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탐구

Vol.53  2024.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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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노동이 더 좋은 책을 만듭니다

 

 

 

장한돌(공인노무사)

 

2024. 5+6.


 

출판계 노동환경의 현주소

 

필자는 지난 2020년까지 출판사 편집자로 근무한 경력이 있다. 출판계에서 몸담아 일해 본 경력자로서 출판계 노동환경을 비교적 잘 아는 노무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다만 시대가 빠르게 변화한 만큼 필자가 출판계를 떠나온 시간 동안의 변화를 조사하고자 출판계 전 동료들에게 근로 현황을 물으니, 돌아온 답변은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였다.

 

예술인 고용보험이 의무화된 이후로, 출판업계에도 프리랜서의 노동 조건 보호 등 노동환경에 관한 인식이 증가하고 있다. 작년 12월에는 출판 노동자들의 제보로 대형출판사 몇몇이 근로감독과 시정 조치를 받았으며, 지난 3월에는 출판노조협의회가 고용노동부에 서울과 파주 출판사들을 상대로 전면 근로감독 실시를 촉구하는 집회를 가진 바 있지만 아직 노동환경 개선 필요 인식에 비해 혁신적인 움직임이 미미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2024년에 발간된 「출판 외주노동자 근로환경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출판 외주노동자에 대한 최근 연구는 2013년 한국노동보건안전연구소에서 수행한 「외주출판노동자 노동실태 연구」 보고서가 유일하다. 출판 근로환경 현황조차 명확히 파악되지 못한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출판계의 노동 현황에 있어 내외 전반의 문제점을 도출하고 그 개선 방안에 대하여 제시하고자 한다.

 

출판사 내외부 환경의 문제점

 

출판사 내외부 근로환경의 문제점을 살피려면 출판업계 구조적 문제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출판사는 21세기 이후 삼중고에 시달리고 있다. ① 매력적인 매체들이 새롭게 생겨나면서 상대적으로 도서 시장이 위축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전 세계적인 추세이기도 하지만, 한국의 디지털 미디어의 빠른 변화와 발전으로 더욱 심하게 위축되고 있다. ② 출판업과 관련된 구직 시장의 매력도가 감소하고 있다는 점이다. 출판계에 몸담고자 하는 신입사원이 줄어들며, 인재난이 계속되고 있다. ③ 출판계 진입을 망설이는 이유로 이른바 ‘박봉’이 있다. 이 때문에 근속연수가 낮은 편이지만, 출판업은 책을 만드는 사람의 숙련도가 핵심인 시장이라는 점에서 모순이 발생한다. 즉, 근로자를 고용해도 그 근로자들은 낮은 연봉에 퇴사를 택하고, 결국 저숙련의 반복으로 높은 품질의 서적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상대적으로 매체의 매력을 올릴 수 없고, 상대적으로 초급 수준의 인재가 유입되고, 설사 숙련된 인재가 들어와도 금방 퇴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출판계는 직원 5인 미만 사업장이 전체 70%를 차지할 만큼 외주 의존도가 높다. 인재풀(Pool)을 만드는 노력은 계속됐으나 인재를 구하기란 상당히 어려운 일이다. 집필, 대필, 번역, 삽화, 기획, 편집, 디자인, 조판 등 출판 내 세부 직무 중 예술로 인식되는 삽화 등 일부 직무를 제외하고는 출판사에서 포트폴리오를 객관적으로 검증할 수 있는 도구가 없다. 결국 지원자의 직무 능력 또는 성과는 과거에 함께 일한 적이 있는 동료로부터 확인받고 검증받는 레퍼런스 체크(Reference Check)에 의존하여 인재를 영입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수행한 「출판 외주노동자 근로환경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외주 일감 획득 경로 역시 45.3%가 인맥을 통한 것으로 나타났고, 28.8%가 구인구직 사이트에서 이뤄졌다. 출판사와 외주노동자 간 거래를 중개하는 플랫폼 사용 경험은 11.5%로 인력 수급이 비교적 폐쇄적인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신입이 진입하기 어려운 구조임과 동시에 직무 능력 외적인 부분에서 검증을 받아야 하는 부담을 가지고 업무를 수행해야 하는 위험이 발생한다.

