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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ol.45  2023. 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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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제2회 열린 포럼]
탄소 제로와 종이책의 미래

 

 

 

〈출판N〉 편집부

 

2023. 07.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지난 6월 8일 창비 서교빌딩 50주년홀에서 “탄소 제로와 종이책의 미래”를 주제로 ‘2023 제2회 열린 포럼’을 개최하였다. 이번 포럼은 기후 위기 시대에 출판업계에 요구되는 노력을 점검하고 친환경 출판의 대안을 찾기 위해 마련되었다. 포럼은 두 명의 발제자가 출판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과 기후 위기 속 해외 출판계 대처를 주제로 각각의 발표를 진행했으며, 출판·디자인·언론·제지업계 등 각 분야의 출판 관계자와 기자가 토론에 참여하여 의견을 나누는 순서로 진행되었다. 문화일보 박동미 기자가 사회를 맡았고, 발제자로는 최원형 환경생태 작가, 김준수 클라우드나인 해외기획실장이, 토론 패널로는 김보은 어라우드랩 대표, 성기태 한국제지협회 본부장, 이하규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 대표, 장수정 데일리안 기자가 참여하였다.

 

발제 1. 나무로 책을 만들고, 책은 숲을 없앤다

 

최원형 환경생태 작가

 

최원형 환경생태 작가

 

첫 번째 발제자인 최원형 환경생태 작가는 현재 인류가 마주한 환경과 출판이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발표를 진행했다.

 

출판은 숲의 나무를 베어 종이를 만든다는 생각으로 인해 보통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고 우려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종이 생산 과정에서 많은 나무와 물, 에너지가 소비되고 온실가스와 폐기물이 발생하기도 한다. 하지만 2012년 이후 전체 산업용지에서 인쇄용지가 차지하는 비중은 꾸준히 줄어들어 최근에는 전체의 ⅕ 수준이다. 게다가 버려진 종이의 96%가 재활용되며, 재활용 종이는 다른 재활용 품목보다 훨씬 질이 좋은 편이다. 종이책 제작 과정에서 천연 펄프를 어느 정도 사용할 수밖에 없기는 하지만, 이 또한 무분별한 벌목 대신 조림지에서 경작한 나무를 베어 생산한다. 따라서 종이는 굳이 EPR(Extended Producer Responsibility, 생산자책임재활용) 제도에 편입되지 않아도 이미 순환 경제가 작용하는 자원이다.

 

최원형 작가는 이처럼 종이책 출판이 반드시 환경 파괴와 직결되지는 않지만, 그럼에도 출판 산업 자체가 탄소를 줄이는 방향으로 선회하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단순히 종이만 환경친화적인 것이 아니라 벌목부터 폐기 후 재활용까지 출판의 전 과정이 친환경적으로 변화해야 한다며, 재생지 등 친환경적인 제지를 사용하는 것이 큰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재생지 인증을 받으려면 그 종이의 생산 과정에서 재생 펄프가 40% 이상 들어가야 하는데, 이는 천연 펄프로만 종이를 생산할 때보다 최소 40%의 나무가 덜 베어진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또한 FSC(Forest Stewardship Council, 국제삼림관리협의회) 인증 라벨에 대한 설명도 덧붙였다. 산림에서부터 제품이 완성될 때까지 FSC의 인증을 받은 친환경적인 공정을 거쳐야만 이 라벨을 붙일 수 있는데, FSC 라벨을 받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으며 환경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커지는 상황에서 FSC의 인증은 최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차선책이 될 수는 있다고 말했다.

 

한편 최원형 작가는 전자책과 비교하여 종이책이 더 환경 파괴적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밝혔다. 최근에는 펄프 생산을 위해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베지 않으며, e북 리더기의 제작·사용 과정에서 배출되는 오염 물질도 있기 때문이다. 또한 수요를 예측하여 재고를 최소화하는 북펀딩 방식이나 POD(Publish on Demand, 주문 출판) 출판 방식을 소개하는가 하면, 출판사들은 재생용지 사용에 여전히 장벽을 느끼고 있으므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이 재생용지 출판의 플랫폼 역할을 하며 활력을 넣어 주기를 제안하며 발표를 마무리했다.

