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4 2022. 07.
대형 체인 서점의 출판유통 도매 사업, 그 의미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책 생태계 연구자)
2022. 7.
대형 서점의 도매 사업 진출에 대한 우려와 경계
코로나19의 팬데믹이 확산되던 2020년 4월 24일, 〈교보의 도매 진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를 주제로 공개 좌담회가 열렸다. 출판 단체, 서점 단체, 주요 도매업체, 출판유통 전문가 등 이해관계자들이 두루 참석한 토론의 장이었다. 유통 강자인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이 위기에 처한 도매유통을 발전시킬 전기가 될 수 있다는 의견도 있었지만, 교보문고의 도매업 진출을 우려하는 분위기가 팽배했다. 비판과 우려의 강도는 도매업체에서 가장 강했고, 이어서 중형 서점과 출판사 순으로 높았다.
한국출판협동조합의 발표자는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 진출 배경을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 감소와 시장에서의 독점적 지위 확보를 위한 ‘1조 원 매출 목표’라고 짚었다. 교보문고의 ‘입고가 플러스 5% 출고가’ 정책은 시장 진입용 전략에 불과하므로, 도매 시장이 교보문고 중심으로 독과점화되면 지역서점과 중소 출판사의 피해로 되돌아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국 중형 서점들의 단체인 한국서점인협의회 발표자는 도매유통이 중소형 서점을 지탱하는 기반임에도, 차별적 공급 구조의 최대 수혜자인 교보문고를 통해 도매유통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은 배고픈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기는 격으로 최악의 선택이라고 밝혔다.
이어서 한국출판인회의 발표자는 교보문고의 도매업 진출이 기존 도매 서점의 부실과 사업 축소를 초래하여 서점업계 피해가 커질 수 있고, 출판사에 대한 공급률 인하 요구로 이어질 경우 중소 출판사의 영업이익이 하락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편으로, 국내 인터넷서점 1위 업체인 예스24가 도매 사업에 뛰어들었다는 소식도 있었다(이은주, “예스24 책 도매업 진출 도서유통 난제 푼다”, IT Chosun(2021.4.29.)). 만약 온·오프라인을 통틀어 출판 소매업계에서 1·2위를 다투는 양대 업체가 출판 도매업을 본격화한다면 출판시장 구조에도 커다란 지각 변동이 초래될 것이 분명하다. 공개적으로 관련 업계가 경계심을 드러낸 좌담회로부터 2년여가 지난 지금, 출판유통과 지역서점의 대동맥인 도매 시장 지도는 과연 어떻게 바뀌었을까.
대형 서점의 도매 사업 현황과 그 영향
1) 서점계 요구로 시작된 교보문고의 서점 납품과 도매 사업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이 시작된 것은 오래된 일이다. 교보문고 설립 초창기인 1980년대 초반부터 개별 영업점에서는 지역서점의 주문에 따라 ‘서점 납품’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급히 찾는 책을 구하지 못한 지역의 소매 서점들이 다량의 재고와 구색을 갖춘 교보문고를 통해 도매상 주문보다도 빠르게 원하는 물량을 곧바로 확보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경우 대략 5~10%의 도매 마진율이 적용되었다. 이처럼 교보문고가 40년 이상 서점의 주문을 받아 ‘서점 납품’을 하고 있었음에도 이를 도매 사업이라고 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별도의 도매 물류 시스템을 갖추거나 적극적인 도매 사업을 하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현재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 역시 자체의 전략적 판단에 의한 사업 영역 다각화나 공격적 사업 확장의 결과물이 아니다. 한국서점조합연합회(이하 ‘한국서련’)의 도매유통 거래 요구가 그 출발점이었다. 원하는 책을 적시에 공급받고 싶다는 지역서점계 요구와 지역서점 살리기라는 사업 목적이 분명했다. 당초부터 공격적인 사업 의지에 기반해 시작된 도매 사업이 아니었기 때문에, 아직까지 도매 사업의 매출 목표 같은 것은 따로 없다고 한다.
