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6 2019. 09.
출판-도서관 상생을 위한 전자책 서비스 혁신
이문학(인천대 문헌정보학과 교수)
2019. 09.
1. 序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빅데이터 같은 디지털 기술로 촉발된 지능화 혁명이 거세게 밀어닥치고 있다. 요컨대, ‘4차 산업 혁명’이 그것이다. 출판환경도 미디어 산업간 경계가 무너지고 물리적 생산재와 디지털 소비재 및 그 순환과 공급망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현상이 가시화된 지 이미 오래다. 여기서 간과해선 안 될 문제는 문명의 주역에 대한 감사와 신뢰인데, 책과 출판문화가 아니었더라면 어떻게 오늘의 그리고 장래의 문명을 기대할 수 있겠는가이다(이종국, 2019. 65쪽).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정보통신기술(ICT)은 정치, 경제, 사회 그리고 언론 등 세상의 전반을 급격하게 변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출판 생태계에도 밀어닥쳐 콘텐츠와 비즈니스 모델이 확장되고 있다. 이제 출판의 상황에서 보면, 출판(公表, 公布, publish)1)의 주체가 단지 저자나 편집·출판자만이 아닌 이용자(독자)와의 무한 변용 내지는 본말(本末) 간에 상호작용하는 첨단 시대를 경험하고 있다. 그럼에도 책은 결코 소멸되지 않으며 단지 개량될 뿐이다. 이에 관한 적절한 사례는 도서관의 경우에서도 살필 수 있다(이종국, 2019. 53쪽).
도서관이 책을 보관하고 공개하는 구식 기관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인쇄 방식과 디지털 방식을 중개하는 데 가장 이상적인 장치로 역할한다(Robert Darnton, 2009, 15-16쪽, 이종국 2019에서 재인용). 물론, 책이 중심적인 존재인 것이다. 종이책이든 전자책이든 디지털 서버에 담긴 것이건 지식을 구체화하는 수단이 책이며, 그것을 있게 한 과학기술을 훨씬 능가하는 권위를 가진 수단이 책이다(Robert Darnton, 2009. 16쪽, 이종국 2019에서 재인용).
이에 본 글에서는 변화하는 책(출판) 생태계에서 출판계와 도서관계가 상생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2. 출판 환경의 변화
정보통신기술(ICT)의 발전에 따른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통합이 이루어지고 있으며,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을 통해 콘텐츠 융합(Mix)이 이뤄지고 있다. 출판 분야에서도 콘텐츠의 융합으로 다양한 형태의 미디어(media)가 만들어지고 있는데, 웹 출판, 인터넷 신문과 잡지, 블로그, 소셜미디어, 위키피디아 등을 예로 들 수 있겠다. 소위 뉴미디어(new media)라고 할 수 있는 이러한 융합형 미디어의 특징 중 하나는 쌍방향성(interactivity)을 갖는다는 것이다. 쌍방향성은 유·무선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고 이용자와 직접적인 피드백을 가능하게 함으로써 미디어를 더욱 능동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된다.
융합형 미디어의 또 다른 특성은 시공간의 제한이 없다는 것이다. 유·무선 통신망을 이용한 정보의 교환은 물리적인 시간과 공간의 한계를 뛰어 넘어 전 세계적인 비즈니스를 창출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정보통신기술(ICT)은 콘텐츠의 매체 전환을 보다 수평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게 한다. 예를 들어, 아날로그와 디지털의 결합으로 탄생한 웹툰(webtoon)은 디지털매체 환경의 가변성이 제대로 적용된 출판 콘텐츠로 자리를 잡았다. 즉, 디지털 기술의 적극적인 수용을 통해 뉴미디어 환경에 최적화된 콘텐츠인 것이다(2019. 류영호, 93쪽).
이러한 것들은 출판의 본질은 물론 독서 환경의 변화를 촉발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영상 매체를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이에 따른 다양한 서비스 플랫폼이 증가하고, 여기에다 첨단 미디어 기기(아마도 ‘스마트폰’이 대표적일 듯)의 보급이 확대됨에 따라 독서 시간은 줄어들고, 독자도 감소하면서 책의 문화적 가치나 의미가 퇴색되고 있다. 이제 책과 독서는 ‘페이지에서 스크린으로의 전환’이 진행되고 있다. 뉴미디어 시대가 확산되면서 이용자들의 참여 권리가 강하게 요구되는 환경이 만들어졌다.
3. 도서관 전자책 서비스 필요성
출판은 인류의 지혜인 ‘기록’을 선별하여 ‘복제’하고 ‘공표’하는 행위이다. 다시 말해 출판의 본질은 표현에 의한 기록성, 편집에 의한 복제성, 매체를 통한 공표성이라고 볼 수 있다. 출판의 본질은 미디어의 급속한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의 사상과 감정, 지식과 정보를 담는 미디어로서의 의미는 앞으로도 변치 않을 것이다(2019, 남석순. 96쪽).