 

발제 2. 해외 출판계는 기후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고 있을까

 

김준수 클라우드나인 해외기획실장

 

김준수 클라우드나인 해외기획실장

 

두 번째 발제자 김준수 클라우드나인 해외기획실장은 한국 출판계가 본받을 만한 해외 출판계의 기후 위기 대책에 대해 발표했다.

 

출판의 탄소발자국(생산부터 폐기까지 배출하는 온실가스의 양)은 페이퍼백 한 권에 1kg 정도로, 빵 한 덩어리의 탄소발자국과 유사하다. 특히 제지 과정에서 많은 온실가스를 배출하며, 펄프 생산과 종이 제작 과정이 출판 탄소발자국의 86%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김준수 실장은 전자책도 e북 리더기를 제작·사용하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므로 일정량 이상의 전자책을 읽지 않으면 생각보다 그리 친환경적이지 않다며, 결국 종이가 가장 큰 문제이므로 종이에서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다음으로는 영미권 단행본 시장을 중심으로 친환경 출판에 대한 노력을 설명했다. 영미 시장은 ‘펭귄랜덤하우스(이하 PRH)’를 포함한 5개 대형 출판사가 전체 시장의 80%를 차지하고 있다. 특히 PRH가 50%의 비중을 가지고 있어 중소형 출판사가 대다수인 한국 출판 시장과의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그러나 영미권 출판계는 종이의 FSC 인증 문제를 거의 해결하였고, 전력·유통 과정에서 환경친화적 출판의 지속·확장을 시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살펴볼 만하다고 이야기했다. 영미권 대형 단행본 출판사의 기후 위기 대응을 살펴보면, 먼저 종이 제작 과정의 비중이 탄소 배출량에서 절대적인 비율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FSC·SFI(Sustainable Forest Initiative, 친환경적 산림 개발을 위해 기업림·사유림 등에 부여하는 표시) 인증 용지를 100%에 가깝게 사용하고 있다. 제작 및 유통 과정에서도 미세 플라스틱의 사용을 줄이고 충전재 사용을 최소화하고 있으며, 배송에 기차 운송을 시도하거나 사무실에서 재생 가능한 전력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은 모두 탄소 배출량 절감을 기업의 주요 과제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대기업이 가지는 의무로서 ESG(Environment·Social·Governance, 환경보호·사회공헌·윤리) 경영, SDGs(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지속가능발전목표)를 실천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한편 영미권의 중소형 출판사에서도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다. 미국 버몬트 주의 ‘첼시 그린(Chelsea Green)’ 출판사는 2022년 ‘첼시 그린 재단’을 설립하여 출판을 넘어 다양한 사람들이 지식을 교환하고 친환경적인 삶을 고심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또한 서점 납품 시 반품이 불가한 대신 할인율을 높이는 ‘첼시 그린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진행하여 소매업체의 호응을 이끌어내면서도 폐기물을 줄이는 데 성공했다. 김준수 실장은 이외에도 환경과 지속 가능 등을 테마로 책을 출간하거나 책을 POD·전자책으로만 판매하는 등 제작 사이클을 관리하고 별도의 유통 경로를 확보하는 독립 소형 출판사의 예시도 설명했다.

 