한국서련 소속 지역서점들과 교보문고는 의기투합하여 태스크포스(TF)를 조직해 지역별 샘플 서점을 두고 유통 프로세스 개선에 나섰다. 최근까지 수원 임광문고, 용인 동백문고 등 경기 남부 지역서점들을 중심으로 교보문고의 판매 시스템을 공유하며 매입, POS 단말기, 무인 안내, 매장 진열 개선 등을 시도하여 크고 작은 성과를 거두었다. 무엇보다 업무 프로세스가 단순화되었고 영업성과가 개선되었다. 28개 서점으로 시작된 시범사업은 지역 조합별로 확장되었다. 나름의 판매 노하우를 공유하게 되면서 지역서점에서 잘 팔리지 않던 책도 팔리고 있다. 지역서점의 반응은 상당히 좋은 편이다.
이렇게 해서 교보문고와 거래하는 지역서점은 2020년 716개에서 2021년 1,010개, 2022년 5월 기준 1,100개로 증가 추세다. 『2020 출판산업 실태조사(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1)』에서 전국 단위로 거래하는 도매업체의 거래 서점 수가 평균 1,399.5개인 것에 견주어도 적지 않은 숫자다.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 매출액은 2021년에 약 870억 원으로, 전사 매출의 약 10% 수준으로 성장했다.
2) 교보문고와 도매 거래를 하는 지역서점의 변화
실제 사례를 살펴보자. 교보문고를 주 도매 거래처로 바꾼 수원 임광문고는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한다. 무엇보다 교보문고에서 제공한 전산 시스템을 활용하면서 업무 강도가 대폭 낮아졌고 체감하는 경영 효율은 크게 높아졌다. 교보문고의 분야별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른 책이 지역서점에 없으면 공급해 준다거나, 재고 도서 중에서 거의 팔리지 않는 책을 솎아내기도 한다. 팔리는 책, 팔릴 가능성이 있는 책들로 매장이 탈바꿈했다. 교보문고는 부정기적으로 매대의 진열을 봐준다. 평대에 어떤 책을 전시해서 판매할지 교보문고 직원이 진열 방식 등을 조언한다. 원래 도매상들이 했어야 할 이런 역할들을 지역서점은 처음 경험했다. 기존의 밀어내기식 도매유통 구조에서는 반품만 늘어나기 일쑤였으나, 이제는 반품률도 크게 낮아졌다.
수원시서점조합장이기도 한 조승기 임광문고 대표는 편의점이나 다이소 같은 곳들도 최소한의 인력으로 수많은 상품을 전산 시스템으로 관리하는 시대에 지역서점만 뒤처져 있었으나 이제는 달라졌다고 반겼다. 2019년 가을 교보문고와 거래한 이후부터 달라진 양상이다. 기존에 다른 도매상과 거래하던 때는 공급받은 책을 정리하는 데만 매일 3~4시간이 소요되었다. 그러나 교보문고와 거래하면서부터는 10분이면 입고 정리가 끝난다. 직원 5명에 아르바이트 2명을 채용하고 있는 이 서점은 새로운 판매 시스템의 도입으로 업무 강도가 줄었고, 직원 1.5명 정도가 도서관 납품 등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여력이 생겼다.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 진출 이후 거래 서점들은 고객이 요구하는 거의 모든 책을 갖출 수 있게 되면서 소매 서점의 본원적 기능이 가능해졌다. 인기 화제작에 대한 공급 또한 원활해졌다. 이를테면 과거에 지역서점에서는 『채식주의자』 등의 인기 도서가 초대형 베스트셀러로 떠올라도 책을 구하지 못해서 상당 기간 동안 책을 한 권도 못 팔았던 경험이 잦았다. 대부분 화제작의 초기 공급이 대형 온·오프라인 서점에만 집중되기에, 소형 지역서점에서 도매상을 통해 책을 공급받는 것은 ‘당연히’ 어려웠다. 이제는 도서 공급 1순위 업체와 거래를 하기에, 그와 같은 말도 안 되는 유통 차별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판매 기회 상실을 방지할 뿐 아니라 서점 경영 안정화에 기여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서점계는 교보문고라는 경쟁자가 등장하면서 웅진북센이나 한국출판협동조합 등 기존 도매업체들의 영업 방식도 개선되고 있다고 느낀다. 처음에는 교보문고가 출판사 공급률에 5%의 도매 마진을 얹어 공급하는 ‘입고가 플러스 5% 출고가’가 저렴했으나 이제는 일부 도매업체가 공급률을 낮춰가며 경쟁하는 체제가 되었다고 한다. 전에는 볼 수 없었던 풍경인데, 도매업체 영업 사원도 서점에 들른다.