인류의 문명사와 궤를 같이하는 출판물의 형태는 그간 많은 변화를 겪어왔다. 대략적으로 열거하자면 동양에서는 죽간(竹簡)과 목독(木牘), 서양에서는 파피루스, 점토판, 필사본 형태의 것들이 있었고, 이어서 종이와 활판인쇄술의 발명으로 종이책의 형태가 등장했다. 이어서 비교적 근래에 CD롬, 디스크와 같은 묶음 형태의 전자책과 그렇지 않은 형태의 전자책, 그리고 오디오북, 웹북 등이 등장했다.
이러한 출판물의 형태 변화는, 과거 인쇄혁명이 출판 개념을 바꾼 것이 아니라 영역을 더 확장시킨 것처럼, 본질이 변하는 폭넓은 ‘진보’라기보다 근본적 본질을 바탕으로 한 폭 좁은 ‘기술적 진보’로 해석해야 할 것이다. 출판의 본질이 기록성, 복제성, 공표성에 있지만 핵심은 콘텐츠이며 이는 모든 미디어의 원동력이고 뿌리이기 때문이다. 책을 보거나 이용하는 방식에서 이전보다 한 단계 더 발전한 것이 바로 전자책이라는 전제 위에서 도서관 전자책 서비스도 활성화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2)
도서관에서 전자책 서비스를 활성화해야 하는 이유는 이제 소비자들은 디지털 환경에서 콘텐츠를 생산하고 공유하며 소비하기 때문이다. 특히 20-30대 젊은 층은 점점 숏폼(short form) 콘텐츠에 익숙해지고 있으며, 더 이상 제품을 소유하려하지 않고 필요할 때마다 제품을 이용하는 형태를 선호한다.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맞추어 도서콘텐츠를 어떻게 사용자에게 전달하고, 읽게 만들고, 어떤 가치를 전달할 수 있을지를 고민해야 한다(이은호, 2019. 8-15쪽). 시공간의 제약 없이 광범위한 이용자 서비스를 가능케 하는 전자책은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도서관에서 전자책을 서비스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도서관의 공간 부족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시민들에게 자료 유형에 상관없이 모든 지식과 저작물을 전달해야 하는 공공도서관 본래의 목적과 기능을 수행하는 것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이유는 책이 생산(출판)되고 축적(도서관)되며 소비되는(독서) 책문화생태계에서, 생태계의 흥망성쇠는 결국 외부 환경에 얼마나 잘 적응하느냐에 달렸는데,3) 가장 일반적으로는 달라지는 소비자의 숨어 있는 니즈(needs)에 빠르게 대응하지 못해 도태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생태계적 관점에서 출판계와 도서관계가 달라진 소비자의 니즈에 적합한 책문화생태계를 협심하여 조성해나갈 필요가 있다.
특히 디지털 정보매체가 증가함에 따라 양자 간의 상호의존성은 다음과 같은 점에서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첫째, 가장 포괄적인 공통분모는 지식정보의 생태학적 지위(ecological niche)를 공유한다는 점, 둘째, 지식정보의 유통과정상 선순환을 반복한다는 점, 셋째, 출판계가 생산한 지식정보의 품질과 우수성은 도서관의 장서구성과 내적 충실성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점, 넷째, 존립기반의 이질성, 즉 출판계가 영리지향적이고 도서관계가 공리지향적임에도 출판물을 공통분모로 하는 상호의존성이 절대적이라는 점, 그리고 다섯째, 디지털 출판과 유통의 대중화는 양자 간 연대와 협력을 재촉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문학, 2013. 128쪽).
4. 도서관 전자책 서비스의 문제점
그럼에도 도서관에서 전자책 서비스 이용률은 매우 저조한 형편이다. 그 이유는 첫째, 통합 DRM(디지털저작권 관리)과 뷰어의 부재, 둘째, 전자책 공급방식의 문제, 셋째, 맞춤형 디지털콘텐츠의 부재, 넷째, 소장 자료의 통합검색 부재 등을 들 수 있다. 간단히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통합 DRM과 뷰어 부재 문제는 국내 전자책 시장에서 오랫동안 논쟁이 되어온 이슈로서, 특히 도서관이나 기업에서(B2B) 서비스하는 경우에는 DRM 공용화가 절대적으로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유통사마다 자체적인 DRM을 적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전자책 공급사간 이해관계의 해소가 관건인데, 해외 출판선진국의 경우 동일 DRM(예 : Adove DRM)을 적용하여 몇 백만 종의 전자책 콘텐츠와 단말기/뷰어의 호환이 가능하게 패키징되어 있어서 상호운용성을 확보하고 있는 실정이지만, 국내의 경우 출판계 공용 DRM이 개발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불법복제를 막기 위한 방편으로 다수의 DRM 사용되고 있다.
다행이도 서울전자도서관에서 최근 표준 DRM이 적용된 전자책으로 약 8,000여 종을 교체하고 표준 DRM이 적용된 PC와 모바일 뷰어 서비스를 시작하였는데, 각 도서관으로의 확대가 기대된다.