협회 차원에서의 대응도 소개했다. 영국 독립출판협회(IPG)는 유통 과정의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해 유통 과정의 단일화, 전기차를 사용한 친환경 운송, 플라스틱 포장지 제거 등 포장 개선, 인쇄의 현지화, 2040년까지 넷제로(Net Zero, 탄소 중립) 달성이라는 5가지 목표를 제시했다. 또한 국제출판협회(IPA)에서는 음식 등의 제품에 2009년부터 적용하고 있는 탄소성적표지제를 책에도 적용했다고 밝혔다. 이어 김준수 실장은 영미권 출판계에 기본으로 자리 잡은 친환경 출판의 12가지 조건에 대해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1. 배포 지역에서 인쇄하는 현지 생산
2. 100% 재활용 및 FSC 인증 용지 사용
3. 책의 탄소발자국 계산
4. 에코디자인
5. 기업 내 환경 관리
6. 친환경 잉크와 토너 사용
7. 오프셋·디지털 인쇄
8. 전자 기기 독서
9. 인쇄 플레이트 및 마감
10. 인쇄 부수 결정 시의 재고 관리
11. 라이선스 관리와 무료 소프트웨어 사용
12. 에너지 소비 제어

 

영미권에서는 탄소 배출량 감소를 위해 전문 컨설팅 기업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고도 덧붙였다. 하지만 국내 출판계는 아직 탄소 중립 관점에서 미흡한 것이 사실이다. 국내의 교육출판사 상위 10개사, 단행본사 상위 10개사를 대상으로 친환경 출판에 대한 설문을 실시하였으나 그중 7개사만이 답변하였고, 에코 디자인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힌 곳은 2개사뿐이었다. 출판 과정의 전 주기 평가(LCA)나 탄소발자국 정보를 제공하는 곳은 없었으며, 탄소 배출 상쇄 활동을 하는 출판사 역시 단 2개사뿐이었다. 김준수 실장은 ‘그럼에도 책을 읽는 동안에는 쇼핑이나 운전 등 다른 활동을 할 수 없으므로 독서는 저탄소 활동’이라는 마이크 버너스-리(Mike Berners-Lee) 랭커스터 대학 교수의 말을 인용하며 발표를 마쳤다.

 

토론. 종이책은 정말 환경 파괴적일까?

 

패널:
김보은 어라우드랩 대표, 성기태 한국제지연합회 본부장, 이하규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 대표, 장수정 데일리안 기자

 

김보은 어라우드랩 대표, 성기태 한국제지연합회 본부장, 이하규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 대표, 장수정 데일리안 기자

 

두 발제자의 발표 후에는 친환경 출판을 고민하는 패널 토론이 이어졌다. 토론에는 김보은 어라우드랩 대표(디자인 영역), 성기태 한국제지연합회 본부장(제지 영역), 이하규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 대표(출판 영역), 장수정 데일리안 기자(언론 영역)와 함께 앞서 발제를 진행한 최원형 작가와 김준수 실장이 참여했다.

 

김보은 어라우드랩 대표

 

김보은 어라우드랩 대표

 

먼저 김보은 어라우드랩 대표는 ‘생산과 소비의 매개자, 종이책을 대하는 디자이너의 고민’에 대해 발언했다. 스스로 만들어 낸 것들에 대해서는 스스로 환경적 책임을 다하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밝힌 김보은 대표는 환경·사회적 책임에 있어 생산과 소비의 매개자인 디자이너가 자신의 선택에 따라 유의미한 결과의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려면 먼저 책이 만들어지는 공정을 정확히 이해해야 하고, 어떤 공정에서 폐기물이 얼마나 나오는지 또 작업 환경은 어떠한지를 확인할 수 있도록 공정을 직접 보는 감리 과정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다음으로 중요한 자세는 재생용지 사용을 넘어 순환하는 책을 만드는 목표를 설정하는 것이다. 즉, 제작자는 제작한 책이 이후에 쉽게 재활용될 수 있도록 그에 대해 고민해야 한다. 친환경 잉크를 사용해 인쇄하고 후가공을 최소화하는 것이 그 예시이다. 디자인 과정에서 환경적 요소를 고려하는 것도 중요하다. 김보은 대표는 디자이너를 존중하되 서로 소통하면서 환경적 영향을 줄이는 방향으로 책을 제작하기를 제안했다.