지역서점과 교보문고의 거래에서 가장 큰 특징은 전국 어느 서점에나 동일한 공급가를 적용하는 것이다. 서울에 있는 서점이나 제주 마라도에 있는 서점이나 같은 책이라면 공급률도 동일하다. ‘입고가 플러스 5% 출고가’를 동일하게 적용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해서 서점에 공급되는 가격은 정가의 65% 수준(서점 마진 35%)이 가장 많다. 거래 방식에서 현매(현금 거래, 매절 거래)와 위탁에 따른 공급률 차이도 없다. 현매 공급률은 상대적으로 낮고 위탁 공급률은 상대적으로 높던 기존 공식이 파괴된 것이다. 서점의 도서 반품률은 5% 이하 수준으로 매우 낮다. 반품률 제한 규정은 없지만, 그만큼 거래 서점들이 신중하게 주문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교보문고의 ‘동일 도서, 동일 공급가’ 원칙은 실제로 거래 서점을 끌어들이는 중요한 요인이다. 웅진북센의 경우 거래 규모나 수금률에 따라 공급률을 달리한다. 특히 영세한 거래 서점들의 경우 수금률이 미진하여 리스크 관리 차원에서 불가피하게 차등 공급률을 적용하는 것과 비견된다. 웅진북센도 정상적인 영업을 하는 일반적인 서점에 대해서는 공급률 차이가 없다고 한다.
지역서점의 거래 양상은 다양하다. 교보문고와 도매 거래를 하는 곳이라도 상당수는 웅진북센 등 다른 도매상과 복수로 거래한다. 그 이유는 특정 도서를 타 도매상에서 더 낮게 공급하는 경우가 있어서, 서점 입장에서 더 유리한 곳을 선택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보문고의 ‘(출판사) 입고가 플러스 5% (서점) 출고가’, 즉 ‘플러스 5%’ 공급률은 도매유통 실비에 해당하는 것으로 도매 사업에서 이익을 내기 어려운 마진율이다. 그러면 언제까지 이러한 구조가 지속 가능할지 출판사와 소매 서점의 우려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교보문고가 독점적 사업자가 되었을 때 출판사에는 도매 사업을 이유로 기존보다 더 낮게 공급률을 인하하고, 소매 서점에는 기존보다 더 높은 도매 공급률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방식을 취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교보문고는 현재의 ‘플러스 5%’ 공급률은 지역서점과의 동반성장과 사업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적정선이라 보고 있으므로 특별한 변수가 없는 한 유지할 것이라는 입장이다. 사회적 책임의식을 가진 기업이 출판사와 서점 등 다수 이해관계자들과 사업을 하면서 횡포를 부리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는 입장이다.