 

외부에서 출판업계에 진입하고자 하는 인재들은 결국 ‘출판사’라는 경로를 거쳐 가야 한다는 것이 근본적인 문제점이다. 1인 출판이 예전에 비해 활성화되었다고는 하나 ‘산업’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결국 제도권 내 출판사 등에서 종합적인 역량을 기르는 경험이 필요하다. 문제는 출판사 내부에서조차 이러한 인재 육성에 대한 체계적인 노하우 또는 솔루션이 없다는 것이다. 내부 인재 육성조차 어려워하는 현실에서 외부 인재를 체계적으로 구성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출판사 내외 관계의 문제점

 

조판소, 마케팅 대행, 번역 회사, 에이전시 등 소위 중간업체가 늘어나고 있다. 신규 창업뿐만 아니라 자체 조판, 출력, 인쇄, 디자인 역량을 갖춘 출판사들도 내부 역량을 자회사 또는 협력업체로 분리하고 있다. 기존 노동자들은 이렇게 분리되는 과정에서 고용 불안을 겪게 된다. 「출판 외주노동자 근로환경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 따르면 중간업체를 이용 경험이 있는 출판관계자 43.6% 중 77.8%는 중간업체와 전속되어 있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용 안정성과는 거리가 먼 것을 알 수 있다.

 

외주노동자의 처우에서도 기존 문제점이 고쳐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외주 계약에서 저작권은 모두 출판사에 귀속되는데, 표준계약서조차 없는 상황에서 이에 관한 명확한 고지가 이루어지지 않아 저작권에 관한 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또, 단가 기준이 없어 외주노동자들은 대부분 출판사에서 부르는 고료를 받게 된다. 폐쇄적인 기준 설정으로 인하여 고료가 10년째 정체되고 있는 경우도 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러한 업계의 문제점을 알고 있음에도 중간업체 또는 개인 프리랜서들은 ‘일이 끊길까 봐’ 전전긍긍하며 출판사가 제시하는 조건을 울며 겨자 먹기로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렇게 갑을 관계에 따른 힘의 우위가 명확한 상황에서 계약 내용조차 명확하지 않다 보니, 소위 “납품과 유지보수의 경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원고를 가필하는 것, 도안을 수정하는 것, 홍보 채널을 늘리는 것 등 계약 기간 내외로 발생하는 출판사의 요구가 어디까지 정당하고 어디부터 부당한 것인지에 대한 경계가 명확하지 않다. 실제로 이러한 계약 내의 “납품의무 미준수”와 “부당 유지보수 요구”에 관하여 민사소송까지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결론적으로, 출판계는 총체적인 인재 관리의 변화 없이 기존 도제식 인재 육성에 기대고 있으며, 이에 따른 노동환경도 큰 변화 없이 최저 기준인 법적 기준으로 맞추는 데에 급급하다. 이런 현실에 “책을 만드는 것을 원하는” 인재들이 업계를 외면하고 있고, 업계는 저숙련 노동에 기대다 보니 시장이 악화되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출판계 인력난과 근로환경의 문제점들을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법 이미지

 

 

출판계 노동환경 개선 방향

 

① 협회 주도의 노동환경 구축

 

외주노동자의 비중이 상당히 높은 출판계는 개별 출판사 위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그 과정에서 소프트웨어 프로그래머 업계를 눈여겨볼 만하다. 이 업계는 한국소프트웨어산업협회의 주도로 각종 법제도 연구 및 하도급분쟁조정 위원회를 별도 운영하며 업체 간 분쟁 또는 업체와 노동자 간 분쟁을 자체 조정한다. 또, 노동환경에 있어 통계법에 의해 노동자들의 적정 시장임금을 공개하고, 이를 통하여 노동자들이 적정 대가를 수령할 수 있도록 한다. 정부 수주사업의 인건비와 일반 사기업 간의 연봉 책정도 이 기준을 활용하고 있다. 이와 같이 임금 기준을 공개적으로 제시함으로써 출판계에서도 노동 시장의 임금 조건을 투명화할 수 있으며 이는 보다 공정한 기준으로 노동자들이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하고, 출판사에서도 인건비를 효과적으로 예측할 수 있게 한다.