 

그러한 생각이 담긴 책이 『제로의 책』(강현석 외, 돛과닻, 2022)이다. 이 책은 표지 자리에 대신 목차를 넣고 간지나 속지 등의 빈 페이지를 두지 않으며, 버려지는 종이의 양이 최소가 되도록 판형을 계획하고, 본문을 키우면서도 여백을 줄여 총 페이지를 줄였다. 종이는 표지와 내지 모두 고지율(폐지가 사용된 비율) 100%의 재생용지를 사용했다. 그 결과 1쇄 1,000권의 제작에 나무 18.4그루, 가정용 냉장고 12.5대의 연간 전력 사용량, 자동차 0.8대의 연간 탄소 배출을 절감했다. 그러나 한국은 재생용지의 종류가 다양하지 않고, 고지율 10~30% 정도의 재생용지만 제작되고 있다. 따라서 『제로의 책』과 같이 고지율이 높은 종이를 사용하려면 현재는 전량 수입에 의존하는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김보은 대표는 책 제작 과정에서 수많은 공정을 거치는 만큼 그 공정에서 어떤 것이 가장 환경적 영향이 적은지를 정량적으로 평가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이에 대한 논의와 연구, 정보 공개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자신이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종이책이 거치는 공정·과정을 분리해 보고, 그 과정에서 좀 더 나은 선택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것이 디자이너로서의 환경적 책임일 것이라 밝히고 발언을 마쳤다.

 

성기태 한국제지연합회 본부장

 

성기태 한국제지연합회 본부장

 

다음으로 성기태 한국제지연합회 본부장은 ‘제지 공정에서의 온실 감축 현황과 한국 제지산업의 실태’에 대해 발언했다. 탄소 제로라는 큰 흐름을 제지업계는 두 가지 방향에서 접근하고 있는데, 하나는 생산 공정에서의 탄소 절감이며 다른 하나는 종이의 특성 자체이다. 제지업계에서는 폐기물 재생에너지를 사용하고 친환경 시설에 대한 투자를 다양화하여 2012년부터 2021년까지 14%의 온실가스를 절감하는 것에 성공하였다. 다만 이와 같은 시스템 변화에는 제지업계의 어려움도 존재했다. 조림사업에 상당 시간이 소요되어 국산 삼림을 사용하지 못해 펼프 대부분을 수입해야 하는 상황으로, 다른 방향에서 원가를 절감해야 하기 때문이다.

 

한국은 세계 7위의 종이 생산국인데, 이 중 87.4%가 재생지이며 펄프지는 인쇄용지나 화장지에 주로 사용하는 수준이다. 이는 한국이 삼림자원을 사용하기 어려워 종이 재활용 기술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재활용되지 않는 약 13%의 종이는 도서관, 사무실, 서류 등 폐기하지 않는 종이 혹은 재활용 불가능하거나 분리수거하지 않아 일반 쓰레기로 버려지는 것들이다. 또한 관념과 달리 제지업계는 더 이상 펄프를 얻기 위해 숲을 파괴하지 않으며, 조림지에서 사용량 이상의 목재를 재배하고 이산화탄소 흡수 능력이 떨어지는 오래된 나무를 세대 교체하기 때문에 오히려 지구온난화를 억제하는 것에 가깝다고 설명했다. 따라서 재생지만 친환경 종이인 것은 아니지만, 해외 사례를 볼 때 재생지가 펄프지보다 상대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 감소에 더 기여하는 것은 사실이라고 밝혔다. 초창기 가격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문제는 있지만 국내 출판계에서도 재생용지 수요가 점차 확대될 것이며, 그렇게 되면 재생용지 공급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따라서 종이책 출판은 재생용지의 비중을 높이고 제지 공정에서 화학물질의 사용을 줄이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재생용지 비중을 높이기 위해서는 관련 정책이나 수요·공급업체의 합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한 산업 특성상 제지업계는 화학물질을 많이 사용하는데, 화학물질의 사용량을 줄이고 중성지 등 오래 보존이 가능한 재생용지의 개발·생산이 필요하다는 말로 성기태 본부장은 발언을 마쳤다.

