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33 2022. 06.
새 정부의 출판 정책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이민우(뉴스페이퍼 편집장, 한국출판학회 홍보이사)
2022. 06.
2022년 3월 9일 윤석열 당선자가 제20대 대통령으로 선출됐다. 2위를 한 이재명 후보와 단 24만 표 차이로 역대 최저 표 차였다. 이렇게 적은 표 차가 난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두 후보의 정책에 큰 차이가 없었다는 것이 한 이유다.
예시로 두 캠프의 부동산 공급 정책이 있다. 윤석열 대통령은 당시 부동산 공급 정책으로 “임기 5년 내 250만 호 신규 주택을 공급하겠다.”라고 발표했다. 이재명 후보 역시 “전국 250만 호 공급”을 약속했는데 신규 주택의 공급 숫자까지도 같았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까닭은 국민 다수가 원하거나 지지하는 정책이 같기 때문이다.
하지만 편차가 큰 공약들도 있었다. 여성가족부 폐지와 원전 건설 등 이슈가 대표적이다. 페미니즘 문제와 환경주의에 대한 입장은 각 정당의 이데올로기나 사상을 대표했다.
그런 가운데 두 캠프에서 차이를 보인 분야 중 하나가 바로 출판 정책이다. 뉴스페이퍼는 지난 3월 두 대선후보에게 출판 정책에 대한 질문지를 보냈다. 국민의힘은 원희룡 윤석열 캠프 정책총괄본부장, 더불어민주당은 김수영 문화강국위원회 부위원장이 책임 답변했다.
질문 내용은 도서정가제, 웹툰·웹소설 고유식별 체계, 출판사 허가 없는 작가의 자율 판매량 확인 등 첨예하게 논란이 되거나 이슈가 있는 출판 정책들이었다.
도서정가제에서 디지털 매체를 제외하고 완화 쪽에 방점을 찍은 윤석열 캠프의 정책들은 웹소설·웹툰계의 입장을 포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얼핏 각기 다른 3개의 정책에 대해 답변한 것처럼 보이는 저 답변은 2019년 2월에 있었던 “웹소설 전자출판물 정가표시 의무화 안내” 논란과 맞닿아 있다.
“웹소설 전자출판물 정가표시 의무화 안내”는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출판유통심의위원회가 “카카오페이지와 네이버시리즈 등을 포함한 전자책 유통사를 대상으로 판매되는 웹소설, 웹툰의 편마다 가격표시 및 ISBN 표시를 하도록” 의결한 사항을 대한출판문화협회가 회원사를 대상으로 공지한 것이다. 정가를 미표기할 경우 유통사와 출판사에 100만 원의 과태료를 부과할 것이라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일각에서는 편당 판매되는 콘텐츠에 매번 가격표시 및 ISBN 표시를 해야 한다는 것에 대해 매우 소모적이라는 지적도 있었으며 웹툰협회는 “현행 법제도하에서 출판물이 간행되면 ISBN을 부여받고 도서정가제 적용을 받는다. 즉, ISBN 등록과 도서정가제는 연동되어 있다.”며 “주무부처에선 플랫폼이 기존에 ISBN을 등록한 작품에 한해 도서정가제를 준수하라고 촉구하는 것뿐이라지만 벌금 운운하는 강압적 태도도 문제”라고 성명서를 발표한 바 있다.
윤석열 캠프는 디지털 기술의 발전이 가져온 이러한 출판 생태계의 변화를 수용하려는 의지를 보였다.
