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8  2020.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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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작자, 출판사, 도서관 그 상생의 고리는 어디 있는가?
- 대만의 공공대출권 시범운영과 우리

 

 

 

형소진(대만 내용력주식회사 저작권 에이전트)

 

2020. 03.


 

대만 특히 타이베이를 여행으로 방문하는 이들이 빠지지 않고 들르는 필수 코스가 있다. 바로 24시간 영업으로 이름이 알려진 성품서점(誠品書店)이다. 실제로 성품서점의 모든 지점이 24시간 영업을 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달이 뜬 심야에도 서점 문을 내리지 않고 새벽이 되도록 독자들에게 개방되는 서점 공간이라니. 매해 타이베이 관광 필수 코스에 성품서점 이름이 빠지지 않는 걸 보니, 그 공간이 불러일으키는 환상과 호감은 생각보다 강력한 듯하다. 올해 2월 초에 열릴 예정이었던 ‘타이베이 도서전’이 코로나 바이러스에 대한 안전 조치로 개최 한 주 전에 5월로 연기되었다. 타이베이 도서전은 올해로 개최 28회를 맞은, 명실상부한 국제도서전으로, 해마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업계 관계자들과 일반 관람자들로 문전성시를 이룬다. 타이베이 시내에 위치한, 대만을 대표하는 학문의 전당 대만국립대 주변에는, 독립서점을 포함해 수십 개의 서점이 대거 몰려 포진해 있다. 대만대 주변 서점지도를 서점들에서 따로 제작해 배포할 정도이다.

 


신베이시 중허구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대만도서관 전경(사진 제공: 韓正誼)


신베이시 중허구에 위치하고 있는 국립대만도서관 전경(사진 제공: 韓正誼)

 

이렇게만 보면, 대만을 엄청난 출판강국으로, 한국과 달리 출판시장이 아주 활황인 것으로, 독서 인구가 줄지 않고 탄탄하게 유지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한 발짝만 더 들어가 보면 아주 다른 상황이 포착되는 것을 알 수 있다. 대만에 햇수로 6년을 머물면서, 독자로서, 출판저작권 에이전트로서 체감하는 것은, ‘독서 인구가 적다’, ‘서점에 어슬렁거리는 이는 적지 않으나, 책을 들고 계산대까지 가는 이가 무척 적다’, ‘출판사들의 경영난이 심각하다’는 점이다. 이런 와중에서, 지난해 연말, 평소 알고 지내는 대만 편집자 동료가 귀와 눈이 번쩍 뜨이는 뉴스를 메신저로 보내왔다.

 

지난 12월 31일 대만 교육부와 문화부는 기자회견을 통해 아시아 최초로 ‘공공대출권(Public Lending Right, 줄여서 PLR)’의 시범운영 계획을 발표했다. 공공대출권은 1946년 덴마크에서 처음 시행한 것으로 2016년 기준 35개 국가(호주, 캐나다, 덴마크, 핀란드, 프랑스, 독일, 아이슬란드, 이탈리아, 뉴질랜드, 영국 등)에서 시행 중인 제도이다. 도서관 대출 서비스로 인해 저작물의 판매 수요가 감소하리라는 가정에 기초하여, 판매의 기회를 잃어 재산적 손실을 본 저작권자에게 그 손실을 보전하는 보상금을 지급하는 제도이다.

 

그러고 보니, 일전에 어느 작가에게서 들었던 한마디가 머릿속을 교차했다. “작가들은 자기 책이 도서관에서 대여 순위가 높은 거 안 좋아해요.” 책이 팔려야 인세를 받는 작가 입장에서는, 자신의 책이 서점이 아니라 무료로 대출되는 도서관에서 인기가 높은 것이 속이 탈만도 할 것이다. 책이 많이 대출될수록 출판사는 경영이 어려워지고, 덩달아 저자는 인세 받기가 어려워지니, 다음 책을 내는 건 더 요원해지는 악순환이라는 것이다. 이리 보면, 마치 창작자와 도서관, 출판사와 도서관이 서로의 이익을 상충하는 대척 지점에 있는 듯 느껴지기까지 한다. 출판산업 저작물을 둘러싼 창작, 편집 및 출간, 판매 및 공급 등으로 일종의 협력자라고도 볼 수 있는 이들인데, 어떤 배경으로 인해 이런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걸까. 혹시 공공대출권은 이 상황에 대한 대안적 시스템이 될 수 있을까. 될 수 있다면, 이 공공대출권 시행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무엇일까. 한국에서는 시행이 어려운데, 대만은 시범운영이라도 시작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여러 궁금증이 꼬리를 물었다. 이번 대만의 공공대출권 시범운영 계획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몇 가지 유의미한 시사점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을까.

