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29  2022. 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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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 서점의 가치 찾기

 

 

 

이정은(쩜오책방-발전소책방5협동조합 조합원)

 

2022. 02.


 

파주 교하 문발동 골목에 위치한 쩜오책방은 전국의 지역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책이 좋아서 함께 읽는 동네 사람들이 만들었다. 쩜오책방은 파주 교하에서의 삶을 고민하고, 서울에 살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이 아닌 ‘교하’라는 장소와 ‘지금’이라는 시간에 방점을 둔 사람들이 주축이 되어 협동조합 형식으로 운영된다. 조합원이 운영한다고 하지만 지역 주민의 제안에 따라 함께 읽기, 지역의 공방 체험 등 책과 직·간접적으로 이어지는 독서 문화 사업을 하고 있다. 이웃과 함께 마을 잡지를 만들고 지역 출판사의 책을 이웃이 낭독하는 연계 프로그램 등을 운영한다. 그러다 보니 대형 서점의 매대나 인터넷 서점의 배너에서 만날 수 있는 책보다는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 궁금해 하는 분야의 책을 주로 입고한다. 어쩌다 베스트셀러를 찾는 손님이 오면 늘 죄송하다고 답해야 하는 책방지기들이지만 책방에 들인 책을 정성을 다해 소개할 때에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한다.

 

작은 지역 서점에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모두 갖춰 놓기란 불가능하다. 따라서 책방지기는 대형 출판사에서 나오는 유명 작가의 책뿐만 아니라 소형 출판사에서 나오는 다양한 분야의 책들 사이에서 어떤 것을 입고할 것인가를 늘 고민한다. 지역 서점의 좁은 공간과 열악한 경제력을 고려했을 때 무턱대고 마구 들여 놓을 수는 없기 때문에 입고할 도서, 도매가로 인한 고민은 클 수밖에 없다. 지역 서점을 애용하는 이웃들은 꼭 필요한 책을 직접 주문하기도 하고, 관심 분야의 책을 추천받기도 하고, 책방지기들이 입고한 책 중에서 눈에 띄는 것을 산다. 매대에서 자신이 원하던 책을 발견하고 좋아하는 손님의 미소야말로 책방지기가 내일도 책방 문을 열 수 있게 하는 큰 힘이다. 그렇게 지역 서점은 책방지기와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들어가는 책 생태계의 중요한 구성원이 된다.

 

쩜오책방과 같이 지역에서 작은 규모로 운영되는 지역 서점은 파는 책과 운영 방식이 제각각이다. 그만큼 다양한 책이 여러 가지 방식으로 독자를 찾아간다. 지역 서점은 책을 읽은 후 토론을 하거나, 함께 소리 내어 읽거나, 책과 관련된 문화·예술 활동을 하는 등 오감으로 책과 이웃을 만나고 서로에게 책이 되어주는 공간이다. 서점을 운영한다는 것은 단순히 책이라는 물건을 파는 상행위에 그치지 않고 지역의 독서 생태계를 구성하는 기본 단위를 지켜나가는 것이다. 각자의 판단 기준은 다르겠지만 지역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독서 생태계의 다양성을 유지한다는 자부심으로 오늘도 책방 문을 연다.

 

쩜오책방에서 운영 중인 지역 서점의 색깔을 맛볼 수 있는 큐레이션


쩜오책방에서 운영 중인 지역 서점의 색깔을 맛볼 수 있는 큐레이션

 

2017년 서적 도매상인 송인의 1차 부도가 발생했다. 대형 오프라인 서점이나 온라인 서점과는 다르게 서적 도매상에 의존하여 책을 공급받던 지역 서점은 운영이 더욱 힘들어졌다. 지역 서점은 출판사와의 직거래도 쉽지 않고 도매상 거래도 인터넷 서점과의 공급률 차이가 커서 도서 판매에 따른 수익도 적다. 도매상도 종수는 다양하고 주문 권수는 적은 지역 서점과의 거래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한 상황에서 겨우 버텨가던 지역 서점에게 송인의 부도는 더 이상의 서점 유지를 어렵게 만드는 심각한 문제였다. 새로운 출판물과 직접 만나고 책을 통한 다양한 문화 활동을 펼치는 지역 서점이 고사 위기에 빠지자 경기도에서는 지역 서점 활성화 및 지원에 관한 조례를 만들어 적극적인 지역 서점 살리기 활동을 시작하였다. 지역의 공공기관이 지역 서점을 통해 도서를 구매하고 다양한 책 생태계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경기도 지역서점위원회가 만들어졌고, 경기도 인증서점 제도를 실시하고 있다. 경기도 인증서점 제도는 각각의 이해관계 등 많은 문제점을 하나씩 풀어나가면서 지역민의 문화적 삶의 질을 높여주는 지역 서점의 역할을 지원하여 팬데믹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내 지역 서점의 수는 늘고 있다. 각 지자체에서도 지역 서점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활발한 지원 사업을 펼치고 있다.

