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l.8 2020. 03.
[해외통신/일본]
김승복(쿠온출판사 대표)
2020. 03.
필자는 지난해 말 한국과 일본의 출판계를 대표하는 출판기관들의 주요 출판인들이 만났다. 큰 출판사를 운영하는 분들로, 대를 이어 출판사를 이끌어 가는 분들도 많았다. 필자는 통역자 입장에서대한출판문화협회와 일본서적협회 두 기관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여러 이야기 중 한국 출판사 분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사실은 좀 우울하기도 한) 일본 출판계 정보를 전한다. (본 글을 위해 이날 발제를 한 소학관 대표의 허락을 받았음도 함께 밝힌다.)
좋아서 하는 일이 더 좋아지면 즐기면서 할 수 있게 된다. 필자는 일본에서 출판을 하고 있으니 한국과 일본의 여러 출판인들을 만나는 기회가 많다. 출판을 즐기면서 하는 분들을 압도적으로 많이 만난다. 작은 출판사도 많은데, 그 출판사의 대표이거나, 주도적으로 기획해서 책을 만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만들고 싶은 책이 있어서 출판사를 차린 분들이어서 다들 에너지가 충만하다. 처음 만나도 처음 만난 것 같지가 않다. 이들 중에는 3년차가 가장 많고, 길면 10여 년 남짓한 시간을 출판계라는 혹성에서 보내고 있는 사람들로, 출판력이 그리 길지 않은 사람들이다.
작은 출판사를 이끌고 있는 ‘우리’들의 공통점은 출판이 잘 나가던 시절을 경험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책이란 것이 마구마구 팔려나가는 것이 아니니 한 사람, 한 사람 정말 원하는 이들에게 읽힐 수 있도록 정성 들여 만드는 습관이 몸에 붙은 사람들이다. 그래서 ‘우리’는 동네책방 지기들과도 사이가 좋다. 정성 들여 만든 책을 또 한 권, 한 권 정성 들여 판매하는 책방지기야말로 든든한 파트너이기 때문이다. 책방지기들도 책방을 시작한 지 몇 년 안 된 이들이 많아, 책방지기들과 ‘우리’는 이 궁리 저 궁리를 함께하는 ‘나까마(=동지)’이기도 하다.
책방지기들과 ‘우리’는 규모가 작기 때문에 무리한 전개를 해야 할 국면이 별로 없다. 살림 규모가 크면 많이 만들어서 많이 팔아야 한다는 강박이, 순한 정성을 눌러 버리는 경우를 많이 봐왔기 때문에 규모에 대한 욕심들이 없다. 최선을 다해 만들고 정성 들여 책을 판다. 만나서 한 권, 한 권 책 만드는 이야기, 한 권, 한 권 책 파는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참으로 신난다.
필자는 작은 책방도 운영하고 있는 터라, 한국이나 일본의 작은 출판사에서 나온 재미있는 책들을 사입하여 팔고 있어 이 작은 출판사들과도 친하다. 또 작은 출판사를 운영하고 있기에 일본 각 지역 동네책방에 책을 판매하고 있다. 위에서 말한 책을 만들고 파는 사람들, 이 순둥이들의 이야기는 그러니까 100% 실화이다.
이런 순둥이들과 주로 교류하다가, 지난 연말 한일 출판계의 공룡들이 모인 곳에서 들은 이야기는 같은 출판계라고는 상상하기 어려운 차원의 것이었다. 이 이야기는 주로 규모가 있는 출판인들의 걱정거리이다. 이 걱정거리들은 그리 멀리 않은 시간에 한국을 찾아갈 것이다. 다음은 소학관 대표가 한국 출판인들에게 발제한 내용 중에 참고가 될 만한 이야기를 추린 것이다.
1. 출판유통 비용이 만만치 않다
출판물 배본 부수가 점점 줄고 있어 한 서점으로 가는 운송량이 압도적으로 줄었다. 운송회사로서도 이전에 비해 단가가 맞지 않는다. 여기에 일본 정부가 2019년 4월부터 순차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근로방식 개혁관련법이 운수업계에 직격탄을 날렸다. 장시간 노동 상한 제한과 유급휴가 소화가 의무화된 것이다. 직원을 늘려야 하는 상황인데, 일 자체가 중노동이라 젊은 층 유입이 원만치 않다. 그래서 트럭 운전자들이 점점 고령화되어 가는 실정이다. 또 법률 개편으로 최저 임금도 올려줘야 해서 운수업계가 대 패닉에 빠진 상태다.
