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9 2020. 04.
[기고]
한상수
2020. 04.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되면서 지역서점의 어려움이 무척 커졌다. 대부분 인건비는 고사하고 월 임대료도 벌지 못하는 상황이다. 일부 서점에서는 고객이 서점에 방문하는 것을 꺼리자 한 권이라도 팔기 위해 책을 직접 배달해주는 서비스를 시행할 정도로 상황이 어려워졌다. 이럴 때일수록 정부와 공공기관은 전대미문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도록 지역서점에 용기와 자신감을 주는 정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올해 전국 공공도서관의 자료구입비 예산이 1,000억 원 정도이니 10퍼센트인 100억 원을 추경 예산으로 세우면 도서관 자료를 10퍼센트 할인 없이 정가로 구입할 수 있다. 현재 정부에서는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한 추경을 사상 최대 규모로 세우는 상황이니 공공도서관을 관장하는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와 교육부에서 마음만 먹는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다.
이러한 특단의 대책도 필요하지만 지역서점이 지속 가능하게 운영되도록 도서관이 지역서점에서 자료를 모두 구입하는 정책이 자리 잡는 일도 중요하다. 문체부에서는 지난 3월 16일에 낸 보도자료를 통해 도서 구매 시 지자체와 교육청은 지역서점을 우선 활용할 것을 적극 권고했다.
현재 공공도서관의 자료 구입 방식은 지역에 따라 다양하다. 지역서점을 이용한 공공도서관의 자료 구입은 예전에 비해 늘어나긴 했지만 아직도 많은 개선이 필요하다. 전국에서 가장 모범적인 사례라고 생각하는 고양시의 자료 구입 방식을 통해 개선방향을 모색해보자.
경기 고양시 화정도서관 2층 고양작가 서가(사진제공: 화정도서관)
고양시도서관센터의 자료 구입 방식
얼마 전 필자는 페이스북에 코로나19 사태로 동네책방이 겪는 어려움을 호소하며 공공도서관이 올해 한시적으로라도 10퍼센트 할인을 받지 않고 정가로 도서관 자료를 구입해주면 좋겠다는 글을 올렸다. 물론 책방이 하도 어려우니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올린 글이었다.
필자가 운영하는 책방의 이용자인 한 시의원이 이 글을 읽고, 고양시와 도서관센터에 건의하였는데 놀랍게도 일주일도 되지 않아 정책이 결정되었다. 고양시는 관내 지역서점을 지원하기 위해 올해 자료구입 예산 중 미집행된 9억4,500만 원을, 10퍼센트 할인 없이 정가로 구입하기로 하였다. 이 정책으로 인해 한 서점당 약 350만 원의 수익이 추가된 셈인데 이 혜택을 받는 서점이 27곳이니 고양시 전체 지역서점들에게는 약 1억 원의 추가 수익이 돌아가게 되었다. 실로 가뭄에 단비 같은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제안 당사자로서 무척 고맙고 반가웠지만 한편으로는 걱정도 되었다. 서점 입장에서는 정가를 모두 받으면 수익이 늘어나 좋은 일이지만, 도서관의 자료 구입량이 줄어들면 시민과 출판사들이 선의의 피해를 볼 수도 있겠다는 염려에서였다. 다행히 고양시도서관센터에서 정가 구입으로 줄어드는 비용을 보전하기 위해 올해 1차 추경에 9,700만 원을 세워 이런 걱정도 사라졌다. 놀랍고 감동적인 행정의 본보기다. 행정이 위기상황에서 지역 소상공인들을 어떻게 지원해야 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모범사례라 할 만하다. 이 소식은 언론과 SNS를 통해 알려지기도 했다.
이번 일이 아니더라도 고양시는 2015년부터 시립도서관 17개관, 공립작은도서관 18개관, 이동도서관 1개관의 자료 구입비 전액을 관내 지역서점에서 사용하는 정책을 전국 최초로 시행하였다. 처음에는 대상서점 선정에 다소 어려움도 있었지만 2018년부터 경기도에서 지역서점인증제를 시행하면서 이 문제는 간단하게 해결되었다.
고양시는 올해에도 전체 자료구입 예산 20억2,500만 원을 경기도 인증 지역서점 27곳에 고르게 분배하였다. 한 서점당 할당된 금액은 7,300만 원에서 7,685만 원이다. 약간의 차이가 나는 것은 작년부터 서점 평가를 통해 좋은 평가를 받은 8개 서점에 인센티브를 적용했기 때문이다.
