있나요?
방금 말한 이건섭 선생의 『20세기 건축의 모험』과 이선 선생의 『우리와 함께 살아온 나무와 꽃』(2006)이 초기의 중요한 책입니다. 두 권 다 저희가 기획했다기보다 인연이 닿아 세상에 나온 책인데요. 책을 만들면서 저자와 신뢰가 많이 생겼어요. 갈등을 겪으면서 신뢰가 쌓였죠.
수류산방은 ‘출판사가 일을 의뢰하는 출판사’로 유명합니다. 2011년부터 나오기 시작한 『문학동네 시인선』은 어떻게 맡게 되셨나요?
『문학동네 시인선』은 김민정 시인과 문학동네 경영진이 ‘결단’하면서 탄생했어요. 『문학동네 시인선』 담당자였던 김민정 시인은 처음엔 표지 작업만 의뢰했어요. 수류산방은 ‘표지’와 ‘내지’를 일관성 있게 작업하기 때문에 표지만 작업하지는 않는다고 답했죠. 그래서 전체 디자인을 다 맡게 됐어요.
『문학동네 시인선』은 여러 가지로 파격적인 시도를 많이 하셨잖아요. 저자 약력을 뒤표지로 뺀다거나, 연을 표시하는 가로줄을 넣거나, 앞표지에 출판사 로고도 없습니다. 옆으로 넘기지 않고 ‘위로 넘기는’ 방식도 파격적이고요. ‘일반판’과 ‘특별판’ 2가지로 선보인 것도 독특한 시도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런 시도를 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김민정 시인이 디자인 방향에 대해 특별한 요청을 하진 않았어요. 작업을 진행하면서 시집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나 고민이 많았어요. 고심 끝에 ‘시집이 시각적·촉각적으로 달라져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죠. 그래서 실험적 방식을 많이 도입했어요. 그것이 ‘특별판’ 형식이 되었습니다. 첫 제안 때 특별판은 ‘무선’이 아니라 ‘중철’ 제본이었어요. 중철 제본이 채택되지 않은 건 제작처에서 난색을 표했기 때문이에요. 그 정도 분량을 당시에 일반 중철로 제본하기 어려웠거든요.
당시 관행이던 시집 디자인을 생각하면, 수류산방 안이 받아들이기 쉬운 제안은 아니었을 거예요. 문학동네 측은 수류산방 안을 다 수용하되, 대신 ‘일반판’을 추가하기로 했죠. 시집이 2가지 판으로 나온 건 그 때문이에요. 2011년 『문학동네 시인선』이 출간되면서 시집 북디자인이 크게 바뀌는 계기가 됐다고 여깁니다. 그 점에서 보람을 느껴요.
다섯 권으로 나온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의 작업 이야기도 궁금합니다. 이 책은 본문과 주석의 배치가 무척 독특합니다.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는 구술 내용을 오른쪽 면에, 팁과 주석, 사진을 왼쪽 면에 넣었어요. 주석과 본문을 나란히 배치하는 방식이었죠. 『20세기 건축의 모험』에 적용한 주석 배치 방식을 새로운 국면으로 발전시켰어요. 『20세기 건축의 모험』은 각주나 미주를 쓰지 않고, 본문에 주석을 바로 넣었거든요.
구술 원고에는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인물과 용어가 엄청나게 많이 나와요. 인물과 용어를 알아야 구술 내용이 이해되거든요. 그 과정에서 한눈에 지면을 펼쳐볼 수 있는 ‘신문’ 형식을 떠올렸어요. 주석과 팁이 너무 많다 보니, 생각해낸 방식이었죠. ‘하나의 판면에서 독자가 궁금한 내용을 최대한 해결하자’라는 구상이었어요. 각주도, 미주도 아닌 새로운 주석 처리 방식이죠. 이 방식이 독자가 읽기 편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옛날 우리 전통에서는 『대승기신론소』나 『논어집주』, 『금강경오가해』처럼 ‘주(註)’를 달거나 ‘소(疏)’를 다는 것이 저술 방식의 하나였어요. 서구에서 사용하는 각주나 미주는 그들의 편의에 의한 주석 처리 방식일 수 있어요. 그것만이 유일한 ‘원칙’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주석’이 하나의 ‘저술’이 되는 우리 전통을 살리고, 하나의 판면에서 모든 것을 해소할 수 있는 방식으로 가자고 결정했어요. 이런 고민 속에서 2011년부터 2012년까지 박용구, 전혁림, 장민호, 장기인, 박완서까지 다섯 권으로 완간된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이 탄생했습니다.