일본 출판운송은 잡지와 서적을 동시에 배송하는데 그 물량 비율이 잡지가 7할, 서적이 3할이다. 그러니까 잡지가 운송비용을 거의 부담해온 터인데 그 잡지 물량이 줄어 상대적으로 서적이 부담해야 하는 운송비용이 많아진 셈이다. 한 번에 싣고 나가는 물량이 줄어 운송비용이 높아진 상황에서 각 출판사는 형평성을 맞추기 위해 책의 정가를 올리는 방안을 검토하기 시작하였다. 지금까지 책은 ‘박리다매’가 일반적이었는데 운송비용 면을 생각하니 언제까지 박리다매만 고집할 수 없게 되었다. 때문에 잡지와 코믹(만화)의 가격이 조금씩 오르기 시작했다. 하지만 가격이 오르면 독자들이 등을 돌리게 되므로 가격인상 정책이 능사는 아니다.
문제해결 방안은 그래서 모두의 현안이기도 하다. 일본잡지협회와 일본출판도리츠기(유통)협회 역시 검토를 시작하였다. 나 자신은 잡지협회의 부이사장이기도 하며 소학관 대표이사이기도 하기 때문에 이 운송비 문제는 2020년 출판계의 현안으로 책정하여 해결 방안을 강구하고자 한다. 급격한 변화에 따라오지 못하는 출판사들을 도와가며 눈앞의 이익만이 아닌, 그렇다고 관습에 묶이지도 않는 방법을 찾아가도록 하겠다.
(“운송비용이 책 정가의 몇 %인가?”라는 한국 측 질문에 “정가의 10%에 육박한다.”는 답변이었다. 한국 출판인들은 현재 한국에서 이 문제는 현안이 아니지만 머잖아 대면하게 될 큰 문제가 될 것이라는 코멘트를 하였다.)
2. 점점 어려워지는 서점 경영
일본 서적에는 슬립(SLIP)이라는 얇은 책갈피 같은 종이가 책 사이에 꽂혀 있다. 이것은 서점을 위한 장치인데 책이 팔리면 이 슬립을 빼서 재고관리, 주문관리를 하는 데 쓰인다. 하루 마감을 하면서 이 슬립을 정리하는 일은 점원에게 중요한 업무이다. 팔린 책이므로 주문을 넣어야 한다. 포스레지(POS)를 사용하지 않는 서점, 특히 작은 서점에서는 없어선 안 될 장치이기도 하다.
재고관리와 주문관리 용도로 쓰이는 슬립
그런데 요즘 슬립을 제작하지 않는 출판사들이 늘고 있다. 시장이 점점 전산화되어 가기 때문에 출판사가 일부러 비용을 들여가며 만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2020년부터는 슬립이 없는 책이 더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게다가 일본 정부는 전자화폐 장려정책을 쓰고 있으므로 강제적인 사항은 아니지만 아무리 작은 가게라 할지라도 카드 및 전자화폐 결제시스템을 구비하지 않으면 살아남기 힘든 구조가 돼가고 있다. 영세한 서점들에 대한 경영 압박이 점점 커지고 있는 것이다. 일본서점상업조합연합회는 서점재생지원재단의 지원을 통해 서점이 포스레지(POS) 도입을 원하면 자금을 지원하는 등의 도움을 주고 있다. (한국은 이미 오래전에 전산화가 이루어졌다.)
첫 번째 거론한 운송비 증가는 서점에게도 실제적인 타격이다. 반품할 때는 서점 측이 운송비를 부담하기 때문이다. 이에 따른 경영 악화로 폐점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3. 출판사 폐업과 도산이 늘고 있다
일본 중소기업청은 2025년에 일본 기업 3분의 1에 해당하는 127만 개의 회사가 폐업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후계자 문제, 금융 문제, 시장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회사가 많다는 것이다.
