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동향

Vol.42  2023. 04.

게시물 상세

 

60주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 그림책

 

 

 

심향분(전 KBBY 회장,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2023. 04.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 로고

 

 

2023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이 3월 6일에서 9일까지 4일간의 일정으로 볼로냐전시장(the BolognaFiere)에서 진행되었다. 올해 도서전은 60주년을 맞이하여 더욱 뜻깊은 행사였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멈췄던 교류가 2022년에 이어 더욱 본격적으로 시작된다는 점에서도 작가와 출판인들의 기대감이 컸다. 많은 이들의 기다림만큼이나 이번 도서전 방문객은 28,894명으로 2022년에 비해 35%가 증가하였고 이는 역대 최고라고 주최 측은 발표하였다. 전시 기간 중 90개 국가의 참여로 1,456개의 전시가 선보였으며 325개의 행사가 이루어져 이는 팬데믹 이전인 2019년과 비교하더라도 25% 증가한 수치이다. 실로 놀라운 참여와 관심이 아닐 수 없다.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IBBY·International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 BIB(Biennial of Illustration Bratislava),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ALMA·Astrid Lindgren Memorial Award) 등 국제 프로젝트들이 이루어지고 있는 기관 부스들을 통해 그간의 다양한 소식과 정보들이 활발하게 공유되고, 전시장 곳곳에서 세계 여러 나라 작가들의 참여로 이루어진 다채로운 국제 프로젝트의 전시가 이루어졌다. 이탈리아의 글 없는 그림책 공모전(SILENTBOOK CONTEST), 우크라이나 작가들의 그림전, 퀀틴 블레이크(Quentin Blake)의 90세 생일 기념 촛불 그림 전시, 앤서니 브라운(Anthony Browne)의 할아버지전 등 곳곳에 다양한 볼거리가 즐비했다. 예상보다 길어지고 있는 전쟁으로 인해 더 이상 그림책 작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우크라이나 작가들의 시선에 비친 ‘어린이’ 그림 전시는 마음이 숙연해지게 하는 반면, 퀀틴 블레이크 작가의 90세 생일을 축하하기 위하여 수많은 일러스트레이터들이 보내온 촛불 그림들은 절로 미소를 짓게 했다. 매핑 전시(Mapping exhibition)도 흥미로웠다. ‘매핑’은 예술가와 어린이 간의 관계성을 만들어내는 데 초점을 두고 2018년부터 시작되어 2023년 11월까지 진행되고 있는 유럽의 17개 국가의 대규모 협업 프로젝트이다.

 

퀀틴 블레이크 90세 생일 기념 촛불 그림 전시

퀀틴 블레이크 90세 생일 기념 촛불 그림 전시

 

이탈리아 글 없는 그림책 공모전(좌), 유럽 연합의 매핑 프로젝트 전시(우)

이탈리아 글 없는 그림책 공모전(좌), 유럽 연합의 매핑 프로젝트 전시(우)

 

 

이렇듯 국경이 무색하게 세계 여러 나라 작가들이 참여하는 연합 프로젝트 전시들이 전시장 곳곳에서 크고 작게 열렸다. 물론 세계 여러 나라 국가관과 출판사 부스들도 트렌드를 읽을 수 있는 다양한 도서들을 볼 수 있도록 특색 있게 꾸며졌다. 간단한 다과와 음료를 대접하며 누구든 자유롭게 교류할 수 있는 즐거운 분위기를 연출하기도 하였다. 마스크로 가려진 얼굴만큼이나 소통의 단절로 답답해하던 지난 4년의 시간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그 어느 때보다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이하는 어제의 친구를 만나는 분위기였다.