 

이하규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 대표

 

이하규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 대표

 

이하규 에디시옹 장물랭 출판사 대표는 ‘친환경 인쇄 소개: 제작 기법을 중심으로’를 주제로 발언을 진행했다. 먼저 친환경 출판을 하나의 커다란 시스템으로 인지해야 하는데, 책은 모든 제작 과정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고 그 과정에서 지속적으로 탄소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이 중 실제로 책을 만드는 ‘에코 퍼블리싱’ 단계에서는 잉크, 종이, 인쇄, 제본, 후가공 등 주로 물질적인 요소에 집중한다.

 

먼저 잉크는 그 구성 성분 중 대기·수질을 오염시키고 환경호르몬을 발생시키는 VOC(Volatile Organic Compounds, 휘발성 유기 화합물) 용제가 문제가 된다. 최근 친환경 잉크로 주목받는 콩기름 잉크는 VOC의 함유량을 줄이고 그만큼을 콩기름으로 대체한 것이다. 따라서 기화 과정에서 해로운 물질을 배출하지 않고 생분해 효과가 탁월하며, 탈묵이 기존 잉크보다 용이하고, 가격도 일반 잉크와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콩기름 잉크 역시 일반 잉크보다 적은 양이지만 VOC 용제를 함유하고 있다. 그래서 현재 가장 친환경적인 잉크는 콩기름 잉크가 아닌 무용제(non-VOC) 잉크이다. 이는 환경에 영향이 덜할 뿐만 아니라 가격도 기존 잉크의 10% 정도 더 비싼 수준이고 작업자의 건강에도 좋지만, 사용량이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종이의 경우, FSC 인증 용지와 재생용지, 비도공지(종이를 보완해주는 물질을 첨가해 만든 인쇄용지)가 선택지가 될 수 있다. FSC 인증이 점차 기본이 되어 가는 추세에 따라 수입지는 물론 국산 인쇄용지도 어느 정도 FSC 인증을 마친 상태이며, 각 제조사 홈페이지에서 FSC 인증 용지를 찾아볼 수 있다. 재생용지의 경우 수입지는 좋은 질의 종이가 많지만, 국내 재생지는 다양성이나 고지율 등에서 아쉬운 측면이 있다. 하지만 재생용지는 그 특성을 잘 활용하면 디자인에 따라 더 풍성한 느낌을 만들어 낼 수 있다. 또한 생각보다 가격이 비싸지 않고, 일반 종이보다 두꺼워 낮은 평량을 사용해야 하기 때문에 제작비 절감에도 유리하다. 비도공지는 표면을 코팅하지 않은 종이인데, 탈묵 과정에서 코팅에 사용한 도공액이 잉크와 함께 탈락하지 않으므로 폐기물의 오염도가 도공지(비도공지를 더 하얗고 매끄럽게 만들기 위해 종이에 코팅 처리 후 인쇄적성을 높인 종이)보다 덜하다는 장점이 있다.

 