구술 자료를 책으로 묶어내는 것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나요?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의 구술 원고를 처음 받았을 때 상태가 심각했습니다. 고유명사를 비롯해 오류가 꽤 있었어요. 내용이 빈약한 부분도 많았죠. 채록 과정에 문제가 있지 않았나 싶었어요.
원고가 부실하다고 책을 대충 만들 수는 없잖아요. 구술 내용을 바로잡는 과정에서 방대한 주석 작업을 추가해서 책에 반영했어요. 주석은 수류산방에서 전부 작성했어요. 박용구, 전혁림, 장민호, 장기인 선생님의 책을 거쳐 다섯 번째 작업이 박완서 선생 책(『박완서朴婉緖 - 1931년~2011년』)이었어요. 박완서 선생 책은 박완서 선생이 이미 세상을 떠난 뒤여서 구술자 분께 내용 검토를 요청드릴 수 없었어요. 하는 수 없이 심세중 대표가 박완서 선생의 전작을 모두 읽고, 주석 작업을 진행했어요.
박완서 선생 구술 총서 작업을 할 때 다른 출판사로부터 ‘왜 구술 자료를 책으로 내려고 하느냐?’라며 좋지 않은 소리를 듣기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난 후 박완서 선생 따님이 정말 고맙다고 따로 연락을 주기도 하셨어요. 저희 작업을 통해 박완서 선생 ‘연보’가 제대로 정리되었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다면 다행입니다.
『박완서朴婉緖 - 1931년~2011년』: 구술 내용과 주석, 팁, 사진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신문’ 형식을 도입했다.
수류산방은 고객을 쫓아다니지 않고, 고객이 찾아오도록 한다고 들었습니다. 실제로 매일유업 사사 『매일 50』도 매일유업 회장님이 직접 수류산방을 찾아와 작업을 의뢰했다고 들었어요. ‘한 회사의 역사’를 넘어 ‘낙농사’를 정리한 프로젝트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작업하셨는지 궁금합니다.
매일유업 김정완 회장님이 수류산방을 직접 방문해서 제안을 주셨어요. 2016년 12월이었을 거예요. 밤샘 작업하고 새벽에 양치하고 있을 때 회장님이 수류산방 문을 열고 들어오셨죠. 저희에게 제안 주시기 전에 매일유업 사사 작업을 할 곳을 직접 알아보셨나 봐요.
김정완 회장님은 말 그대로 매일유업의 역사를 넘어 ‘낙농사’를 정리하고 싶어 하셨어요. 그래서 2가지 프로젝트를 동시에 진행했습니다. 굉장히 힘들었어요. 자료가 충분치 않았고, 흩어져 있어서 작업하기 어려웠어요. 어쩔 수 없이 매일유업 내부 자료를 많이 활용했죠. 낙농사를 정리했다고 할 정도는 아니고, 우리나라 근대 유가공업의 역사를 연보로 정리했다고 할 수 있어요. 연보 형태로 아카이빙 했을 뿐 낙농사를 ‘해석’하진 않았어요.
공자가 말한 ‘술이부작(述而不作)’의 관점과 통하네요.
수류산방은 사실을 섣불리 평가하지 않고, 여러 의견이 있을 경우 균형 있게 제시하려고 노력해요. 수류산방 작업에서 일관성 있게 나타나는 특징이죠. 매일유업 김정완 회장님이 전폭적으로 믿어주셔서 『매일 50』 프로젝트를 완성할 수 있었어요.
