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7 2022. 10.
K-콘텐츠 번역 사업에 박차를 가할 때다
박찬우(한국문학번역원 학사운영팀 팀장)
2022. 10.
지난 9월 〈오징어 게임〉이 미국 에미상에서 감독, 남우주연 등 6개 부문을 수상했다. 에미상에서 비영어권 작품이 감독상을 받은 것과 한국 배우가 한국어로 연기해 주연상을 받은 것 모두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고 한다. 소설 『채식주의자』(맨부커상, 2016), 아이돌 그룹 방탄소년단(BTS)(빌보드 1위, 2018), 영화 〈기생충〉(아카데미 4개 부문 수상, 2020)에 이은 또 하나의 쾌거이다. 바야흐로 K-콘텐츠 전성시대다.
2020년 7월 문화체육관광부는 ‘신한류 진흥정책 추진 계획’을 발표하고 한류의 지속적 확산을 위한 지원 전략과 정책 과제를 제시했다. 정부는 지난 20여 년간 지속되어 온 한류의 시기적 특징을 분석해 네 단계로 구분하고, 네 번째 단계인 2020년 이후에 지향하는 한류를 ‘신(新)한류(K-Culture)’라 지칭하고 정의했다.
당시 정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콘텐츠 산업의 규모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13.9% 증가하며 비약적인 성장을 이뤄왔다. 또한 한류가 아시아에서 전 세계로, 대중문화에서 한국 문화 전반으로 확대되고 있고, 전 세계 한류 애호층 수가 약 1억 명에 육박한다고 한다. 이에 한류의 다양화 및 세계화에 대응하기 위한 맞춤형 지원 정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하고 ‘신한류 진흥정책 추진 계획’의 일환으로 한류 콘텐츠의 해외 진출 및 현지화를 위한 전문 번역 인력 지원을 위해 ‘콘텐츠 번역인력 양성 사업’을 한국문학번역원에서 추진하게 되었다.
한국문학번역원은 한국 문학과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는 시대적 소명을 수행하는 공공기관이다. 2001년 출범 이후 한국 문학 번역, 출판 지원 및 해외 교류 사업 등을 통해 세계 문학 속에 한국 문학의 위상을 정립해오고 있으며, 2008년부터는 우수 번역 인재를 양성하기 위해 번역 전문 교육기관인 번역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운영하고 있다. 번역아카데미는 3개의 문학 번역과정(정규과정, 야간과정, 번역아틀리에)과 1개의 문화 콘텐츠 번역과정(문화콘텐츠 번역실무 고급과정)으로 총 4개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로고
번역아카데미의 ‘문화콘텐츠 번역실무 고급과정’은 앞서 언급한 ‘콘텐츠 번역인력 양성 사업’ 추진에 따라 한류 문화 콘텐츠 전문 번역가를 양성하는 교육과정(1년 2학기제, 학기당 15주, 8~9월 개강)으로 2020년에 개설하였다. 콘텐츠 수출 현장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여 번역가 수요가 많은 장르(영화·드라마, 웹툰)와 언어권(영어, 프랑스어, 스페인어, 중국어, 일본어, 베트남어)으로 교육과정이 설계되었다. 언어권 반별로 번역 실습 위주의 토론식 수업이 진행되며 외국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문화 및 고급 한국어 수업도 제공된다. 또한 매월 콘텐츠 기업 관계자 및 관련 분야 전문가 특강을 진행하여 콘텐츠 현장의 수요를 이해하고 네트워킹을 구축할 기회를 제공한다. 교수진은 영화 〈기생충〉의 영어 번역가 달시 파켓, 웹툰 〈유미의 세포들〉을 중국어로 번역한 변려화, 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를 프랑스어로 번역한 브노아 디 파스칼 등 현장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들로 구성되어 있다.