인쇄 영역에서는 탄소 중립적 업체를 선택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이하규 대표는 세 가지 친환경 오프셋 인쇄 방식을 함께 소개했다. 먼저 무습수 인쇄는 물과 기름의 원리를 이용하는 오프셋 인쇄에서 물을 실리콘 인쇄판으로 대체하는 방법으로, 산업 폐수를 만들지 않고 IPA(Isopropyl Alcohol, VOC의 일종으로 오프셋 인쇄에 사용하는 이소프로필알코올 습수액)를 사용하지 않아 작업자의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일반 오프셋 인쇄보다 선명한 망점을 구현할 수 있으므로 인쇄 품질이 더 좋으며, 품질 유지가 쉽고 작업 시간도 줄어들며 종이 이외의 원단에도 인쇄가 쉽다. 무알코올·저알코올 인쇄는 IPA를 대체하는 무알코올·저알코올 습수액을 사용하는 방법이다. 무습수 인쇄와 달리 실리콘 인쇄판을 제작하지 않아도 되지만, 환경에 따라 인쇄의 질이 달라지는 경향이 있으므로 제작자의 숙련도가 요구된다. 무현상 인쇄는 현상 과정이 필요 없는 인쇄판을 사용하는 것으로, 인쇄에 강알칼리성 현상액을 사용하지 않으며 세척 과정도 필요하지 않아 폐수가 발생하지 않는다. 다만 이 기법은 현재 제작소를 찾기 어렵고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다음으로는 후가공 과정을 짚었다. 양장본에 사용하는 합지는 재생지이지만 양장본은 무선 제본보다 더 많은 공정을 요하기 때문에 탄소 배출량도 더 많다. 또한 표지를 코팅(라미네이팅)하면 제본 방식에 상관없이 표지 재활용이 불가능하지만, 표지를 코팅하지 않으면 표지를 뜯어내는 추가 공정 없이 책 전체를 재활용할 수 있다. 다만 이 경우 표지는 어두운 색을 사용하고 가급적 전체 바탕색을 깔지 않아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표지 훼손이 잘 보이기 때문인데, 파본으로 인한 교환 요청도 탄소를 배출한다는 것을 염두에 둔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이하규 대표는 현장에서는 수많은 친환경 인쇄 기법이 사용되고 있지만 이에 관심 없는 것은 출판계와 독자들이라고 꼬집었다. 따라서 친환경 공법에 꾸준히 관심을 가지고 이러한 방법을 시도한다면 얼마든지 저탄소 인쇄가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발언을 마쳤다.

 

장수정 데일리안 기자

 

장수정 데일리안 기자

 

마지막 토론자인 장수정 데일리안 기자는 ‘“종이 줄이자” 외치는 시대, 위기의 ‘종이책’에 필요한 변화’에 대해 발언했다. 세계적으로 페이퍼리스(Paperless) 트렌드가 확산되고 전자책의 존재감이 커지면서 종이책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지만, 종이책만의 장점과 필요 자체에 대해서는 부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종이는 조림지에서 나무를 경작하여 제조하므로 산림 자원 훼손과는 거리가 있으나, 책 제작 시 접착제나 잉크 등이 환경에 문제가 될 수 있으므로 지속가능성을 위해 종이책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그러나 재생용지, 콩기름 잉크 인쇄 등 친환경 제작법은 비용과 공급의 문제로 확대되지 못하고 있다. 시장의 적극적인 변화를 위해 인쇄 과정에 드는 비용 지원뿐만 아니라 공공영역의 의무화를 통해 재생지 인쇄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책 표지 코팅, 후가공 디자인, 서체나 페이지 여백 등 디자인 영역에서 친환경적인 방향으로 선회할 필요도 있다. 코팅과 후가공 등 디자인이 독특한 책일수록 환경에 해를 끼칠 확률이 더 높아지기 때문이다. 에코 폰트를 사용하여 잉크 사용량을 줄이고, 가독성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여백을 줄여 종이 사용량을 줄이는 것도 저비용으로 친환경을 실천하는 방법이다. 유통 과정에서도 온라인 주문 배송 시 과대포장을 자제하고 반품률을 줄이는 것이 도움이 된다. 다만 표지를 코팅하지 않거나 재생용지를 사용한 책은 상처가 잘 나고 종이가 변색되기 쉬운데, 이 경우 반품률이 높아지므로 시도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결국 친환경 출판에는 소비자의 이해가 동반되어야 한다며, 친환경 출판에 대한 소비자의 이해도를 높이고 실천을 끌어내기 위한 출판사 자체적인 노력이 필요하다고 전하며 발표를 마쳤다.