 

또한 직무별로 요구되는 사항을 반영하여 표준근로계약서 및 표준외주계약서 등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 노동 계약의 정형화 및 정립을 통하여 노동자들이 자신의 업무 범위를 정확히 알고 업무 계획을 수립하여 효율적인 업무 수행을 할 수 있게 되고, 출판사 입장에서도 법적 이슈에서 벗어나 자유로이 저작물 또는 출판 기술을 활용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으로 노동환경에 대한 유연성을 적용할 필요가 있다. 출판계 상당수의 직무는 자기주도형이며, 엄격한 노동환경 관리·감독보다는 창의성과 유연함에 의한 인재 관리가 산출물에 도움이 된다. 그러나 여전히 상당수의 출판사 임원들은 직원이 ‘사무실’에서 할당하는 ‘근로 시간’을 요구하며, 심지어 프리랜서에게도 출퇴근을 강요하는 경우가 있다. 이러한 경직적인 노동환경을 적극적으로 완화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예를 들어, 표준적인 역량을 가진 편집자가 개별로 프로젝트 담당을 시작할 수 있는 연차는 평균 만 2~3년으로 본다. 이때까지는 직무연수의 측면에서 상근하되, 이후 직무평가 등 통과의례를 거쳐 공통 업무 및 회의 등을 수행할 주 2~3회 출근으로 완화하고 나머지 근로 시간은 재택근무 등으로 유연화할 수 있다.

 

② 기술 혁신에 대응하는 숙련인 육성

 

현재 업계의 인재 육성 시스템에 있어 산업 자체를 위협하는 것은 ‘인공지능(AI)’이다. 웬만한 교정·교열 및 번역은 AI가 대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간단하고 특별한 주문이 없는 삽화 등은 실제로 업계에서 빠르게 AI의 산출물로 대체되는 실정이고, 기획 및 디자인에서도 충분히 영감을 제공하는 도구로 활용되고 있다. 하지만 현재 AI 기술은 사용자가 관리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산출물을 제공하며, 산출물의 질은 사용자가 어떻게 명령문(prompt)을 제시하는지에 따라 천차만별로 달라진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산출물이 좋은 산출물인지 판단하는 것 역시 사용자의 역량에 달려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출판계는 이러한 기술 혁신에 대응하여 간단한 업무는 AI에게 맡기고, 복잡하거나 특별주문(order-made)을 요구하는 산출물 등은 그것을 판단하고 산출해 낼 수 있는 인재 육성을 통해 생산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존의 전통적인 직무에 관한 체계적인 정립이 필요하다. 조판 업계에서는 이미 경험한 일이다. 과거 활자조판 시대에서 전자조판 시대로 급격히 산업이 전환되면서 고연봉을 받던 활자조판 숙련인들은 시대의 흐름에 따라 사라졌지만, 활자조판 시대의 전통에 따른 원칙은 전자조판 시대로 넘어왔다. 교정·교열, 번역 직무에서도 이러한 원칙을 준수하여 AI를 반영하고 직무체계를 정립하는 것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③ 노동법 관련 제도의 꾸준한 개선

 

첫 번째로 개선되어야 할 것은 ‘사회보장 제도’이다. 현행 노동법은 「예술인 복지법」 및 「예술인의 지위와 권리의 보장에 관한 법률」(약칭: 예술인권리보장법)을 도입하고 있는데, ‘예술인’으로 포함되는 범위가 출판계에서는 상당히 미미한 영역이다. 삽화 및 도안, 집필 등 사회상규상 ‘예술’의 영역에 포함되는 직무에 한정하고, 창작·비평·기술지원(편집자 등)에서 문학 외 분야는 포함하지 않고 있다. 그마저도 4대 보험 중 고용보험만 월 50만 원 이상 임금을 수령하는 노동자에 한하여 의무가입일 뿐이고, 그 외 산재보험 등은 의무의 영역에서 벗어나 있다. 프리랜서 고용산재보험 의무 가입 제도가 시행되고는 있지만 일부 필수노동 업종을 포괄할 뿐 출판 관련 프리랜서까지는 그 범위가 확대되지 않았다.