『매일 50』은 2020년 iF 디자인 어워드 커뮤니케이션부문을 수상하기도 하셨잖아요. 또 다른 사사 의뢰는 없었나요?
매일유업 사사가 계기가 되서 제약회사인 한독의 사사를 작업하고 있습니다. 한독에서 『매일 50』을 보고 마음에 들어서 『한독약품 70년사』를 수류산방에 제안해 주셨어요. ‘한독 역사’와 함께 ‘약업사’를 함께 정리하고 있어요. 매일유업도 그랬지만, 회사에서 공공역사를 함께 정리하려는 마인드가 있어서 가능한 작업일 거예요. ‘약업사’는 단행본으로 출판되면 좋겠어요.
문화재청 의뢰로 2007년 발간한 『궁궐의 현판과 주련』(전3권)은 처음에 ‘국판’ 사이즈로 제안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판형이 커진 건 문화재청의 요구 때문이었나요?
수류산방은 책을 들고 다닐 수 있도록 ‘국판’으로 제안했어요. 문화재청에서는 ‘폼 나는 판형’을 원하셨죠. 『궁궐의 현판과 주련』은 2006년 문화재청의 학술조사 연구용역 『궁궐 현판의 이해』와 『궁궐 주련의 이해』 보고서를 바탕으로 만들었어요. 문화재청에서 ‘내부 연구물’을 ‘대중 출판물’로 전환하는 과정에서 수류산방과 연결됐어요.
문제는 보고서에 내용 오류가 많았다는 점이었어요. 바로잡는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서울의 5대 궁궐을 모두 방문해서 현판의 위치와 내용을 일일이 대조했어요. 보고서 내용을 하나하나 검증했죠. 작업 기간이 길어지니 문화재청 담당자도 애를 먹었어요. 다행히 책이 나왔을 땐 담당자도 좋아하셨어요.
이 책은 별 반응이 없다가, 문화재청장이었던 유홍준 교수님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 9 – 서울편 1』(창비, 2017)에서 ‘궁궐 답사 때 꼭 지참하는 책’으로 언급하면서 주문량이 늘었어요. 유홍준 교수님과 수류산방은 친분이 전혀 없는데, 책에서 소개하셨더라고요. 지금도 꾸준히 팔리는 책이에요. 수류산방의 스테디셀러죠. 2007년 책이 나왔으니까, 출간한 지 16년 흘렀네요. 오랜 기간 팔린 책이라 ‘관리비’가 더 들긴 했어요. 회사 살림에 도움이 됐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네요.
서울시에서 2014년 발간한 『민선5기 공공임대주택 8만호 백서』는 2~3개월 안에 납품해야 할 책이었다고 들었어요. 이 백서를 1년 가까이 작업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 관(官)에서 발주한 프로젝트는 기관 일정에 맞추는 경우가 일반적인데요. 담당 공무원 반응이 어땠는지 궁금합니다.
자료의 양이 방대해서, 짧은 기간에 백서를 정리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어요. 담당 공무원이 자기 좀 살려 달라고 밤까지 버티기도 하고, 납품 기한을 ‘각서’로 요청해서 써주기도 했어요. 작업 난도가 높다는 걸 알게 되면, 담당자들도 사업을 연장하거나 과업을 바꾸는 식으로 ‘방법’을 찾아주세요.
『민선5기 공공임대주택 8만호 백서』를 작업하는 과정에서 임대주택 상당수 세대를 방문해서 조사를 했어요. 주민 인터뷰도 직접 했죠. 주민뿐 아니라 건축가, 관리인, 주변 이웃과 부동산까지… 다양한 이해 관계자를 만났어요. 이 과정에서 임대주택 주민의 생활과 불만까지 백서에 담아냈어요. 작업 과정은 힘들었지만, 서울시가 다음 임대주택 사업을 추진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됐죠. 책으로 그치는 백서도 많잖아요. 본연의 목적에 충실한 백서를 만들어서 보람이 있었습니다.
