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50  2023.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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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출판유통 개혁에 시동 건 ‘북셀러즈앤컴퍼니’

 

 

 

백원근(책과사회연구소 대표)

 

2023. 12.


 

일본을 대표하는 대형 서점 체인인 ‘기노쿠니야(Kinokuniya) 서점’, 한국에도 잘 알려진 츠타야(Tsutaya)를 운영하는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 Culture Convenience Club)’ 그리고 일본을 대표하는 출판 도매업체인 ‘일본출판판매(이하 닛판(日販))’가 공동 출자한 ‘북셀러즈앤컴퍼니(BOOKSELLERS & CO.)’가 2023년 10월 2일 설립되었다. “서점이 주도하는 출판유통 개혁”을 기치로 내걸고 일본 출판유통업계 강자들이 모인 것이다. 언뜻 보기에는 강력한 경쟁 관계인 기노쿠니야와 츠타야가 왜 공동 사업을 모색하는지, 그에 더해 출판사와 서점 간 직거래 확대를 가장 경계해야 할 최대 도매업체가 왜 이러한 새로운 비즈니스에 적극 동참하는지 납득하기 어려울 수 있다.

 

>북셀러즈앤컴퍼니 로고

북셀러즈앤컴퍼니 로고

 

 

이 회사의 가장 큰 목표는 서점의 주도로 출판사와 직거래 유통을 확대하는 데 있다. 북셀러즈앤컴퍼니는 창립 취지에서 “거리의 서점이 존속하고, 보다 많은 사람들이 독서 습관을 키우며, 책을 통한 지식과 문화의 접점이 지속되는 풍요로운 미래를 서점 스스로의 힘으로 개척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서점의 지속 가능성을 높이겠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담담한 문장 속에는 일본 서점계의 절박함이 담겨 있다. 실제로 일본 서점의 숫자는 지난 20년간 약 45%나 줄었다.* 그 결과로 일본 지방자치단체 가운데 26%에는 서점이 한 곳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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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서 운영하는 일본출판인프라센터 및 서점마스터관리센터 자료에 따르면, 일본의 서점 수는 2003년에 20,880개이던 것이 2022년에는 11,495개로 55%가량 대폭 줄었다. 다만, 서점 매장의 총 규모는 대형 서점이 증가하면서 2003년의 109만 평에서 2022년의 112만 평으로 서점의 규모가 오히려 확장되었는데, 2013년에 132만 평으로 정점을 찍은 이후에는 감소 추세에 있다. 일본 서점의 평균 매장 규모는 132.7평으로 한국(101.2평, 2022 출판산업실태조사)보다 31.1% 큰 편이다.

 

‘잡고서저(雜高書低)’라 하여, 출판산업에서 잡지 매출이 더 많고 도서의 매출 비중은 낮았던 일본의 출판 시장 구조는 2016년에 잡지 시장의 규모가 도서 시장의 규모보다 작아지면서 변곡점이 찾아온다. 즉, 1980~1990년대에는 잡지 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3대 2의 비율로 잡지 시장이 도서 시장보다 더 컸으나, 인터넷이 대중화된 1990년대 말부터 잡지(특히 주간지) 시장이 급전직하(急轉直下)로 몰락한 것이다. 이로 인해 그간 잡지 배본 시스템에 얹어 도서 상품을 저렴하게 출고하던 양대 도매업체(닛판, 도한) 주도의 출판유통 시스템은 이제 종언을 예고하고 있다. 한때 40% 이상이던 반품률(2022년에는 32.6%)도 잡지 중심, 반품이 가능한 위탁 판매 중심의 유통 관행이 낳은 양적 성장 시대의 산물이다. 한국과 달리 대형 체인 서점이든 아마존재팬 등의 인터넷 서점들이든 주로 양대 도매상을 통해 거래하던 일본의 출판유통 방식에 변화가 불가피해진 것이다.