 

토론자들의 발언에 관해 앞서 발제를 진행한 최원형 작가는 재생지 공정의 열악한 노동 환경과 재생률이 높음에도 종이 자원을 수입하는 한국의 현실에 대해 아쉬움을 전하며 기본적으로 출판인이라면 이 시대가 어디에 있는지 인지할 필요가 있으며, 출판물뿐만 아니라 우리의 삶 전반이 탄소 중립으로 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는 친환경 출판에 대한 관심이 일회성으로 끝나지 않도록 끊임없이 포럼, 강연 등의 재생지에 대한 인지와 피드백의 장을 마련하고 당사자가 네트워크를 구축하는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전했다. 김준수 실장은 소비자 인식을 바꾸는 것만큼 스스로 환경을 위해 무엇을 하고 있고, 실제로 어디까지 진행되었는지를 아는 것도 중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한 이러한 담론을 계속 유지·발전시켜 나가야 하며, 출판사들이 이런 문제를 고민 없이 이행할 수 있도록 정책 변화나 제고가 필요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참여자 질의응답

 

친환경 종이책 제작에 대한 인쇄 제작 현장에서의 의견

최근 ESG 경영 등 인식의 변화로 친환경 종이를 요청하는 기업이 많지만, 업체에서는 이에 대해 쉽게 제안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승인 절차의 복잡성, 제작 공정 관리, 관리 승인에 대한 비용적인 부분 등 실제 현장에서 FSC 인증을 받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 FSC 인증을 받으려면 인증 용지를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인쇄의 모든 과정을 FSC 인증을 받은 업체에서 진행해야 하며, 따라서 재고 관리도 어려운 편입니다. 그래서 저희가 연간 제작하는 약 4,000만 부의 책 중 FSC 인증을 받는 책은 10만 부 내외인 것 같습니다.

 

재생용지는 많이 사용하고 있으나, 고객은 재생용지 사용 여부와 관련 없이 고품질의 인쇄물을 요청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재생용지에 대한 소비자의 인식이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지율을 높이느냐, 정부의 고지율 기준점에 맞춰 색상이 잘 나오는 종이를 사용하느냐에 대한 문제가 있습니다.

 

일반인은 친환경적 요소보다 결과물의 품질을 더 많이 고려하기 때문에, 생산 중간에 있는 디자이너나 도서 기획자들이 친환경적 요소를 어필하면서도 결과물의 품질 면에서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 부분을 개선할 수 있도록 대한출판문화협회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재생지에 대해 홍보해 주시면 제작자도 고객에게 재생지를 제안하고 싶어지고, 재생지 사용자가 늘어나면 사회적 인식도 좋아져 전반적인 출판 과정이 친환경적으로 변화해 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재생용지를 사용하면 인쇄 색상의 질이 애매하다고 느낄 때가 있습니다. 재생용지에 인쇄할 때 그 질을 높일 수 있는 방법이 궁금합니다.

이하규  작품에 어울리는 종이를 선택하면 재생지도 비싼 종이보다 더 좋은 결과물을 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빈티지한 책은 중질지 등 재생용지를 사용하는 것이, 가벼운 여행 서적은 그린라이트지를 사용하는 것이 효과가 좋겠죠. 재생용지라고 친환경적으로만 접근하기보다는 종이 선택 시 종이의 특징과 촉감, 발색 등을 총체적으로 고려하면 더 좋은 성과가 있을 것입니다.


Q. 전자책은 탄소 절감을 위한 종이책의 대안이 될 수 있을까요?

김준수  국가마다 전자책 시장의 점유율이 달라 확답은 어렵지만, e북 리더기 한 대의 탄소 배출량이 종이책의 탄소 배출량을 상쇄하기 위해서는 1년에 22~30권 정도의 책을 읽어야 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습니다. 다만 이것은 유통 과정이나 전자제품 생산에 필요한 희소자원 채굴의 문제 등을 전부 계산한 것이 아니라 전력 사용과 폐기물 정도의 기본적인 정보로만 연구한 것이기에 정확하지는 않습니다. 전자책과 종이책 중 더 친환경적인 방법을 찾기보다는 친환경적 활동으로서의 독서 개념을 만들고 유지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장수정  온라인서점에서 책을 주문하는 독자가 많은 특성상 종이책 유통 과정에서의 문제를 지적하는 분이 계십니다. 물론 이 부분에서는 전자책이 환경에 더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책과 같은 크기의 배송 상자를 제작해서 에어캡 등 포장재를 절약하는 방식으로 유통 과정의 환경 오염을 줄이려고 노력하는 온라인서점도 있습니다. 이와 같이 다양한 분야에서 탄소 저감을 위한 노력이 이루어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친환경적 관점에서, 종이를 제외한 다른 과정(제본, 인쇄, 후가공 등)에 관련된 출판계의 준비나 대응이 궁금합니다.