 

2019년 도서정가제 개악을 막기 위한 여러 단체의 적극적 저지 운동에 이어, 도종환 의원(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의 발의로 지역서점활성화안을 포함한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이 개정되었다. 2021년에 의결되어 2022년 2월 11일 시행 예정인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도서정가제에 대한 제도 개선을 위한 법정 정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의 지역 서점 활성화 정책 수립 및 지원 규정이다. 지금까지 지방자치단체에서 실시·운영하던 지역 서점 활성화 방안들을 법률로 규정하여 보다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위한 근간을 만든 것이다. 법률로 정해진 만큼 지방자치단체가 보다 적극적으로 문화사랑방의 역할을 하는 지역 서점을 보호하고 지원할 수 있을 것이다. 출판문화산업진흥법 개정안에 따르면 지역 서점의 요건은 아래와 같다.

 

1. 관할 지역에 주소와 매장을 두고 불특정 다수가 이용할 수 있을 것.
2. 「부가가치세법」 제8조에 따라 서적 소매업으로 사업자등록을 하였을 것.
3. 「중소기업기본법」 제2조에 따른 중소기업자가 경영할 것.

 

개정안에 따르면 지역 서점은 불특정 다수의 지역민이 자유롭게 방문할 수 있는 매장을 둔 서적 소매업으로 중소기업자가 경영해야 한다. 따라서 서적 소매업으로 사업자등록만을 한 납품 전문 업체는 인정되지 않는다. 그리고 지역 서점은 대형 서점이나 인터넷 서점과는 다른 중소기업 소상공인이다. 개정안은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서점 활성화에 필요한 사항을 조례로 정할 수 있고, 관할 지역의 도서관이 도서를 구매하는 경우 지역 서점을 이용하도록 독려해야 한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정할 수 있고’, ‘독려해야 한다’이다. 개정안을 만들고 통과시키기까지 고생한 담당 공무원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아쉬움은 남는다. 2020년 이후로 경기도에서는 기존 납품 전문 업체와 전집류 전문 업체 등의 반발로 지역 서점에서 도서를 구매하지 않는 지방자치단체가 늘어나고 있다. 작년 경기도 P시에서는 공무원이 도서관장과 지역 서점 대표를 고발했다. 기존 납품 업체가 아닌 ‘능력 없는’ 지역 서점에서 납품을 진행한 것이 뇌물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고발한 공무원은 경기도 지역 서점 인증 제도에 의한 납품임을 알면서도 고발을 진행했고, 무혐의 불송치가 결정된 후에도 같은 주장을 반복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2021년 코로나-19로 인한 경영 위기 업종에서 지역 서점을 제외했다. 그 이유가 교보문고나 예스24, 알라딘과 같은 온라인 업종과 같은 대기업을 포함한 결과라고 한다. 개정안이나 2019년의 생계형 적합 업종 지정에도 불구하고 중소벤처기업부는 고사 위기의 지역 서점과 대기업을 구분하지 않고 매출 평균을 낸 것이다. 이렇듯 개정안이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부처에 따른, 지역자치단체에 따른 고무줄 잣대로 지역 서점은 매번 새로운 위기를 맞이한다. 법안의 모호함이 이러한 혼란을 야기한다. 또한 모호한 개정안에 따른 시끄러움은 지역 서점 활성화 사업을 하는 담당 공무원의 의지를 박탈한다. 책 생태계라는 커다란 그물망 안에서 서로의 역할을 이해하고 상생하려는 의지가 사라지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일이다.

 

지역 서점 안에서도 그 형태와 운영 방식은 다양하다. 그러한 다양성이 책 생태계를 더욱 풍요롭게 한다. 이런 서점, 저런 서점으로 나뉘고 갈리는 것은 다양성을 훼손하는 일이다. 지역에서 서점을 문 닫지 않기 위해 십수 년간 고생한 학교 앞 서점 대표나, 다른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계를 이어나가면서도 자신이 파는 책에 대한 자부심만큼은 포기 못하는 서점 대표 모두 존중받아야 한다. 공모 사업에 당선되면 커피 한 잔 사 먹을 돈을 못 받아도 자신의 기획력을 갈아 넣으며 문화 사업을 하는 서점과 당장의 생활비를 위해 문화 사업 지원은 꿈도 못 꾸는 서점으로 나뉘지 않기를 바란다. 각 지역마다 다양한 서점 단체가 활동하고 있다. 지역을 기반으로 독서 문화 사업을 이끌어가는 단체의 수익도 소중하지만, 단체에 소속되지 않아 불이익을 보는 서점이 생기는 그들만의 사업이 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것이 지역 서점 인증 제도의 목적이고, 다양한 책이 전시되고 책을 기반으로 하는 문화 거점으로서의 지역 서점을 살리기 위한 개정안의 목표이어야 하지 않을까. 출판문화산업진흥법의 개정안이 보다 확실하게 지역 서점 활성화의 기틀을 마련해 주기를 바란다. 책 생태계 관련 업종의 실무자들이 모여서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고, 자신의 뜻을 주장하는 토론의 자리도 필요하겠다. 빠른 결론을 내리는 자리가 아니라 시간이 걸리더라도 서로 다른 생각을 공유하는 과정 자체 말이다.