번역아카데미의 ‘문화콘텐츠 번역실무 고급과정’ 모집 안내문
교육과정 수료생에게 전문 번역가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다양한 진로 개발 프로그램도 함께 제공한다. 우리나라 유수의 콘텐츠 기업인 네이버웹툰, 카카오엔터테인먼트, CJENM 등과 업무 협약을 체결하여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외국어 번역 및 감수가 필요한 콘텐츠 지식재산(IP) 보유 기업과 번역아카데미 출신 번역가를 매칭시켜 양질의 번역/감수 서비스를 제공하는 번역 활동 지원 사업도 추진하고 있다. 이를 통해 수료생들의 지속가능한 번역 활동 기반을 마련할 뿐만 아니라, 동시에 해외에 진출하는 한국어 문화예술 콘텐츠의 외국어 번역 수준을 제고하여 한류 확산 촉진을 꾀하고 있다.
‘문화콘텐츠 번역실무 고급과정’은 이제 3년차에 접어들어 과정 개설 이래 세 번의 수료생을 배출하였다. 아직 수료생이 많지는 않지만 다양한 콘텐츠 분야로 진출하여 활발히 활동을 지속하고 있고 앞으로 활동 영역이 더 넓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문화콘텐츠 번역실무 고급과정’ 수료생들이 활동 중인 기업 및 단체
올해부터는 문화콘텐츠 번역신인상을 제정하여 해외 잠재 번역 인력 규모를 파악하고 문화 콘텐츠 신진 번역가 발굴 및 번역아카데미로 견인하기 위해 힘쓰고 있다. 번역신인상은 문학, 영화, 웹툰 부문 언어권별 수상자에게 각각 5백만 원의 상금이 수여되고, 문화콘텐츠(웹툰, 영화) 부문별 1인에게는 문화체육관광부장관상이 수여된다. 총상금 규모는 8천5백만 원이다.
번역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일본은 19세기 메이지유신 시절 이미 전문 번역가 4,000명을 양성했을 정도로 번역의 중요성을 잘 알고 있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아직도 번역가를 대체 가능한 단순 노무직 정도로 보는 시각이 있는데, 이는 매우 시대착오적인 고정관념이다. 이탈리아의 유명 소설가 이탈로 칼비노는 번역에 대해 ‘번역은 나를 국경 밖으로 데리고 가는 우방과도 같다’라고 했다. 번역 활동이 없이는 한 국가의 콘텐츠가 다른 나라로 뻗어나갈 방법이 없다. 한발 더 나아가 번역이 좋지 않으면 원작이 아무리 작품성이 좋고 한국에 대해 잘 그려내고 있다고 해도 외국인들에게 제대로 가닿을 수 없다. 문학, 영화, 드라마, 웹툰 등 K-콘텐츠에는 한국의 정서와 문화, 역사와 생활 등 모든 것이 내포되어 있다. 이것이 다른 나라에서 수용되기 위해서는 단순히 단어를 그 나라의 언어로 바꾸는 일이 전부가 아니라 그 단어가 왜 쓰였는지에 대한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 원작품만큼이나 번역가의 자질이 중요한 이유이다.
신한류라는 거대한 흐름의 중심에는 K-콘텐츠가 자리하고 있고 그 미래 또한 밝게 전망되고 있다. 드라마 〈오징어 게임〉, 웹툰 〈나 혼자만 레벨 업〉 그리고 영화 〈기생충〉 등 K-콘텐츠는 이미 세계적인 인기를 구가하고 있다. 이 놀라운 현상이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문화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번역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한다. 신한류가 뿌리를 깊이 내리고 수용자가 늘어날수록 우수한 콘텐츠 전문 번역가들이 더 많이 필요할 것이고, 그 역할 또한 더욱 주목받게 될 것이다. 한국 문화를 즐기는 외국인이 점점 많아지는 만큼 전문 번역가가 되길 희망하는 외국인들을 위한 장기적, 체계적 지원 체계가 절실히 필요하다.
번역 작업은 고독하고 지난한 싸움이지만 궁극적으로는 사람과 언어와 문화를 잇는 가장 창의적이고 보편적인 과정이기도 하다. 고독한 삶의 형식에 자신을 던져 넣은 한국문학번역원 번역아카데미 출신 번역가들을 통해 사람과 사람, 언어와 언어 그리고 문화와 문화가 가까워지고 세상이 더 다양해지고 아름다워질 것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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