3) 예스24와 기존 도매업체 동향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이 거의 본궤도에 오른 데 비해 예스24의 도매 사업은 아직 준비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으로 보인다. 예스24가 출판사와 소매 서점 사이의 유통(도매 사업)에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교보문고가 그랬듯이 기존 도매상을 통해 공급받을 수 없는 책에 대한 서점의 문의나 요청이 나날이 늘어나면서부터다. 또한 출판사에서도 전국 소매 서점으로 충분히 원활하게 책을 공급하기가 쉽지 않은 현실에 주목했다. 예스24는 도서 유통망의 공백을 보완하고, 출판사와 서점의 협업 방안을 만들어가는 것이 출판시장에 꼭 필요한 과제라는 관점으로 도매유통 사업을 바라본다. 최근 3년간 약 100여 곳의 서점과 거래를 하며 굿즈를 제공하거나 프로모션 협업을 하는 등 여러 경험을 쌓았다. 다만, 그동안 풀리지 않은 난제들이 많은 만큼 당장의 매출 확대 위주로 도매 사업을 바라보지 않고 거래 경험을 차근차근 쌓으면서 사업 방향을 고민하는 상황이다.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 진출 이후 웅진북센의 지역서점 거래 매출은 많이 줄었다. 지역서점 매출이 증가하지 않는 상황에서 교보문고의 성장세는 다른 도매상의 매출 하락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웅진북센의 전체 매출액은 2019년 1,490억 원, 2020년 1,672억 원, 2021년 1,998억 원으로 오히려 증가세를 나타내고 있다.(대한출판문화협회, 『2021년 출판시장 통계』) 그 이유는 판매 채널의 다각화를 통해 소매 서점의 매출 감소분을 만회했기 때문이다. 웅진북센은 쿠팡이나 이베이 등 대형 온라인 판매 플랫폼에 풀필먼트 서비스(fulfillment service: 물류 일괄 대행 서비스)를 제공한다.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이 본격화된 지난 3년간 거래 서점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인터파크송인서적의 폐업으로 인한 신규 거래처 확보라는 특수와 쿠팡 등의 신규 사업자들에게 공급 창구 역할을 하는 점, 그리고 지역서점의 공공도서관이나 학교도서관 납품 주문이 늘면서 소매 서점 공급 물량의 감소분이 상쇄되었다.
웅진북센의 입장에서도 출판 도매 시장에서 새로운 경쟁자 탓만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래서 거래처와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해 영업 사원을 충원했다. 출판사의 지불 조건도 개선하여 최대 3개월이던 어음 기간을 2개월로 단축하고, 소형 출판사 대상의 현금 정산 범위도 100만 원에서 200만 원으로 확대했다. 거래하는 지역서점의 숫자는 약간씩 줄고 있는 반면 새로 설립된 독립서점 거래처는 증가 추세여서 전체적인 거래 서점 수 변화는 크지 않다.
웅진북센 외의 전국 단위 도매상들의 매출 추이를 보면, 북플러스는 2019년 388억 원, 2020년 393억 원, 2021년 399억 원으로 현상 유지 수준에서 약간의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고, 한국출판협동조합은 2019년 338억 원, 2020년 322억 원, 2021년 282억 원으로 뚜렷한 감소세를 나타내고 있다(대한출판문화협회, 『2021년 출판시장 통계』). 한국출판협동조합의 경우 지난 2년간 코로나19 사태로 대학교 구내서점 매출이 대폭 감소한 것이 큰 타격을 안겼다. 한국출판협동조합은 수수료 기반 거래를 하기 때문에 서점 출고율을 낮추기 어려워 도매 시장 재편 과정에서도 단행본 기준 5% 정도가 차이 나는 공급률 경쟁에 나서기 어려운 상황이다. 조합 관계자는 인터파크송인서적에 공급하던 물량이 대부분 교보문고로 빠져나간 것으로 보고 있다. 조합은 경쟁력 강화를 위해 공급률, 배송 체계, 서점과의 소통 등 경쟁사보다 약한 부분들을 보완하려고 준비하고 있다. 지역서점과 상생할 수 있는 플랫폼 구축이 목표다.