 

올해 도서전에서는 세계 여러 나라의 출판인들이 협상 테이블에서 새로 준비된 책을 소개하며 하루 종일 미팅을 진행하는 동시에, 하나의 주제로 만나는 작가들 특유의 기법이나 표현 방식, 내용의 다양함이 돋보이는 전시와 이벤트들이 여기저기에서 이어지고 있었다. 출판인뿐 아니라 각기 다른 문화권에 있는 작가들에게 영감을 주고 서로의 활력이 느껴지는 장이었다. 단순히 책의 저작권을 사고파는 산업의 장을 넘어 어린이에게 책을 연결해준다는 일념으로 어린이책의 문학성과 예술성을 높이기 위해 서로 대화하고 경험을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목표로 세계 모든 국가와 지역의 독립 출판, 작가, 예술인들의 개별적인 참여도 환영한다는 의지가 여기저기에 묻어났다.

 

이러한 국제 교류의 중심부에서 한국의 그림책은 현대 세계 그림책의 흐름을 이끌고 있는 주류임에 틀림이 없었다. 볼로냐 올해의 일러스트 전시는 91개국 4,345명의 작가가 참여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참여로 치열한 경쟁이었다고 보고되고 있다. 21,725점의 그림이 접수되었고, 최종 후보 315점이 경합을 벌여 최종 79세트의 그림이 선정되어 28개 국가의 80명의 작가가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로 발표되었다. 본 결과에 신아미, 문정인, 이경국, 김승윤 등 4명의 한국 작가가 이름을 올렸다.

 

뿐만 아니라 창의성과 예술성 측면에 선정 기준을 두고 있는 볼로냐 라가치상(Ragazzi Award)에 올해도 4종의 한국 그림책이 선정되는 영예를 안았다. 이지연 작가의 『이사 가』(엔씨소프트, 2022)가 픽션 부문, 미아 작가의 『벤치, 슬픔에 관하여』(스튜디오 움, 2022)가 오페라 프리마 부문, 김규아 작가의 『그림자 극장』(책읽는곰, 2022)과 5unday(글)·윤희대(그림) 작가의 『하우스 오브 드라큘라』(5unday, 2022)가 만화(중등, 만 9~12세) 부문 스페셜 멘션에 각각 이름을 올렸다. 국제 플랫폼에서 한국 작가들의 작업은 끊임없이 과감한 시도로 매번 새로운 작품들을 발표하며 놀라움을 선사한다. 백희나 작가의 2020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추모상 수상과 이수지 작가의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Hans Christian Andersen Award) 수상이 연이어 이루어지면서 한국 그림책은 세계의 주목을 받기에 충분한 시기에 있다. 이는 계속해서 우수한 작품들을 발표하고 있는 신진작가들의 활동들이 함께 이어지고 있어서 한국 그림책에 관한 기대감으로 한국 전시관을 찾는 이들의 진지함이 뜨겁게 느껴졌다.

 

올해 한국관에는 26개 출판사가 참가하였으며, 이외에도 개별적으로 참가한 출판사와 기관이 있다는 면에서 한국 출판인들의 참여도 뜨거웠다. 특히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그림책 전시관을 마련하며 이수지, 이기훈, 이지은, 권정민, 최덕규 등 대표 작가를 중심으로 한국 그림책 소개에 나섰다. 이들 작가들은 3일간의 짧은 일정 속에 작가 대담, 드로잉 퍼포먼스, 사인회, 낭독회 등 다양한 프로그램들을 소화하며 한국 그림책의 예술성을 알렸다. 여기에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 한국지부(Korean Board on Books for Young People) 즉, KBBY는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와 신간 도서를 소개하는 영문 카탈로그를 배포하며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특별 전시 코너에 마련된 ‘주목되는 신간 그림책’들을 함께 알리는 데 힘썼다. 한편 세계 각국의 인사들을 한국 그림책 전시관에 초청하여 작가, 그림책 그리고 한국의 예술적 시도에 대해 열띤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이들이 한국 작가들이 펼치는 예술적 시도에 흥미로운 질문을 던지고 진지하게 경청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한국관(좌)과 한국 그림책 전시관(우) 모습

한국관(좌)과 한국 그림책 전시관(우) 모습

 