 

이처럼 사회보장 제도를 확대하여 노동자들이 보다 안전하고 안녕한 환경에서 노동할 권리를 취득할 필요가 있다. 특히, 현행 프리랜서 고용산재보험 가입 범위를 확대하여 출판계 노동자들을 포괄할 필요가 있으며, 현행 예술인으로 분류되는 삽화, 집필 등의 경우에도 출판산업에 참여하는 것이므로 프리랜서 고용산재보험으로 포괄하는 것이 산업 내 일관성의 측면에서도 바람직하다.

 

두 번째로 개선되어야 할 것은 ‘임금채권보장 제도’이다. 프리랜서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이 ‘임금을 못 받는 것’이다. 월급제가 아닌 건별로 노임을 수령하는 프리랜서들의 입장에서 한 건의 노임이 날아가면 생계에 큰 타격이 있다. 그러나 영세출판사 또는 중간업체가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는 출판계에서 기업이 도산하는 경우, 프리랜서들의 노임은 직접 고용 근로자들이 보호받는 범위에서 벗어나 있다. 직접 고용 근로자들은 직전 월 임금 3개월, 직전 퇴직금 3년분에 대하여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국가에서 이를 대신 지급하는 대지급금 제도를 운영하고 있는데, 프리랜서들의 노임은 대지급금 제도에 포함되지 않는다.

 

대지급금의 예산은 「임금채권보장법」에 의하여 임금채권보장기금으로 운영되는데, 이 임금채권보장기금을 구성하는 임금채권보장기금 부담금은 사업주에게 받는 고용보험료에 포함되어 있다.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는 산재보험료를 내지 않지만, 프리랜서들은 사업주와 분담하여 산재보험료를 지불하고 현행 프리랜서 고용산재보험 의무 시행의 기반은 프리랜서들에게 징수하는 고용산재보험료에 있다. 임금채권보장 제도 역시 프리랜서가 사업주와 분담하여 예산을 확보하는 것으로 시행 가능하다고 보며, 장기적으로는 근로기준법상 근로자와 같이 산재보험료 및 임금채권보장기금 부담금 역시 사업주가 전담하여 부담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 사회보장 제도의 제정 취지에 부합할 것이다. 또한, 노동 조건, 불안정한 소득, 임금체불 및 미지급, 불공정 계약 관계 등 부당한 노동환경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도록 「출판 외주노동자 근로환경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에서 제시한 출판 외주 업무 표준계약서가 제정된다면, 앞서 언급한 문제점들을 모두 보호할 수 있을 것이다.

 

필자가 출판업에 처음 발을 들였던 15년 전부터 “출판계가 위기다.”라는 말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판계는 내외부 환경의 충격을 견디면서 전자책 서비스, 독서 플랫폼 등 다양한 방법을 모색하며 지금까지 이어오고 있다. 이제 디지털과 인공지능 시대가 코앞까지 다가온 시점에서, 기존 지류출판 시장의 확보와 새로운 매체로의 도약을 위해 출판계에는 양질의 인재 유입이 무엇보다도 절실해 보인다. 새로운 인재들이 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도록 출판계 노동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혁신이 필요하다.

 

장한돌

장한돌 공인노무사

서강대학교 수학과(학사) 및 동 대학 교육대학원 수학교육과(석사)를 졸업하고, ㈜천재교육, 대교그룹 등 교육출판 업계에서 편집자 및 연구자로 10년 이상 재직하였다. 재직 중 공인노무사를 취득하여 현재는 ‘한돌노무사사무소’ 대표를 역임하며 노동계에서 활동 중이다.
handol.cpla@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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