4) 지역서점들은 왜 교보문고와 손을 잡았나
대형 서점의 도매 사업 진출은 소매 서점, 특히 지역서점에 어떤 의미를 가질까.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 본격화에 계기를 만든 것은 도매상(송인서적) 부도 사태나 불안정한 도매유통 구조와 매출 하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지역서점들의 자구책 마련 움직임이 복합적인 동인이 되었다. 그 중심에 한국서련이 있었다. 한국서련의 이종복 회장은 독자들이 찾는 책의 70% 정도만을 공급하는 기존 도매상으로는 서점의 경쟁력이 갖춰지기 어렵다고 보았다. 독자가 찾는 책을 공급하지 못하는 지역서점은 서점으로서의 의미나 최소한의 생존 경쟁력조차 갖추기 어렵다는 것이다. 그래서 독자가 원하는 책을 대부분 공급할 수 있고, 부도 위험이 없으면서, 도매 기능이 가능한 곳들을 찾았다. 그와 같은 조건과 아울러 재정 상태와 신용 상태가 우량한 곳이 바로 교보문고였다.
모기업인 교보생명은 무디스나 피치 등 신용평가 회사들의 신용등급이 높은 대기업일 뿐 아니라 국민 교육기업이라는 위상이 있다. 그리고 교보문고는 교보생명 매출 비중의 3~4%에 불과해 만약 어떤 문제가 생기더라도 거래 업체들까지 그 영향이 미치게 방치할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대기업인 만큼 불공정 거래 행위를 할 것으로도 생각되지 않았다. 지역서점들은 교보문고를 만나 도매 거래를 위한 전제 조건으로 거래 규모에 따른 공급률과 반품률, 공급 우선순위에서 차별이 없어야 한다는 점을 첫 번째로 내세웠다.
이러한 과정에서 공급률 차별 폐지, 유통 마진과 물류비의 구분(이 두 가지가 섞이면 작은 서점들의 고통이 가중될 것이기 때문에) 등의 요구 조건을 설득했다. 공급률은 동일하되 물류비는 차등 적용하는 방식에 합의했다. 2019년 4월 무렵의 일이다. 이후 교보문고가 물류 시스템 확충에 1,500억 원을 투자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이종복 회장의 설명이다. 반면 웅진북센은 물류 시스템 개선에 대한 투자 의지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 한국서련은 3대 출판 도매유통사에 서점 물량의 중복거래 문제 해결을 위한 통합 배송을 요청했으나 성사되지 못했고, 결과적으로 각자도생의 길을 선택했다. 이러한 일련의 경과는 서점계의 절박한 요구에 의해 교보문고의 도매 사업이 본격화되었음을 보여준다.
그렇지만 현재까지도 상당수의 지역서점들은 교보문고를 도매 사업체로 이용하지 않는다. 한국서련이 교보문고를 도매 거래처로 선택한 일도 서점계에서 처음부터 순탄하게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다. 엄연히 경쟁자이자 출판시장의 지배적 사업자인 소매업체와의 도매 거래에 대해 쉽게 정서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 도움이 되는 거래 관계는 그러한 반발심을 뛰어넘었다.
2021년에 한국서점인협의회 소속 중형 서점들이 중심이 되어 폐업하는 인터파크송인서적을 인수하여 새로운 도매 회사를 만들고 물류 시스템 등을 활용하기 위한 노력을 편 것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 결국 인수금 확보에 실패하면서 ‘지역서점이 주도하는 도매상’ 설립의 꿈은 사라졌지만,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 교보문고의 지방 지점 설립 때마다 벌어졌던 격한 ‘교보 진출 반대’ 데모의 정서적 여진, 대형 체인 서점의 도매 사업 진출에 대한 거부감은 완전히 가시지 않았다. 한편 아직도 웅진북센과만 거래하는 서점이 적지 않은 것은 ‘적과의 동침’에 대한 심리적 반감이 사라지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전망과 과제
미국과 독일, 일본 등 출판시장이 발달한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출판 도매업체의 위상이 매우 크다. 그만큼 지역서점의 도매상 의존도는 거의 절대적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유통 비중이 큰 대형 서점 체인과 인터넷서점이 출판사와 직거래를 하여 도매업체의 거래 물량 자체가 크지 않다. 학습참고서와 잡지 등도 출판사 주도의 총판 구조가 발달하면서 도매 물량에서 제외된다. 이에 따라 규모의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서 중소 사업자들의 부실 경영으로 인한 도매상 부도를 반복적으로 경험했다. 대안과 비전이 없는 상황에서 서점계 단체는 소매 서점 1위 업체에 요청하여 도매 거래 창구를 개설했다. 기존 출판 도매업체들의 경쟁력 미비와 체질 개선 미흡이 만든, 기존 시각으로 보면 다소 기형적인 유통 구조다.