두 번째, 전자책 공급방식의 문제는 전자책 공급방식이 다양4)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국내 공공도서관에서는 대부분 ‘영구납품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전자책이 도서관에 영구적으로 귀속되어 다수에게 활용될 경우 저작권자와 출판권자에게 직간접적인 경제적 손해를 끼칠 수 있는데, 도서관이 전자책을 소유하면서 서버에 탑재하여 서비스하는 것은 배타적 발행권자인 출판사에 의한 복제‧전송 행위가 아니라 도서관에 의한 전자책 복제‧전송 행위에 해당되어 저작권에 위배될 소지가 많다. 미국의 공공도서관이 이용자의 대출횟수를 제한하고, 캐나다가 지역에 따라 대출횟수를 제한하여 서비스하는 것처럼 우리도 좀 더 합리적인 공급방식을 찾아야 할 것이다.
세 번째의 맞춤형 디지털콘텐츠의 부재도 도서관에서 전자책 서비스가 잘 안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이다. 도서 판매의 위축에 따라 현재 서점에서는 다양한 북큐레이션 서비스가 진행되고 있다. 예를 들어 생애주기별 또는 테마·상황별 추천도서 서비스를 통해 이용자 맞춤형 독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하지만 공공도서관 전자책 서비스의 경우 인기도서, 신착도서 중심으로 도서를 소개할 뿐 북큐레이션 서비스는 전혀 없는 상황이다.
도서를 단순하게 카테고리별로 분류해 서비스하는 것이 아니라, ‘와인 고르는 법’, ‘연애편지 쓸 때’ 등 임의의 주제어로 분류하여 이용자가 더 재밌고 쉽게 찾을 수 있게 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한국교육문화원의 전자책 플랫폼인 ‘스쿨북스’(초‧중‧고등학생 대상), ‘인생서가’(영‧유아부터 노년층에 이르기까지 전 연령층을 대상으로 인문학‧문학‧예술 등 주제별 콘텐츠까지 맞춤형으로 제공)은 그러한 노력의 하나로 볼 수 있다.
다음으로 소장 자료의 통합검색 부재는 도서관 소장 자료와 전자 자료간 검색은 물론 다양한 유통사의 전자자원간 통합검색이 안 되는 것이다. 이 역시 전자책 이용을 저해하는 중요한 요소로서 특히 공공도서관에서 많이 나타나는 문제점이다. 이의 해결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전문 인력의 보충이 필요하다 하겠다.
5. 結
출판의 생태계가 급격하게 변화를 맞고 있는 요즘, 중국 정부는 출판 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산업 진흥, 재정 및 세제 혜택, 공공서비스, 전문인력 양성 등 일련의 정책을 발표하였고, 중국의 출판계는 정부의 힘을 빌려 출판업의 ‘수정창신(守正創新)’을 인도하고 실현할 수 있기를 희망하고 있다. ‘수정창신’이란 한편으로는 정통성을 고수하고 정책 실행을 통해 전통 출판업의 지위를 확고히 하며, 다른 한편으로는 뉴미디어 시대의 발전 방향에 따라 새로운 기술적 기회를 포착하고 디지털 출판산업을 적극적으로 발전시켜 출판업의 총체적 실력을 키우자는 것이다(첸한장, 2019. 24쪽).
우리도 이러한 변화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받아들일 준비가 필요하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더욱 중요해진 독서의 가치를 재인식하고, 공공도서관도 시대 변화에 부응하여 책에 대한 접근방법을 다양하게 적극적으로 개발하고 적용할 때이다.
1)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Publish’(출판)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to make public, to make generally accessible or available for acceptance or use” 즉, 대중화 시키는 것, 쉽게 접근할 수 있으며, 사용이 가능하도록 하는 것, 콘텐츠를 대중이 보다 유용하게 접하고 사용할 수 있게 만드는 것이다(남석순. 2019. 95쪽).
2) 종이책과 전자책이 사유(思惟)의 방식, 즉 뇌를 자극하는 방식에서 차이가 있다고는 하나 본 글에서 이는 간과하기로 한다.
3) 책문화생태계는 산업의 성장을 지속가능하게 하며, 책문화가 확산되도록 하는 시스템으로서, 책이라는 유형 및 무형 콘텐츠가 다양하게 기획 및 창작되고 독자인 소비자에 이르기까지 출판(유통)-독서생태계의 가치사슬 네트워크, 정책, 기술적 환경들이 상호작용함으로써 출판생태계와 독서생태계가 선순환하는 체계이다(정윤희, 2019. 73쪽).
4) 영구접속 모델(Perpetual Access: 영구적 이용 가능, one copy/one user, 소유권 이전 안됨), 구독 모델(Subscription: 구독기간에 따라 이용료를 지불하여 사용, 대출횟수 제한 없음), 대출횟수제한 모델(Limited Circulation: 26회, 52회 등 대출횟수 제한), 대출당이용료지급 모델(Pay per Checkout: 대출횟수에 따라 일정한 금액을 출판사에 정산)
■ 참고 문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