당시 윤석열 캠프는 “웹툰·웹소설은 현행법상 출판물이지만 회차별 연재형이라는 특성에서 기존 출판물과 큰 차이점을 지닙니다. 출판물의 형태와 유통 방식이 다름에도 웹툰·웹소설에 기존 방식 ISBN을 부여한 것은 전자 콘텐츠라는 빠르게 성장한 산업에 대한 제도적 준비가 미흡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특히 “전자책, 웹소설·웹툰에 대해 도서정가제를 일률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습니다. 기존 출판물과의 출판 형태 및 유통 환경이 다르며 디지털 시대 변화에 따른 출판시장의 흐름을 고려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고유식별 번호를 따로 내주겠다고 말했다.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웹툰협회는 “음악UCI(음원표준식별체계)처럼 웹툰 고유의 국제표준식별체계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으며, 올해 2월 17일 열린 ‘차기 정부 웹툰 산업 정책토론회’에 참여한 서범강 한국웹툰산업협회 회장은 “현재 웹툰은 기존의 도서식별체계(ISBN)로 분류되고 있는데, 이는 디지털 콘텐츠로서는 성격이 맞지 않는다”고 밝히며 “더 늦기 전에 웹툰만의 고유한 분류식별체계를 통해 자리를 잡아야 하는 시점”이라 주장했다. 또한 웹툰, 웹소설 단체는 기존 출판사들이 누렸던 부가가치세 면제 역시 웹툰·웹소설 업계에도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이재명 캠프는 기존 출판사와 같은 부가가치세 면제에 대해 부정적이었으나 윤석열 캠프는 부가가치세 면제에도 동의했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2020년 출판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2018년 2,702억 원이었던 전자책유통사 매출액이 2019년에는 4,198억 원으로 55.4%라는 큰 증가폭을 보였다. 대한출판문화협회의 ‘2020 출판시장통계 보고서’에 따르면 주요 전자책 플랫폼 9개사의 2020년 총매출액은 7,492억 원으로 전년 대비 33.9%나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생태계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제도의 변화를 가져온다. 윤석열 캠프는 디지털 매체 환경에 더 친화적인 입장을 밝히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도적 개선 역시 생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근 책의 발행일로부터 18개월이 지난 도서의 정가 판매 의무를 면제하는 도서정가제 개정안(윤영덕 의원 대표 발의)이 발의됐다. 하지만 곧 서점계의 반발로 취소가 됐다. 하나의 해프닝이었지만 당시 이 법을 발의한 의원들이 민주당이었다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권과 계파에 상관없이 시대의 변화로 콘텐츠 소비 생태계가 변하고 있다. 디지털 매체로 콘텐츠들이 소비되면서 가격 유연성을 가지게 됐다. OTT 등 콘텐츠를 자유롭게 소비하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기존의 시스템은 한계에 봉착했다. 우리는 책의 정의부터 다시 해야 할 상황에 놓여 있다. 출판사는 기존과 다르게 일종의 소속사로서의 역할을 요구받고 있다. 또한 콘텐츠를 담는 그릇이 비단 종이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해지고 있는 가운데 여야 모두 국민들의 제도적 변화의 요구 앞에 기민하게 움직이고 있는 실정이다.
도서정가제는 3년 단위의 일몰법이다. 2023년이 되면 다시 도서정가제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의 첫 도서정가제 논의다. 윤석열 정부는 개선을 약속했고, 민주당 역시 국민들의 요구와 출판계 사이에서 고민을 하고 있다.
국민들의 요구가 뚜렷한 지금, 어쩌면 윤석열 정부와 출판계 그리고 독자들에게 필요한 것은 출판계 소수의 합의체가 아니라 공개적이고 모두를 설득할 수 있는 토론의 장일 것이다.
* 2022. 6. 13. 17:00에 원고 중 일부 내용을 바로잡아 수정 게재하였음을 알려드립니다.
이민우(뉴스페이퍼 편집장, 한국출판학회 홍보이사) 문학 전문 언론사 뉴스페이퍼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뉴스페이퍼는 신경숙 사태 당시 문학계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나온 문학청년들이 만든 언론사입니다. 문학계 부조리와 문제 그리고 출판계와 관련된 기사를 전문으로 합니다. “문학분야 불공정 관행 개선을 위한 실태조사”, “문화예술위 최저원고료 제도”, “독립 문예지 속성과 모델 연구” 등 출판, 문학계 연구도 함께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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