김보은  출판 전 과정에서 친환경적인 방법을 사용하려고 노력하는지와 실제 시장에서 그 선택이 가능한지는 별개입니다. 상대적으로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콩기름 잉크를 예로 들자면, 콩기름 잉크마다 서로 다른 VOC 용제의 함량을 소비자가 모두 확인하기는 어렵습니다. 저도 친환경 잉크의 제조사에서 VOC 시험 성적표를 받아서 제품을 제작한 적도 있지만, 그러한 잉크를 취급하는 인쇄소를 찾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습니다. 다른 단계도 공정 하나하나 발품을 팔아 가며 친환경 업체를 알아내야 하는 실정입니다. 또한 제작을 전담할 수 있는 파주 일대의 대형 출판사와 달리, 충무로 등지의 제작 시스템은 각 공정을 나누어 가진 소상공인의 협업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에 시스템 중 일부를 교체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더해서 영세한 작업장을 가진 분들의 작업 환경도 함께 고려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이하규  제작뿐만 아니라 전반적인 과정에도 관심 가져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출판 과정의 기획과 감시·감독에서도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소장각’이라는 출판사는 책의 생산뿐만 아니라 폐기 과정까지 전부 직접 검토하는데, 책을 단순 폐기하는 곳과 출판 폐기물에 맞는 적절한 절차에 의해 폐기하는 두 가지 폐기소를 직접 찾아 책을 처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관심으로 시스템이 한 번 형성되면, 이 시스템을 통해 훨씬 쉽고 저렴하고 확실하게 탄소 배출 절감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입니다.


Q. 친환경 종이를 사용하려 해도, 선택지가 좁고 고가의 수입지에 의존해야 하는 실정이라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현재 국내 제지 회사의 친환경 용지 제작과 관련하여 어떤 새로운 움직임이 있는지 궁금합니다.

성기태  출판 인쇄용지는 전체 종이 중 17% 정도를 차지하며, 그 비율도 연평균 4~6%씩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만큼 독서 인구가 준다는 얘기가 되겠죠. 정책이 요구하고 수요자가 원한다면 맞출 수 있지만, 책임 있는 대기업이 스스로 재생지 사용에 대한 조건을 거는 해외와 달리 국내 재생지 시장은 주로 교과서 등 국소적인 분야에만 한정되어 그 규모가 크지 않습니다. 대량 생산 체계를 구축하여 안정화되기 이전에는 시설에 대한 투자와 인쇄에 대한 소비자의 요구 등 충족해야 하는 요소가 많습니다. 다만 프로세스가 만들어지고 이에 대한 당사자 간 합의가 이루어져야 시장이 좀 더 친환경적으로 변화한다는 데에는 동감하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Q. 산업계는 오히려 친환경 제작법을 사용하지 않는 곳을 찾기 힘들 정도로 준비되어 있는데, 소비자나 독자는 그렇지 않은 듯합니다. 친환경 제작법을 알리는 것 이상으로, 읽는 데 문제없는 정도의 파손 도서를 소비자들이 소비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습니다. 종이책의 제작과 판매 과정에서, 이에 대해 최종 소비자인 독자를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김보은  저는 제가 디자인하고 제작하는 제작물에 친환경적 ‘제작 정보’를 전부 표기합니다. 어떤 친환경적 노력을 했는지, 어떤 종이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등을 표시하고, 표지를 코팅하지 않았거나 특수한 재생지를 사용했다면 그 의도와 특성도 자세하게 설명합니다. 이것은 다른 제작자가 제작할 때 참고할 수 있고, 또 아직 크기가 작은 친환경 출판·제작 방면에서 함께 정보를 나누며 크기를 확장하는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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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N〉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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