 

실제로 대만 출판산업 연간 매출액은 2013년 616.7억 위안에서 2017년 460.64억 위안까지 떨어졌다. 이에 반해 공공도서관에서 대출된 책의 권수는 2011년 5,700만 권에서 2017년 7,656만 권으로 올랐다(대만 매체 〈관건평론〉 2020년 1월 1일자 기사 참고). 일각에서는, 도서관 책 대여와 책 구매의 상관관계 유무에 의문을 제기하는 견해도 있으나, 이 두 수치를 볼 때 적어도 대만 독자들은 점점 책을 사지 않는 대신, 더 많은 책을 대출했다고 볼 수 있겠다. 기자회견에서 대만 교육부 장관 판원중(潘文忠)은 이번 ‘공공대출권’의 시범운영이 목표하는 바를 분명히 밝혔다. “더 많은 민중이 도서관을 찾아 더 풍성한 문화생활을 누리고, 더 많은 작가들이 더 양질의 창작물을 내며, 출판업자들은 계속 양서를 출간하고, 도서관의 장서가 다양하고 풍부해지기를 바란다.” 이번 계획에서, 독자와 작가, 출판사, 도서관 어느 누구도 배제되지 않고 고려되었다는 점을 볼 수 있다. 문화부 장관 정리쥔(鄭麗君)은 “이번 시범운영은 창작과 출판에 대한 국가의 존중과 감사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리고 기자회견에, 관련 정부부처의 관계자들만 참석해 발언하는 것이 아니라 출판사 관계자, 작가들도 여럿 동석해 이번 시범운영에 대해 각자의 입장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냄과 동시에 한 목소리로 지지한 점이 필자의 눈길을 끌었다. 대만의 대표적인 출판사 시보문화 이사장 자오정민(趙政岷)은 “비록 시범운영 기간의 보상금이 쥐꼬리 만한 금액에 불과하지만, 창작자에게는 도움이 될 것이고, 대만의 출판 자유, 창작 자유에 중요한 에너지”라고 지지했고, 아동그림책 작가 차오쥔옌(曹俊彥)은 “예전 시스템의 모순은 도서관에 책이 많이 대출될수록 출판사의 경영이 어려워진다는 데에 있다고 본다. 지금 공공대출권이 시행되는 것이 아주 이르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제도 시행 이후 대만의 창작 역량이 더 강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번 시범운영 기간은 2020년 1월 1일부터 2022년 12월 31일까지로 3년이다. 운영기관은, 국립공공정보도서관(대만 중부 타이중시 위치)과 국립대만도서관(신베이시 위치) 두 곳이다. 이 시범운영을 위해 ‘공공대출권 시범운영 전담팀’도 꾸려졌다. 대만도 시범운영에 앞서, 논의과정에서 굉장히 다른 목소리가 많았다. 그럼에도 ‘창작활동 활성화를 위해’ 시범운영을 하는 것으로 중지가 모아졌다.

 


국립대만도서관 로비. 시범운영 기간이 이미 한 달이 넘어선 시점이었지만, 도서관을 찾는 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공공대출권’을 홍보하는 문건이나 공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사진 제공: 韓正誼)


국립대만도서관 로비. 시범운영 기간이 이미 한 달이 넘어선 시점이었지만, 도서관을 찾는 이들이 볼 수 있는 곳에 ‘공공대출권’을 홍보하는 문건이나 공고는 찾아보기 어려웠다.(사진 제공: 韓正誼)

 

공공대출권의 시행에 있어서, 큰 걸림돌로 자주 논의되는 문제는, 보상금 예산을 어디에서 마련할 것인가와 어느 부처에서 전담 시행할 것인가일 것이다. 이 고민사항에 대해 대만은 다음과 같이 해답을 내놓은 듯이 보인다. 문화부가 전체적인 제도의 설계와 계획, 시범운영 기간 동안의 성과에 대한 평가를 맡고, 교육부가 시범운영 단계에서의 행정 업무, 예산 편성과 분배를 맡는다. 교육부가 추산하고 있는 연간 예산규모는 약 1,000만 위안(원화 3억 9,800만 원)이다. 이번 시범운영은 교육부가 마련한 예산으로 추진이 되며, 도서관이 본래 확보하고 있는 서적 구매 예산에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보상을 받는 창작자, 출판사뿐 아니라, 도서관도 이 시범운영에 반색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공공대출권의 보상 적용범위는 어떻게 될까. 국내 저작자와 국내 법령에 의거해 등록(등기)이 되어 있는 법인, 민간단체의 창작물로, 대만에서 출간되어야 하고, ISBN이 있는 종이책이다. 전자책과 번역서는 제외한다. 종이책 시장에서의 전자책 점유율은 아직 미미하긴 하지만, 해마다 급성장하고 있는 추세를 생각하면, 시범운영 후 정식 시행 시에 포함하는 것도 추후 논의할 필요가 있겠다.

