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4 2022. 07.
2022 서울국제도서전 이모저모
김혜경(독서신문 기자)
2022. 7.
국내 최대 책 축제이자 한국과 세계가 책으로 만나는 플랫폼인 서울국제도서전이 지난 6월 1일부터 6월 5일까지 5일간 서울 삼성동 코엑스 A홀에서 열렸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해 온라인으로 또는 축소된 규모로 진행됐던 행사가 3년 만에 기존의 규모를 되찾으면서 많은 기대를 모았다. 출판사 등 총 195개사가 참여한 이번 도서전에는 총 306회의 프로그램이 마련됐으며 214명의 국내외 저자 및 강연자가 독자들과 만났다. 홍보대사는 소설가 김영하, 은희경, 콜슨 화이트헤드가 맡았다.
2022 서울국제도서전 포스터(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2022 서울국제도서전을 찾은 관객들(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반걸음 바깥을 책으로 사유하다
올해 도서전의 주제는 ‘반걸음 - One Small Step’. ‘어려운 상황에서도 나아가고자 하는 작은 노력’이라는 의미다.
주제 강연 - 김영하 작가, 은희경 작가, 이수지 그림책 작가, 한강 작가, 가수 장기하(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제 강연’은 홍보대사인 김영하, 은희경을 비롯해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들과 함께 앞으로 나아갈 ‘반걸음’의 방향을 공유해보고, 이후의 일상을 가늠해보는 행사였다. 최근 9년 만의 장편소설 『작별인사』로 돌아온 김영하는 무한한 종이책의 가치에 대해, 은희경은 올해 초 출간한 뉴욕 배경 연작소설 『장미의 이름은 장미』에 대해 강연했다.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을 수상한 그림책 작가 이수지는 나이, 성별, 언어의 장벽 없이 누구에게나 쉽게 다가가는 그림책을 주제로, 부커상 수상 소설가 한강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에세이 『상관없는 거 아닌가?』를 쓴 가수 장기하는 책에 담아낸 일상다반사에 대한 생각과 감정, ‘나’답게 살기 위한 노력들에 대한 북토크를 진행했다.
주제 세미나 ‘반걸음 뒤에서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기’(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각 분야별 전문가들이 참여한 ‘주제 세미나’에서는 기후 변화, 사회 위기, 지속 가능한 개인의 삶 등 우리의 다음 페이지를 위한 ‘반걸음’을 사유하는 시간이 마련됐다.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박정재 교수, 주식회사 이노마드의 박혜린 대표이사, 주식회사 요크의 장성은 대표는 기후 위기 시대, 큰 변화를 이끌어내는 힘은 개인의 작은 움직임으로부터 시작됨을 알려준 우리 주변의 활동을 소개했다. 영화평론가 강유정과 뉴닉의 김소연 대표, 사회학자 박권일은 능력주의, 조직문화 등 갈등과 양극화 속에 놓인 한국 사회의 문화를 비판적으로 돌아봤다. 알맹상점의 고금숙 공동대표, 서스테이너블 해빗의 유동주 대표, 위미트의 안현석 대표는 지속 가능성의 의미를 되짚어보고 개인이 할 수 있는 역할을 제안했다.
주제 전시 ‘지금 시작하는 반걸음’(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주제 전시 ‘지금 시작하는 반걸음’에서는 실제 책을 통해 ‘반걸음’의 가치를 살펴볼 수 있었다. 도서전 측은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을 몰고 온 마구잡이 개발과 그로 인한 기후변화를 되돌릴” “심화되는 불평등을 평평하게 만들려는 노력”으로서 반걸음을 내딛자고 제안하며 ‘지금 시작하는 반걸음’이라는 600권 분량의 북큐레이션을 선보였다. 불평등, 다양성, 청소년, 청년, 교육, 일과 노동, 기술과 인간, 문화, 인권, 인종, 난민, 차별, 혐오, 젠더, 장애, 질병, 기후, 환경 등의 메시지를 담은 책들이 주제별로 전시됐다. 이 공간에서는 유통, 식품, 패션, 코스메틱, 미디어, 에너지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상의 고정관념을 깨고 용기 있는 ‘반걸음’을 뗀 10개 브랜드(그린오큐파이, 뉴닉, 다시입다연구소, 어글리어스 마켓, 요크, 이노마드, 위미트, 플라스틱 방앗간, 119REO, TOUN28)도 함께 소개됐다.
아카이브 전시 ‘책 이후의 책’(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국내의 디지털 책 문화를 조망한 아카이브 전시 ‘책 이후의 책’에서는 디지털 기술이 지난 50여 년간 책을 읽는 공간, 책을 쓰는 저자, 책을 읽는 독자에게 가져온 변화를 5개 섹션으로 소개했다. 오디오북의 시초라 할 수 있는 카세트테이프, 영화화된 웹소설 등 책의 형태뿐만 아니라 책을 둘러싼 관계와 실천까지 바꿔놓은 디지털 기술에 따른 변화 양상을 한눈에 볼 수 있는 전시였다.
기획 전시 ‘BBDK -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기획 전시 ‘BBDK(Best Book Design from Republic of Korea) -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에서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공모를 통해 선정된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30종을 한자리에 선보였다. 2020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의 최고상인 골든레터상을 수상한 『FEUILLES(푀유)』를 포함, 저마다의 아름다움을 가진 다채로운 디자인의 책들을 어른 키를 훌쩍 넘는 크기의 모형으로 만들어 설치함으로써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책들 사이로 거니는 경험을 선사했다. 도서전 개막일에는 2022년 ‘한국에서 가장 아름다운 책’ 시상식이 열리기도 했다. 단순히 내용을 담는 매체가 아닌, 독립된 사물로서 책의 새로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는 전시였다.