 

북셀러즈앤컴퍼니는 기존 도매상을 대신해 서점이 주체가 되어 출판사와 직거래하며 매입량을 결정하는 새로운 직거래 관계 구축을 목적으로 탄생했다. 도매상이 ‘갑’이던 유통 구조를 바꾸겠다는 것이다. 출판사와 직거래를 원하는 서점들을 대표해서 개별 출판사들과 직거래 계약을 체결하고 해당 출판사의 출판물(도서와 잡지)을 받아 서점에 공급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사업에 참여하는 대형 도소매 3사의 시스템과 판매 데이터, 서점계의 노하우를 살려 ‘판매 기회 상실을 최소화하는 적정 매입’을 지향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서점 구매자와 객단가를 키우기 위해 판매 촉진 기획을 공동으로 실시하고, 서점 공통 앱의 개발 등 서점계를 아우르는 서비스에도 적극 나선다는 계획이다. 3사의 판매 데이터를 연계하여 인공지능(AI)을 활용해 수요 예측 시스템을 개발할 구상도 가다듬고 있다. 초기 자본금은 5천만 엔(약 4억 3천만 원)이며, 3사의 출자 비율은 기노쿠니야 서점 40%, CCC 30%, 닛판 30%이다. 대표이사 회장에는 기노쿠니야 서점의 다카이 마사시(高井昌史) 회장이, 대표이사 사장에는 기노쿠니야 서점의 미야기 요시타카(宮城剛高) 경영전략실장이 각각 취임했다. 사장에 취임한 미야기 요시타카는 기노쿠니야 서점 신주쿠 본점 근무에 이어 쿠알라룸푸르, 뉴욕, 시드니 등 주요 해외 지점의 지배인을 12년 이상 경험한 40대의 젊은 서점인이다.

 

>지난 6월에 발표된 사업 기본 계획. 지속 가능한 출판-판매(서점)를 위한 유통 실현을 위해 기노쿠니야 서점, CCC, 닛판 그룹 산하 서점 등 약 1천 개 이상의 서점이 출발 시점부터 참여하여 출판사와 직거래하며, 닛판의 물류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방안이 담겼다.

지난 6월에 발표된 사업 기본 계획. 지속 가능한 출판-판매(서점)를 위한 유통 실현을 위해 기노쿠니야 서점, CCC, 닛판 그룹 산하 서점 등 약 1천 개 이상의 서점이 출발 시점부터 참여하여 출판사와 직거래하며, 닛판의 물류 시스템을 활용한다는 방안이 담겼다.

 

 

출판사와 상생하는 서점 주도의 유통 구조 개선

 

북셀러즈앤컴퍼니 설립 발표 1개월 만인 11월 2일, 도쿄 시부야의 ‘기노쿠니야 사잔시어터 다카시마야’에서 열린 출판사 대상의 사업 설명회에는 출판인 293명이 참석하여 사업에 대한 일본 출판계의 뜨거운 관심을 실감하게 했다. 이 자리에서는 다카이 마사시 회장의 인사말에 이어, 미야기 요시타카 사장의 회사 방침에 대한 설명과 질의응답이 이루어졌다.

 

다카이 마사시 회장은 “북셀러즈앤컴퍼니가 출판사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크게 세 가지이다. 첫째는 서점과 출판사의 직거래, 둘째는 합리적인 물류의 실현을 위한 협력, 셋째는 서점 부흥(활성화)을 위한 지원이다.”라고 운을 떼었다. 북셀러즈앤컴퍼니에 참여하는 기노쿠니야 서점, 츠타야, 닛판 그룹 직영 서점을 합하면 약 1천 개 점포인데, 현재 일본 내 서점 매출액의 약 20% 이상 되는 규모이다. 이 정도의 ‘규모의 경제’로 직거래를 통한 매입 부수 결정, 주목 도서에 대한 1천 개 서점의 일괄 매절 구매 그리고 다양한 공동 사업으로 서점 매출 증대와 반품 감소를 기한다면 출판사에도 분명히 이점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출판사와 서점이 상생하는 방식으로 현금 흐름이 건전화되는 구조를 만들자는 제안도 덧붙였다. 출판사와 서점이 팔고 싶은 책을 적시에 판매하고, 인기 신간이 대형 서점 위주로 배본되던 문제를 해소하며(재고 공유), 근년 들어 물류 경비 상승에 따라 예상되는 유통 대란의 우려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출판사들의 적극적인 동참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이어서 미야기 요시타카 사장은 회사의 설립 목적, 제공하고자 하는 핵심 가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북셀러즈앤컴퍼니가 ‘새로운 도매 회사’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했다. 기존의 출판유통을 개혁하여 출판사와 서점의 이익을 최대화하고, 종래의 도매 위탁 구조에서는 불평등하게 취급을 받았던 소형 출판사와 지방 출판사와도 함께 하겠다는 것이다.