수류산방의 책 판권에는 프로듀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들어갑니다. 『20세기 건축의 모험』 판권에는 ‘이미지’가 들어가기도 했습니다. 수류산방 만의 ‘판권 표기 정책’이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세기 건축의 모험』 판권 이미지는 잘 몰라서 넣었어요. (웃음) 발행인 위주로 판권을 표시하는 출판사들이 있는데, 그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박가서.장 시절부터 ‘판권 실명제’를 적용했습니다. 수류산방은 책에 기여한 사람과 참여한 사람을 모두 판권에 표기해요. 이름도 한글뿐 아니라 영문까지 모두 병기합니다. 실낱같은 도움을 주신 분도 빠짐없이 넣어요. 근무한 사람과 기여한 사람을 분리해서 판권에 넣기도 해요.
수류산방에서는 에디터, 디자이너를 나누기보다는 기획부터 책 출간 프로젝트를 전체적으로 이끈 사람을 ‘프로듀싱’으로 표기합니다. 앞서 말했지만 수류산방은 스태프를 PD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아요. 리서치나 취재, 편집과 디자인, 제작까지 여러 영역을 넘나들면서 일하기 때문이죠.
수류산방이 출간한 책 중 가장 많이 팔린 책은 어떤 책이고, 몇 부 정도 팔렸는지 궁금합니다.
『궁궐의 현판과 주련』이 1권부터 3권까지 세 권이거든요. 부수로는 가장 많이 팔린 책일 거예요. 『20세기 건축의 모험』, 『우리와 함께 살아온 나무와 꽃』, 『한국전통공예: 18세기 조선의 일상과 격조』(2007), 『이응노의 집, 이야기』도 여러 쇄를 찍었어요. 조병준 작가님의 『퍼스널 지오그래픽』과 황현산 선생님의 강의록 『전위와 고전: 프랑스 상징주의 시 강의』(2021)은 기간 대비 많이 팔린 책일 거예요. 가장 빨리 2쇄를 찍은 책이죠. 이번에 출간한 『건축의 무빙』도 엄청난 책이 되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어요. (웃음)
수류산방 작업 중 가장 아쉬운 책이 있다면, 어떤 책인가요?
책 작업을 마칠 때마다 너무 지쳐서 아쉬울 여력도 없어요. 하지만 작업을 마무리할 무렵이면 ‘지금부터 만들면 정말 잘 만들 텐데…’ 하는 생각이 들기는 해요. 그래서 수류산방 책 2쇄는 ‘2쇄’가 아니라 ‘2판’, 즉 ‘개정판’이 되는 경우가 많아요. (웃음)
애써 만든 책인데, 독자에게 선보이지 못한 책들이 아쉽긴 합니다. 서울시 요청으로 2020년 발간한 『서울 옛길』 10종은 지도부터 사진, 설명까지 수류산방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책이거든요. 옥류동천길부터 삼청동천길, 안국동천길, 제생동천길·회동천길, 북영천길, 흥덕동천길, 묵사동천길, 필동천길, 남산동천길, 정릉동천길까지, 물길에 따라 ‘서울의 옛길’을 정리한 프로젝트였어요. 내년(2024년)에는 서점에서 판매용으로 선보이고 싶습니다.
국립무형유산원 요청으로 2018년 발간한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자서전』 20권도 일반 독자를 만나지 못한 책이라 아쉬움이 남아요. 『국가무형문화재 전승자 구술자서전』은 김금화(서해안배연신굿 및 대동굿), 김병옥(양주소놀이굿), 김인(갓일), 김실자(강령탈춤), 김정순(강령탈춤), 김표영(배첩장), 노재영(양주별산대놀이), 박기하(강릉농악), 박용기(장도장), 박창규(은산별신제), 서한규(채상장), 이봉주(유기장), 이수여(망건장), 이양교(가사), 이영수(악기장), 이윤란(경기민요), 이은관(서도소리), 임석정(불화장), 조홍복(수영야류), 황영보(백동연죽장), 이렇게 20명의 장인이 구술한 내용을 묶어낸 책입니다.