지난 역사에 ‘만약’이란 가정형 조건이나 변수를 적용할 경우 현재는 180도 다를 것이다. 만약 출판 도매업체들이 출판 선진국의 도매상처럼 도매상의 역할을 제대로 했다면, 아마도 대형 소매 서점이 도매 사업을 시작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럴 필요나 실익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도매 구조가 자기모순을 극복하지 못하는 사이, 온전한 도매 기능을 바라는 유통 수요자들에 의해 새로운 도매 구조가 정립되기 시작한 것이 오늘의 지형 변화 상황이다.
교보문고는 1천 개가 넘는 서점과 도매 거래를 하고 연 매출액이 900억 원에 육박하지만 아직까지 도매 사업을 공식적으로 선언하지 않았다. 적어도 도매 사업만큼은 수동태(受動態)였다. 하지만 상황은 달라졌다. 현재 건립 중인 물류센터 증축이 올해 8월 완공되면 10월 이후에는 본격적인 도매 사업 선언이 나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전망된다. 도매 사업을 위해 조성하는 30만 종의 구색을 갖춘 전용 물류센터는 향후 교보문고 도매 사업의 물류 인프라가 될 것이다. 출판 도매 시장의 구조 개편이 가속화될 가능성도 있다. 현재 교보문고는 도매 사업을 ESG 경영 차원에서 지역서점과의 동반성장에 방점을 찍고 있어서 공격적인 도매 시장 확대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한국의 출판 도매업은 이제 큰 전환기를 눈앞에 두고 있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과 지자체의 지역서점 활성화 조례 제정 등에 힘입어 각종 지역서점 육성 지원정책이 다양화되고 있다. 그러나 지역서점에 출판물을 원활하게 공급하고, 출판사와 지역서점(독립서점 포함)을 잇는 중추적 유통 인프라인 도매 기능은 여전히 낙후한 상태이다. 선진국의 도매상은 서점 창업 지원부터 머천다이징, 매장 경영 지원, 서점인 교육까지 책임진다. 거래 서점 매출이 늘어날수록 자사 매출도 증가하기 때문이다. 현재의 도매 시장 재편은 기존 도매 구조의 업보이자 새로운 변화를 뜻한다. 대형 서점의 도매 사업 본격 진출이 지역서점 활성화와 출판시장 발전의 방향타가 될지 주목된다.
참고문헌 -
대한출판문화협회, 〈교보의 도매 진출,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좌담회 자료, 2020.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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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출판문화협회, 『2021년 출판시장 통계』,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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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서점조합연합회, 『2022 한국서점편람』,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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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2020 출판산업 실태조사』, 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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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은주, “예스24 책 도매업 진출 도서유통 난제 푼다”, IT Chosun(2021.4.29.),
http://it.chosun.com/site/data/html_dir/2021/04/28/2021042801773.html
도움 말씀을 주신 분 -
한국서점조합연합회 이종복 회장(한길서적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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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원시서점조합 조승기 조합장(임광문고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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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유통사업본부 도매 사업팀 박정현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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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보문고 전략기획실 브랜드커뮤니케이션팀 진영균 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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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도서사업본부 법인서비스팀 김성광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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웅진북센 황종운 유통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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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협동조합 김영진 영업관리본부장
출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KPIPA 리포트
본 원고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발간하는 KPIPA 리포트 중 일부입니다.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책 생태계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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