출판사의 경우, 도산보다는 폐업이 많다. 현재 출판사 사장들은 단카이 세대에 큰 뜻을 세워 출판사를 창업한 분들이 많은데 이들의 뒤를 이을 후계자가 없어 폐업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일본 정부가 2018년부터 ‘사업 승계 세제’를 대폭 완화하여 사업 승계로 인한 증여세, 상속세를 전액 유예하는 등 기업 존속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내고, 서협에서도 전문가를 초빙해 경영상담실을 운영하고 있으나 폐업 신고를 하는 출판사들이 줄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이상 3가지가 일본 출판계가 안고 있는 현안이다. 운송비 인상과 후계자 부재로 인한 폐업으로 이어지는 문제는 조만간 한국 출판계에서도 대두될 문제라고 한다. 이날 참석한 일본 출판계 인사들은 대부분 2대째 사업을 물려받은 60대 이상의 대표들이 많았다는 점도 부기한다.
다시 순둥이들의 이야기로!
2020 후타고다마가와 책방 잔치 포스터
2020년 1월 31일~2월 1일 이틀간, 도쿄 후타고다마가와역 앞 광장에서는, 일본 전국에 산재한 독특한 동네책방들이 모인 책방 잔치가 벌어졌다. 40개 책방이 오밀조밀 모여 손님을 맞이하였다. 필자의 책방 ‘책거리’도 출점하였다. 1월 31일은 올 겨울 중 가장 바람이 차고 추운 날이었으나 어찌나 많은 사람이 책을 사러 왔는지, 그날이 가장 추웠다는 것은 나중에야 알았다.
2020 책방잔치- 이틀 동안 3만 3,000명이 참가
실행위원회(츠타야서점 직원들)는 출점한 전 책방을 미리 취재하고, ‘책방의 가야할 길’ 등에 대하여 다양한 대담들을 실은 한 권의 책을 만들어 당일에 각 책방들이 판매하기도 하였다. 또한 광장 한 편에서는 연일 쉬지 않고 다양한 토크 이벤트와 콘서트가 이루어졌다. 이틀간 책방 잔치를 찾은 사람은 무려 3만 3,000명이었다. 전국의 유명 책방들이 한 자리에 모였으니 책방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이 책방들을 한군데서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던 셈이다. (요즘엔 한국에도 이러한 추세가 생겨나고 있지만 일본 사람들의 책방 순례는 경외할 만하다. 신칸센, 비행기, 야간 버스를 타고 좋아하는 책방을 찾아다니는 사람들이 정말 많다.) 출점자들이 ‘나까마’를 한 자리에서 만나 서로가 애정하는 책들을 사고파는 풍경 또한 자연스러웠다. (주최 측에서는 혼자 출점한 책방지기들에게 1시간 정도 출점 책방을 봐주는 따뜻한 서비스를 해주었다.)
손님과 책방지기들은 이런 책방 잔치가 자주 있었으면 한다고 한결 같은 목소리를 냈다. 다들 큰 욕심 없이 진정으로 책을 읽고 책을 권하고 책을 즐기는 친구들이 모인 잔치였다. 업계 전체를 두고 고민하는, 큰 사업을 하시는 분들이 있어 순둥이들이 이처럼 마음껏 지금을 즐기는 것도 가능했을 것이다. 어쩌면 이 사이클은 어제오늘만의 일이 아니고, 또한 출판계만의 이야기도 아닐 것이다.
작은 출판사, 작은 책방, 큰 출판사, 큰 서점 할 것 없이 이왕에 하는 일, 책이 안 팔리고 책을 안 읽는다며 출판계 불황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지내는 것보다 모두가 즐거운 시장을 만들어 감사한 마음으로 책을 사고팔았으면 한다.
책방 잔치 출점자와 관계자들
[해외통신]에서는 웹진 〈출판N〉의 해외통신원들이 현지 최신 동향을 심층적으로 분석하여 소개합니다. 김승복(쿠온출판사 대표) 서울예술대학 문예창작과에서 현대시 전공. 1991년 도일(渡日). 니혼대학(日本大学) 문예과 졸업. 2007년 출판사 ‘쿠온’을 도쿄(東京)에서 설립. 사무소 이전에 따라 2015년 7월 7일 칸다 진보초에 한국어 원서 책, 한국 관련 책 전문 북카페 ‘CHEKCCORI(책거리)’를 오픈했다. 현재 쿠온 출판사를 통해 한국 문화와 문학 관련 도서들을 출판하며, 책거리 북카페에서는 연 120회 이상의 한국 문화 이벤트 등의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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