『서울 옛길』(전10권) : 물길 따라 서울의 옛길을 복원한 수류산방의 역작
보통 단행본 출판사는 책 ‘만들기’뿐 아니라 ‘알리기’와 ‘팔기’에도 큰 관심을 갖습니다. 수류산방에서 출간한 책은 어떻게 홍보하고 마케팅하시나요?
거꾸로 여쭙고 싶어요. 영업과 마케팅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저희는 애초에 판매를 생각하지 않고, 출간을 결정하는 경우가 많기도 해서, 마케팅과 홍보를 거의 하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책이 예상만큼 팔리지 못하는 부분도 있을 거예요. 저자 분들에게 미안한 대목이기도 합니다. SNS도 인스타그램(@suryusanbang) 정도만 운영해요.
(이 대목에서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해주신 조병준 작가님이 ‘수류산방은 인스타그램 포스팅을 한 달에 겨우 2번 올린다.’며 저격(?)하는 말씀을 해주셨다. 곧바로 조병준 작가님은 이런 말을 덧붙였다.) “솔직히 저자 입장에서 아쉬울 때가 있죠. 하지만 수류산방이 한정된 에너지 속에서 책의 홍보와 마케팅까지 신경 쓴다면, 지금 같은 퀄리티의 책을 만들지 못할 거라고 생각해요. 책 만들기에 그야말로 혼신의 노력을 쏟는 출판사죠.”
전자책 같은 디지털 출판물은 안 내시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수류산방은 ‘디지털 출판’에 대해 관심이 없나요?
디지털 출판물은 당분간 낼 생각이 없어요. 아날로그로 접근 가능한 정보와 영역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디지털 텍스트가 책일까? 디지털로 읽는 경험이 독서와 동일할까?’라는 본질적인 질문도 가지고 있어요. 만화와 애니메이션이 다르듯 종이책과 전자책도 같을 수 없을 거예요. 수류산방은 종이와 물성에 바탕을 둔 아날로그 출판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수류산방은 ‘언저리’에 자리하는 출판사를 자처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언저리 또는 비주류 출판사치고는 많은 상을 받지 않으셨나요?
수류산방 이름으로 내진 않았지만, 디자인하우스 시절 작업한 『삶과 예술은 경쟁하지 않는다』가 2005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권’으로 선정됐어요. 『예술사 구술 총서, 예술인·生』은 2011년 코리아 디자인 어워드를 받았어요.
2015년 한국 출판사로는 처음으로 파주북어워드 출판미술상을 수상했습니다. 파주북어워드 출판미술상은 동아시아(한국, 중국, 대만, 일본) 출판사를 대상으로 한 권의 책이 아닌 출판사가 지금까지 해온 전반적인 작업 경향을 심사해서 주는 상으로 알고 있습니다. 수류산방이 해온 디자인 작업에 대한 의미 있는 평가를 해주셔서 기뻤습니다. 매일유업 50주년 사사 『매일 50』은 2020년 iF 디자인 어워드 커뮤니케이션부문 상을 받았어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 중 하나여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전위와 고전』과 『나무 신화』(2021)는 각각 2021년·2022년 서울국제도서전에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으로 선정됐습니다. 얼마 전에는 한국출판문화진흥재단이 수여하는 제2회 한국출판편집자상 특별상 수상자로 수류산방이 선정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2023년 10월 27일 『건축의 무빙』 출간기념회 때 건축 사진가 김재경 선생님이 촬영한 수류산방
20주년 그리고 수류산방의 미래
예전 인터뷰를 보니까 수류산방 책을 모아 ‘동네도서관’으로 개방하고 싶다는 구상이 있으시더라고요. 구상은 어느 정도 진척이 되셨나요?
수류산방은 4~5만 종 정도 되는 장서를 가지고 있어요. 수류산방 장서를 바탕으로 새로 이사 온 신문로2가(경희궁길) 건물 지하 공간을 어떻게 활용할까 여러 가지 생각해보고 있어요.