 

보상금 수여대상은 창작자와 출판사이다. 공공대출권을 시행하는 국가마다, 이 수여대상에 대해서는 대동소이한 부분이 있다. 수여대상을 출판사 없이, 작가로만 한정하거나, 출판사뿐 아니라 편집자에게까지 수여하는 사례도 관련 논문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영국과 아일랜드는 국가가 분배 비율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등록 시 분배 비율을 정할 수 있게 되어 있어, 작가가 혼자 100%를 받을 수도 있고 역자가 30%, 편집자가 20% 가져가도록 정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여기에서 말하는 창작자는 대체 누구인가? 누구까지를 창작자의 범위로 보는가? 책 판권 페이지에 등재된 저자, 그림책의 그림 작가, 편저자, 각색(개작)자, 구술자, 원고 작성자, 인터뷰어, 기록자이다. 정부기관이나 공립학교는 그 대상에서 제외한다.

 

보상금액은 독자가 도서관에서 한 권을 빌릴 때마다 뉴타이완달러 3위안을 지급하는데, 창작자와 출판사가 7:3으로 분배한다. 보상금은 양도가 불가능하며, 창작자가 2인 이상인 도서의 경우 인당 분배비율을 균등하게 함을 원칙으로 한다. 이 분배비율은 출간계약서상의 인세 배분비율과 무관하다. 보상금 하한선은 30위안으로, 하한선에 도달한 기등록 창작자와 출판사에게만 지급한다. 하한선에 도달하지 못한 저작물의 경우, 익년도로 이월해 합산한다. 다만 이 누계는 시범운영 기간 종료 후에는 실효성이 사라진다. 시범운영 기간 안에, 해당 보상금을 모두 지급하는 것이 원칙이다. 현재 상한선은 정해져 있지 않은데, 참고로 덴마크의 경우 한 작가가 받을 수 있는 보상금 금액의 상한선을 정하고 있고, 대여 횟수에 구간별 차등을 두어 지급 보상금을 달리 지급하고 있다. 대여 횟수가 높을수록 구간별 보상금은 낮아지는 식이다. 일각에서, 결국 도서관에서도 대여 순위가 높은 몇 권의 베스트셀러나 스테디셀러 작가에게만 역시 공공대출권으로 인한 보상금도 몰리는, 빈익빈 부익부를 다시 재현하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도 있는데, 이러한 보상 방식을 참고해보면 좋을 듯하다.

 

자, 그렇다면 보상은 어떤 방식으로 이루어질까? 연말에 각 권에 대한 대출 수치를 통계 내고, 교육부에서 이듬해 2월 1일 보상자격에 부합하는 도서의 목록 공고를 낸다. 2월과 3월 두 달간 온라인 시스템을 통해 출판사가 신청하고 4월 한 달 동안은 창작자가 신청한다. 기간 내 신청을 못하면 그 권리를 포기한 것으로 간주한다. 따로 기간을 정해 현장 신청도 받는다. 그리고 5월부터 보상금을 지급한다. 보상 방식은 대여 횟수를 기준으로 삼고, 대출 연장의 경우는 포함시키지 않는다.

 

이렇게 대만 공공대출권 시범운영에 대한 전모를 살펴봤다. 대만의 전체적인 출판시장이나 독서환경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 없이, 이 시범운영 계획만 살펴서, 좋다 나쁘다를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다. 밖에서 보기엔 공공대출권 시범운영만으로도, 이미 한 발짝 앞서 나가고 이상적인 결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가 되지만, 실제 시범운영을 둘러싸고 출판계나 매체에서 우려 섞인 목소리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니다. 공공대출권이라는 제도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 기존 출판시장(출판환경)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공공대출권 시행만으로 건강한 출판·독서 생태환경을 만들기는 요원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 공공대출권이 현재 대만 출판계가 겪고 있는 가장 시급한 난제를 해결하는 데 과연 도움이 될는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가령 도서관의 책 구매로 인해 판매상들이 받는 영향을 완화할 방법이 있는지, 도서관의 서적 구매 할인율(현재 40%)이 과도한데, 이에 대한 조정 없이 공공대출권을 시행해도 되는지, 도서관 도서 구매량을 늘려 장서의 부족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등이다. 실제 지난해 3월 대만에 출간된 김영하의 《빛의 제국》은 2월 25일 검색 결과, 신베이시 소재의 10개 시립도서관에서 대출예약 대기자 수가 적은 곳은 4명, 많은 곳은 6명까지 밀려 있었다.

형소진(대만 내용력주식회사 저작권 에이전트)

시사다큐 방송작가를 거쳐, 10년간 웅진지식하우스, 문학동네 출판사에서 기획편집자로 60여 권의 책을 만들었다. 현재는 하늘의 구름이 빨리 움직이고, 일상(日常)이 아름다운 섬나라 대만에서 석사 공부를 하며 저작권 에이전트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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