 

공동 사업에 참여한 3사가 종전에 각자 해오던 사업과의 차이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북셀러즈앤컴퍼니가 직거래 서점들의 대표로 나서서 출판사와 직접 계약을 맺고 거래 조건과 매입 수량을 결정하는 것인데, 여기에는 서점의 각오가 필요하다. 이제는 서점도 물류비 부담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서점 스스로 매입 부수를 정하고 매입한 출판물을 최대한 판매하여 반품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이렇게 함으로써 서점의 이익 증가와 직결된다. 천덕꾸러기 신세가 된 잡지 배송의 효율화, 기노쿠니야와 츠타야의 해외 매장 활용 등을 포함한 서점의 자구 노력이 경영 개선과 연결되도록 하는 구상도 세우겠다고 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서점과 계약 출판사들이 쌍방향적으로 연결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다. 이를 위해 출판사의 생각과 의지를 서점 매장에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정례 모임은 물론이고 체인점의 범주를 초월한 ‘오리지널 판매 기획’, 권역별 참가 서점의 커뮤니티 구축에 나서겠다는 것이다.

 

결국 사업의 핵심은 거래 모델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에 달려있다. 북셀러즈앤컴퍼니에서 제안하는 두 가지의 거래 모델은 계약 출판사의 모든 도서를 대상으로 하는 ‘판매 연동’(포괄 계약) 모델과 스테디셀러 등 일부 출판물에 대한 ‘반품 제로’(매절 매매 계약) 모델이다. 이런 거래 방식을 통해 적어도 사업 3년차에는 ‘판매 연동’ 모델을 전체 거래 서점의 매입량 중 절반 이상이 되도록 하고, 전체 거래액의 최소 10% 이상은 ‘반품 제로’ 모델 거래로 매절 계약을 확대한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필요에 따라 기존의 도매 위탁 거래도 유연하게 병행한다.

 

>2023년 11월 2일, 출판사 대상 사업 설명회 장면(좌), 초대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우)

2023년 11월 2일, 출판사 대상 사업 설명회 장면(좌), 초대 대표이사 사장과 회장(우)

 

 

물류는 종전의 방식대로 닛판을 그대로 활용하는데, 북셀러즈앤컴퍼니에서의 닛판은 도매상으로서가 아니라 거래 실적에 따라 수수료를 받는 방식의 물류 대행업체와 같은 역할을 한다. 출판 도매 물류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닛판의 수익 모델은 불가피한 최선책이다. 규모가 작은 서점들의 경우에도 매출 향상과 반품률 축소, 서점 마진율 30% 달성이라는 목표 달성에 동참하려는 의지가 있는 곳이라면 그 규모에 관계없이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이 미야기 요시타카 사장의 설명이다. 다만, 북셀러즈앤컴퍼니의 거래 모델에서는 매입이나 물류 측면에서 일선 서점의 책임도 따르게 된다. 따라서 먼저 사업의 주체인 3사(기노쿠니야, 츠타야, 닛판)가 가시적 성과를 내는 것을 바탕으로 참여 서점을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일본 출판유통계의 최신 동향

 

북셀러즈앤컴퍼니 설립에 참여한 3사는 일본 출판유통에서 강력한 엔진 역할을 하는 곳으로 역동적인 기업 활동이 두드러진다. 최대 출판 도매업체인 닛판그룹홀딩스(日販GHD)와 컬처 컨비니언스 클럽(CCC)은 지난 10월 1일, 합자회사인 엠피디(MPD)의 사명을 ‘컬처 익스피리언스(Culture Experience)’로 바꾸고 프랜차이즈 사업과 도매업을 통합한 공동 사업 회사를 출범시켰다. 츠타야가 전국적으로 펼치는 프랜차이즈 사업과 도서 및 문구·잡화, 트레이딩 카드, 엔터테인먼트 상품의 유통과 판매를 일원화시킴으로써 고객에게 새로운 공간과 독서 경험을 선사하고, 점포 이익률 개선과 프랜차이즈 개혁을 통해 새로운 점포 모델을 제시하겠다는 목적이다. 특히 지역 내 교류를 증진시키는 커뮤니티 센터로서 ‘새로운 시대의 체험형 서점’을 만들어 건강한 삶을 지원하는 웰니스(wellness) 사업과 이벤트, 팝업 사업 등 새로운 유형의 비즈니스에 도전한다고 밝혀 앞으로의 행보가 주목된다.