수류산방에 대해 갖는 궁금증 중 하나가 ‘수류산방처럼 출판해도 먹고 살 수 있나?’ 하는 질문일 듯합니다. 수류산방의 사업 모델은 ‘지속가능’한가요?
수류산방처럼 출판해서는 먹고 살 수 없습니다. 다른 출판사보다 훨씬 많은 비용과 정성을 들여 책을 만들지만, 판매량은 많지 않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모델이라 할 수 있어요.
단행본 출판 사업만 보면, 수류산방의 모델은 지속가능하지 않아요. 저희는 다른 ‘클라이언트 프로젝트’를 통해 출판사업을 지속하고 있는 모델이에요. 클라이언트로부터 외주 받은 작업을 하고, 남은 시간에 단행본 출판 사업을 하고 있다고 보면 됩니다. 일반적인 단행본 출판사의 사업 구조와 많이 달라요. 수류산방이 일반 출판사의 모델이 되기는 어려울 거예요.
2003년 ‘무자본’으로 창업하셨잖아요. 20주년을 맞는 요즘 수류산방의 형편은 나아지셨나요?
나빠졌다고 하긴 그렇지만, 비슷해요. 일하는 공간은 나아졌지만, 재정적인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아요. 경제적으로 여유롭지 않지만 ‘이대로 죽지는 않겠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합니다. ‘빚’을 낼 수 있다는 점에서는 발전을 했네요. (웃음)
어차피 돈이 남아도 저희는 다음 책 출판하느라 돈을 다 쓸 사람들일 거예요. 출판을 안 했으면, 그동안 번 돈으로 외제차를 타고 다녔을 거라고 농담처럼 말하곤 합니다. 수류산방 안에서도 손실이 큰 단행본 출판 사업을 접어야 하지 않느냐는 말이 늘 나오기는 해요. 한국 출판시장이 ‘싼 책값’에 기대어 성장을 해왔기 때문에, ‘높은 퀄리티’로 승부하려는 시도 자체가 살아남기 어렵죠. 수류산방은 저희를 응원해주는 분들께 ‘빚’을 지면서 여기까지 왔어요.
수류산방은 어쩌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대중출판’을 하는 것이 아니라 시대를 거스르는 ‘낭만출판’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네요. 물처럼 흐르지(水流) 않고 나무와 흐름(樹流)이라는 불가능한 작명을 했을 때부터 수류산방의 정체성은 정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자본주의 셈법’에 맞지 않게 일을 하고 출판을 하는 게 ‘틀린 접근’일까요? 이런 비주류적인 발상 때문에 수류산방은 늘 마이너리티의 정체성을 가지고 ‘언저리’에서 출판을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세상에는 ‘중심’만 있는 게 아니라 ‘주변’과 ‘언저리’도 있잖아요. ‘언저리’도 세상을 지탱하는 중요한 일부입니다.
누구보다 정성 들여 책을 만들고 계시잖아요. ‘출판의 미래’를 어떻게 생각하세요?
출판에 대해 ‘환상’을 가진 분들이 있잖아요. 독립 출판을 해보겠다거나, 저서를 쓰며 여생을 보내겠다거나… 대한민국 인구 규모가 늘고, 우리 사회의 지적·심미적 기준이 높아진다면 모를까, 출판의 미래가 밝다고 보진 않아요. 책값이 현실화되고, 지적 작업물이 돈이 되는 사회가 과연 올까 싶어요. 우리 사회는 외제차를 타면서 책은 공짜로 얻으려는 사회예요. 책을 값싼 제품으로 인식하는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출판의 미래는 어둡죠.
(인터뷰 자리에 함께 한 조병준 작가님은 이런 말씀을 덧붙였다.) “한국 사회는 지적 생산물에 대해 제대로 된 가격을 책정한 적이 없어요. 원고료와 강연료도 수십 년째 그대로이고, 책값도 물가 상승률에 맞춰 인상된 적이 없죠.”