(좌) 후안 카를로스 카이사 로세로 주한 콜롬비아 대사가 개막식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이번 도서전에는 콜롬비아가 한국과의 수교 60주년을 기념해 주빈국으로 참가했다. 주한 콜롬비아 대사와 콜롬비아 문화부 차관이 개막식을 찾았으며, 로물로 부스토스, 미겔 로차, 산티아고 감보아 등 콜롬비아를 대표하는 작가들이 각종 행사를 통해 독자들을 만났다. 콜롬비아관에서는 ‘콜롬비아: 창의적이고 다채로운 형제의 나라’라는 주제로 콜롬비아 원서와 한국어로 번역된 책들을 소개하고 콜롬비아의 고전 문학, 오늘날의 콜롬비아, 콜롬비아와 한국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다. 한국과 콜롬비아는 서울국제도서전과 보고타국제도서전 개최 시기에 맞춰 각 나라의 뛰어난 작품들을 엮은 앤솔러지의 교차 출간 프로젝트를 진행했는데, 이번 도서전에서는 사회평론 출판사를 통해 출간된 콜롬비아 시선집 『우리가 노래했던 바람』과 소설선집 『살아내기 위한 수많은 삶』이 공개됐으며 이에 대한 북토크도 진행됐다.
해외 작가 프로그램 - 에르베 르 텔리에·정지돈, 메리 노리스, 산티아고 감보아·정유정(출처: 대한출판문화협회)
이외에도 강연, 세미나, 대담 등 다양한 형태의 행사가 열렸는데, 특히 쉽게 만날 수 없는 해외 작가들과의 만남이 큰 호응을 얻었다. 프랑스 작가 에르베 르 텔리에와 소설가 정지돈은 에르베 르 텔리에의 공쿠르상 수상작 『아노말리』를 중심으로 OTT 시대에 소설 장르가 갖는 영향력에 대해 이야기했고, 미국 주간지 〈뉴요커〉에서 25년간 교열을 맡았던 메리 노리스 작가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글을 다루는 일에 관해 이야기했다. 소설가 정유정과 콜롬비아 작가 산티아고 감보아는 국경을 넘어 범지구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소설의 힘을 논했다.
책과 부스 둘러보기
도서전에서 처음으로 공개된 특별한 책들로는 신간 ‘여름, 첫 책’ 10종과 리커버 도서 ‘다시, 이 책’ 10종, 그리고 도서전 기념 한정판 도서인 『One Small Step』이 있었다. 각 도서를 펴낸 출판사 부스에서는 사인회, 작가와의 만남 등 관련 이벤트를 추가로 진행하기도 했다. 도서전 기념 한정판 도서 『One Small Step』에는 김복희·김소연·문태준·오은·주민현 시인과 김연수·김이설·이승우·조경란·편혜영 소설가가 참여해 ‘반걸음’을 키워드로 한 작품을 선보였다.
출판사들은 오랜만에 정상 규모를 되찾은 도서전에 더욱 심혈을 기울인 듯했다. 문학동네 부스는 시인선과 세계문학전집으로 벽면을 가득 채워 시선을 사로잡았고 ‘문동이의 금쪽상담소’ 책 처방, ‘문학동네 인생 네 컷’ 포토부스 등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했다. 민음사 부스는 밝은 노란색으로 부스를 꾸미고, 부스 한쪽에 미니 강연장을 만들어 독자들과 친근하게 소통하려는 노력이 엿보였다. 마음산책 부스는 우드 톤의 책꽂이와 LP 플레이어 등 독립서점을 연상케 하는 감성적인 인테리어로 눈길을 끌었다.
문학동네 부스(출처: 문학동네), 민음사 부스(출처: 민음사), 마음산책 부스(출처: 마음산책)
출판사들에 도서전은 어떤 의미일까. 올해 처음으로 도서전에 참가한 출판사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지난해 설립한 출판사를 홍보하는 차원에서 도서전에 참가했다는 가위바위보 출판사의 김은중 대표는 “‘필사 책’을 테마로 읽기만 하는 책이 아닌 쓰면서 경험할 수 있는 책을 선보였더니 (독자들이) 새롭다는 반응을 들려줬다. 독자들과 대면하는 자체만으로도 새로운 영감을 받았다”며, “판매도 저희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이루어졌다”고 덧붙였다.
가위바위보 부스(출처: 가위바위보), 야옹서가 부스(출처: 야옹서가)
고양이 전문 출판사 야옹서가의 고경원 대표는 “도서전에 참가하려면 부스비 등 비용이 발생하다 보니 소규모 출판사로서는 부담스러운 측면이 있었는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 출판지식창업보육센터에서 입주 기업을 대상으로 비용 일부를 지원해 참여하게 됐다”고 밝혔다. 오프라인 행사는 오랜만이라는 그는 “여전히 책에 대한 갈망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는 걸 확인할 수 있었던 기회였다. 출판사를 알릴 목적으로 참가했는데, 매출도 놀라울 정도로 많이 나와서 ‘진작 참가했어야 했나’라는 생각도 들었다”며 웃었다.
김혜경 독서신문 기자 출판 전문 기자. 출판계 트렌드에 관심이 많고, 알려지지 않은 좋은 책을 소개하는 일을 가장 큰 보람으로 생각한다. 책 한 권을 만들기 위해 치열하게 분투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더 많은 독자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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