 

>북셀러즈앤컴퍼니 로고

컬처 익스피리언스 로고

 

 

한편 출판 도매회사 닛판이 대형 거래처인 편의점에 대한 잡지 배송을 중지하기로 한 가운데, 또 다른 도매회사인 도한이 이를 승계하기로 하여 출판계와 편의점업계가 안도하는 분위기다. 닛판은 전국 편의점 체인인 로손(LAWSON) 및 훼미리마트(Family Mart)에 대한 잡지 배송을 2025년 2월 이후에는 하지 않는 것으로 지난 9월에 합의했다. 3만 개에 이르는 대규모 거래처이지만, 잡지 판매량은 대폭 하락하고 운송비는 계속 상승하는 상황에서 편의점에 대한 출판 물류는 더 이상 채산성이 맞지 않는 사업이 되었기 때문에 내려진 결정이다. 지난해 닛판의 편의점 유통사업 부문의 적자만 32억 엔(약 288억 원)이었다. 이에 따라 닛판의 서점 배본도 어려워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까지 제기되었으나 그렇지는 않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전국에 출판물을 배송하는 운임은 닛판의 경우 130억 엔(약 1,170억 원), 출판 도매업계 전체로는 300억 엔(약 2,700억 원) 수준의 규모다. 현재의 도매 유통 구조를 지속하기 위해서는 도매회사의 적자로 전가될 수밖에 없는 운송비를 출판사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 도매업계의 강력한 주장이었다. 이러한 여건에서 닛판은 북셀러즈앤컴퍼니에 참여하여 기존 도매상 역할을 통한 도매 거래 이익에 더해 물류 대행 수수료 수입을 얻는 새로운 모델에 도전하게 되었다.

 

한편, 츠타야는 지난 10월 27일,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의 중심지에 카페형 대형 서점 매장을 열었다. 인근 지역에서 일하는 직장인, 외교관, 글로벌 비즈니스 종사자들에게 ‘새로운 워크 스타일’을 제안하는 서점으로서 영어, 중국어 등의 도서와 문구·잡화를 판매한다. 이로써 츠타야는 중국(10개), 대만(11개) 점포에 이어 말레이시아(2개) 매장을 포함해 총 23개 해외 매장을 운영하게 되었다. 일본 서점계 해외 진출의 선두 주자인 기노쿠니야 서점은 이미 미국(21개), 싱가포르(6개), 인도네시아(2개), 말레이시아(1개), 태국(3개), 캄보디아(1개), 호주(1개), 대만(3개), UAE(2개), 필리핀(1개) 등 10개국에 41개의 매장을 운영하며 현지 언어와 일본어 도서를 판매하고 있다. 시장 포화와 축소기에 접어든 일본 국내 매출에 비해 훨씬 견실한 실적을 해외에서 올리고 있다. 해외 매장을 단 한 곳도 개척하지 않고 국내 시장에만 안주하는 국내 서점 기업에서는 경각심과 질투심을 가져야 할 소식이다.

 

 

 

참고문헌
公益社團法人 全國出版協會·出版科學硏究所, 『2023出版指標年報』
〈文化通信〉 第4708號(2023.10.10.), 第4713號(2023.11.7.), 第4714號(2023.11.14.)
https://www.bunkanews.jp/article/350840
https://www.bunkanews.jp/article/356605
https://www.bunkanews.jp/article/357355

 

백원근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한국출판학회 상임이사, 출판도시문화재단 실행이사, 일본출판학회 정회원으로 활동한다. 일본의 책 『서점은 죽지 않는다』(이시바시 다케후미(石橋毅史), 시대의창, 2013), 『책을 직거래로 판다』(이시바시 다케후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2017), 『책의 소리를 들어라』(다카세 쓰요시(高瀨 毅), 책의학교, 2017), 『우리 시대의 책』(크레이그 모드(Craig Mod), 마음산책, 2015) 등을 번역했으며, 일본 매스컴업계 주간신문 〈문화통신〉에 ‘서울통신’을 연재한다.
bookclub21@kore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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