수류산방 사람들(왼쪽부터 박상일 방장, 조병준 작가, 심세중 대표, 김용한 이사)
미국의 출판인 밥 스타인(Bob Stein)이 “성공하는 출판사는 저자나 독자 주위에 커뮤니티를 만든다.”라고 말한 적 있습니다. 2014년에 수류산방을 아끼는 분들이 출판사 어려운 형편에 보태라면서 ‘낭창낭창펀딩’이라는 이름으로 돈을 모아 전달한 걸로 알고 있습니다. ‘무자본’으로 출발한 수류산방이 20년 동안 지속한 이유는 수류산방을 걱정하고 응원하는 ‘열성 팬’들이 있기 때문 아닐까요?
솔직히 저희는 전혀 몰랐어요. ‘수류산방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수사모)’이 자리를 마련했으니 나오라고 해서 갔더니, 정성을 모아주셨더라고요. 그 자리에서 펑펑 울었습니다. ‘수사모’에서는 저희에게 출판사 살림에 보태라고 돈을 모아주셨지만, 귀한 돈을 헛되이 쓸 수는 없었어요.
‘수사모’에서 모아주신 돈으로 수류산방의 10년 역사를 돌아볼 수 있는 『세상에 이런 책!: 수류산방樹流山房 11년의 모험 2003→2014→』(2014)를 출간했어요. 그해 여름(2014년 7월 8일~8월 17일) 남촌 컨트리클럽 미술관에서 수류산방이 출간한 단행본 100여 점, 포스터, 저희와 함께 한 작가들 작품까지 모아 전시회도 열었어요.
‘수류산방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수사모)’은 아직도 활동 중인가요?
수사모 분들과 관계는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황현산 선생님이 돌아가시고, 코로나19 시기를 거치면서 모임을 자주 갖지는 못하고 있어요. 연락은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올해 수류산방 창립 20주년을 맞아 특별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가요?
수류산방이 특별히 뭔가 기념해서 일을 하는 스타일은 아니에요. 하지만 수류산방 첫 책으로 냈던 『20세기 건축의 모험』을 『건축의 무빙』으로 다시 작업해서 출간했습니다. 『건축의 무빙』은 『20세기 건축의 모험』과 최대한 같아 보이도록 작업을 했어요. 똑같아 보이지만, 작업 과정은 다르게 해서 책을 냅니다. 옛 버전 프로그램을 이용해 필름 제판 했던 책을 디지털 조판으로 새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이번에 출간하는 『건축의 무빙』을 ‘리뉴얼 에디션’이 아니라 ‘리마스터링 에디션’이라고 말하고 있어요. 첫 책을 다시 내면서, 20년 동안 우리가 뭘 했었는지를 처절하게 ‘복기’해보는 과정을 거쳤어요.
『건축의 무빙』과 『20세기 건축의 모험』: 수류산방의 20년 세월을 관통하는 두 권의 책
마지막으로 30주년을 바라보면서 수류산방이 가지고 계신 구상이 있으면 말씀해주세요.
지금 임대로 이사 온 이 건물을 사는 거요. (웃음) 밀려 있는 원고들을 책으로 빨리 내고 싶어요. 특히 예술평론가 박용구 선생님 선집과 민속학자 윤병하 선생님 전집은 꼭 내야 할 책이에요. 두 분뿐 아니라 아직 내지 못한 원고를 책으로 내는 것이 수류산방의 과제이자 구상이에요. 저희가 지고 있는 ‘책빚’을 조금이나마 덜고 싶어요.
박상일(수류산방 방장)
심세중(수류산방 대표)
백창민 북헌터 대표 책을 좋아해 ‘책사냥꾼’이 되었다. 전자책 회사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해, 디지털과 아날로그 출판 분야를 넘나들며 일했다. 책생태계 중심으로 글쓰기, 말하기, 만들기를 하고 있다. 『세상과 도서관이 잊은 사람들』과 『도서관 그 사소한 역사』 책 출간을 준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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