권정민, 이기훈, 이수지, 이지은, 최덕규 등 그림책 작가들(좌), 이수지, 이기훈, 최덕규 작가와 함께 글 없는 그림책 작업 과정에 대한 대담(우)

권정민, 이기훈, 이수지, 이지은, 최덕규 등 그림책 작가들(좌),
이수지, 이기훈, 최덕규 작가와 함께 글 없는 그림책 작업 과정에 대한 대담(우)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 주최 측의 초청으로 참가한 이수지 작가는 2022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상 수상자로 단연 도서전의 주인공이었다. 이수지 작가는 이번 도서전의 전시 도록의 표지 이미지를 제작하며 도서전의 얼굴을 장식하였으며, 개인 전시와 다양한 강연 일정을 소화하며 매일매일 전시장 안과 밖의 행사장에서 독자들을 만났다. 그녀의 작품은 내용에 따라 보는 형식도 달라진다. 판형, 종이, 보는 방향성, 접지면 등 책의 물리적인 특징은 그녀의 그림책 서사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이는 현지 독자들에게 아주 흥미로운 지점이었다. 성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어린이들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방식으로 예술적 시도가 이루어졌다는 점에서 그녀의 그림책은 더욱 차별화를 이룬다. 이러한 시도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시장 안과 밖 다양한 공간에 다양한 연령층의 독자들이 몰려들었다. 책방에서, 도서관에서, 미술관에서 어린 유아에서 학생, 사서, 교사, 연구자 등 다양한 만남이 이루어졌다. 이수지 작가는 독자들의 반응을 보면서 한국 그림책이 지니고 있는 예술성의 수준은 세계의 중심에 있으며, 세계인들이 지니고 있는 그림책을 향한 예술적 갈증을 한국의 그림책이 해소시켜주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보다 다양한 교류의 장에 한국 그림책이 나아가 적극적인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KBBY는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의 중요한 주최측인 IBBY 이탈리아에 시각 언어로 이야기하고 있는 그림책을 통한 국가 간 교류를 제안하였다. 이에 그들은 너무나도 흔쾌히 수용하며 단발성이 아니라 꾸준히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그림책을 나누는 축제를 만들어 나가기로 약속했다. 이에 작은 출발로 2023년 11월 볼로냐의 중앙도서관인 살라보르사 도서관에서 그림책 축제를 통해 한국과 이탈리아 예술적 교류의 첫 포문을 열기로 하였다. 지역이 연결되고 도서관을 중심으로 확장되며 어린이, 책, 예술의 만남이 그림책을 통해 이루어질 신나는 축제 ‘그림_책을 만나다(가제): 한국과 이탈리아’의 첫출발을 기대해본다.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 내 이수지 작가 원화전(좌), 이수지 작가가 작업한 도록 표지(우)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 내 이수지 작가 원화전(좌), 이수지 작가가 작업한 도록 표지(우)

 

로마 미술관(Palazzo delle Esposizioni)에서 독자들을 만난 이수지 작가

로마 미술관(Palazzo delle Esposizioni)에서 독자들을 만난 이수지 작가

 

 

수많은 만남 속에 의미 있는 이야기를 주고받고 새로운 미래를 약속하며 2023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의 4일간의 짧은 일정은 마무리되었다. 2024년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은 슬로베니아를 주빈국으로 4월 8일부터 11일까지 진행될 예정이다. 내년의 한국 그림책을 기대하며 전시장을 뒤로하였다.

 

2023 볼로냐국제어린이도서전 올해의 일러스트레이터
https://www.bolognachildrensbookfair.com/en/focus-on/illustrators/the-illustrators-exhibition/2023-winning-illustrators/10631.html

 

심향분 전 KBBY 회장, 성균관대학교 생활과학연구소 선임연구원

그림책 연구자이며, KBBY를 통해 한국 아동청소년문학의 국제화를 위한 국제교류 활동의 확장에 힘을 모으고 있다.
shim1324@empas.com

 

해외동향 다른 기사보기 View More