경기 고양시 화정도서관 2층 서가(사진제공: 화정도서관)
공공도서관의 자료 구입 방식 현황과 개선 방안
아직도 많은 공공도서관에서는 입찰 방식 또는 일부 예산만 지역서점에서 책을 구입한다. 작년에 모 광역시의 대표도서관이 자료 구입에 관한 입찰을 진행한 결과, 페이퍼컴퍼니가 낙찰을 받아 문제가 된 경우처럼 입찰 방식에는 실제 서점을 운영하지 않는 업체가 낙찰될 가능성도 있다. 공공도서관에서는 번거롭더라도 입찰 방식보다는 지역서점에 기회를 늘려주는 방향으로 자료 구입방식을 개선하면 좋겠다.
공공도서관의 자료 구입방식에는 개선되어야 할 점이 더 있다. 바로 특정한 서점협동조합과 독점적으로 거래하는 관행이다. 지역서점 몇 곳이 서점협동조합을 만들어 해당 지역 공공도서관의 자료 구입을 모두 독점하는 사례가 많이 보고된다. 도서관 입장에서는 한 곳과 계약해서 진행하므로 편리하겠지만 문제는 이런 협동조합이 폐쇄적이고 배타적으로 운영된다는 점에 있다. 이럴 경우 특정한 몇몇 서점만 이익을 독점하고 다른 서점들은 배제되는 결과가 되어 바람직하지 않다.
시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공공도서관의 자료 구입비는 그에 걸맞게 구입방식도 투명하고 공정하게 진행되어야만 한다. 특정한 조직에 속한 일부 서점들에게만 독점적으로 혜택이 주어지는 방식에는 개선이 꼭 필요하다. 공공도서관 담당자는 소외된 지역서점은 없는지 꼼꼼하게 살펴주길 바란다.
경기 고양시 화정도서관 3층 종합자료실(사진제공: 화정도서관)
‘지역서점인증제’ 시행 확대되어야
관내 서점에서 자료를 구입하려 해도 서점의 형태가 다양하기 때문에 광역지자체는 대상 선별에 어려움을 겪기 마련이다. 이런 문제는 광역지자체에서 일정한 기준을 정해 지역서점인증제를 시행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 경기도가 그런 좋은 사례이다. 경기도의 지역서점인증제는 인증을 통해 공공의 신뢰성을 부여하여, 실제 운영되지 않는 명목상의 서점 업체들이 공공도서관 도서 납품에 난립하는 문제점을 해소하고, 지역서점에 대한 실질적인 지원을 통해 경쟁력을 강화하려는 목적으로 시행되었다.
경기도 지역서점인증제에서 정한 인증 요건과 세부기준은 다음과 같다.
경기도의 사례와는 다르게, 체계적으로 지역서점인증제를 시행하지 않는 광역지자체가 아직도 많은데 조속히 시행되어지길 기대한다. 지역서점인증은 공공이 주체가 되어 시행해야만 사회적 신뢰를 얻을 수 있다. 혹 이해관계가 있는 민간단체가 주도해 인증제를 시행하면 객관적인 신뢰를 얻기가 힘들다는 점도 유의해야 한다. 앞 보도자료에서도 볼 수 있듯이 문체부에서도 지자체 및 교육청에 대해 지역서점인증제 도입을 적극 검토할 것을 권고했다.
도매상이 도매점 한쪽에 형식적으로 소매 매장을 만들어 놓고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식으로 매장을 운영하는 경우도 많고, 실제로는 매장을 운영하지 않는 학습참고서 도매 총판과 잡지 전문 도매 총판에서 사업자등록증상 업태를 소매라고 형식적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전수 조사 방식의 현장 실사를 통해 지역서점 여부를 정확히 가려내어 인증해야 한다. 문체부에서도 관련 실태를 면밀히 조사하고, 지역서점인증제와 지역서점 우선구매제도가 확산될 수 있도록 관련 법과 제도를 정비해나간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경기 고양시 화정도서관 1층 꽃뜰(사진제공: 화정도서관)
학교도서관의 지역서점 구입 정착되어야
공공도서관과 마찬가지로 학교도서관도 지역서점에서 자료를 구입하는 관행이 확대되길 기대한다. 문체부는 최근에 전국 학교에 공문을 보내 학교도서관이 지역서점에서 자료를 구입하도록 권유하였다. 경기도교육청도 ‘2020년 학교도서관 진흥 시행계획’에서 독서문화 진흥을 위해 지역서점과 다양한 방식으로 협력할 것을 강조하였고, 학교에서 자료를 구입할 시 지역서점을 이용하도록 적극 권장하였다.