 

작년부터 문화체육관광부의 책의 해 추진단으로 활동하면서 배운 것이 많다. 추진단에 참여한 각 단체가 서로의 입장을 공유하고, 힘을 모을 때와 일을 나눌 때의 유기적인 움직임에서 함께한다는 것의 힘을 느꼈다. 틀림이 아닌 다름을 이해하는 것에서 시작하여 나눌 것들에 대해 머리를 맞대는 과정이 즐거웠다. 지방자치단체나 각 공공기관에는 수많은 위원회가 있다. 형식적이고 권위적인 위원회도 아직 많겠지만 다름과 상생을 고민하는 곳도 늘어가고 있다. 내가 사는 파주시에서는 2020년 도서관과 서점 대표들이 한자리에 모여 도서 납품에 대한 논의를 했었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한 번밖에 모이지 못해 아쉬웠다. 그렇지만 서로 다른 입장을 아는 것만으로도 한 걸음 나아간 것이 아니겠는가. 각 지방자치단체에서도 책 생태계의 그물망을 이루는 도서관, 지역 출판사, 서점, 독자 등이 모여 고민하고, 다투고, 상생하는 자리가 만들어지면 좋겠다. 서점의 노하우를 지역 선배로부터 배우고, 문화 기획의 여유가 없는 서점에도 함께 사업을 공유하면서 함께 살아남으면 좋겠다.

 

쩜오책방 조합원들과 함께 한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퍼포먼스


쩜오책방 조합원들과 함께 한 도서정가제 개악 반대 퍼포먼스

 

도서정가제도 지역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기본 장치이다. 이번 개정안에 도서정가제의 규제 강화·완화 내용이 포함되어 있으나 2020년 도서정가제 개악 저지 운동을 하면서 제기된 문제점을 해결하지는 못했다. 우리는 앞으로도 3년마다 진통을 겪어야 한다. 2020년 문화체육관광부는 도서정가제 타당성을 검토한다는 법률을 근거로 1년간 민관협의체를 열어 현행 도서정가제 유지를 근간으로 하는 개선안에 합의하고도 일방적으로 입장을 번복했다. 민관이 함께 1년 동안 합의안을 만들어도 장관이 뒤집으라면 뒤집어 지는 것이 도서정가제다. 책이 단순한 상품이 아닌 공공문화재임에도 불구하고 문화를 유지·발전시켜야 할 문화체육관광부가 합의안을 무시한 일은 다시는 일어나지 말아야 한다. 도서정가제에 관한 다양한 의견을 모아야 할 것이고, 합의를 도출한 것은 지켜져야 하며, 3년마다 벌어지는 불필요한 다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다.

 

또한 출판물의 유통 구조 개혁도 시급하다. 지난 1월 16일 문화체육관광부의 “2021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에 따르면 최근 1년(2020년 9월~2021년 8월)간 성인의 연간 평균 종합독서량은 4.5권으로 나왔다. 성인이 한 달에 책 한 권도 안 읽는 대한민국에서 책을 만들고, 책을 파는 출판사와 지역 서점이 상생하기 위해서는 안정적인 도서 유통 시스템이 필요하다. 인터넷 서점의 2021년 수익은 늘고 오프라인 서점의 판매율이 급감하는 상황에서 지역 서점은 도매 입고율도 인터넷 서점보다 높고, 아예 도매상에서 구하지 못하는 책도 많다. 이러한 유통 시스템을 개선하지 않고는 지역 서점의 안정화가 어렵다. 작은 출판사와도 거래가 잘 되어야 나름의 색깔을 유지하는 지역 서점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 시대에도 지역 서점은 어디에서는 폐업을 하면서도 다른 어디에서는 새롭게 문을 연다.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해 문화 활동을 거의 못하는 상황이지만, 그러면서도 여전히 지역의 문화·예술 사랑방 역할에 힘을 쓰고 있다. 지역 서점은 책 생태계의 말초혈관이다. 출판의 종 다양성을 위한 기초 단위이다. 책을 권하고,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누고, 서로에게 책이 되어 주는 오감만족의 공유 공간이다. 앞으로도 지역 서점이 지역의 도서관과 손을 잡고, 지역의 출판사와 함께 작가를 만나고, 세상을 만나는 플랫폼이 되기를 바란다. 지역 서점만이 아닌, 저자와 출판사 등 ‘책’과 관련된 모든 이들이 함께 고민하고 생각을 모을 시간을 기다린다.

이정은

 

이정은(쩜오책방-발전소책방5협동조합 조합원)

동네에서는 ‘이마담’으로 불린다. 아직도 세상에 관심거리가 너무 많아 피곤하다. 동생을 따라 유럽에 자전거 여행을 가겠다고 나이 마흔 넘어 자전거를 배웠다. 유럽 4개국 1,800km를 달린 무한체력으로 책도 냈지만 남은 에너지는 슬슬 바닥을 보인다. 이제는 교하 문발동의 골목 어딘가에서 새로운 놀이를 작당하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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