학교도서관이 지역서점과 협력하면 도서관 운영에도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지역서점에서 주최하는 작가 초청행사 등 다양한 문화행사에 학교가 참여할 수도 있고, 학교에서 독서행사를 운영할 때 지역서점도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무엇보다 지역서점은 신간이 빨리 들어오고 큐레이션이 일상적으로 이뤄지는 곳이므로 학교도서관에서 수서 목록을 짤 때 큰 도움이 되고, 실물 수서를 하도록 도와줄 수도 있다.
학교도서관은 전국 어느 곳에나 있기 때문에 지역서점 운영에 무엇보다 큰 힘이 될 수 있다. 학교도서관과 지역서점의 아름다운 협력이 잘 이루어져 지역의 책문화를 살리는 역할을 같이 담당하길 기대하는 마음이 크다.
2020년 도서정가제 개정안에 바라는 점
2014년 10월에 개정된 도서정가제는 할인 폭과 대상을 줄이고 도서관을 포함한 공공기관을 적용 예외기관으로 제외하면서 지역서점에게 숨통을 트여주었다. 실제로 개정된 도서정가제가 시행되면서 다양한 특색을 가진 동네책방이 전국에 많이 생겨났고 이는 지역 독서환경에 긍정적으로 작용하였다.
도서정가제는 3년을 주기로 그동안의 시행 내용과 관련 업계의 의견을 모아 개정하고 다시 3년을 시행한다. 2017년에 이어 올해 2020년은 개정 내용을 협의하는 해이다. 도서정가제는 이해관계가 다른 다양한 관계자들이 협의하고 합의해서 개정 내용을 정해야 하기 때문에 작은 합의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여러 참여주체가 동의해야 하는 상황에서 많은 변화를 갖기란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필자도 생각한다. 그럼에도 합의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이룰 수 있는 개정은 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대표적으로 도서관을 포함한 공공기관에는 5퍼센트의 추가적인 경제상의 이익(간접할인)을 제공하지 않는 것을 들 수 있다. 간접할인은 개인 소비자에게만 적용하고 도서관에는 적용하지 않도록 하는 내용으로 개정하길 바란다. 이 내용은 도서정가제에 소극적인 소비자단체나 인터넷서점에서도 반대할 사안이 아니고, 실제 적용 대상인 도서관에서도 반대하지 않는다고 들었다. 5퍼센트 간접할인의 용도가 애매해 부당거래 등 법 위반요소가 있어 집행하지 않는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도 실제로 많이 있다. 이런 현실을 감안하여 2020년 개정 도서정가제에서는 이 부분을 명확하게 법제화해주길 기대한다.
독자-도서관-서점이 함께 만드는 행복한 책문화
도서관과 서점은 지역의 책문화를 만드는 양 날개이다. 어느 한쪽이라도 위축되면 지역에서 행복한 책문화를 만들기가 쉽지 않다. 따라서 공공도서관과 학교도서관은 자료 구입 시 지역서점을 최대한 배려하고, 서점은 그러한 배려가 갖는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이며 필요한 역할을 담당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독자도 도서관을 아끼는 만큼 지역에 있는 서점에도 관심을 가져주길 바란다. 이렇게 독자-도서관-서점이 함께 힘을 모으면 지역마다 아름답고 행복한 책문화가 만들어지리라 기대한다.
“독자, 도서관, 서점이 함께 힘을 모아 지역마다 아름답고 행복한 독서문화가 만들어지길 기대한다.”(행복한책방) 한상수 ‘책으로 행복한 세상’을 꿈꾸며 책과 도서관 전문 사회적 기업인 행복한아침독서에서 일한다. 서점과 작은 도서관을 주제로 한 월간지 『동네책방동네도서관』을 발간하며, 동네책방인 행복한책방을 운영한다. 『나는 책나무를 심는다』를 썼고, 『아침독서 10분이 기적을 만든다』를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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